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7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74화(974/1105)
< 93. 공작님, 저는 누구예요? (4) >
‘것보다 목소리 좀 낮춰. 가뜩이나 열이 올라서 머리가 아픈데, 네가 소리를 지르니까 더 지끈거리잖아.’
{ 네가 마신 테네브리오 님을 욕해서 그런 거잖아. 아프다는 인간의 성질머리가 뭐 그따위야? 환자답게 고분고분 순하게 굴 수는 없어? }
그렇게 꽥꽥이에게 따지고 있을 때, 머리 위로 차가운 무언가가 턱 얹어졌다.
축축한 수분감이 느껴지는 거로 봐서 누가 물수건이라도 이마에 올려 주었나 보다.
눈을 떠서 누구인지 확인하려다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솔직히 지금 기분 같아서는 물수건이고 뭐고 치워버리고 싶다.
하지만 물수건은 잘못이 없으니까 봐주기로 했다.
‘아프니까 신경이 예민해지는 건 당연지사고, 짜증이 늘어 입이 험해지는 건 자연의 이치거든? 내가 건강했을 땐 말이야, 순하다 못해 순종적인 성격이었다고!’
{ 그건 ‘시온’의 성격이겠지. }
‘아···.’
꽥꽥이의 말대로였다.
소심하고 무람하며 자존감까지 낮은, 순종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내가 아닌 ‘시온 리벨론’이었다.
그렇다면 내 성격은 어떠한가.
‘이 정도면 시온만큼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소심···한 편이려나?’
{ 양심 없고 뻔뻔한 놈 같으니. }
지금 내게 있는 기억이라고는 ‘시온’의 것뿐이다.
프뤼네 왕국에서 제국 수도로 오기까지, 한 달 하고도 보름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길다면 꽤 기나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내가 ‘시온’이라고 철석같이 믿어왔다.
내 모든 언행이 ‘시온’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 객관성을 완전히 잃었네. }
이제 ‘내가 아는 나’는 나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이 말해 준 내 모습’을 토대로,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밖에 없겠지.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뭘 어쨌다고 했더라? 세르펜스를 어린애 취급하다 못해 머리를 막 쓰다듬고, 엉덩이까지 툭툭 두드렸댔지? 아! 그리고 고양이 흉내도 시켰다고···.’
{ 잠깐, 잠깐만. 누구의 뭘 두드렸다고? }
‘···네가 잘못 들은 걸 거야.’
세르펜스의 엉덩이에 관해서는 영원히 망각하려 했건만.
일행들에게 들었던. 내가 ‘시온’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되짚으려다가, 잊으려 했던 얘기까지 떠올려 버렸다.
{ 역시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잖아?! }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센스를 발휘해 주면 어디 덧나나?’
{ 그런 얘기까지 들었으면, 영혼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챘어야지. }
‘나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거든?! 그런데 세르펜스가 아무리 기억을 잃어도 나는 나라고···, 아···!’
그 당시 세르펜스는 나를 ‘시온’이 아닌 다른 별명. 아니, 별명인 줄 알았던 ‘이름’으로 나를 지칭했다.
꽥꽥이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쭉 ‘시온’이라고 불려서. 그리고 내가 ‘시온’이라 불리는 게 당연하다 생각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이상한 별명이 내 진짜 이름이었구나···.’
{ 그래서 네 이름이 뭔데? }
‘내 이름은···, 그러니까···. 선···, 뭐 그런 거였어.’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어째 가물가물 하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그 이름으로 불렸던 건 잠깐에 불과했다.
더는 그렇게 불리지도 않으며 내가 그 단어를 입에 올릴 일은 없을 테니, 굳이 기억해 둘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발음까지 이상했으니 더더욱 기억에 안 남았다.
{ 썬(Sun)? 과연 빛의 신에게 선택된 자는 그 이름의 뜻도 빛의 신의 사자답네. 하지만 악마의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으니 새 이름을 짓는 게 좋겠어. }
‘어차피 개명시킬 거면서 뭐하러 이름을 물어봤던 거야?’
{ 그야 이름은 누군가를 정의하는 단어잖아. 즉, 그 존재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는 뜻이지. 그렇기에 이름을 확실하게 알아야 계약을 맺을 때 더 견고하게 연결될 수 있고, 네가 마신님을 따르기로 했을 때···. }
꽥꽥이가 주절거리는 소리만 들으면, 내가 마왕에게 본명을 바치고 타락하여 악마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한 줄 알겠다.
턱도 없는 소리였으나 지금은 제멋대로 생각하게 놔두기로 했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충격적이기도 했고, 믿고 있던 세르펜스와 일행들이 날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배신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지금은 영 꽥꽥이와 노닥거릴 기분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악마 진영에 내 정보가 흘러 들어가게 둬서 좋을 건 없으니까···.’
{ 서운하네, 우리 사이에 숨길 게 뭐가 있다고. }
나는 꽥꽥이의 말을 무시하며 최대한 머리를 비우고 잠에 들고자 노력했다.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옆으로 뉘이고 잔뜩 웅크렸다.
그 과정에서 이마에 얹혀진 물수건이 떨어졌으나 잠시 뒤 누군가에 의해 다시 얹어졌다. 미적지근해졌던 온도 또한 처음처럼 시원해져 있었다.
그 덕분에 생각보다 쉬이 잠들 수 있었다.
* * *
“··· ···게 할 거야?”
“흐읏, 죄송합니다.”
“아, 아니···.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본 건데···.”
흐릿한 의식 사이로 두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명은 흐느끼는 중이었고 다른 한 명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열이 아직 안 떨어졌는지 소리가 웅웅 울리듯 들려서 목소리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두 남성이 누구인지 짐작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나를 제외하면 일행 중 남성은 세르펜스, 휴마누스, 윈스톤 뿐이다.
윈스톤이 훌쩍거리거나 격식을 갖추지 않은 반말을 쓸 것 같지는 않으니, 우는 건 세르펜스고 난감해하는 건 휴마누스겠지.
“자책하지 말아요, 세르펜스. 잘못이 있다면 저희 모두에게 있겠죠.”
“그렇지 않다. 그에게 가족들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약조한 건 나다. 다들 말렸는데도···, 흑!”
이번에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고 있는 남성, 세르펜스가 반말로 대답한 걸 보니 여성의 목소리는 유지스인 듯싶다.
“아무래도 알아챈 것 같지? 자기가 ‘시온’이 아니라는 거.”
가볍게 툭 던지는 듯하지만, 걱정이 묻어나는 이 목소리는 푸로르의 것일 테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음에도 이렇게 확인사살을 당하니 새삼 충격이 밀려들었다.
눈을 뜨고 일어나서 따져야 하나?
{ 저들이 하는 변명 따위 들어서 뭐 어쩌려고? 다 너를 위해서였다고 말할 게 뻔한데, 기분만 더 나빠지지 않겠어? }
‘그래도 나를 위해 진실을 숨긴 건 사실이겠지.’
내 기준으로는 잠깐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4년이 휘리릭 지나가 버린 상황이다.
그것만으로도 당혹스러운데,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넌 시온이 아니라, 그의 몸을 빼앗은 다른 존재야.’라고 말했다고 치자.
심지어 그렇게 몸을 빼앗아서 한 짓이 직장 상사를 ‘이하 생략’ 하는 거라니.
{ 내가 생각했을 때 ‘이클립스’ 넌 말이야, 마계에서 태어났어야 하는데 뭔가 오류가 생겨서 천계에서 태어난 것 같아. }
‘이클···, 뭐? 그게 누군데?’
{ 악마로서의 네 이름이야. 네가 자고 있을 때 마신 테네브리오 님께 네 이름에 관해 보고를 올렸더니, 그분께서 친히 악마로서의 네 이름을 지어주셨어. 엄청난 영광이지! 정말 부럽다. }
영광은 얼어 죽을.
것보다 마왕이라면 꽥꽥이랑 같이 나를 구경하는 중 아니었나?
그런데 보고는 개뿔이, 다 들킨 마당에 대체 언제까지 점잔을 떨 생각인지 모르겠다.
‘듣기로 마왕은 성직자의 세례명을 빼앗고 그들을 악숭 사제로 만들었다는데, 갑자기 내게 새 이름을 내린다고? 무슨 룩스메아 따라잡기 하나?’
{ 마신 테네브리오 님께서 이름을 내려주셨는데 감사히 여기지는 못할망정···! 앞으로 고쳐나갈 게 한둘이 아니네, 에휴! }
꽥꽥이가 답이 없을 정도로 머리 나쁜 학생을 가르치게 된 선생님처럼, 막막하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내가 악마가 되면 꽥꽥이가 교육 담당이라도 맡기로 결정되었나 보다.
어차피 나는 악마가 될 생각이 없으니 꽥꽥이에겐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 너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서, 하나도 다행스럽지 않은데? }
‘그보다 이클 뭐시기, 그거 내 이름으로 확정된 건 아니지? 영혼에 각인된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
{ 이클립스야. 앞으로 네 이름이 될 거니까 외워 둬. 그리고 질문에 대답하자면 아직은 아니야. 지금 네 몸속에 있는 마기는 엄연히 네 것이 아니니까. 나와 계약해서 마기를 정식으로 받아들이게 됐을 때, 이클립스는 진짜 네 이름이 될 거야. }
강제로 이름이 바뀌는 것도 싫지만, 이름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꽥꽥이의 설명에 진심으로 안도했다.
{ 이클립스라는 이름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데? }
‘끝 글자가 아주 별로야.’
이미 일행 중에는 ‘스’로 끝나는 이름이 무려 셋이나 있다.
세르펜스, 휴마누스, 유지스.
심지어 세르펜스는 성도 프라시더’스’고, 푸로르랑 리에나의 성도 대충 ‘스’로 끝났던 거로 기억한다.
여기에 ‘이클 뭐시기 스’가 또 추가되는 건 진짜 개에바다.
{ 너 이름 외웠는데 일부러 그러는 거지? }
만약 내가 읽는 소설에서 주요 등장인물 이름이 죄다 돌림자면, 작가의 작명 센스를 의심했을 거다.
어쩌면 독자로부터, 이름이 헷갈리니까 신경 좀 쓰라는 지적이 담긴 편지를 받을지도 모른다.
{ 개에바는 뭐고, 소설 얘기는 대체 어쩌다 튀어나온 거야? }
‘나도 몰라, 그냥 튀어나왔어.’
아무튼 중요한 건 마왕이 지은 이름 따위가 아니다.
나는 내가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나자마자, 시온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으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았다.
‘지금보다 충격이 더 컸을 거야. 그 말을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건 더더욱 어려웠겠지.’
믿기지 않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온’과 내 성격이 조금 다르다는 걸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음에도 이러할진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들었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테다.
{ 조금? 조오그음?! }
‘나 진지하게 생각에 잠긴 거 안 보여? 10분 만이라도 좀 닥치고 있어주면 안 돼?’
각설하고, 만약 일행들이 처음부터 내게 사실을 말해주었다면 나는 그들을 경계했을 거다.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납치해서 세뇌시키려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일행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이후에도 그런 내 태도는 변함이 없었겠지.
‘내가 아는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의심하는 것보다, 남의 말을 의심하는 게 몇 배는 쉽고 편하니까.’
지금도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하지만 시온의 가족을 보고도 그리운 마음이 가시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졌기에, 그래서 그들이 내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에.
부정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시온 리벨론이 아니다, 이 명제가 참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내게 필요한 답이 아니다.
‘내가 시온이 아니라면, 난 대체 누구야···?’
자기 자신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게 이리도 두려운 일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아니, 아니다.
어쩌면 나는 기억을 잃고 깨어난 이후부터, 줄곧 그 두려움을 인식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시온이 아니라는 증거가 도처에 깔려 있었는데도, 그것들을 들춰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걸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