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9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93화(993/1105)
95. 공작님의 분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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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자,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앉아있는 휴마누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검집에 든 성검을 쥐고 있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이전 회차의 기억을 보실 생각이십니까?”
“응.”
휴마누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선우의 우려와는 달리 휴마누스는 이전 회차의 기억을 보고 깨어난 직후에도, 현재와 이전 회차를 혼동하지 않고 제정신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휴마누스는 이전 회차의 기억을 볼 때면, 같은 방을 쓰기로 선우와 약속했던 것을 반드시 지켰다.
“어쩐지···. 그래서 저와 방을 같이 쓰려고 하신 겁니까?”
“그냥 겸사겸사지.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친우끼리 같은 방에서 잘 수도 있는 거 아냐?”
“으음···, 그건 그렇습니다.”
“아하하하!”
그리 재밌는 답변을 내놓은 것도 아니건만, 휴마누스는 시원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악마와의 전투를 앞두고 있는데도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그 점을 지적하는 대신 작은 우려를 표했다.
“자칫 내일 컨디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 그때의 기억을 보는 건 꽤 익숙해졌으니까.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동요하느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일은 없어. 반대로 전의를 불태우면 불태웠지. 그리고 약간의 실력 차로 승패가 나뉠 수도 있는 만큼, 실력을 끌어 올릴 방법이 있다면 뭐든 해 봐야지.”
미소를 띤 휴마누스의 입매가 실그러지며 설핏 씁쓸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아가 동화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때의 기억을 보는 건 무척이나 괴로운 일일 터.
그런데도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내게 단 한 번도 원망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고마웠다.
지금 평온을 누릴 수 있는 건, 선우뿐 아니라 휴마누스의 희생 또한 밑받침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어쩌면 이 외에도 내가 알아채지 못한 희생과 도움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기 좋네.”
“예···?”
“너 출발할 때만 해도 계속 뒤돌아보면서 엄청 불안해했었잖아. 그런데 어느 순간 안정되는가 싶더니, 지금은 미소까지 짓고 있길래.”
“아···.”
나도 모르게 멍하니 탄성을 흘리자, 휴마누스가 또다시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이 꼭 나를 놀리는 것 같아서 괜스레 민망해졌다.
휴마누스가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켜 준 덕분이라 말할까 하다가, 이미 그 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는 것이 떠올라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슬슬 자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침대로 걸음을 옮겨 이불 속에 파고드는데, 시선이 계속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시선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휴마누스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신기한 것이라도 보는 듯한 그 표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째서 저를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시는 겁니까?”
“응? 아, 아! 미안. 그냥, 너랑 단둘이서 이러고 있으니까 예전에 꿨던 꿈이 떠올라서.”
“꿈이라면 지난 회차의 기억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비슷하긴 한데 아니야. 그건 진짜로···. 있을 수 없는 꿈이었거든.”
그렇게 말하는 휴마누스는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웃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일그러져 울상처럼 보였고, 기분 좋은 것을 추억하는 듯하면서도 괴로운 기억을 떠올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섣불리 캐물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척 넘어가서도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꿈이었는지, 제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게···.”
휴마누스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나와 관련된 꿈이라는 건 확실하기에 어째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까지 들을 생각은 없다.
반대로 내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면 언젠가 그가 먼저 말을 꺼낼 터.
괜히 호기심을 드러내어 부담을 주지 말자고 생각하며 자세를 고쳐 누웠다.
머뭇거리던 휴마누스가 결심했다는 얼굴로 입을 연 건 그때였다.
“만약 1회차의 내가 기억을 유지한 채로 2회차를 시작했다면 어땠을 것 같아?”
“그런 내용의 꿈이었습니까?”
“으응···.”
대답하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꿈은 그리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한 모양이다.
선우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싫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내 입이 열리길 기다리는 휴마누스에게 그런 대답을 들려줄 수는 없다.
내가 1회차의 휴마누스에 관해 아는 것은 매우 적었다.
하지만 성검의 주인으로 선택받은 1회차의 내가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알고도, 그 역할을 대신 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나를 아꼈다는 건 안다.
휴마누스가 그 시기의 기억을 보고 난 직후, 사과를 건네며 나를 바라보던 눈빛을 기억한다.
“마왕은 이미 1회차에서 이름을 얻어 신의 경지에 발을 들였으니, 결국에는 패배하여 목숨을 잃었을 것 같긴 하지만···. 적어도 저는 꽤···, 괜찮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합니다.”
“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휴마누스가 끝까지 저와 함께하며, 수많은 비난으로부터 저를 지켜주려 했을 터이니.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하, 하하하···.”
알게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던 건지, 휴마누스가 맥없이 침대에 풀썩 드러누우며 안도의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가,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냥 내 꿈이라서, 내 바람이 투영되어 그렇게 흘러갔을 뿐 실제로는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리 없이 되는대로 중얼거리는 말속에 기쁨이 묻어났다.
휴마누스는 힘없이 침대 위로 툭 떨어뜨렸던 팔을 들어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눈가에 팔을 얹은 채,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으나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뒤이어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눈꺼풀 너머로 느껴지던 빛이 사라진 거로 보아 휴마누스가 일어나서 불을 끈 모양이다.
이번에는 거꾸로 침대 쪽을 향하는 발소리가 들렸고, 이불을 부스럭대는 소리가 이어졌다.
“잘 자, 세르펜스. 좋은 꿈 꿔.”
“휴마누스도···, 안녕히 주무십시오.”
오늘 밤 휴마누스가 지독히도 괴로운 꿈을 꾸게 된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하여 좋은 꿈을 꾸라는 말을 차마 되돌려주지 못했다.
그래도 휴마누스는 상관없다는 듯 하하 웃으며 내일 아침에 보자는 말을 건넸다.
이번 인사말은 똑같이 되돌려 줄 수 있었기에 그렇게 했다.
* * *
“잘 잤어? 좋은 아침이야.”
내가 잠에서 깼을 때, 휴마누스는 이미 씻고 환복까지 마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꿈자리가 꿈자리인지라 잠을 설친 듯했다.
“괜찮으신 겁니까?”
“어디 괜찮다 뿐이겠어? 아주 좋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거짓말은 아닌지, 쾌활하게 웃어 보이는 휴마누스의 얼굴은 썩 좋아 보였다.
그래서 나도 그를 향해 마주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침대에서 벗어났다.
“씻고 오겠습니다.”
“응, 갔다 와~.”
나는 휴마누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세안을 마치고 움직임이 편한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뒤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맸다.
그러고 나서 방으로 나오니 휴마누스는 테이블 앞에 앉아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일지를 쓰시는 겁니까?”
“어, 이게 한 번 밀리면 엄청 고달파지거든.”
“어디까지 적고 계십니까?”
“에녹 추기경이 가져온 정보랑 그에 관련해서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막 그 내용을 적고 있던 참이야. 나 하나도 안 밀리고 진짜 꾸준히 잘 쓰고 있으니까, 너까지 감독하려 하지 말아 줘.”
“감독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응, 리에나가···.”
휴마누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까먹지 않게 챙겨주는 건 고맙긴 한데 가끔은 일지를 적을 기분이 아닐 때도 있다든가. 이게 얼마나 귀찮은 작업인지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다든가 하는 말이 이어졌다.
휴마누스에게는 고마운 게 많으니 가벼운 불평쯤은 기꺼이 들어줄 수 있다.
하나 내가 듣고 싶었던 답변은 따로 있었으므로 그의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어디까지 적고 계시는지 물었던 건, 몇 월 며칠에 있었던 일까지 적었느냐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아니면?”
“저희가 숨기고 있는 얘기가 많잖습니까. 선우가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던가, 이전 회차에 관한 것이라던가···.”
“아! 그런 것까지 적었느냐는 질문이었구나?”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휴마누스가 감탄사를 터트리고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더니 펜을 휘갈겨 쓰던 것을 마무리 지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전 회차에 관한 얘기는 적지 않았어. 선우에 관해서는 어떻게 할까 하다가, 에둘러서 이 대륙의 존재가 아니라고 적었고. 어차피 교단 측에서 그를 천사라고 알고 있으니 이 정도는 써도 될 것 같아서.”
휴마누스가 일지를 덮어 펜과 함께 아공간 주머니에 넣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일지는 차후 이 세상에 위기가 닥치게 되면, 성검의 주인으로 선택받는 이에게 읽히는 거잖아. 실패해도 다음 기회가 있다는 건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태만을 불러오기도 하니까. 나는 다음 대의 성검의 주인이 늘 최선을 다해 줬으면 하거든. 만약 그러다가 나처럼 실패해서 다시 시작하게 되면, 그 기회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며 있는 힘껏 발버둥치며 나아갔으면 좋겠어. 후회 같은 건 남지 않도록.”
“휴마누스, 당신도 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하기에, 나는 그에게 후회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전했다.
이전의 회차에도, 같은 시간대를 반복하기 전의 어린 시절에도. 휴마누스는 언제나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였다.
그의 최선이 내게 닿지 않았던 건 내가 최선을 다해 발버둥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하하! 그건 그래. 이전 회차의 나라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실패한 건 아니지. 하지만 알고 있었다면 중간에 몇 번이고 삶을 포기했을 거라고 생각해.”
“으음···,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 널 탓하려고 한 말이 아니야. 그냥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고난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아서 그래.”
휴마누스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내가 무어라 말을 할 새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입에 올렸다.
“신께서 쓸 수 있는 힘에도 한계가 있으니, 몇 번이고 반복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겠지만. 만약 그게 가능하더라도 최고의 결과 값은 얻지 못할 것 같거든. 포기하고 다시 시작하는 걸 반복하다 보면 매번 쉽고 편한 길을 택하게 될 거 아냐? 그럼 전력으로 벽에 부딪히고 깨져야만 얻을 수 있는 보물을 존재조차 모르게 될 텐데, 그런 건 너무 아깝잖아.”
그렇게 말하며 멋쩍게 웃는 그의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다. 용사란 이런 사람에게 어울리는 칭호겠지.
성검이 제 주인을 찾은 것 같아서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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