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8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86화(986/1105)
95. 공작님의 분노 (1)
세르펜스와 화해를 하고 난 이후, 모든 것이 평상시로 돌아왔다.
말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세르벨트를 믿고 녀석을 등받이 삼아 기대어 낮잠을 잔다거나, 잠들기 전까지 두런두런 잡담을 주고받는다거나.
식사를 하며 일행들과 웃고 떠드는 일상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원래 내 일이었으나 세르펜스가 빼앗았던 식사와 간식 준비도 다시 내 몫이 되었다.
12월 25일, 세르펜스의 생일인 오늘 또한 그러했다.
기억을 되찾은 지 얼마 안 되어 미처 생일 선물을 준비할 틈이 없었던지라, 생일 파티라도 좋은 곳에서 열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 정도는 도시의 고급 여관에서 머물며, 파티도 하고 휴식도 취하는 게 어떨까 했다.
하지만 세르펜스가 거절했다.
만에 하나 폭주 마인이라도 튀어나오면 오히려 파티를 방해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일리 있는 얘기다.
아무리 신성 루멘 제국이라 한들 폭주 마인의 등장 자체는 막을 수 없다.
물론 제국의 모든 영지에는 신전이 있으니, 고작 폭주 마인 정도로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하는 일은 아니긴 하다.
그래도 근처에서 폭주 마인이 날뛰고 있는데 파티를 즐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기의 이유로 우리는 영지와 영지를 잇는 길 한복판에 천막을 설치하고, 간식 시간을 겸한 세르펜스의 생일 파티를 열게 되었다.
초 꽂은 케이크를 준비하긴 했으나 이래서야 파티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이럴 줄 알고 내가 이걸 준비했지!’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색종이로 만든 가랜드로 천막 안을 장식했다.
내친김에 고깔모자도 만들까 했는데 어째서인가 휴마누스가 질색해서, 색종이 고리를 엮어 만든 목걸이를 세르펜스의 목에 걸어주는 거로 대체했다.
그리고 케이크 초에 불을 붙인 후, 일행들과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던 때였다.
기분 나쁘게 등줄기를 훑는 서늘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노래를 멈췄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멈칫하며 입을 닫았고, 그 결과 노랫소리가 뚝 끊겼다.
반대로 조용히 립싱크하던 음치누스가 ‘어···?’ 하고 의문 가득한 목소리를 흘렸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생일의 주인공이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나 또한 알 수 있었다.
“설마 또 그거야?”
“으음, 악마 소환을 말하는 거라면···.”
세르펜스가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쳐다보았다.
녀석이 바라보는 방향의 어딘가에서 악마가 소환된 것이리라.
모처럼의 파티 분위기가 축 가라앉았다.
“어쩐지 갈수록 기분이 더 더러워지네.”
“그만큼 마계의 위치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거겠죠.”
푸로르가 언짢은 감정을 드러내며 말했고, 리에나가 차분하지만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현재 일행들의 실력으로 마왕을 이길 수만 있다면, 빨리 놈을 해치우고 편히 놀자고 기운을 북돋는 말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직 그 정도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는 터라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심란함에 모두가 말을 잊고 침묵하던 그때.
불현듯 아직 생일 파티 도중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차! 초, 초!!”
생일 초는 생각보다 빨리 녹는다. 그래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자마자 바로 꺼야 하는데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케이크에 꽂은 초 중에서 짧은 건 아예 다 녹아버렸고 긴 쪽도 간당간당했다.
새하얀 생크림 위로 색색의 촛농이 떨어져 얼룩졌다.
‘빌어먹을 악숭 놈들···. 왜 하필이면 오늘 악마를 소환한 거야?!’
이제 연말이고 하니 해가 바뀌고 나서야 소환이 이루어질 줄 알았건만.
일부러 기분 잡치라고 세르펜스의 생일인 오늘 소환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나는 짜증을 애써 억누르며 녹은 초를 뽑아내고 촛농으로 얼룩진 생크림을 걷어냈다. 당연하게도 케이크는 엉망이 됐다.
예비용 초를 꺼내어 다시 불을 붙이고, 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세르펜스가 초를 껐다.
하지만 이미 가라앉은 분위기는 되살릴 수 없었다.
대화도 생일 파티와 동떨어진 악마에 관한 주제로 오갔다.
“악마가 소환된 곳은 어디야?”
“방향상 베카 왕국인 듯합니다.”
휴마누스의 물음에 세르펜스가 지체 없이 대답했다.
세르펜스의 머릿속에는 지도뿐만이 아니라 나침반도 있나 보다.
‘그나저나 베카 왕국이라면···.’
타락펜스와 가 본 적 있는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타락펜스의 부탁을 받아 녀석에게 편지를 썼고,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며 디저트 쇼핑도 했다.
그 즈음부터 타락펜스가 제법 유순하게 굴기 시작했던 터라,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꽤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밧줄로 꽁꽁 묶이는 대신 가죽으로 된 수갑을 차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이번에 소환된 악마는 상급인 듯합니다. 하지만 선례가 있으니, 전투 도중 최상급이 될 수도···.”
세르펜스의 브리핑을 듣고 있자니 입맛이 뚝 떨어져 케이크가 맛없게 느껴졌다.
아니, 녀석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악마가 소환된 그 시점부터 모두의 머릿속에서 생일 파티 같은 건 지워졌을 테니까.
다른 일행들도 나처럼 케이크를 몇 번 깨작거리다가 포크를 내려놓았다.
브리핑을 마친 세르펜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포크를 들어 올렸다.
평소라면 케이크를 조금씩 조금씩 잘라 먹으며 느긋하게 맛을 음미했을 녀석이, 후다닥 케이크를 해치웠다.
녀석의 접시가 비자마자 우리는 테이블과 천막 등을 치우고 다시 말에 올라탔다.
신성력 버프까지 받아서 한층 더 빨라진 말에 몸을 맡긴 채 달리고 또 달렸다.
저번처럼 제국 내 기차를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강제 휴가 중인 기관사와 승무원을 호출하고. 기차를 원하는 역까지 불러들이자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우리는 베카 왕국으로 향하는 도중, 신전에 들려 악마가 소환된 장소를 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은 해결된 일이긴 하지만. 내 몸이 신성력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는 얘기를 각 신전에 전달한 건 아니었는지, 내 신전 방문을 의아하게 여기는 이는 없었다.
하기야 널리 알려서 좋은 일은 아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굳이 내 몸 상태에 관해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내가 제국의 각 영지를 보호하는 신성 결계를 통과하여 신전에 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기를 정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증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웨일리안과 테일러, 레안드로 추기경 등.
내 몸에 심어졌던 마기에 관해 아는 이들도 곧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알고, 안심할 수 있을 테다.
* * *
우리가 서둘러 이동하는 동안 어느덧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아레나 왕국에서 프뤼네 왕국으로 향했을 때와 달리, 제국과 베카 왕국은 서로 인접해 있었기에 이동 거리가 비교적 짧았다.
그 덕분인지 국경 부근의 분위기는 썩 나쁘지 않았다.
아직 악마가 나타난 지역까지는 거리가 좀 남긴 했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프뤼네 왕국 때는 국경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삭막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다행이라 생각했으나 그건 내 오산이었다.
새로 소환된 악마의 정보를 얻고, 하룻밤 묵어가고자 방문한 신전의 분위기는 음울하기 짝이 없었다.
프뤼네 왕국의 신전 소속 성직자들도 이곳의 성직자들만큼 얼굴이 어둡지 않았다.
그러한 까닭에 신전에 발을 디딘 순간 공기마저 무거워졌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악마가 소환된 마당에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도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신전 밖과 안의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까.
정말 무슨 일이 있긴 한 건지 신관의 얼굴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건···, 주교님께서 말씀해 주실 겁니다.”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는 그 모습에 나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숨기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말해 줄 거라는데, 구태여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사람을 붙들고 닦달할 필요는 없다.
회의실에 도착하니, 주교는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자벨라 J. 에스핀이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인사를 해 오는 주교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파리했다.
이 정도면 그냥 신관에게 얘기해 달라고 할 걸 그랬나 싶을 정도다.
아니, 주교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줘야 하니까 안색이 더 나쁜 거려나?
말을 꺼내는 것조차 괴로워질 정도의 소식이라니, 어쩐지 듣기 겁난다.
그냥 오늘은 좀 쉬고 내일 새벽에 떠나기 전에 듣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세상에 와서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나도 모르게 겁쟁이가 되었나 보다.
듣는 걸 미룬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옛말에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모두가 착석하자마자 나는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신전의 분위기가 유독 안 좋던데 무슨 일 있어요? 혹시 이번에 소환된 악마에 관한 겁니까?”
“···네.”
주교 이자벨라가 머뭇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그 모습이 마치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 보였다.
무슨 일인지 알아야 위로의 말을 건네든 말든 할 텐데.
이자벨라는 무슨 일이 있다는 것만 긍정했을 뿐, 그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악마가 대체 뭘 어쨌길래요?”
“그게, 그러니까···. ······을 요구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악마가 뭘 요구했다는 건지 안 들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건 나와 두 마법사뿐이고, 나머지 일행들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아무래도 저들은 이자벨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나 보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세르펜스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런 녀석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타락펜스조차도 저런 표정은 짓지 않았다.
녀석의 표정에 놀란 건 이자벨라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나와 두 마법사뿐.
다른 이들은 세르펜스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다는 듯 덤덤하기만 했다.
“악마는 소환되자마자 사람들에게 방비할 틈을 주지 않고, 두 개의 영지를 파괴하고 그곳의 사람들을 학살했어요.”
이자벨라가 침착하려 애쓰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나는 악마가 벌써 영지를 두 개나 파괴했다는 사실에 내심 경악했다. 이래서야 프뤼네 왕국보다 피해가 더 큰 거 아닌가?
이곳에는 마탑과 같은 거대 무력 집단이 없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긴 하다.
소환되자마자 날뛴 거라면 지원군을 보내고 말고 할 시간도 없었을 테고.
“그리고 지금은 영지 하나를 점령한 채, 그곳의 영지민들을 이용하여 인질극을 벌이고 있습니다.”
즉, 악마 놈이 영지 하나를 볼모로 잡고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게 끝은 아니겠지.
만약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을 시 점령한 영지를 파괴하고, 다른 영지로 넘어가 똑같은 짓을 벌이겠다며 협박했을 게 뻔하다.
“그래서 대체 놈이 요구하는 게 뭡니까?”
“그, 그건···.”
내 물음에 이자벨라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저 사람에게 얘기를 듣는 건 불가능할 성싶다.
습관처럼 고개를 옆으로 돌려 세르펜스에게 질문하려 했지만, 이쪽은 냉기가 풀풀 날려서 무슨 말을 못 걸겠다.
“유지스는 들었죠?”
“아, 아뇨?!”
유지스가 기다란 귀를 움찔하며 거짓말을 했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내 시선을 피하는 그 모습에 불길함이 엄습했다.
“악마가 요구했다는 그거···, 설마 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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