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6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63화(963/1105)
< 92. 공작님,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22) >
92. 공작님,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22)
“여러분께 할 말이 있는데요···.”
나는 내가 생각한 바를 일행들에게 이야기했다.
어째서인가 내 말이 시작되기 무섭게 모두의 낯빛에 당황이 떠올랐고, 점차 당혹으로 물들어가다가 종래에는 비탄과 연민이 드리워졌다.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다.
“저, 시온. 그건, 그러니까, 그게요···.”
“쟤 진짜 어떡하냐···?”
유지스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아무 의미 없는 접속사만 늘어놓았고, 푸로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적이 가라앉았다.
고개를 숙인 푸로르를 제외하고, 일행들은 나를 곁눈질하거나 세르펜스에게 어떻게든 해 보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제가 빠지는 게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어요?”
악마가 보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나를 위해 야옹쇼까지 불사하는 세르펜스야 그렇다 치더라도.
싸울 때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만 되는 나였으니.
내 존재를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절반 이상은 빠지겠다는 내 말에 잘 생각했다며 동조해 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그러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온은 세르펜스를 자식처럼 여기니까, 굳이 가족을 보러 가야 할 이유가 없지 않나?”
아니마가 에드나의 어깨에 기대며 혼잣말 같은 말투로 중얼거렸다.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에게 방치당하며 자란 그녀였으니, 가족을 향한 내 그리움에 공감하지 못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세르펜스를 자식처럼 여긴다는 건 황당하기까지 한 소리였다.
{ 자식 취급보다는 고양이 취급이 더 충격적이지 않아? }
‘생각해 보니 그러네?!’
고양이 취급도 했는데 자식처럼 여기는 게 대수랴 싶다.
근데 그러면 기억을 잃기 전의 나는 자식을 고양이 취급한 사람인 걸까, 고양이를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인 걸까?
세르펜스의 정체성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에 따라 내 인성이 판가름나게 생겼다.
{ 지금 그딴 게 중요해? }
아차, 하마터면 본론과 동떨어진 주제로 빠질 뻔했다.
나는 세르펜스의 정체성과 내 인성에 대한 의문을 묻어두었다.
그리고 아니마가 혼잣말인 척 던진 물음에 답을 해 주고자 입을 열었다.
“자식이 있다고 부모, 형제가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야. 게다가 나는 내가 어쩌다 세르펜스를 자식처럼 여기게 되었는지 기억이 없으니, 딱히 자식 같다는 생각도 안 들고.”
내 말에 세르펜스가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아···.’ 하고 탄식했다.
큰 충격을 받아 넋이 나간 듯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방금 내뱉었던 말을 다시 주워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할 말이 궁하여 입을 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하기엔, 현재로선 가망이 안 보이고.
다시 추억을 쌓아 나가면 되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얘기하기엔, 이들 무리에서 이탈하겠다고 상반된 견해를 밝힌 직후였으니.
무슨 말을 하든 진정성을 담아내지 못할 터였다.
‘세르펜스를 어떻게 달래지?’
지금 내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지간하면 모르는 척 넘겼을 텐데, 그를 달래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떠올랐다.
이게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그를 아꼈던 까닭인지, 천사 같이 생긴 그의 외모가 내 양심과 신앙심에 가책을 느끼게 하는 까닭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 아까 ‘룩스메아 이 개새끼’를 외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뭐에 가책을 느낀다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양심과 신앙심 둘 다 없는 것 같은데? }
‘닥쳐, 네가 내 신앙생활에 대해 뭘 알아?! 내가 신께 얼마나 기도를 많이 올렸는데! 백수 시절에 이력서를 낼 때마다 이번에는 제발 붙게 해 주십사 열심히 빌었다고!’
그 결과 명실상부 대륙 최고의 직장인 프라시더스 가문의 공작 보좌관이 되었다.
비록 기억은 없지만, 첫 월급의 상당량을 교단에 성금으로 갖다 바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얼마나 대단한 신앙심이란 말인가.
{ 성금을 바쳤는지 아닌지 확인된 것도 아니잖아. }
‘감히 신의 사자의 신앙심을 의심하다니?! 이단이다! 여기에 이단이 있어!’
{ 이단이고 뭐고, 애초에 나는 악마인데? }
‘나도 알아.’
악마가 자꾸 트집을 잡는 바람에, 세르펜스를 달랠 방도를 찾지 못한 채로 적지 않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이 와중에도 꽥꽥이가 자신에게 잘못을 떠넘기지 말라며 발끈했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세르펜스였다.
“그 전에 당신이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공작저 심부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할 결계는 최소 두 개다. 신성 결계가 둘린 성곽을 피해서 이동한다 하여도, 수도를 보호하는 결계마저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세르펜스는 자신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하게 내가 공작저에 갈 수 없는 이유를 말하였을 뿐이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제국의 성은 마법이 아닌 신성력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국경선을 따라 성벽을 짓고 신성 결계를 쳐 두기엔 그 범위가 워낙 넓으니, 곳곳에 세워진 요새 사이로 몰래 밀입국을 시도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도시도 그냥 피해 가면 그만이고.
하지만 수도에 있는 공작저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수도의 신성 결계를 넘어야만 했다.
‘성문을 통과하는 순간 발작을 일으키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아, 그래도 몸이 안 좋아서 그렇다고 둘러대면 어떻게든 해결되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아픈데 세르펜스가 치료를 안 하고 멀뚱멀뚱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정체를 숨긴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제국 수도에는 성직자를 포함하여 귀족들까지, 신성력 보유자가 너무 많다.
지나가던 마음씨 고운 신성력 보유자가 치료해 주겠다며, 나설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력 구속구로 마기를 숨길 수는 있어도 들어오는 신성력을 막아줄 수는 없으니.
내 상태가 드러나는 건 금방이다.
“더욱이 결계를 넘는 순간에만 고통을 인내하면 된다는 건, 어디까지나 당신의 추측일 뿐이지 않는가?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발품을 팔아가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신성 결계 안에 있을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한 건 아니지 않아? 말 나온 김에 지금 시도해 보면 되는 거 아냐?”
“그러다 정말로 마기가 발작을 일으키면 어쩔 셈인가?!”
“얼른 결계를 거두면 되지.”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전투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꼭 확인해 두어야 할 문제야.”
내 대답에 세르펜스의 얼굴은 물론 손끝까지 희게 질렸다.
그 모습이 마치 온몸에 피가 빠져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찰나에 불과하더라도, 내가 고통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게 무척이나 끔찍하다는 듯한 반응이다.
나라고 고통을 수반할 수도 있는 실험을 하는 게 좋지는 않다.
아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싫다.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지금처럼 안전이 확보되었을 때 미리 실험해 두는 게 낫다.
‘한창 전투 중일 때는 대처하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
{ 나는 그편이 더 좋은데. }
그딴 소리 안 해도 악마라는 거 아니까, 좀 조용히 해 줬으면 좋겠다.
사람이 모처럼 진지하게 각오를 다지려는데 초를 쳐도 유분수지.
나는 속으로 마왕으로 추정되는 놈에게 꽥꽥이를 한 대 쳐 달라고 부탁하며, 세르펜스를 노려보듯 응시했다.
“나, 나는···, 그런 실험에 동참할 수 없다. 나더러 당신에게 고통을 주라니, 어찌 그런 잔인한 말을 할 수가 있는가?”
“꼭 세르펜스가 할 필요는 없어.”
“다른 사람이 당신을 아프게 하는 것 또한 용납할 수 없다.”
“해야만 해. 알잖아?”
“그대는 정말···, 정말 너무하다.”
세르펜스가 원망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끝내 차오르는 눈물을 참아내지 못했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으려 했으나 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게 더 빨랐다.
그 바람에 의자가 뒤로 넘어가든 말든, 세르펜스는 천막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꾹꾹 슬픔을 억누르는 세르펜스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차라리 울음을 터트렸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원했던 건 결코 아니었다.
바닥에 넘어진 채로 덩그러니 방치된 의자가 마치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여, 가슴이 미어졌다.
– 드르륵, 드륵, 드륵.
의자 끌리는 소리와 함께 휴마누스와 유지스, 윈스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마누스는 조용히 다시 앉았고, 남은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듯하더니 나를 돌아보았다.
마치 누가 세르펜스를 따라가는 게 좋을지 선택해 달라는 듯한 모습이다.
“둘이 같이 가요. 한 명보다는 둘이 낫겠죠.”
“그래도 저희 중 한 사람은 이곳에 남는 게···.”
“두 분이 다 나가셔도 여기에 남는 사람 많아요.”
내 대답에 유지스가 일행들을 쭉 둘러보다가, 에드나에게 나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윈스톤도 그 뒤를 쫓았다.
휴마누스도 아니고 왜 하필 에드나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성검 일행과 함께하고 있긴 해도 원래는 나와 세르펜스, 유지스, 윈스톤, 에드나가 한 팀이었다고 했으니.
다른 이들보다는 에드나가 나와 더 친근할 테지.
“휴마누스는 안 따라가도 되겠어요?”
“혹시 모르니까 나는 여기 있어야지.”
휴마누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만일 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자신이 모든 원망을 떠안겠다고 말하던 그의 목소리와 당시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책임감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고 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역시나 희생정신 쪽이 더 어울렸다.
{ 오호라···. }
‘뭘 솔깃해하는 거야?’
{ 네가 잘못되면 성검의 주인과 프라시더스 사이에 불화가 생길 거라니, 솔깃한 게 당연하잖아? }
‘이 마왕도 울고 갈 악독한 새끼.’
{ ···그건 대체 무슨 소리야? }
‘옆에 있는 마왕한테 물어봐, 이 새끼야.’
물론 그냥 되는 대로 떠올린 욕설이었으니 마왕이 그 뜻을 알 리 만무하다.
아, 이런 생각을 떠올리면 꽥꽥이 놈이 읽어 버릴 텐데.
무엇보다 사적이어야 할 생각의 영역이 전부 까발려진다는 게, 이렇게 기분 나쁘고 불편할 수가 없다.
‘사적인 영역 하니까 생각난 건데, 화장실 갈 때랑 목욕할 땐 어떡하지? 이 기분 나쁜 관음증 악마 새끼 같으니···!’
{ }
반박할 말이 없는지 꽥꽥이가 주둥이를 열지 않았다.
하다 못해 그때만이라도 연결을 끊어 주겠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건만.
“그래서 어떻게 할래?”
“최대한 허공을 보면서 일처리를 해야겠어요.”
“응?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 죄송합니다. 제가 화장실 갈 때랑 목욕할 때도 악마가 지켜보겠다길래, 그 대책을 생각하다가···.”
어리둥절해 하던 휴마누스의 얼굴에 꽥꽥이를 향한 경멸이 떠올랐다.
워낙 사람 좋기로 소문난 휴마누스였기에,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게 놀랍기까지 했다.
“세상에···.”
“더러워.”
“변태 새끼, 나가 뒈졌으면.”
“으으···! 걸려도 하필 그런 악마가 걸렸냐?”
리에나, 아니마, 에드나, 푸로르도 진절머리를 내며 꽥꽥이를 향한 혐오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꽥꽥이가 억울하다며 꽥꽥거렸지만, 그래서 연결을 끊어줄 거냐는 내 물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짜 상종 못 할 쓰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