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8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81화(981/1105)
< 94. 공작님과의 갈등 (3) >
이런 얘기를 듣고도 누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노곤하게 늘어진 몸에 힘을 주어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세르펜스의 의중을 읽고자 녀석의 얼굴을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나는 기억을 잃었을 때 있었던 일들을 모두 기억했다.
세르펜스가 내게 더는 자신 때문에 이곳에 머무르며,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한 것도 당연히 기억한다.
그래도 그때는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어쩔 수 없다는 걸 안다.
녀석에겐 이래저래 따지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이것만큼은 조용히 넘어가려 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날뛰는 마기를 억누르며 정화하는 건 성공 확률이 낮은 반면, 내가 겪어야 할 고통은 너무 컸다.
고통에 신음하는 내 모습을 차마 지켜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세르펜스도 마지못해 꺼낸 말이었겠지.
하지만.
“이젠 마기 문제도 해결됐잖아. 그런데 왜 돌아가란 소리를 하는 거야?”
“선우는 자신이 얼마나 큰 고비를 넘겼는지 모를 거다.”
“그 고비라는 게 영혼 소멸을 얘기하는 거라면 알고 있어. 마왕이 신나게 떠들어댔으니까.”
내 말에 세르펜스는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모두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알면서 왜 그렇게 태연한 거야?’라고 묻는 듯한 시선들이 내 얼굴로 날아와 꽂혔다.
사실 나도 딱히 태연한 건 아니다.
무서운 거야 당연하고 걱정도 된다.
만일 내 영혼에 문제가 생긴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만 괴로워지는 게 아니다.
내 진짜 가족들은 영문도 모르고 나를 잃게 되는 셈이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더 오래 고통받겠지.
영혼을 잃은 육체가 생명 활동을 중단한다면 차라리 낫다.
‘하지만 혹여 식물인간이 되어버린다면?’
육신을 움직이게 할 내 영혼은 이미 소멸하고 없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가족들은 나를 살리겠답시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마음고생 할 게 뻔하다.
그 과정에서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그럼에도 아무런 소득이 없어 눈물로 날을 지새우며 건강마저 해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세르펜스의 말대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지금 돌아간다 하더라도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자신이 없는 까닭이다.
“나 빼고 무슨 얘기를 하나 했는데, 나를 돌려보내야 한다는 얘기라도 하고 있었나 봐?”
“···비슷하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된 거야? 내 의견 같은 건 물어보지도 않고?”
“그건 아니다.”
“뭐가 아닌데?”
“······.”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던 세르펜스의 입술이 꾹 닫혔다.
내 말에 지기 싫어서 일단 부정했다가 할 말이 없어서 침묵한 걸 수도 있다.
하나 왠지 그건 아닐 것 같다. 녀석이 내게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감이 왔다.
“아니라면 말해 봐.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가 오갔던 건지.”
일단 ‘돌려보내지 않는다.’ 쪽으로 얘기가 귀결된 건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랬다면 세르펜스가 돌아가라는 소리 자체를 꺼내지 않았을 테니까.
녀석이 독단적으로 그런 말을 한 거라면, 일행들이 무언가 반응을 보였을 텐데 그런 낌새는 없었다.
“선우 씨. 지금은 감정이 너무 격해진 것 같으니, 일단 식사라도 하면서 진정된 후에 마저 얘기하는 게 어때요?”
“여러분이 저 빼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듣기 전에는 안 먹을 겁니다.”
“기억 돌아온 거 아녔어요?!”
“돌아온 거 맞는데요?”
“아뇨, 그럼 선우 씨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어요.”
확신이 서린 에드나의 표정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최근에는 입맛이 없거나 특정 음식에 거부 반응이 생겨, 제대로 먹지 못한 날이 꽤 많았는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그녀의 머릿속의 나는 대체 어찌 되어 먹은 인간인지 궁금해졌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물어볼 때가 아니었다.
“그냥 그만큼 결의가 굳다고 생각해 줄 수는 없는 겁니까?”
“아···.”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한 탄성을 흘린 에드나가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건지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의 반응이 어처구니없긴 했지만, 내가 원하던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가만히 기다렸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던 이들 중, 입을 연 건 푸로르였다.
“네가 깨어나기 전에 널 되돌려 보낼지, 아니면 네 의사를 먼저 물어볼지. 그거로 의견 다툼을 벌였어.”
“그, 그 얘기는···.”
“말을 안 해주면 식사를 안 하겠다는데 그럼 어떡합니까? 굶겨서 죽일깝쇼?”
“······.”
세르펜스가 푸로르에게 따지려다가 본전도 못 찾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배신감을 느끼며 세르펜스를 째려보았고, 녀석은 녀석대로 배신감 어린 표정으로 푸로르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푸로르는 다른 누군가에게 배신감을 떠넘기는 대신, 미안쩍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아무튼 그러는 도중에 네가 깨어난 거야. 그때 얘기를 딱 끝냈어야 했는데, 이후에 네가 다시 잠들 때를 노리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미안.”
푸로르가 말을 하다 말고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돌연 사과의 말을 입에 담았다.
그런 의견이 나와서 얘기가 길어졌다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라니.
세르펜스가 괜히 배신당했다는 표정을 하고 푸로르를 노려봤던 게 아닌 모양이다.
“일단 세르펜스랑 푸로르의 의견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깬 걸 알고도 계속 이어나가던 논쟁이 리에나가 깨어나고 바로 종료된 걸 보면···. 한 명이 더 있는 거죠?”
그 누구도 의견을 굽히지 않았는데 결론이 났다면 해답은 ‘다수결’ 하나뿐이다.
나를 제외한 일행의 수는 여덟이고 기절해있던 리에나까지 제외하면 일곱이다.
이 말인즉슨 4 대 3으로 의견이 갈렸다가, 리에나가 다수의 의견에 합류하며 5 대 3이 되어 결판이 난 걸 테다.
그리고 그 ‘다수의 의견’이란 내게 의사를 물어본다는 쪽이겠지.
“남은 하나는 누굽니까? 에드나랑 아니마는 한 세트니까 아닐 테고···.”
용의자는 유지스, 윈스톤, 휴마누스. 이렇게 세 사람이다.
나는 그들의 면면을 훑어보다가, 아까 유지스가 세르펜스를 끌어안고 달래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혹시 유지스가 범인인가 싶어 의심의 눈초리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저 아니에요!”
“진짜요? 아까 세르펜스를 끌어안고 있던데, 편들어주고 있던 거 아닙니까?”
“선우는 자신이 머물고 싶은 장소에 머무를 자유가 있고, 우리 엘프들은 개인의 자유의사를 존중해요.”
종족 특성이 그렇다고 하니 더는 의심하기도 뭐했다.
그보다 내가 머물고 싶은 장소에 머무를 자유가 있다니, 룩스메아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아니, 그냥 유지스가 신 하면 안 되나?
“나도 아니야. 유지스처럼 그럴듯한 증거는 없지만, 아무튼 아니야.”
의심의 화살이 자신에게로 방향을 틀세라, 휴마누스가 서둘러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다.
휴마누스는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반성할 줄 아는 인물이다.
그러니 거짓말은 아닐 터.
“범인은 윈스톤, 바로 당신이야!”
“와! 선우, 방금 탐정 같았어요!”
내가 윈스톤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치자, 유지스가 짝 하고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인데 박수를 받으니 왠지 흥이 올랐다.
나는 상황극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을 애써 억누르며, 얼굴을 굳히고 윈스톤을 노려보았다.
“······.”
윈스톤은 그 어떠한 변명의 말도 꺼내지 않았다.
심지어는 반성조차 하지 않는 얼굴로, 자신에게 향해진 내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윈스톤이 아무리 세르펜스의 기사라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잖습니까. 아니, 기사니까 주군이 잘못된 선택을 하려고 하면 뜯어말렸어야죠. 그러지는 못할망정 덮어놓고 동조하다니, 그러면 돼요 안 돼요?”
“세르펜스 님의 의견을 따라간 게 아니었소.”
“그게 아니면요?”
“내가 생각하기에 그러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을 뿐이오.”
그리 말하는 윈스톤의 표정과 목소리는 한없이 담담하기만 했다.
푸로르처럼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고 세르펜스처럼 내 눈치를 살피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이유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건데요?”
“선배는 남을 걱정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잖소.”
“그래서 강제로 나를 돌려보내는 것에 찬성했다고요? 아이고, 제가 원래 이 세상 사람이었다면 안전한 곳에 감금해 놓자고 주장하셨겠습니다?”
“현재 대륙에 진정으로 안전한 곳은 없으니 그러지는 않았을 거요. 하지만 선배가 살던 세상이 어딘지는 마왕도 모를 테니, 그곳은 안전할 거 아니오?”
대충 둘러대는 게 아닐까 했는데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다.
윈스톤이 저런 세르펜스적인 사고를 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하여 적잖이 당혹스럽다.
녀석을 주군으로 모시다 보니 사고방식까지 닮아가나?
“그럼 저더러 여러분을 안전하지 않은 곳에 두고 혼자 떠나란 뜻입니까?”
“선우 선배가 우리를 걱정한다는 건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우리 또한 선배를 걱정한다는 걸 알아 두시오.”
윈스톤의 말 중에 ‘우리’라는 단어가 가슴에 푹 박혔다.
그러고 보니 이들이 언쟁을 벌인 건 나를 돌려보내느냐 마느냐가 아니었다.
돌아갈 거냐고 물어보느냐 아니면 몰래 보내버리느냐, 이 두 가지로 의견을 다툰 거였다.
즉, 내 의사를 물어보겠다고 한 이들조차 내가 이곳에 남길 바란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다들 제가 떠나길 바랐던 겁니까?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기보다 이곳은 너무 위험하니까···. 그리고 가족들도 엄청 보고 싶어 했잖아.”
푸로르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렇게나 날 위한다는 사람이 내 의견을 물어보려 하지도 않았던 건가 싶어, 오히려 눈살이 더 찌푸려졌다.
안 그래도 찔리는 구석이 있던 푸로르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부렸다.
“다른 사람들도 푸로르와 같은 생각인 겁니까?”
그렇게 말하며 일행들을 둘러보았으나 대답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뒤따라 의문도 떠올랐다.
‘만약 내가 세르펜스나 아니마처럼 출중한 무력을 갖췄어도 순순히 나를 보내 줬을까? 내가 먼저 돌아가겠다고 말해도, 이곳에 남아 자신들을 도와 달라며 부탁해오지 않았을까?’
이들에게 나는 함께하면 좋지만, 그러지 않아도 상관없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괴로워졌다.
내가 절박하게 세르펜스의 팔을 붙잡은 건 그래서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세르펜스는 내가 이곳에 남길 바랐잖아. 그래서 내가 기억을 잃자마자 기회라도 잡은 것처럼 나를 속였던 거 아니었어?”
본래라면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냐고, 정말로 날 위한다면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고 꾸짖으며 해야 할 말이었다.
이렇게 애원하듯 말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 사실을 잘 알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