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7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78화(978/1105)
< 93. 공작님, 저는 누구예요? (8) >
가뜩이나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는데, 꽥꽥이가 걱정거리를 하나 더 얹어주었다.
마음이 답답하여 나도 모르게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서늘하면서도 부드러운 손바닥이 이마에 닿았다.
돌연 내가 끙끙거리니 아파서 그런 줄 알고, 세르펜스가 내 이마를 짚어 열이 나는지 확인한 걸 테다.
“간호라면 됐으니까 그냥 자.”
“어째서···.”
“굳이 내 입으로 이유를 설명해야 돼?”
지금 간호를 받는 건 의미가 없다.
어차피 가벼운 열 정도야 내일이면 신성력으로 치료를 할 수 있게 되거나, 굳이 치료할 필요가 없게 될 테니까.
그래도 만약 내가 깔끔하게 시온의 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면, 마지막이기도 하니 세르펜스에게 간호받는 것도 고려해 봤을 거다.
하지만 나는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되든 안 되든 마기의 정화를 시도해 보자는 쪽으로, 내 마음이 기울게 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혹여 그리된다면 세르펜스의 컨디션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릴 수도 있다.
‘···어라? 웬일로 꽥꽥이가 조용하지?’
세르펜스를 믿지 못해서. 자는 사이 죽어서 본래의 육체에서 깨어나게 될까 봐, 그를 먼저 재우려는 거 아니냐.
대충 그러한 빈정거림이 들려오고도 남을 타이밍이었건만.
어째서인지 꽥꽥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내 정신은 혼란과 갈등, 불안, 걱정 등. 그 어느 때보다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하니, 꽥꽥이와의 연결이 끊겼을 리 만무했다.
그러니 꽥꽥이가 그냥 침묵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아무리 작별인사를 미리 했다지만, 바로 이렇게 관심을 거두는 건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
‘근성 없는 악마 같으니! 뭐 이리 포기가 빨라? 끝까지 계약을 권유해서 실적을 올릴 생각을 해야지!’
이런 생각을 떠올려도 조용한 걸 보면 더는 나와 대화할 의사가 없나 보다.
처음 말을 걸어왔을 때도 일방적이더니 끝맺음 또한 일방적이구나 싶다.
나는 꽥꽥이를 불러 보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얼른 세르펜스를 재워 놓고,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게 좋을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너무하다고 원망해서는 안 되겠지. 당신에게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 건 내 부족함 탓이니···.”
“그런 얘긴 됐으니까, 얼른 눈 감고 자기나 해. 잠들 때까지 토닥여 줄게.”
“······.”
세르펜스가 체념 어린 표정으로 눈을 감았고, 나는 그 표정을 못 본 척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어째서 내가 세르펜스를 토닥여 재워야 하나 의문스러웠는데, 이젠 이 짓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한참 동안 토닥거리다 보니 세르펜스의 호흡이 고르게 안정되었다.
그래도 그가 완전히 잠들었다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세르펜스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슬그머니 손을 거두고 몸을 바로 눕혀 천장 쪽을 바라보았다.
세르펜스는 잠들었고 꽥꽥이도 말이 없다. 기억을 잃고 깨어난 이후 처음으로, 차분하게 혼자서 사색에 잠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어떻게 할까···?’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역시 두려웠다.
죽고 나면 다른 육체에서 깨어날 거라니. 다시 떠올려 봐도 믿기 힘든 허황된 말이다.
마기를 정화하는 동시에 치료하면 된다고, 첫 번째 방법을 입에 담던 세르펜스의 얼굴에 자신감은 한 줌도 존재하지 않았다.
까딱 잘못하면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아 죽을 수도 있고, 어찌어찌 치료가 잘 되어도 내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쇼크사할 수도 있다고 말하던.
아니, 그 말을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하던 세르펜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다음, 그가 마기를 정화하지 않고 나를 본래의 육체로 되돌려보내겠다고 말했을 땐.
툭 까놓고 말해 나를 안락사 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마기를 정화해도 살 확률은 희박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하니까, 그냥 편하게 죽으라는 말과 어디가 다른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죽고 나면 본래의 육신에서 깨어날 거라는 말에 신뢰도가 떨어졌다.
죽음을 두려워할 나를 위해 그가 건넨 하얀 거짓말이 아닐까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본래의 육신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르는데, 그게 진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 그딴 걸 내가 어찌 알겠는가.
‘인간의 몸을 그릇 삼아 소환된 악마들이 대륙에서 죽게 되면, 그 뒤에는 어떻게 되는지 꽥꽥이에게 물어볼걸···.’
천사와 악마는 그 경우가 다르겠지만.
그래도 남의 몸에 들어갔던 악마가 무사히 마계에서 깨어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아주 조금은 불안을 내려놓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째서 이런 생각을 빨리 떠올리지 못했을까 한스러웠다.
연결을 끊은 게 아닌 이상, 분명 내 생각을 듣고 있을 텐데도 답이 없는 꽥꽥이가 야속했다.
생각을 거듭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커졌다.
어느 쪽을 골라야 옳은지 갈등하고 말고의 수준이 아니라, 어느 쪽이든 결정하는 것 자체가 망설여졌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룰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테다.
‘오히려 그 덩치를 더욱 키워나가며 나를 잠식해 나가겠지.’
나 자신에게도, 지켜볼 일행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더욱이 나를 지키느라 일행들이 감당해야 할 위험 부담까지 생각하면, 결코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오늘 밤 내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아니, 반드시 결정할 거다.
그렇게 마음을 굳힌 순간.
{ 마신님께서 보고 계시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었어. 하지만 넌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까,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지? }
‘뭐?’
갑자기 들려온 꽥꽥이의 말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휴마누스가 신성 결계를 펼쳤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이 나를 덮쳤다.
어마어마한 고통의 격류에 휩쓸려 호흡조차 이어나가기 힘들었다.
비명을 내지르는 건 사치였고 온몸이 경직되어 발버둥조차 여의치 않았다.
‘이대로 죽는 거야? 대체 왜?!’
당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힌트가 될만한 건 조금 전 꽥꽥이가 언급한 마왕의 존재 정도다.
그렇다는 건 지금 이 고통은 마왕이 시온의 몸속에 있는 마기를 조종하여, 임의로 날뛰게 한 거라고 보면 되려나?
꽥꽥이는 계약을 해야만 이 마기를 어떻게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마왕쯤 되면 계약 따위 하지 않아도 마기를 다루는 건 일도 아닌가 보다.
{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나와 계약하자꾸나. }
말투도 목소리도, 이건 꽥꽥이의 것이 아니었다.
딱 한 번 들어본. 내가 마왕의 것이라 짐작했던 그 존재의 목소리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고통 속에서 당황한 세르펜스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붉게 물들어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신성력으로 추정되는 빛이 번쩍인 건 알 수 있었다.
이마와 가슴에 무언가 얹어지는가 싶더니 따스한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끄윽···.”
실낱과도 같은 가느다란 구멍에 불과하지만, 숨통이 트여서 가까스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고통의 격류가 다시 한 번 몰아치며 겨우겨우 열린 숨구멍을 틀어막아 버렸다.
{ 되도록이면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거다. 그러지 않으면 네 영혼이 무사하지 않을 터이니. }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세르펜스의 말이 진실이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은 죽어도 내 영혼이 본래의 육체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차갑고 끈적한 무언가가 나를 옭아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육신에 닿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붙잡힌 것이 내 영혼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영혼을 움켜쥔 힘이 점점 강해졌다. 마치 내 영혼을 터트릴 듯이 조여왔다.
지금까지는 봐 주는 것에 불과했다는 듯 거대한 고통이 찾아왔다.
온몸을 걸레처럼 쥐어짜는 것 같기도 하고, 종잇장처럼 구겨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과일로 주스를 만들듯 꾹꾹 압착하는 것 같기도 한.
기괴하고도 끔찍한 감각을 동반한 그 고통에 나는 몸서리쳤다.
{ 이제 계약할 생각이 들었나? }
상대는 고작 계약을 하겠다며 이런 짓을 하는 놈이다.
계약을 한 후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또다시 내게 고통을 가하며 괴롭힐 테지.
어쩌면 나를 인질 삼아 세르펜스에게도 계약을 강요하고, 지금 내게 하는 것처럼 그를 고문하려 들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까지 이 고통에 끌어들일 수는 없다.
{ 거절인가? 내 마지막으로 관용을 베풀었건만, 한사코 거절하겠다니 아쉽구나. 어쩔 수 없으니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죽어라. 그리하여 ‘아베로’에게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 마음의 상처를 남기고 소멸되어라. }
{ 그러게 나랑 계약했으면 좋았잖아. 그랬다면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
마왕이 말한 아베로는 대체 누구지? 꽥꽥이가 방금 안타까워한 것 같은데, 맞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으나 금세 지워졌다.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고통이 엄습했으므로.
이미 최고치의 고통을 겪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내 착각에 불과했나 보다.
“아악!!”
틀어막혔던 숨통이 한순간에 트이며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몸이 바들바들 떨리며 경련이 일었다.
기절할 듯 의식이 까마득히 멀어졌다가 정신이 번쩍 들길 반복했다.
* * *
“···를 편하게······.”
“기껏 ······, 그게 무슨···.”
“하지만······.”
“······.”
“······.”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힘겹게 눈꺼풀을 올린다고 올렸는데 눈을 반절도 못 뜬 것 같다.
그래도 억지로 눈을 몇 번 깜박이자 어찌어찌 시야가 확보되었다.
울고 있는지 어깨를 들썩이는 세르펜스의 뒷모습이 보였다.
유지스는 그런 녀석을 감싸 안고 달래는 듯했고, 휴마누스는 뭐가 그리 답답한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쩐지 머릿속이 멍하여 상황 파악이 잘 안 된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목소리를 낼 힘이 없어서 그냥 눈동자만 굴려 다른 일행들의 모습도 살폈다.
에드나는 지금 울고 있지 않았으나 눈가가 붉은 게 한창 울고 난 이후인 듯했다. 그 옆에 붙어 앉은 아니마의 표정이 침통했다.
윈스톤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바닥만 내려다보는 중이었고, 푸로르는 한 손으로 본인의 머리칼을 짜증스레 헝클어뜨렸다.
리에나는 그들 너머로 보이는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안색이 파리한 게 꼭 환자 같다.
저들이 대체 왜 저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뭘 하다가 잠들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 목숨줄 한번 질기네. }
머릿속에서 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눈을 네다섯 번가량 깜박거리고 난 다음에야, 그것이 꽥꽥이의 목소리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모두가 잠든 틈을 타, 마왕이 내 몸속에 깃든 마기를 날뛰게 하였다. 분명 세르펜스의 대응을 늦추기 위해서였겠지.
또한 꽥꽥이가 나더러 목숨줄이 질기다고 한 걸 보면 난 아직 살아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는 건 세르펜스가 무사히 마기를 정화하는 데 성공한 건가?
{ 응. 축하···해야 하나? 아무튼 프라시더스 저놈, 그냥 무력만 강한 인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격이 높네. 그래 봤자 아직 인간의 수준을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것 같지만. 운이 좋은 줄 알아. 만약 네 몸에 심어졌던 마기가 최소 상급 악마의 것이었거나 그 양이 조금만 더 많았어도, 마신 테네브리오 님께서는 목표하시던 바를 이루셨을 테니까. }
윈스톤과 웨일리안이 그 염소 머리 악마를 빨리 해치워 준 덕분이려나?
내 영혼을 소멸시키겠다던 마왕의 말이 떠올라 아찔하다가도, 놈의 뜻대로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