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6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68화(968/1105)
< 92. 공작님,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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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
“조, 조금만···, 흡···! 조금만 더, 잘게···. 내가 너무, 졸려서···.”
선우가 이불을 정수리까지 뒤집어쓰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
졸리다고 말하는 것과 달리, 선우의 목소리는 눅눅하게 젖어있었다. 명백하게 울음을 숨기려는 모양새다.
이제는 내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싫은가 보다.
선우의 이런 행동이 배려에서 기인한 것이란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아침 그리움에 눈물을 쏟고 위로받길 반복하고 있으니, 내게 고마우면서도 못내 미안해서 눈물을 숨기려는 것일 터.
그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서운함이 찾아왔다.
‘애초에 눈물을 숨긴다고 슬픔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며, 그럴수록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은 갈래갈래 찢어지는 법이거늘···.’
과거의 내가 괴로움을 억눌렀던 건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였다. 그러지 아니하면 버틸 수가 없었으니까.
반면에 선우가 인내하는 것은 본인이 아닌 나를 포함한 주변인들을 위해서였다.
그 사실이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이불 너머 가늘게 떨리는 선우의 기척이 느껴졌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불 위로 그를 도닥여 주는 것뿐이다.
손바닥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과 폭신함은 조금도 위안이 되지 못했다. 이는 선우에게도 마찬가지일 터다.
내 능력으로 선우가 느끼는 외로움과 슬픔을 달래줄 수 없다는 현실이, 나로 하여금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가슴이 미어져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선우가 느끼는 고통은 이보다 클 것임을 알기에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었다.
솟구쳐 오르는 울음을 삼키고 그 대신 한숨을 토해냈다. 그렇게 하니 멀미라도 하듯 울렁거리던 속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기분이다.
“세르펜스···.”
억눌린 선우의 울음소리 사이로 작은 음성이 들려왔다.
잠시 이불 뭉치에서 시선을 떼고 휴마누스를 돌아보았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휴마누스가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렸다.
그는 선우를 계속 이렇게 두어도 괜찮은 거냐고 묻고 있었다.
당연히 괜찮을 리가 없었다.
나는 크게 말하지 않아도 선우가 내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도록 상체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부디 내 목소리가 다정하게 들리길 바라며, 최대한 사근사근한 투로 말문을 열었다.
“그렇게나 가족들이 보고 싶은가?”
두툼한 이불 너머로 선우의 몸이 움찔 들썩거리는 게 느껴졌다.
어쩌자고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휴마누스의 질책 어린 시선도 느껴졌다.
나는 검지를 세워 입술에 가져다 대며, 미리 휴마누스에게 조용히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런 내 행동에 그가 의아하다는 낯으로 입을 벙긋거려 ‘뭐 하려고?’ 하고 물었다.
어차피 내가 선우에게 말을 꺼내면 휴마누스도 듣게 될 터다. 굳이 휴마누스에게 먼저 설명할 필요는 없다.
아니, 내 설명을 듣게 되면 반대할 것이 뻔했기에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행여 그가 내 의도를 읽을까 두려워 고개를 돌렸다.
“으음···. 그대가 원한다면 가족들을 만나게 해 주겠다.”
“그게 정말이야?!”
선우가 이불을 걷으며 벌떡 일어나 앉아 나를 마주 보았다.
얼굴은 눈물범벅에 눈가는 발갛게 부어올랐지만, 고동색 눈동자는 맑게 반짝이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어둡고 혼탁해지던 선우의 눈빛이 본래의 광명을 되찾았다.
나는 선우를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희망과 기대로 반짝이는 그의 모습을 마주하며 환희했다.
이 배덕하고도 저열한 감정을 무어라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직 악마가 소환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시온의 가족들을 외성 밖으로 데리고 나와, 잠깐 만나게 해주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쟤는···!”
“휴마누스.”
나는 나지막하게 이름을 불러 흥분하여 떠드는 휴마누스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리고 우울감이 걷힌 선우의 얼굴을 눈짓했다.
“아주 잠깐도 안 됩니까? 하루만···. 아니, 한 시간만이라도 좋으니까 부모님을 뵐 수 있게 도와주세요. 네?”
기다렸다는 듯 선우가 휴마누스를 바라보며 간절히 부탁했다.
저 간곡한 부탁이 거절당한다면, 선우의 눈빛은 다시 빛을 잃고 허공을 헤매이게 될 것이 자명했다.
휴마누스가 고민 가득한 제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나는 모르겠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하지만 네게도 다 생각이 있겠지.”
그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사실 나도 선우를 리벨론 가문 사람들과 만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겠지만, 최대한 나중으로 미루고 싶었다.
그저 가족과 같은 세상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에 선우가 안정을 느끼길 바랐다.
언제든 가족을 만날 수 있다고 여기며 그리움 따위 기억과 함께 지워졌길 바랐다.
그렇다고 하여 이대로 선우를 영원히 속일 생각은 아니었다.
기억을 잃고 혼란스러워하던 자아가 확고히 자리를 잡고, 기억이 없어도 자신을 자신이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예전처럼 나를 소중히 여기며 일행들과 가까워지면.
그리하여 기억에도 없는 가족보다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 여겨질 즈음에.
그 훗날 모든 것을 밝힐 계획이었다.
그대는 ‘시온 리벨론’이 아니라 ‘유선우’라는 이름의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가만히 두면 타락하여 자신과 세상을 망가뜨리고 마는 악인인 나를 바로잡고자, 신께서 보내온 나의 구원자라고.
선우가 있기에 내가 사람답게 살고, 진심으로 웃으며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었노라고.
‘그런데 어찌하여 선우는···.’
기억도 없으면서 가족이 그리워 매일 눈물을 쏟는 그가 야속했다.
한편으로는 선우의 의사를 무시하고 그가 처한 상황을 이용하여, 욕심을 채우려 하는 내 추악한 본성에 진절머리가 났다.
선우가 기억을 되찾아 나를 꾸짖어 주면 이 잘못된 행동을 멈출 수 있을 텐데.
“진짜 진짜 고마워, 세르펜스!! 아, 휴마누스도 고맙습니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를 얼싸안으며 좋아하는 선우의 모습에,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도 즐거워하는데 그깟 죄책감이 대수랴 싶다.
언젠가 이러한 내 행동이 업보로 돌아온다 하여도 그것을 짊어지는 건 나일 테니, 당장은 선우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 * *
선우를 리벨론 가문의 사람들과 만나게 해 주겠다는 내 말에, 일행들은 휴마누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하나 그들 역시 결국에는 내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밝은 얼굴을 하고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는 선우의 모습을 보고도, 차마 반대 의견을 내놓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선우를 아끼는 만큼, 그가 다시 괴로움의 바다에 몸을 던지는 걸 두고 보지 못했다.
제국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완성된 음식과 식재료를 잔뜩 챙겨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래도 영지에 방문하지 못하여 매일 같이 노숙이 이어지니, 피로가 누적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선우는 조금도 힘들지 않다는 듯 쾌활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게 행복하여 힘든 줄도 몰랐다.
앞으로는 선우가 죽음을 통해서만 넘어갈 수 있는 세상 속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괴로워할 일은 없겠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생각하며 외로워하는 날도 오지 않을 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선우의 기억을 지운 악마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서 어느덧 12월 중순에 이르렀고 우리는 수도 근방에 다다랐다.
이제 수도까지는 약 10km가량 남았다.
이 정도 거리면 충분하겠다 싶어 말에서 내려 천막과 테이블, 의자 등을 꺼내 놓았다.
“그럼 다녀오겠다.”
“조심히 잘 갔다 와!”
선우가 생기발랄하게 웃으며 나를 배웅했다.
기억을 잃은 그를 떨어뜨려 두고 먼 곳까지 다녀와야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리벨론 가문 사람들에게 선우의 정체를 밝혔다는 건, 그가 기억을 잃기 전 일행들에게 말하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면 내가 직접 다녀와야 했다.
‘백부님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는 사과도 해야 하고···.’
편지를 보내어 내가 이전 회차의 나로부터 몸을 되돌려받았다는 걸 알리긴 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완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셨을 터다.
리벨론 가문 사람들을 몰래 데리고 나오려면 어차피 백부님의 도움이 필수적이니, 만나뵙고 내 무사함을 확인시켜 드리면 기뻐하시겠지.
‘비록 좋은 일로 저택을 찾은 게 아닌 만큼 다시 시름을 얻으시겠지만···.’
나는 애써 머릿속에 떠오른 걱정을 치워 두고, 지면을 박차는 다리에 힘을 주어 빠르게 내달렸다.
다른 이들을 데리고 와야 하니 말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비행은 지나치게 눈에 띄어 애초에 고려조차 안 했다.
수도를 향해 달리는 동안.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리고 무슨 말로 리벨론 가문 사람들에게 협조를 받아낼지 궁리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들은 좋은 사람 축에 속하는 부류였다.
게다가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는 건 나였으니, 협조를 이끌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다만, 도무지 해결법이 떠오르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백부님을 지키고자 저택에 머무르고 있는 할버드의 이단 심문관, 그자의 눈을 피해 리벨론 가문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는 건 불가능했다.
그들은 백부님과 더불어 주요 호위 대상이었으니, 늘 예의 주시하며 기척을 감지하고 있을 터.
더군다나 그 이단 심문관은 선우가 진짜 ‘시온 리벨론’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선우가 가족을 보고 싶어하여 그들을 몰래 데리고 나가겠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백부님을 통해 압박하여 비밀 엄수를 강요하면 교단에 보고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도 저택에 머무는 이단 심문관은 다른 이로 바뀌어 있었다.
집무실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철퇴의 이단 심문관, ‘마리안느 C. 플레일’의 것이었다.
이는 더할 나위 없는 호재였다.
저자는 백부님께 호감을 품어 혼인을 목적으로 교단에서 나올 예정이라 하였다.
그리고 가문 내 구성원의 혼인은 가주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나와 백부님이 함께 부탁한다면, 선우가 기억 상실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도 교단에 보고하지 못하리라.
고민하던 문제가 풀렸기에 나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무실에 잠입했다.
“세르펜스, 네가 어쩐 일이니? 그것도 혼자서···.”
백부님께서 반가움과 걱정이 반씩 섞인 표정으로 나를 살피셨다.
그분의 시선이 가장 먼저 내 허리춤에 걸린 검 쪽으로 향했다.
무엇을 염려하여 그리하셨는지는 알지만, 집무실에는 이단 심문관과 전(前) 리벨론 백작도 함께 있었기에 내색하지 않았다.
“여러분과 리벨론 가문의 분들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저도 포함입니까?”
이단 심문관이 검지로 저 자신을 가리키며 질문해왔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하자, 예비 조카님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주겠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그 발언에 백부님께서 곤란하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그 표정을 못 본 체하며 이단 심문관과 시선을 맞췄다.
“정말 무엇이든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비밀을 지켜주시는 거로 족합니다.”
“교단에도 말입니까?”
“네.”
교단에 몸담아왔던 시간이 길었던 탓인지 이단 심문관은 곧장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짧은 기다림 끝에 내가 행하려는 일이 교단에 반하는 것만 아니라면,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