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8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84화(984/1105)
< 94. 공작님과의 갈등 (6) >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세르펜스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원망 어린 그 눈빛이 마치 ‘내가 얼마나 힘겹게 말을 꺼낸 건데···!’ 하고 따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녀석은 눈가에 맺힌 눈물이 넘쳐 흐를세라, 서둘러 뒤돌아서서 내게 등을 보였다.
소매로 눈가를 훔쳐내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타락펜스의 마지막 부탁은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거였다.
그렇기에 세르펜스가 자신을 잊으라는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고뇌했고, 말을 하면서 어찌나 괴로웠을지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녀석은 오롯이 나를 위해 자신의 욕심과 행복을 포기하려는 거다.
그 사실을 알기에 가슴이 뭉클하다가도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진짜 짜증나···.’
이곳에 남아야 하는지, 돌아가야 하는지. 어느 쪽이 옳은 길인지 알 수 없다는 게 너무나도 답답했다.
나는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이마를 괴었다.
가만히 그러고 있자니 어느 순간 방 안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세르펜스가 서 있던 지점에서 소리가 시작되었으니, 아마도 녀석이 방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거겠지.
대체 뭘 하는 건가 싶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리자 세 개의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에 놓인 하나는 원래 이 방에 있던 거고, 양옆에 놓인 침대는 각각 내 것과 세르펜스의 것이었다.
세르펜스는 그중 자신의 침대로 쏙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실루엣으로 보아 몸을 둥글게 웅크리고 있는 듯했다.
‘저거···, 지금 나랑 따로 자자는 거지?!’
기억을 잃은 나와 같이 자고 싶어서, 휴마누스 앞에서 어린 시절 고문당했던 얘기까지 꺼낼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딴 침대를 쓰자고 하니 기가 찼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이 와중에 내가 씻고 나서 갈아입을 옷을 챙겨 놓았다는 거다.
“허, 참···.”
나는 내 침대 위에 곱게 개켜져 있는 옷가지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문득 테이블 위로 시선이 향했다. 세르펜스가 챙겨가지 않은 진갈색의 강아지 모양 페브가 눈에 들어왔다.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도자기 인형을 보고 있자니 괜히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페브 안 챙길 거야?”
“······.”
묵묵부답이다.
벌써 잠들었을 리는 없고, 지금은 나랑 대화조차 하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아니면 소리 죽여 몰래 울고 있거나.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미동조차 없는 녀석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페브 밑에 편지 봉투를 깔아 놓았다.
이렇게 겹쳐 놓으면 페브랑 편지 둘 다 잘 챙기겠지.
‘그보다 내일 아침에···, 일행들에게 얘기해야겠지?’
아무리 가족들이 그립고 세르펜스가 등을 떠밀어도,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
내 마음속 깊이 꼭꼭 감춰 두었던 두려움.
그것들을 털어놓을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막막한 건 이곳에서의 삶도 마찬가지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대화 상대가 없으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르는 것 같다.
불현듯 꽥꽥이가 그리워지며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악마가 다시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정신이 불안정해지면, 그때도 꽥꽥이와 자동 연결이 되는 거려나?
그렇다면 오히려 반가울 것 같지만. 문제는 다른 악마와 정신이 연결되었을 때다.
만에 하나 새로 연결된 악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를 몰래 감시한다면 진짜 큰일이다.
그런 상황을 방지하려면,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세르펜스에게 부탁해서 신성력을 받아야 할 텐데.
과연 세르펜스가 협조해줄까 의문이다.
‘정 안 되면 리에나에게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요동치던 감정들이 신성력의 영향으로 순식간에 가라앉던, 그 인위적인 평온 상태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몸서리치던 그때.
끼이익, 경첩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니 살짝 열린 욕실 문틈으로, 방 안의 분위기를 살피던 휴마누스와 눈이 마주쳤다.
“다 씻었으면 얼른 나오지 않고 거기서 뭐 합니까?”
“앗, 미안.”
휴마누스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욕실 밖으로 나왔다.
그가 저런 반응을 보인 이유야 뻔했다. 나와 세르펜스의 대화를 전부 들은 거겠지.
얼굴을 마주 보고 있어 봤자 할 말도 없고 서로 불편할 뿐이기에, 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놓인 옷가지를 집어 들고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욕실에 들어가 문을 닫으려는데 휴마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저거 저대로 둬도 괜찮은 거야?”
“냅둬요.”
나는 그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침대 위 세르펜스를 말하는 건지, 테이블 위 페브를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쪽이든 답은 같으니까.
그리고 내가 내놓은 답이 정답이란 사실은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내 시선은 자연스레 세르펜스가 똬리를 튼 침대로 향했다.
아까는 침대 가장자리 쪽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녀석이 중앙으로 이동해 있었다.
테이블 위로 시선을 옮기니 편지와 페브가 모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씻으러 들어간 사이 세르펜스가 나와서 챙겨 간 걸 테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람···?’
나는 입었던 옷을 의자에 대충 걸쳐 놓으며 혀를 내둘렀다.
추측하건대 곁에 내가 없더라도 본인 할 일은 알아서 잘한다, 대충 그런 메시지라도 전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독립성이 느껴지기는커녕 유치한 반항심의 표출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부모님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집안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어린아이 같아서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 아무리 힘들어도 저런 어린애를 버리고 갈 수는 없지.’
삶이 고달파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지지고 볶고 하는 한이 있어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 잊지 않는다면 영원한 이별보다 훨씬 낫다.
이 힘든 시기도 결국에는 한때에 불과하니까. 지나고 나면 오늘 있었던 일 또한 추억으로 남을 테다.
‘그때까지만 잘 버티자.’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일행들을 먼저 설득해야 한다.
내가 돌아가기 싫은 이유를 설명하면 그들 중 몇 명은 내 편을 들어주겠지. 휴마누스만 해도 이미 나를 지지해 주는 것 같았고.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세르펜스다.
“근데 세르펜스 쟤 혼자 자게 둬도 돼? 악몽 꾼다며.”
어떻게 하면 세르펜스를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침대에 누웠을 때, 휴마누스가 목소리를 잔뜩 낮춰 소곤소곤 말을 걸어왔다.
그러면서 곁눈질로 세르펜스를 힐끔힐끔 살피는 한편, 나를 걱정스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좀 불쌍해 보였다.
내 걱정을 하랴, 세르펜스 걱정을 하랴, 없는 눈치로 우리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랴.
중간에 끼어서 고생한다.
“쟤가 악몽 안 꾸고 혼자 잘 수 있게 된 지가 언젠데···.”
“어···?”
“그거 그냥 저랑 자고 싶어서 한 말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내가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다시 악몽을 꾸게 될지도 모르니, 그때는 세르펜스를 잘 부탁한다.
그런 말이 내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아무리 가정일지라도 지금은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응?’ 하고 되묻는 휴마누스를 향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아니, 아닙니다. 아무것도. 그보다 잘 자요, 휴마누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눈을 붙였다.
휴마누스가 무슨 말을 하려던 거였냐고 물어왔으나 그냥 무시했다.
눈치는 없어도 배려심을 갖춘 휴마누스는 끈덕지게 물어오지 않고, 딱 한 번만 질문을 던진 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잠들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뒤척이고 나서야 겨우겨우 잠의 세계로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꾸게 된 꿈은 악몽이었다. 내가 뭐하러 힘들게 잠을 청했나 싶을 정도로 괴롭고 슬픈.
꿈속의 배경은 ‘내 방’이었다.
공작저에 있는 호화찬란한 서양풍 귀족의 방이 아니라, 단조롭고 실용적인 인테리어의 현대식 방.
책상 위에는 부모님이 생일 선물로 사주신 노트북이 있고, 옷장 옆에는 전신 거울이 자리했다.
책장에 꽂힌 전공서도 눈에 들어왔다.
내가 누워 있는 침대의 머리맡에는 태블릿pc와 휴대폰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지나치게 실감 넘치는 배경에 꿈속의 나는 그게 꿈인지도 몰랐다.
자는 동안 세르펜스가 나를 죽였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가족들을 보러 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서러움에 펑펑 울어댔다.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얼굴들을 그리며 홀로 괴로워했다.
그 순간 나는 완벽한 혼자였고 누구의 이해도 받을 수 없는 외톨이 신세였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또 울다가 눈물을 닦아내고 주변을 살피니 어둠 속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발길이 닿는 대로 움직였고, 피 흘리며 쓰러진 일행들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새빨간 핏물로 얼룩덜룩 물든 청은빛 머리카락을 본 순간.
“아아악-! 안돼!!!”
나는 절규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공작저에 있는 내 방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호화로운 서양식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커다란 샹들리에도 보였다.
‘여기는···. 아, 어제 여관에서 잠들었었지?’
모든 게 꿈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놀란 심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못하고 쿵쿵 날뛰었다.
전력질주라도 한 것처럼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을 떨쳐내려 애썼다.
그럴수록 피에 물든 머리카락이 더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 뭐야?! 이게 왜 연결···, 어···. 악몽 꿨구나. }
‘꽥꽥이···, 너야···?’
{ 혹시나 싶어서 시간 날 때마다 연결을 시도해 보고 있었는데 그러길 잘했네. }
‘앞으로도 내 정신이 불안정해지면 너랑 연결되는 거야?’
{ 이번은 운이 좋았어. }
반가움과 기대를 담아 질문했으나 돌아온 건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일행들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꽥꽥이와 몰래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꽥꽥이가 그리웠던 참이라 더더욱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 내가 그리웠다고···? 연결이 끊긴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
당혹에 물든 음성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고 내가 얼마나 서러웠는지 넋두리를 늘어놓으려던 찰나.
머리 위로 무언가가 툭 얹어지는가 싶더니 익숙한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울렁거리던 가슴이 차분히 진정되었다. 따스한 물속에 몸을 푹 담근 것처럼 마음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괴로움도 외로움도 실감 나지 않아, 모두 현실이 아닌 별세계의 것인 양 느껴졌다.
“아···, 진짜 기분 좋다···.”
나도 몰래 감탄의 말을 흘린 그 순간.
신성력이 갑작스레 빠져나가고, 누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서야 혼란에 물든 세르펜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더니···, 불러도 대답이 없고···. 멍한 얼굴로 숨을 고르다가,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길래···. 또 악마와 대화를 나누는가 싶어서···.”
겁에 질린 녹색의 눈동자 속에 인상을 찌푸리고 녀석을 노려보는 내 모습이 비쳤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