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6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69화(969/1105)
< 92. 공작님,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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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분들께서 오시면 하겠습니다.”
“그럼 그분들이 올 때까지 둘이서 얘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니?”
“네, 좋습니다.”
백부님께서 내게 무슨 얘기를 하시려는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나 역시 같은 일로 드릴 말씀이 있었던 차라 그 권유를 받아들였다.
내 대답이 떨어지자, 백부님께서는 전 리벨론 백작과 이단 심문관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 달라는 눈짓을 보내셨다.
“제가 제온에게 가족들을 응접실로 데려오라고 말할 테니, 두 분께서는 편히 대화 나누십시오.”
전 리벨론 백작이 그리 말하며 응접실로 넘어갔고, 이단 심문관 또한 그자의 뒤를 따랐다.
이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나는 굳게 닫힌 문을 두 눈으로 확인한 뒤 방음 마법 스크롤을 한 장 꺼내어 찢었다.
굳이 마법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집무실의 방음 수준은 뛰어난 편이다.
하나 이제부터 입에 담을 얘기는 극비 중에서도 극비였기에, 일반적인 방음 시설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내가 휴마누스보다 성검을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것, 이 세상이 두 번이나 재시작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전 회차의 내가 선우를 납치했었다는 것.
어느 것 하나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 특히나 교단에는 더더욱.
‘만일 내가 타락할 여지가 있는 존재이며, 선우를 납치하여 가학적인 행위까지 저질렀다는 걸 알게 된다면···.’
아무리 백부님께 호감을 품었다 한들. 철퇴의 이단 심문관은 그 사실을 교단에 보고할 것이 자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교단은 신의 사자인 선우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내게서 그를 빼앗으려 할 테다.
그렇기에 이중으로 철저히 방비해야 부족함이 없다.
“네 편지는 잘 받았단다. 이렇게 무사히 다시 만나 기쁘구나.”
이전 회차의 내가 당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잊은 것도 아닐진대, 백부님께서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로 나를 반기셨다.
내 손을 꼭 붙잡는 손길은 이전과 같이 부드럽고도 따뜻했다.
어쩐지 죄스러운 기분이 들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자꾸만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저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기쁘다는 것치고는 표정이 너무 어둡구나.”
“혹여, 제게 실망하지 않으셨습니까?”
“실망이라니?”
“제 본성이 백부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만큼 순수하지 못하여···.”
“그런 소리 하지 말렴.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항상 내게 있어 안쓰럽고도 사랑스러운 조카이니.”
백부님께서 내 뺨을 어루만지듯 감싸며 조심스레 내 고개를 들어 올리셨다.
똑바로 마주한 그분의 얼굴에는 인자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2회차의 내가 백부님을 시험하듯 떠보고, 애정을 강요했던 일이 떠올라 더욱 송구스러워졌다.
“지난번 일은 죄송했습니다.”
“네가 하지 않은 일에는 사과하지 않아도 된단다.”
“하지만 심려를 끼쳐 드린 건 사실이잖습니까.”
“원래 아이는 그러면서 자라는 거란다. 그걸 당당한 권리처럼 여겨서는 안 되지만, 지나치게 마음에 담아두는 것도 좋은 행동은 아니지.”
훈계하는 듯하면서도 상냥하게 위로하는 목소리가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어린아이 대우를 받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먹먹함에 말이 나오지 않아 가만히 서 있자니, 백부님께서 나를 끌어안으시고는 느릿느릿 등을 토닥여 주셨다.
다정한 온기가 상체를 감쌌다. 어쩐지 맥이 탁 풀리며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선우가 기억을 잃은 후로 이렇게 편안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가족이 원래 이런 식으로 안정감을 주는 존재라면, 가족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선우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아니, 실은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가장 처음 그리움이란 감정을 인지한 건 선우의 다정함을 알게 된 이후, 볼타 산맥의 마물 토벌 건으로 출정했을 때다.
비록 당시에는 그것이 그리움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지만.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달콤함이. 어째서인지 으스대는 표정으로 그 다디단 간식을 건네며 웃던 선우의 얼굴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떠올랐다.
그런 주제에 당시의 나는 선우를 시험하는 우를 저지르고 말았다. 어리석게도.
선우가 그 사실을 깨닫고 나를 원망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울적한 기분이 밀려드는 찰나.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향한 내 애정이 변하는 일은 없을 거란다.”
백부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왔다.
마음을 두드리는 그 음성에 울적한 기분은 맥을 못 추리고 사그라졌다.
‘선우는 항상 이러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겠지···.’
누군가에게 애정을 받는다는 건 지극히도 중독적인 감각이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2회차의 나 또한 그게 어떠한 감각인지 어렴풋이 느끼자마자, 선우에게 집착하지 않았던가.
선우와 ‘시온 리벨론’ 사이에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좋은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는 점이다.
그래서 선우는 기억을 잃어도, 그자의 기억을 통해 가족의 온기가 얼마나 따스한지 알 수 있었을 테고.
그 결과 다시 그리움을 품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아, 그래. 유니어가 오늘도 꽃을 활짝 피웠단다.”
백부님께서 슬그머니 나를 감싸 안았던 팔에 힘을 풀고, 내 표정을 살피다가 불현듯 떠올랐다는 투로 말씀하셨다.
나는 백부님의 시선을 따라 창가에 놓인 두 개의 화분을 눈에 담았다.
풍성한 잎과 가지를 자랑하며 소담한 꽃송이를 한가득 피워낸 유니어 옆에, 고작 두 송이의 꽃을 피워낸 작은 화분이 보였다.
2회차의 내가 ‘나의 벗’이라 이름을 붙인 그것을 본 순간 절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선우가 내게 준 소중한 선물인 유니어의 가지를 함부로 꺾어, 멋대로 자신의 것이라 칭한 것 하며.
백부님의 관심 속에서 생명을 이어나가 흙에 뿌리를 내린 것까지.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미워하지 말렴. 그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게 어찌 그 아이만의 잘못이라 할 수 있겠니.”
“···그런 식으로 감싸주기에는 크나큰 죄를 수도 없이 저질렀습니다.”
“크다고 해 봤자 이 세상 사람들이 네게 저지른 죄를 모두 합한 것만 할까.”
“······.”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대에서 벌어진 일을 끌어와 잘잘못을 가리자면, 네가 성검의 선택을 받았다던. 그 시기의 사람들이 저지른 죄를 논하는 게 우선 아니겠니? 그렇다고 그 아이의 행동이 정당해질 수는 없지만, 이 세상에 네 앞에서 죄인이 아닌 자가 없으니 누구도 그 아이를 비난할 자격은 없단다. 그러니 너도 이만 죄책감을 거두거라.”
어쩌면 백부님의 말씀대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 앞에서 죄인이라 하여도 선우만큼은 달랐다. 어느 회차의 존재든 나는 결코 선우를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백부님께서도 그 사실을 알고 계시지 않느냐는 질문이 목구멍에 걸렸다.
하나 이 물음은 내뱉어 봤자 백부님의 마음만 아프게 할 뿐이다. 홀로 삼키는 편이 옳다.
“그건 그렇고···. 요즘 선우 님께서는 건강히 잘 지내시니? 식사는 잘하시고?”
백부님께서 넌지시 선우의 근황을 물어보셨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선우의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았던지라, 줄곧 걱정하고 계셨던 것이 틀림없다.
좋은 소식을 알려드릴 수 없다는 사실에 말문이 막히고, 현 선우의 상태를 떠올리자 눈물이 핑 돌았다.
리벨론 가문 사람들을 만나기로 정해진 이후로 선우는 다시 입맛을 되찾았다.
밝게 웃는 표정과 쾌활한 목소리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악마와의 연결은 끊어지지 않고 여전했으며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만 못했다.
‘내가 지금보다 더 잘 대해주면 모든 불안을 떨쳐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나를 예전처럼 소중히 아껴줄까?’
비록 선우가 나와의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관계성이 변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차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기억을 잃기 전이라면 좋아했을 법한 행동을 해 봤자, 애정 가득한 시선이 아닌 부담스럽다는 시선만 돌아올 뿐이었다.
“얘, 얘야. 갑자기 왜 그러니? 혹시 선우 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니?”
내가 갑자기 울먹거리자, 백부님께서는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시다가 급히 손수건을 꺼냈다.
그러고는 내 눈가를 톡톡 두드리시는데, 그 행동이 마치 기억을 잃기 전 선우의 행동을 연상시켰다.
그 순간 그리움이 몰아쳤다.
“울지 말고 무슨 일인지 말해 보렴. 응?”
“선우가···, 흐읏···. 저를, 잊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니?!”
백부님께서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셨으나 울음에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고작 질문 하나에 이렇게까지 흔들릴 줄은 몰랐다.
그 질문이란 게 선우의 상태에 관한 것이긴 하나, 오늘은 그 얘기를 하러 저택에 찾아온 것이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 놓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도 그렇지 않았다.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대상이 눈앞에 나타나자마자, 꽉꽉 눌러담았던 서러움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러한 내 상태를 파악하셨는지 백부님께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그저 말없이 나를 보듬어 주실 뿐이었다.
덕분에 나는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깊이 심호흡하여 가빠진 숨을 가다듬고, 눈가를 말끔히 닦아내며 따끔한 눈가를 신성력으로 치료했다.
“응접실에 사람들이 전부 모인 듯하니, 자세한 얘기는 자리를 옮겨서 이어나가겠습니다.”
“···그래, 그러자꾸나.”
백부님께서 나를 몹시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셨다.
그 눈을 마주하면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애써 응접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와 백부님이 응접실에 들어서자, 철퇴의 이단 심문관과 리벨론 가문 사람들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했다.
“편히 앉으십시오.”
내가 그리 말하며 백부님과 함께 자리에 앉고 나서야 다들 자리에 앉았다.
그들의 모습을 둘러보다가 뒤늦게 테이블 위에 놓인 밀크 푸딩이 시야에 들어왔다.
뽀얀 빛깔과 잔 기포 없이 매끈한 표면이 한눈에 보아도 맛있을 것 같았지만, 어째서인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푸딩에서 관심을 끊고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얼마 전 마탑 인근에서 벌어진 악마들과의 전투에서···. 중급 악마 하나가 시온에게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네. 공간을 찢고 이동하는 다른 악마의 힘을 빌려, 신성 결계 안쪽으로 이동하여 신의 사자께 해를 가하려 했다고 들었습니다.”
대답을 내놓은 건 이단 심문관이다.
리벨론 가문의 사람들은 해당 정보를 처음 접했는지,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 표정에 어린 경악은 이내 걱정으로 변모했다.
진짜 가족도 아니고, 집사를 제외하면 말도 몇 번 섞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심으로 선우를 걱정하고 있었다.
“가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 악마는 목적하던 바를 이뤘습니다.”
“그 쳐 죽여도 부족함 없는 악마 놈이 감히 신의 사자의 거룩하신 육신에, 마기를 심어 두었다는 얘기까지는 전해 들었습니다.”
이단 심문관의 말에 현재 선우가 쓰고 있는 몸의 원주인이던 자가 ‘그, 그 몸이 그렇게까지 거룩하진 않은데···.’ 하고 중얼거렸다.
전 리벨론 백작 부인이 서둘러 그자의 입을 막고 이단 심문관의 심기를 살폈다.
그에 이단 심문관은 ‘신의 사자께서 오래 머무른 육신이 거룩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가르침이라도 내리는 투로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