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6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66화(966/1105)
< 92. 공작님,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25) >
“식사는 어떻게 하겠는가?”
세르펜스가 다짜고짜 식사 얘기를 꺼냈다. 내가 본의 아니게 단식 아닌 단식을 해버린 까닭에 걱정된 모양이다.
그는 친절하게도 선택지를 두 가지나 제시했다.
이대로 침대에서 먹어도 좋고, 일어나서 다른 이들과 함께 탁자 앞에 앉아서 먹어도 좋고.
“일행들이랑 같이 먹을래.”
몸이 천근같이 무겁긴 했지만, 언제까지고 침대에 머무를 수만은 없다.
오래 누워있었으니 더더욱 자리에서 일어나 멀쩡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야 다들 걱정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세르펜스는 내가 더 누워있길 바랐는지, 정말 일어나도 괜찮겠느냐며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왔다.
그에 나는 침대에서 벗어나 두 발로 서서 세르펜스를 바라보는 것으로 응답했다.
“둘 다 뭐해? 어서 가자.”
휴마누스가 천막 입구에 드리워진 천을 걷어 넘기며, 눈빛을 교환하는 나와 세르펜스를 향해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멀쩡한 입 놔두고 내가 왜 세르펜스와 눈빛 대화 같은 걸 나누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먼저 시선을 거두고 걸음을 옮기자 세르펜스가 쭐레쭐레 따라왔다.
“마침 깨어나셨네요. 그러지 않아도 시온 씨가 드실만한 걸 만들어 두고 있었는데.”
에드나가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국자로 냄비 안에서 끓는 스튜를 휘저어 건더기가 떠오르게 했다.
닭고기와 각종 야채가 국물과 함께 그릇에 한가득 담겼다.
오래 굶은 내가 먹기 좋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영양가가 높은 메뉴 선정이다.
직접 요리해 먹을 재료를 갖추고 있던 거로 보아 늘 도시락만 먹는 건 아니었나 보다.
“언니가 특별히 만든 음식이니까 감사히 먹도록 해.”
어째서인지 아니마가 고압적인 태도로 톡 쏘아붙이듯 말했다.
만든 사람 따로 있고 생색내는 사람 따로 있는 이상한 상황이다.
황당하긴 했지만, 안 그래도 에드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려던 참이라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에드나 씨. 잘 먹을게요.”
나는 그렇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에드나가 스튜 그릇을 내려놓은 자리 앞에 가서 앉았다.
닭고기 야채 스튜는 정말 나만을 위해 준비한 거였는지, 일행들의 앞에는 다른 음식이 놓여 있었다.
“열이 많이 내린 것 같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기분은 좀 어떠신가요?”
“배고플 텐데 얼른 먹어!”
먼저 착석해있던 리에나, 유지스, 푸로르가 한마디씩 말을 건네 왔다.
나는 그들에게 걱정해 줘서 고맙다고 답하며, 아직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한 사람에게 시선을 던졌다.
“윈스톤은 제게 할 말 없어요?”
“···세르펜스 님이 많이 걱정하셨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얘기 말고, 윈스톤은 제 걱정 안 했어요?”
“나도 걱정했소.”
“처음부터 그리 말할 것이지. 세르펜스의 이름은 뭣 하러 팔아먹습니까? 기사가 말이야! 주군의 이름을 그렇게 팔아먹으면 돼요, 안 돼요?”
“···평소와 달라진 것이 없는 걸 보니, 이제 좀 살만한가 보오.”
솔직하게 걱정했다고 말하지 못하고 세르펜스를 운운했던 걸 보면, 윈스톤은 부끄럼이 매우 많은 성격인 듯싶다.
말수가 적은 것도 수줍어서 그런 걸 테고, 살만하니 어쩌니 하는 말은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라는 뜻이겠지.
나는 머릿속에 ‘윈스톤은 부끄럼쟁이’라는 정보를 기록해 두었다.
워낙 말이 없는 사람인지라 다른 일행들에 비해 정보량이 턱없이 부족하여, 어떤 사람인지 잘 파악이 안 되었는데 비로소 감이 잡힌다.
무서워보이는 외양에 지레 겁먹지 않고 먼저 용기 내어 말을 붙여보길 잘했다.
{ 나한테는 걱정했는지 안 물어봐? }
‘뭐야, 꽥꽥이 너 아직도 있었어?’
{ 당연하지, 네가 언제쯤 일어날까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고! }
꽥꽥이가 날 걱정한 것처럼 굴었으나 진짜로 그러한 건 아닐 테다.
그냥 나를 통해서 이쪽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내가 잠만 퍼질러 자고 있으니 보이는 것도 없고 지루해서 그런 걸 테지.
놈이 진짜로 나를 걱정했다면 마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고, 이 망할 밀착 스토커 같은 짓도 그만뒀을 거다.
{ 아! 그래. 방법이라면 있지. }
‘···있다고?’
{ 프라시더스는 악마와의 계약을 끊을 수 있잖아? 그러니 일단 나와 계약한 뒤···. }
순간 솔깃했었는데 그냥 헛소리였다.
전에 얘기 들은 바로는 세르펜스가 계약을 끊어낸다 해도, 악마에게 받았던 힘은 고스란히 남는다고 했다.
한번 계약하면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즉, 몸속의 마기가 사라지기는커녕 더 많아지게 될 거라는 뜻이다.
{ 그래도 영혼을 저당 잡히지 않고도 싸울 힘이 생기는 거니까, 네게는 오히려 기회인 거 아니야? }
이 또한 허튼소리다.
계약을 끊어내는 과정에서 마인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힘을 원해도 마기는 싫고, 그 힘을 얻기 위해 어마어마한 고통에 노출되어야 한다면 더더욱 사양이다.
어디 그뿐이랴?
신의 사자로 알려진 내가 마기를 사용하게 되면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타락한 신의 사자라며 나를 손가락질하고 변절을 의심할 게 뻔하다. 이단 심문관에게 잡혀가도 할 말이 없어진다.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일행들에게 죄스럽더라도 짐짝처럼 얹혀 다니는 편이 더 낫다.
“안 드세요···?”
“헛, 죄송합니다!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에드나의 목소리에 나는 후다닥 상념을 털어냈다.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을 앞에 두고 내가 큰 실례를 저질러 버렸다.
아차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개중에서도 특히 매서운 시선이 하나 있었으니.
그 시선의 주인은 다름 아닌 세르펜스였다.
눈을 가늘게 좁히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꼴이 ‘악마와 대화하는 건 그만두라고 했을 텐데?’라고 타박하는 듯했다.
나는 그 시선을 애써 모르는 척하며 숟가락을 들어 스튜를 떠서 입으로 옮겼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지나치게 식은 것도 아닌, 딱 기분 좋은 온기가 입안에 담겼다.
닭고기와 야채는 푹 익어서 반쯤 녹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입맛이 돌지 않았다.
자느라 끼니를 몇 번이나 건너뛰었고 지쳐서 잠들 때까지 울어댔으니, 허기가 몰려드는 게 당연할 텐데도.
자꾸만 숟가락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마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없어서 쉬지 않고 숟가락을 쥔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점차 손이 느려지는 것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말 먹기 싫어져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뱉고 말았다.
“입맛이 없더라도 더 드세요.”
“그래. 그리해야 아픈 것도 빨리 낫지 않겠는가?”
에드나가 짐짓 엄하게 말하였고, 잇따라 세르펜스가 걱정 가득한 음색으로 말을 덧붙였다.
신성력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지금은 잘 먹고 잘 쉬는 게 최고라는 걸 내가 왜 모를까.
하나 억지로 먹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꾸역꾸역 그릇을 반 절가량 비우긴 했으나, 이 이상 먹으면 오히려 탈이 날 것 같아서 결국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았다.
“기껏 만들어 주셨는데 얼마 먹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오랜만에 식사하려니 잘 안 들어갈 수도 있죠. 냄비에 더 남았으니까 아공간 주머니에 챙겨 두셨다가, 이따 밤중에라도 허기지면 드세요.”
내가 사과하자 에드나가 개의치 말라는 듯 웃으며 말했고,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세르펜스가 스튜 냄비를 챙겼다.
나는 일행들이 식사하는데 멀뚱히 앉아 구경하기 뭐해서 침대가 있는 천막으로 향했다.
그러자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따라서 들어왔다.
“더 드시고 오셔도 되는데···.”
“나도 별로 입맛이 없다.”
“난 먹고 있는데?”
세르펜스는 입맛은 물론이거니와, 세상만사에 재미가 하나도 없다는 듯 시들시들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휴마누스는 한 손으로 접시를 받쳐 들고, 오른손에 들린 포크로 스파게티 면을 돌돌 말고 있었다.
두 사람 다 거짓 한 점 없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휴마누스는 황태자란 사람이 그래도 되는 겁니까?”
“지금의 난 황태자가 아니라 네 친구로서 여기 있는 거니까, 신분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어.”
“아, 그러시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려놓은 건 신분이 아니라 식사 예절 같다.
실시간으로 어이가 증발하고 있었으나 잘 먹는 모습이 나쁘지 않다.
다 같이 굶을 수는 없으니까 더는 지적하지 않고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리고 혹시 알아? 남이 잘 먹는 모습을 계속 보다 보면 집 나간 입맛이 돌아올지···.’
그렇게 희망을 품어 보았지만, 한번 가출한 입맛은 좀처럼 돌아올 줄 몰랐다.
결국 나는 다음 날 아침도 몇 술 뜨지 못하고 숟가락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슬슬 내 영양 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한 것인지 에드나가 극약 처방을 내렸다.
“쭉 들이켜세요.”
삶은 닭가슴살과 이것저것 갈아 넣은 정체불명의 셰이크가 내 앞에 들이밀어졌다.
살짝 한 모금 마셔 봤는데 맛이 정말 괴상하다 못해 괴랄했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들어간 재료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맛이다.
이딴 걸 마시고 싶지 않으면, 어서 자리에 앉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라는 강요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맛이다.
“화이팅···!”
잔뜩 구겨진 내 표정으로 대략적인 맛을 짐작했는지, 유지스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날 응원했다.
그 모습을 본 세르펜스가 힘내라는 말과 함께 유지스의 포즈를 따라 했다.
그런 두 사람도 두 사람이지만, 진짜로 부담스러운 이는 따로 있었다.
“설마하니 이것조차 남길 생각은 아니겠지?”
아니마가 질시 어린 눈을 홉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에드나의 관심을 받으면서도, 그녀의 정성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생긴대로 애교 많고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에드나 한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두 사람의 응원과 한 사람의 감시를 받으며, 괴이한 맛의 음료를 단번에 들이켰다.
“참 잘하셨어요!”
에드나가 칭찬의 말을 건넸고 유지스와 세르펜스는 짝짝짝 박수를 쳤다.
그러자 분위기를 탄 푸로르가 손가락 휘슬을 불었으며, 휴마누스가 유쾌하다는 듯 웃어댔다.
에드나와 유지스, 세르펜스. 이 세 사람은 몰라도, 푸로르와 휴마누스는 나를 놀리고 있는 게 틀림없다.
무언가를 잘 먹었다는 이유로 이렇게나 격한 환호를 받은 건 실로 오래간만이다.
어릴 때라면 몰라도 다 커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민망함에 낯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 나도 칭찬해 줄까? }
‘칭찬은 필요 없고, 넌 그냥 꺼져 주기만 하면 돼. 그럼 정말 고맙고 기쁠 거야.’
{ 애석하게도 내 임무는 널 기쁘게 하는 게 아니라, 우울하고 힘들게 만드는 거라서 그건 곤란해. }
꽥꽥이 주제에 일을 너무 잘한다.
놈의 말을 듣는 순간 단번에 기분이 저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