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7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71화(971/1105)
< 93. 공작님, 저는 누구예요?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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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면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딘가 이상했다.
내가 가족들을 좋아하고 아낀다는 걸 고려하더라도 그리움이 지나쳤다.
매일 아침 눈물을 쏟고,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증상은 어찌 봐도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마기의 폭주로 아프기도 했고 기억상실 탓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으니까. 무의식중에 가족들을 찾은 것도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곧 가족들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원래 사람은 아프거나 힘들면 가장 먼저 가족을 떠올리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 이상할 거 하나 없다.
나는 그렇게 까닭 모를 위화감을 잠재우고, 가족들과의 재회를 즐겁게 기다리기로 했다.
세르펜스가 미리 내 상태를 설명해 두겠다고 했으니, 가족들은 걱정을 한가득 품고 나를 만나러 올 테다.
그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부모님에겐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요. 동생들에겐 형으로서의 모범을 보이는 일이다.
나는 에드나를 통해 아니마에게 빌린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긴장된 얼굴 근육을 풀고자 다양한 표정을 지어 보았다.
고개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이 정도면 건강해 보이려나···?”
{ 그런 것 같은데? }
눈가가 붓거나 붉게 물들지 않았고 다크서클 또한 없었다. 야위어서 볼이 푹 꺼지지도 않았다.
가족들과의 만남이 결정된 이후에도 자고 일어나면 그리움이 밀려들긴 했지만, 곧 가족들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울지 않고 금방 털어버릴 수 있었다.
오늘도 그건 마찬가지인지라 내 눈은 붓기 하나 없이 말똥말똥했다.
영양 섭취야 에드나 덕분에 늘 잘해 왔으며, 최근에는 입맛도 돌아와 일반식을 곧잘 먹게 되었다.
그래도 가족들 앞에서 잘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을 듯싶다.
“세르펜스가 오면 간식거리라도 꺼내 달라고 해야 하나? 미리 준비를 마치고 가족들을 맞이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간식이라면 저도 갖고 있어요! 꺼내 놓을까요?”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유지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간식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따로 챙겨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유지스도 세르펜스 못지않게 군것질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유자 크림 치즈로 만든 무스 케이크와 유자 페이스트로 샌드한 다쿠아즈, 유자 갈레트, 유자 파운드, 유자 파이, 유자 샤블레, 유자···.”
유지스가 유자로 시작하는 디저트 이름을 늘어놓으며, 그중 하나를 골라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녀가 좋아하는 건 군것질이 아니라 유자였다.
유자유자거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광기가 느껴졌다.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간식 담당을 자처한 건, 유자를 그만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 일리 있어···! }
다행히도 나는 기억을 잃고 난 이후로 유자 간식을 입에 댄 적이 없다.
오늘 하루만이라면 유지스의 유자 간식도 잘 먹을 자신이 있다.
유지스가 늘어놓은 간식 이름 중 기억에 남는 건 ‘유자’라는 단어뿐이었던지라, 나는 심사숙고하는 척 적당히 뜸을 들였다.
그러다가 다섯 번째가 좋겠다고 말하니 유지스가 유자 파이를 꺼내놓았다.
“역시 시온! 탁월한 선택이네요. 바삭바삭한 파이와 새콤달콤한 유자는 정말 환상의 궁합이죠!”
{ 만약 세상 모든 유자가 멸종한다면, 저 엘프는 분명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 거야. }
유지스의 말보다 악마의 말에 더 공감이 갔다.
나중에 생각나면 유자를 사랑하는 그녀의 장수를 위해, 공작저에 유자나무를 심어도 되느냐고 세르펜스에게 물어봐야겠다.
인간과 엘프의 수명 차이를 생각하면 그 정도로는 부족하겠지만.
그렇다고 세계수에 유자나무를 접붙일 수도 없으니 그게 최선이겠지.
“세르펜스가 오고 있나 보네. 멀지 않은 곳에서 그의 기운이 느껴져.”
“제 가족들도 같이 오고 있는 거 맞죠?”
휴마누스의 말에 나는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가족들이 잘 오고 있는지 궁금했던 건 아니고 그저 반가움의 표출에 불과했다.
세르펜스가 나서서 가족들을 데려와 준다고 했고, 그들이 나와의 만남을 거절할 리 없으니까.
한데 이상하게도 휴마누스의 대답이 시원찮았다.
“어? 으응···.”
“반응이 왜 그래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아냐, 아무 일도 없어. 다들 잘 오고 있어.”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빤히 쳐다보며 대놓고 미심쩍다는 티를 냈다.
하지만 휴마누스는 눈치를 못 챈 건지 그러는 척하는 건지 딴청만 부려댔다.
뭐, 됐다. 아무튼 가족들이 오고 있다는 건 확실한 듯하니, 마중을 겸하여 밖에 나가 있어야겠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 밖으로 나가자 휴마누스도 졸졸졸 따라나왔다.
그런 그의 행동을 두고 꽥꽥이가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지 않느냐며 떠들어댔다.
헛소리다. 휴마누스는 그저 나를 지켜주고자 곁에 있어주는 것뿐이다.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없잖아 있지만, 몸에 심어진 마기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제는 받아들였다.
‘애초에 꽥꽥이와 마왕 놈으로 추정되는 악마가 지켜보고 있으니, 오롯이 혼자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고.’
{ 에휴, 저 불경한 언사는 시간이 지나도 통 나아지질 않네···. }
밖으로 나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희미하게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싶더니 저 멀리서 마차의 실루엣이 보였다.
공작저의 마차치고는 화려함이 부족하긴 했지만, 그건 우리 가족을 몰래 데리고 나오느라 그런 걸 테다.
‘드디어 만나는구나···!’
마차는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고, 눈으로 보이는 마차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 동안 내 설렘도 점점 커졌다.
이윽고 목전에 다다른 마차가 멈춰 섰다.
마부석에 앉아있던 세르펜스가 땅에 내려서며, 푹 눌러쓴 모자와 얼굴의 반을 가린 목도리를 풀었다.
“잘 다녀왔어?”
“그래. 그동안 잘 있었나?”
“푸핫! 잘 지냈느냐니, 누가 들으면 장기 출장이라도 다녀온 줄 알겠네!”
“내게는 그대와 떨어진 1분 1초가 1년과도 같으니 틀린 말은 아니군.”
어지간한 사람은 저렇게 말하면 느끼하게 느껴질 텐데. 저런 소리를 진정성 넘치게 하는 것도 참 재주구나 싶다.
평소라면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릴 일이었으나 지금은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가 웃음이 헤퍼져 나도 모르게 키득거렸다.
그때 ‘달칵!’ 하고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유쾌한 기분으로 고개를 돌려 막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가장 먼저 땅에 발을 디딘 건, 한눈에 봐도 나와 부자지간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나랑 똑 닮은 남성이었다.
그는 마차 안으로 손을 내밀었고, 색 바랜 금발 머리를 틀어 올린 중년의 여인이 그 손을 맞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다음으로 젊은 남자가 앞서 내린 두 사람을 반씩 닮은 아이를 안고 모습을 드러냈다.
계속 안고 있기에는 꽤 무거웠는지 그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를 내려놓았다.
{ 꼭 남이라도 보는 것처럼 표현하네? }
‘시끄러워. 지금 신의 사자께서 가족들의 단란한 모습을 눈에 새기며 감상하고 있는데, 어디 하찮은 악마 따위가 나서서 방해하고 난리야?! 가족들이 다시 공작저로 돌아갈 때까지 조용히 닥치고 있도록 해.’
{ 나 지금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도 안 나는 거 알아? }
꽥꽥이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으나 내 알 바가 아니라서 무시하기로 했다.
가족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어도 모자랄 판국에, 꽥꽥이랑 티격태격하느라 시간만 버렸다.
그 사이 중년 여성. 그러니까 내 엄마 되는 사람이 바로 지척까지 다가왔다.
“우리 둘째 아들, 그동안 잘 지냈어?”
나를 감싸 안는 품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뭔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
가족들을 몹시 그리워했던 만큼 그들을 만나는 것을 매우 기대했으니, 만났을 때의 감동 또한 그만한 크기여야 합당하다.
‘그런데 이 느낌은 대체 뭐지···?’
마차의 문이 열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즐거움으로 잔뜩 부풀어 올랐던 가슴이 바람 빠진 공처럼 쭈글쭈글해진 기분이다.
코끝을 스치는 향수 냄새가 이상하게도 낯설었다.
{ 킥킥킥···. }
‘혹시 꽥꽥이 네가 나한테 뭔 짓 했어?’
{ 계약이라도 했다면 모를까, 마계에 있는 내가 무슨 수로? }
‘그럼 내가 왜 이러지···?’
{ 글쎄? 프라시더스 놈이 가짜 가족이라도 데려온 거 아니야? }
꽥꽥이가 또 헛소리를 했다.
제온의 손을 붙잡고 서 있는 아이는 처음 보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내 기억 속에 있는 모습 그대로다.
절대로 다른 사람일 수가 없다.
“왜 그렇게 멀뚱히 서 있어? 우리가 보고 싶어서 울 정도로 그리워했다길래, 이 엄마가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별로 반갑지 않은가 봐?”
“아, 아닙···. 아니야. 반가워, 무진장.”
엄마가 나를 놓아주며 섭섭하다는 표정을 짓길래, 일단 웃으면서 반갑다고 말하긴 했는데 기분이 영 이상하다.
반가움보다는 어색함과 껄끄럽다는 감정이 앞섰다.
상상하지 못했고 상식에서도 벗어난 방식으로, 나와의 친분을 주장하는 세르펜스를 대할 때조차 이러지는 않았는데.
{ 말 나온 김에 묻겠는데, 진짜 너 기억 잃기 전에 프라시더스랑 평소에 뭐 하면서 지낸 거야? 궁금해 죽겠네! }
‘나도 몰라. 기억나면 알려 줄 테니까, 정 궁금하면 머릿속에 심어진 마기를 빼내 보든가.’
{ 계약하면 기억상실 증상은 내가 어떻게든 할 수 있는데···. }
‘아, 계약 안 한다고요!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좀 꺼져요!’
기억을 되찾고 싶긴 해도 악마와의 계약을 감수할 정도는 아니다.
{ 글쎄? 단순한 기억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서.}
‘또, 또! 헛소리한다, 또!’
{ 너도 곧 깨닫게 될 거야. }
머릿속에서 꽥꽥이가 킥킥거리며 웃어댔다.
대체 뭐가 재밌어서 저렇게 웃어대는지 모르겠지만, 이래서야 별명을 킥킥이로 바꿔줘야 할 판이다.
“왜 그러니?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걱정이 뚝뚝 묻어나는 음색에 정면을 바라보자, 안쓰럽다는 표정을 한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짚으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 걱정이 됐나 보다.
머릿속에서 악마가 말을 걸어오고 있다는 건 숨기기로 한 터라, 나는 재빨리 변명의 말을 주워섬겼다.
“가끔 이렇게 머리가 지끈거리긴 하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얘는! 아들이 아프다는데 어미가 되어서 어떻게 걱정을 안 하니?”
“그러게···.”
백번 생각해도 옳으신 말씀인지라,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괜히 얼굴 마주하기 미안해져서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공작님께 얘기 들었다. 기억을 전부 잃어버렸다고···.”
“전부는 아니고 최근 몇 년의 기억만 사라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보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자. 유자스가 유지···, 아니. 유지스가 유자 간식을 준비해 줬어. 비비도 먹을 수 있으려나?”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여 나는 제온의 옆에 선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순간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치 당황이라도 한 것처럼.
하기야 내가 저 아이를 만난 건 딱 한 번뿐인 데다가, 그조차도 저 애가 갓난아기일 때였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형이라는 것도 모를 테고 엄청나게 낯설겠지.
“안녕, 이름이 비비라고 했지? 만나서 반가워, 둘째 형이야.”
“어···, 으, 에에···.”
비비가 옹알이도 뭣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냈다.
저 나잇대 애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는 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니 그렇다 치더라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은 반응은 좀 신경 쓰였다.
태어난 지 32개월가량 됐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면 어느 정도 말을 알아듣고 간단한 단어쯤은 말할 수 있지 않나?
“말이 좀 느린 편인가?”
“······!! 아니, 나 말할 수 있어!”
“와, 말을 엄청 잘하네?! 발음도 또박또박하고!”
“어, 어어···. 아, 아뉜뒈···?”
뭘까, 이 아이는.
이상하긴 했지만 아이는 원래 이상한 짓을 많이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게 보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비는 어디로 보나 평범한 아이였다.
신성력을 타고났다고 들었지만, 그래 봤자 애는 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