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7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80화(980/1105)
< 94. 공작님과의 갈등 (2) >
{ 언제는 나도 친구라더니, 우선순위라도 있나 봐? }
‘갑자기 그게 무슨···. 아, 혹시 내가 일행들만 응원하고 네 편은 안 들어 줬다고 삐친 거야?’
{ 그런 거 아니야. 삐쳤다기보다는 그냥···, 뭔가 좀···? }
목소리만 들어도 섭섭해하는 게 팍팍 느껴지는데 아니기는.
나도 어지간한 경우라면 새로 생긴 친구를 응원해 주고 싶긴 하다.
하지만 꽥꽥이가 대륙에 소환돼서 맡게 될 일 중에서, 응원해 줄 수 있을 만한 건 하나도 없을 테다.
꽥꽥이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마왕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너랑 친하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모두에게 잠자코 죽어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마왕은 개인적인 열등감과 욕심 때문에 자신을 따르는 존재들을 사지로 내몰고, 죄 없는 이들을 죽이려 들지만. 난 그런 못돼 처먹고 이기적인 새끼가 아니거든. 애초에 동료들은 내 지시대로 움직이는 존재도 아니고.’
{ 마신님께서는···, 그···. }
내 말에 무어라 반박을 하고자 꽥꽥이가 운을 떼긴 했으나 말을 잇지는 못했다.
가장 큰 이유야 당연히 반박할 말이 없는 까닭일 테지만.
표면적인 이유는 세르펜스가 내게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바로 곁에 있었는데도 지켜주지 못하고,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겪게 해서···.”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눈에 맺힌 눈물이 흘러나오기 전에 서둘러 옷소매로 문질러 닦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 반응에 말문이 막히고 기분이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이게 어디 세르펜스의 잘못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냥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그걸 면한 수준도 아니고, 고통 속에서 소멸의 위기를 맞이했다가 겨우 산 거였다.
이런 내게 평범한 대화를 건넬 수 있을 리가 없다.
세르펜스는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말을 꺼냈을 뿐이다.
“괜찮···.”
{ 괜찮긴. 속으로 프라시더스 놈을 옹호하는 말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속여야 할 정도···. 아, 이런. 습관이···. }
꽥꽥이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이간질을 하려다가 아차 싶었는지 말끝을 흐렸다.
지금까지 그가 이간질을 시도한 횟수를 생각하면 새삼스럽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다.
나름대로 내 상태를 생각해서 배려해 준 거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굉장히 기쁘고 고마웠다.
“혹시 아직도 아픈 곳이 남았나?”
세르펜스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내가 통증 때문에 괜찮다는 말을 끝맺지 못한 거라 오해했나 보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목이 너무 건조한 탓이라고 둘러대어 물을 한 잔 건네받았다.
녀석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 앉은 건 덤이었다.
목이 건조하다는 얘기는 변명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꽥꽥이와 머릿속으로 대화를 나눌 땐 몰랐는데, 입을 열자마자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의 건조함을 느꼈으니까.
그걸 자각하고 났더니 입안에서 비릿한 맛이 났다.
방금 목이 바짝 메마른 상태로 말을 한 까닭에, 목구멍에 상처가 생겨 피가 나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까 마왕이 내 영혼을 해치려 할 때 피를 토했던 탓인가 싶기도 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피 맛을 인지하자 갑자기 온몸이 저릿저릿해졌다.
아니, 어딘가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세르펜스가 내 치료를 소홀히 했을 리 없으니 진짜로 아픈 건 아닐 테다.
분명 착각이라는 걸 아는데 어째서 저릿한 느낌이 사라지기는커녕, 몸이 덜덜 떨려오는지 모르겠다.
{ 영혼에 새겨진 고통이 쉽사리 잊힐 리 없잖아. }
‘영혼···?! 나, 괜찮은 거야?’
{ 그냥 그만큼 큰 충격이었으니 트라우마로 남을 거라는 얘기였어. 영혼 자체에 문제가 생겼을 거란 뜻이 아니라. }
‘그런 거야···?’
{ 응. 영혼이 타격을 입긴 했을 테니 완전히 멀쩡한 건 아니겠지만. 정말 큰 문제가 있었으면 아예 깨어나지 못했을 거야. 영구적인 손상은 아닐 테니까, 한동안 조심하면 회복될걸? }
‘다행이다···.’
영혼을 대가로 받고 계약을 맺는 악마가 하는 말이니 꽤 정확하겠지.
나는 꽥꽥이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르펜스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으음거린 것도 그때였다.
“으으음···.”
“왜 그래?”
“그게···.”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세르펜스는 내가 덮은 이불 끝자락을 붙잡고 손을 꼼지락거리며 우물쭈물했다.
뭔가 할 말이 있다면 시원하게 해 줬으면 좋으련만.
왜 그러느냐고 따지려고 입술을 열려던 찰나, 휴마누스가 그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왜 그러고 있어? 아직 악마와의 연결이 끊어진 건 아닐 테니까, 신성력으로 시온의 정신을 안정시켜야 한다며.”
나는 꽥꽥이에게 본명을 밝혔으니 그냥 선우라 불러도 된다고 얘기하려다가 그만뒀다.
말했다간 세르펜스나 휴마누스 뿐 아니라 일행 전체에게 돌아가며 혼날 게 뻔했으니까.
꽥꽥이는 신뢰할 수 있는 악마이며 친구 먹기로 했다는 얘기를 해 봤자, 저들은 꽥꽥이와 직접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으니 내 말을 믿지 못할 터였다.
보나 마나 내가 기억을 잃은 사이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해도 되겠는가?”
세르펜스가 휴마누스의 말을 이어받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신성력을 써서 내 감정을 억지로 진정시켜도 되느냐고 묻는 거다.
{ 저게 확인까지 받아야 할 문젠가? }
‘내가 예전에 그러지 말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서 그래. 내 의사와 무관하게 감정이 변화하는 게 싫어서. 정신적으로 힘들 때마다 신성력의 도움을 받으면 의존하게 될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 독립성이 강한 성격인가 보네. 그렇다면 악마 쪽은 잘 맞지 않을지도···. }
악마라 하면 뭔가 제멋대로 살 것 같은 이미지인데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하기야 마왕에게 꽉 잡혀서, 시키는 건 뭐든 따르고 있는 모양이니 그럴 만도 했다.
차라리 악숭이들 쪽이 악마보다는 마왕의 통제를 덜 받고 자유롭지 않을까 싶다.
“역시···, 안 되는 건가?”
“응? 뭐가···. 아! 지금 같은 상황이면 당연히 써야지.”
세르펜스의 물음에 어리둥절했던 것도 잠시.
나는 꽥꽥이와 얘기하느라 잠시 깜박했던 이전의 대화를 떠올리고, 뒤늦은 대답을 돌려줄 수 있었다.
그러는 한편 머릿속으로는 꽥꽥이에게 진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제 진짜로 안녕. 가끔 플람 네 꽥꽥거림이 그리울 거야.’
{ 나는 네 헛소리가 이따금 생각날 것 같긴 해. }
‘그냥 그리울 거라고 말하면 될 텐데 돌려서 표현하기는.’
{ 그래···, 나도 네가···. }
이마에 세르펜스의 손가락이 닿는가 싶더니 이내 따스한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며 저릿거리던 통증도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꽥꽥이의 말이 뚝 끊겼다. 머릿속으로 그의 이름을 몇 번 불러 봤으나 대답이 없는 거로 보아 연결이 끊긴 듯했다.
‘따뜻하고 기분 좋다···.’
불안과 두려움.
그 모든 게 사라진 세상은 평온함 그 자체였다. 마치 고요한 호수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꽥꽥이의 마지막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한 게 아쉬웠으나 그마저도 쉽게 쓸려나갔다.
나는 신성력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을 만끽했다. 그러고 있자니 몸에 서서히 힘이 빠졌다.
세르펜스가 그런 내 등을 한쪽 팔로 받쳐 조심스럽게 도로 눕혔다.
그러면서도 내게 신성력을 흘려 넣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 좋은 걸 나는 대체 왜 거부했던 거지?’
억울하다기보다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어쩌면 억울한 감정이 떠오를 수 없어서 그 자리를 의아함이 대체한 걸 수도 있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내가 신성력의 신경 안정 효과를 거부했던 이유를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라 그리했지만, 딱히 와 닿지는 않았다.
“슬슬 멈춰도 되지 않을까요?”
“선우가 고통에 몸부림치던 모습을 벌써 잊으신 겁니까? 한계까지 내몰린 정신이 쉽사리 안정을 되찾을 리 없습니다. 신성력을 거두는 순간 그는 동요할 테고, 그렇게 된다면 악마가 다시 접근해올 겁니다.”
리에나가 세르펜스에게 그만해도 된다고 말하였으나, 녀석은 그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세르펜스 본인도 언제 멈춰야 하는지 잘 모르는 듯했다.
이제 괜찮아진 것 같긴 한데, 이 평온함을 잃고 싶지 않아 그만해도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세르펜스도 슬슬 쉬어야죠. 선우의 몸속에 있던 마기를 정화하고 난 뒤로 조금도 쉬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신성력을 쥐어짜면 선우가 얼마나 마음 아파하겠어요?”
유지스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세르펜스를 설득했다.
정작 나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신성력이 거두어진다면 유지스의 말대로 되지 않을까 싶다.
우느라 붉어진 눈시울을 제외하면 세르펜스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내게 흘러들어오는 신성력의 빛이 은색에서 백색으로 바뀐 걸 보면, 한계에 다다른 건 내 정신이 아니라 세르펜스의 신성력이 틀림없다.
“으음···.”
세르펜스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했으나 결국 유지스의 말에 따라, 서서히 신성력을 줄여나가다가 손을 거두었다.
깨기 싫을 정도로 기분 좋은 꿈을 꾸다가 눈을 뜬 것처럼 정신이 꿈결을 헤매듯 몽롱했다.
그러다 현실을 인식하자 아쉬움이 몰려들었고,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식을 흘렸다.
“지금 기분은 좀 어떠한가?”
“조금 아쉬운 것만 빼면 좋네요.”
“아쉽고, 좋다고···?”
내 말이 믿기지 않다는 듯 세르펜스의 표정이 굳었다.
녀석이 왜 저러나 싶어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뒤늦게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예전부터 신성력의 신경 안정 효과를 꺼림칙하게 여겼고, 타락펜스가 왔다간 이후로는 거부감이 더욱 극심해졌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세르펜스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신성력이 거두어져서 아쉬워하며 기분 좋았다고 말하였으니.
그걸 들은 세르펜스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빨리 말을 돌려야겠다.
“그건 그렇고 마기를 정화할 때 리에나도 같이 도와주신 거죠? 감사합니다.”
“저는 보조만 맞췄을 뿐이에요.”
“에이~. 아까 파리한 안색으로 누워있던 걸 보면, 기절할 정도로 신성력을 뽑아 쓰신 것 같던데 너무 겸손하시다.”
“그래도 저보다는 세르펜스 님께서 더 고생하셨죠.”
리에나가 세르펜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온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따라서 고개를 돌리니 피곤해 보이는 세르펜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에겐 따지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지친 사람을 쉬지도 못하게 붙들어 놓고 따져야 할 정도로 한시가 급한 건 아니다.
그래서 나중에 얘기하자는 말을 하려고 입을 떼는데, 세르펜스가 말을 꺼내는 게 더 빨랐다.
“선우, 이제 본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게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