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7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73화(973/1105)
< 93. 공작님, 저는 누구예요? (3) >
{ 어쨌든 프라시더스가 ‘가족’이란 것에 아무런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너도 동의하는 거지? }
‘그야 뭐···.’
어쩐지 꽥꽥이한테 말려드는 듯한 기분이 들긴 했으나 부정할 말이 궁했다.
세르펜스는 제 입으로 아직까지 당시의 일을 잊지 못하여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고. 그래서 혼자 자는 게 두려워 나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고 얘기했다.
그런 그가 가족을 애틋하게 생각할 리 없다.
{ 그자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네 마음을 유린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널 위한 거라며 포장할 수 있는 인간이야. }
‘어째 얘기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 내가 열심히 설명하고 힌트를 줬는데도 네가 못 알아들으니까 그런 거잖아. }
누구보다도 나의 좌절을 바라고 있을 꽥꽥이가 나를 위하는 척 굴었다.
만일 누군가가 내 마음을 유린하고 있다면 그건 세르펜스가 아닌 꽥꽥이겠지.
하지만 놈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지금 내가 괴리감을 느끼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무언가 이상한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눈앞에 있는 이들은 가족이 분명한데 가족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마냥 낯설고도 불편하기만 했다.
{ 자꾸 나만 나쁜 놈으로 몰아가는 것 같은데, 사실 가장 나쁜 건 너야. }
‘세르펜스를 모함하려 했는데 뜻대로 안 되니까, 이제는 날 걸고넘어지는 거야?’
{ 언제까지 진실을 외면할 거야? 슬슬 지겨워지는데···. }
지겹다는 말과 달리, 꽥꽥이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하다는 듯 상당히 들떠 있었다. 심지어 그걸 감출 생각조차 없었다.
마계에 있는 놈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모르긴 몰라도 싱글벙글 웃고 있지 않을까 싶다.
{ 너, 저들을 속이고 있잖아. }
‘저들이라면, 내 가족들 말이야?’
{ 네 가족이 아니라 ‘시온’의 가족이겠지. }
‘내가 시온이야.’
{ 정말 그렇게 생각해? }
늘 그러했듯 꽥꽥이가 또다시 헛소리를 지껄여댔다.
내가 시온이 아니면 대체 누구라는 건지. 괜히 귀를 기울였다가 손해 봤다.
역시 꽥꽥이 따위와 말을 섞는 게 아니었다. 그럴 시간에 가족들과 한마디라도 더 대화를 나눴어야 했다.
{ 내 말이 헛소리로 들리는 건 네가 진실을 외면하고 있어서 그런 거야. }
지금 이 시간에도 가족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근심과 걱정의 그림자가 짙어졌다.
말 없이 우울감에 잠기는 내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자 입술을 뗐다가, 할 수 있는 말이 괜찮으냐는 말뿐이라서 도로 닫고 내 눈치를 살피는.
그러한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미안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미안해졌다.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는 건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일행들은 지금 내가 악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테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그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함께했다. 그렇기에 차마 내게 지적하지는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와, 와아···! 유자 파이가 참 맛있네요! 시온이랑 세르펜스도 어서 드세요. 시온의 가족분들도요.”
유지스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노력하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짠했다.
그래서 내려놓았던 포크를 다시 들긴 했는데 역시나 먹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유자 파이에 손을 댄 건 나와 유지스 뿐이었다.
그나마도 나는 직접 먹은 게 아니라 비비에게 먹여준 거고, 유지스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고자 방금 한 입 먹은 게 전부다.
‘세르펜스가 간식을 조금도 먹지 않은 건 의외네···?’
{ 그러게? 네 상태가 안 좋을 때에도 널 앞에 불러 앉혀 놓고 보여주듯이 이것저것 먹었으면서. 월초에는 사탕이 든 봉지를 내밀며 병에 채워 달라고 부탁까지 했잖아. }
‘아, 맞아. 그땐 진짜 어이없었지. 사탕을 준비해 올 정도면 그냥 자기가 알아서 옮겨 담아도 되지 않나?’
설마 내가 봐 주지 않아서 안 먹은 건 아닐까, 그런 작은 의심이 떠오르긴 했는데 말 그대로 설마다.
아무려면 그런 이유로 간식을 안 먹겠어?
세르펜스라 하여도 간식을 먹기 싫은 날 정도는 있을 테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겠지.
얼굴에 근심이 덕지덕지 붙은 게 누가 봐도 입맛이 없어 보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만난 이후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아빠가 내게 말을 붙여왔다.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걱정이 가득 담긴, 그러나 다정한 목소리로.
분명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내게 맞지 않는 옷이라도 걸친 것처럼 불편하기만 했다.
{ 맞지 않는 옷이라, 비슷하긴 하지. 킥킥! }
꽥꽥이가 가볍게 툭 던지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자의와 무관하게 머릿속에서 퍼즐이 짜 맞춰졌다.
뭔가 불안하고 무서워서 그것을 흐트러뜨리려 해 보았으나, 퍼즐의 완성을 막을 수는 없었다.
{ 드디어 알아챘구나? 맞아, 너는 시온 리벨론이 아니야. 그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다른 존재지. }
‘···그럼 내가 진짜 천사라도 된다는 거야? 교단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까지는 몰라서 악마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었는데, 천사였구나?! 근데···, 천사치고는 입이 너무 험하지 않아? }
‘시끄러워, 뭐 어쩌라고, 닥쳐.’
{ 그냥 타락해서 우리 쪽으로 전향하는 거 어때? }
언제는 계약을 하자더니, 이제는 타락을 하란다.
{ 계약도 좋고.}
‘그럼 넌 천사랑 계약하는 셈인데?’
{ ···어? }
거기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꽥꽥이가 당황했다.
하지만 당황한 것도 잠시, 곧 내가 타락하는 쪽으로 계약하면 문제없다며 떠들어댔다.
{ 아무리 생각해도 넌 천사보단 악마에 더 어울려. 프라시더스에게 손쉽게 접근하려고 보좌관의 몸을 빼앗은 것부터, 이미 천사보다는 악마가 할 법한 행동이잖아. 안 그래? }
‘······.’
{ 너도 이제 알잖아. 어째서 시온의 가족들을 대하는 게 불편한지. 그건 네가 저들에게서 진짜 시온을 빼앗았기 때문이야. }
머릿속에 완성된 퍼즐을 애써 직시하지 않으려 노력한 것이 무색하게도.
꽥꽥이는 내가 가장 외면하고 싶었던 부분을 짚어냈다.
{ 정말 기만적이구나? 시온의 몸을 빼앗아 쓰며 가족 행세를 해 온 너도, 가족을 그리워하는 네게 시온의 가족을 데려온 프라시더스 놈도. 둘 중 누가 더 기만적인지 우열을 가리는 게 힘들 정도네. }
‘···아니, 아닐 거야. 악마에겐 가족이 없다며, 그럼 천사에게도 없는 거 아니야? 그럼 내가 가족들을 그리워한 게 말이 안 되잖아.’
{ 글쎄? 천사의 생태는 나도 잘 몰라서. 천사에게 가족이 있는지 그딴 거 내 알 바인가? }
자기네 종족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도 모르는 머저리에게 내가 너무 큰 걸 바랐나 보다.
뭐, 가족이 없더라도 가족과 같은 친밀한 존재쯤은 있었을 테니.
그리움의 대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눈앞에 빤히 보이는 답을 거짓이라 우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괜한 걸 물어봤구나. 기억을 잃은 사람에게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니···. 기억을 잃고 한동안 향수병에 시달렸다고 들어서, 이젠 괜찮아졌는지 묻는다는 게···.”
내···. 아니, 시온의 아버지가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을 늘어놓듯 말했다.
잘못을 저질러 사과해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인데, 어째서 그가 내게 사과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진실을 끝까지 몰랐다면 모를까, 더는 시온의 가족을 마주 보지 못하겠다.
그럴 면목이 없다.
“저기, 정말 너무 미안한데···. 지금 내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쉬고 싶으니까 그만 돌아가 줬으면 좋겠어.”
나는 안고 있던 비비를 세르펜스에게 떠넘기며 시온의 가족들을 쫓아냈다.
먼저 보자고 했던 건 내 쪽이건만, 그 누구도 나를 타박하지 않았다.
시온의 가족들은 제멋대로 구는 내게 화내기는커녕 외려 걱정의 말을 한마디씩 건넸다.
하지만 나는 이미 반쯤 혼이 쏙 빠져나간 상태인지라 그들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들을 배웅했는지도 모르겠다.
마부석에 오른 세르펜스가 금방 돌아오겠다고 말한 것만 겨우겨우 들었다.
“침대를 꺼내 줄 테니까 좀 누워 있을래?”
휴마누스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멀어지는 마차를 눈으로 좇으며 멍하니 서 있는 내가 걱정됐나 보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를 속이려 들었던 세르펜스가 자리를 비웠으니, 무언가를 물어보려면 지금이 적기다.
그러니 휴마누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다시 테이블 앞에 앉아 모두에게 물어야 했다.
‘나는 대체 누구인지, 정말 내가 시온의 몸을 강탈하고 그의 가족들을 기만해 왔는지.’
{ 어째서 아무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는지, 그것도 따져야 하지 않을까? }
‘···응, 그것도 물어봐야겠지.’
나는 휴마누스의 제안에 거절하고자 입술을 뗐다.
그 순간 어지럼증이 밀려드는가 싶더니 다리에 힘이 풀리고 세상이 빙글 돌았다.
단단한 팔이 쓰러지려는 나를 받쳐 준 덕택에 맨땅에 쓰러지는 일은 없었다.
“세상에, 열이 엄청 심하잖아?!”
경악하는 휴마누스의 목소리가 웅웅 울리듯이 들렸다.
그 말에 이마를 짚어 보자, 손바닥에 열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일단 머리가 무겁고 귀가 먹먹한 걸 보니 열이 나는 게 맞겠지.
시온의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컨디션이 좋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아플 수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는 휴마누스의 침대에 눕혀졌다.
일행들이 호들갑스럽게 무어라 떠든 것 같기도 한데, 그 목소리가 작은 데다가 귀까지 먹먹해서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 많이 아파? }
귀로 듣는 게 아니라서 그런가, 이 와중에도 꽥꽥이의 말은 또렷하게 들렸다.
지금은 별로 듣고 싶지 않은데.
{ 너를 기만한 자들보다는 나와 대화하는 게 더 낫지 않아? 적어도 난 너를 속이지는 않았잖아. }
처음 대화가 가능해졌을 때, 내 마음의 소리를 연기했던 꽥꽥이가 거짓말을 해댔다.
참 양심도 없지.
{ 그건 부끄러우니까 언급하지 말아 줄래? }
‘언급 안 하고 그냥 생각만 했거든? 남의 생각 멋대로 읽고 딴죽 걸지 말아 줄래?’
{ 보통 인간은 아프면 성격이 좀 유해지지 않아? 넌 왜 그대로야? 몸뚱이만 인간이고 영혼은 천사의 것이라 그런가? }
‘넌 내가 천사라고 확신해?’
{ 말하는 꼴을 보면 아닌 것 같긴 한데, 교단의 인간들이 그렇게 믿는다며? }
대체 내 말투가 뭐 어떻다는 건지 모르겠다.
비록 내가 꽥꽥이한테 욕설을 퍼붓고 룩스메아를 개새끼라 지칭하긴 했지만, 악마에게 지적당할 정도로 언어생활이 저속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천사는 늘 고급스러운 어휘만 골라서 사용하나 보다.
‘그러고 보니 악마들 사이에서 내 정체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고 했지? 무슨 무슨 얘기가 나왔어?’
{ 우리는 네가 천사 아니면 다른 세상에서 온 인간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 다른 세상의 신일 가능성도 제시되긴 했는데, 너무 허황되서 아무도 믿지 않았지. }
‘신?! 그건 너무 뜬금없는 거 아니야?’
{ 네가 너무 신이랑 맞먹으려 드니까 그런 얘기가 나온 거잖아. }
꽥꽥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튼 내가 신일 가능성은 사라졌으니, 그쪽은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이유인즉슨 신이라고 하기엔 내 정신이 너무 나약하다나?
‘그렇게 따지면 마왕도 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쪼잔하고 음습하지 않아? 열등감에 자격지심 덩어리에, 세르펜스가 고양이 소리 좀 냈다고 당황하기까지···. 아! 완전한 신이 아니라 반푼이라서 그런가?’
{ 말조심해! 마신 테네브리오 님께 잘 보여도 부족할 판에,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떡해?! }
꽥꽥이가 화들짝 놀라서 목소리를 높였다. 어째 화를 낸다기보다는 염려하는 듯한 말투다.
아무래도 꽥꽥이는 내가 자신과 계약을 하든 타락을 하든, 자기네 편에 붙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