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9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96화(996/1105)
95. 공작님의 분노 (11)
◆
잡고 있던 휴마누스의 팔목을 놓고 악마를 향해 날아올랐다.
가시덩굴이 진로를 가로막긴 했으나 돌파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적당히 자르거나 피하며 악마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백색 신성력을 덧씌운 검에 추진력을 더하여 빠르게 치그었다.
악마가 놀란 표정으로 몸을 비틀며, 손바닥에서 뽑아낸 가시덩굴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마기로 이루어진 가시덩굴은 백색의 신성력에 닿자마자 맥을 못 추고 소멸했다.
하지만 검 끝을 약간 밀어낼 정도의 힘은 전달된 터라, 내가 벤 것은 악마의 머리카락 몇 가닥과 옷깃뿐이었다.
“이크, 놀래라! 방금 그거 뭐야?! 평범한 검이 아니라 성검이었다면 좀 위험할 뻔했는데?”
화다닥 뒤로 물러난 악마가 그리 말하며 새로운 가시덩굴을 만들어 손에 쥐고, 자신에게로 접근하는 휴마누스를 향해 휘둘렀다.
주변에 아무렇게나 자라난 가시덩굴과 악마가 손에서 뽑아낸 가시덩굴 사이에, 겉으로 보이는 차이는 없었다.
하나 느껴지는 마기의 밀도가 달랐고 강도 면에서도 큰 격차를 보였다.
– 콰앙!
가시덩굴이 신성력이 깃든 성검의 날과 맞부딪히며 폭발음에 가까운 굉음이 울렸다.
서로의 무기를 튕겨낸 악마와 휴마누스는 사뭇 다른 태세를 취했다.
악마는 거리를 벌리려 했고 그와 반대로 휴마누스는 거리를 좁히고자 했다.
둘 중 원하는 결과를 얻은 건 악마 쪽이다.
단숨에 시계탑에서 뛰어내린 악마는 빽빽하게 자라난 가시덤불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건 그렇고 신의 사자는 어디에 두고 왔지? 제국 쪽에서 왔으니, 그 국경과 이곳 사이의 영지 중 한 군데에 있으려나?”
가시덤불 사이에서 악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라고 거짓을 말하며 태연함을 가장해 봤자 믿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대화에 응할 시간에 공격하는 편이 더 낫다.
악마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검에 맺힌 백색의 기운을 날려보냈다.
백색 신성력이 강한 힘을 발휘하기는 하나, 그것만으로 악마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곧바로 다음 공격을 이어나가고자 날아가는 신성력의 칼날 뒤에 바짝 붙어 이동했다.
앞을 막아선 가시덩굴을 모조리 베고도 신성력의 기세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악마마저 베어 버리려는 찰나, 돌연 악마의 신체가 아래로 뚝 떨어졌다.
공격을 피하고자 밟고 있던 가시덩굴을 치워버린 것이다.
“성격도 급하긴! 아직 할 말이 남았는데···.”
나는 악마의 말을 무시하고 지체 없이 검을 내리그었다.
이렇게 될 줄 예상했다는 듯, 악마가 오른팔에 가시덩굴을 여러 겹 감아 위로 들어 올렸다.
그 결과 악마는 팔이 성둥 잘려나가긴 했으나 목숨을 건졌다.
내 뒤를 쫓아온 휴마누스가 악마의 오른쪽에서 공격을 감행했다.
오른팔이 잘렸으니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거라는 판단일 터.
그러나 잘려나간 팔의 단면에서 가시덩굴이 자라나는 건 예상치 못했는지, 휴마누스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자라난 가시덩굴은 휴마누스의 공격을 쳐낸 뒤, 팔의 형상을 갖추는가 싶더니 피부까지 덧씌워졌다.
팔을 완벽히 재생해낸 것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데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악마는 그 짧은 시간 만에 몸을 내뺐다.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그래, 그래. 신의 사자를 어디에 두고 왔느냐는 얘기 중이었지? 안일하게 평범한 여관에 두고 왔을 리는 없고, 이단 심문관들도 동행한 걸 보면 역시 신전인가? 신전이 있는 영지로 후보를 좁힌다면 확인해야 할 곳은 기껏해야 서너 군데쯤 되겠네.”
악마가 뒤늦게 광장에 도착한 이단 심문관들을 향해 흘깃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이제 막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승리를 확신하여 나를 조롱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그 누구도 승기를 잡지 못한 현재, 악마가 선우의 위치를 거론하며 내 반응을 떠볼만한 이유라 하면···.’
불안감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 불안감을 떨치고자,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하며 악마를 향해 돌진했다.
“다급해진 걸 보니 내 말이 맞나 보네? 어차피 다른 단서가 없는 이상, 아닌 것 같아도 신전을 우선하여 찾아갈 수밖에 없었을 테니 그게 그건가? 아무튼 부럽다, 부러워. 신의 사자가 이쪽으로 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악마가 가시덩굴을 조종하여, 복잡하게 얽힌 덤불 속에서 홀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떠들어댔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저 악마의 목을 베고 심장에 검을 꽂아넣고 싶건만.
장기전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각성을 한 덕에 백색 신성력의 양이 크게 늘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전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뜻이다.
본디 그 양이 적었던 터라 마구잡이로 난사할 수는 없다.
검에 깃든 신성력을 백색에서 은색으로 전환하여, 끊임없이 움직이는 악마를 향해 연거푸 사출했다.
“하얀색 신성력은 막 쓸 수 없나 봐?”
악마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반응할 수 없었다.
급작스럽게 하늘이 어둠에 물들었으므로.
지금 이 타이밍에 새로운 악마가 소환되었다면 그 목적은 명확했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소환된 악마의 격은 눈앞의 악마와 같은 상급이다.
신전에 있는 이들의 능력으로는 결코 당해낼 수 없다.
으득, 이가 갈렸다.
선우가 겨우겨우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평온을 되찾았다기보다 외로움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어떻게든 기운을 내려고 노력한 결과였다.
어째서 마왕과 악마들은 일반인에 지나지 않는 선우를 가만히 두려 하지 않는가.
그 가련하고도 연약한 사람이 또다시 노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울분이 끓어 올랐다.
“표정이 너무 무서운데?”
“세르펜스! 여기는 나랑 이단 심문관들이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너는 일행들에게 가 봐!”
휴마누스가 악마를 뒤쫓으며 소리쳤다.
그 외침에 나는 본능적으로 날개를 움직여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내가 빠지고 나면 남은 이들의 힘만으로 저 악마를 상대하는 게 가능할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늘을 덮어버린 가시덩굴을 베고 또 베면서, 가시덩굴에 집어삼켜진 이 땅을 벗어나고자 했다.
“크윽!”
“그렇게 가도 되겠어?”
아래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비명과 악마의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려 확인한바, 비명을 내지른 건 휴마누스가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쌍검을 쓰는 이단 심문관의 팔 한 짝이 사라져 있었다.
잘린 팔은 어디로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이대로 가도 되는 건가···?’
내가 망설이는 동안에도 악마는 가시덤불 사이를 저 좋을 대로 누비며, 가시덩굴 채찍을 마구 휘둘렀다.
악마의 격은 아직 상급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나 이곳은 그자의 영역이었다.
이단 심문관들은 악마가 직접 가하는 공격을 막아내며, 예기치 못한 각도에서 튀어나오는 가시덩굴을 견제하는 동시에, 어디에서 생겨날지 모를 꽃봉오리를 경계하느라 연신 주변을 살폈다.
당연히 반격은 꿈도 못 꾸고 버티는 것조차 위태위태했다.
휴마누스는 간간이 반격을 시도하긴 했으나 성과가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괜히 성문을 열어 놓고 영지 내부로 유인한 게 아니었군.’
새로 소환된 악마의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선우가 있는 신전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은 괜찮다. 서둘러 이곳의 악마를 처치하고 돌아가도 선우는 무사할 것이다.
애써 그렇게 긍정적으로 사고하며 다시 아래에 보이는 가시덤불 사이로 몸을 날렸다.
“전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신의 사자를 구하는 대신, 성검의 주인을 보호하는 걸 택한 거야? 신의 사자를 소중히 여긴다고 들었는데 썩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네.”
은빛을 흩뿌려 거치적거리는 가시덩굴을 끊어내고, 검에 흰빛을 담아내어 악마를 향해 휘둘렀다.
조급한 마음에 동작이 커진 탓인지 악마가 여유롭게 공격을 회피하며, 입을 계속 놀렸다.
“아니면 설마하니 나를 재빨리 처치하고, 신의 사자를 구하러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무시하고 재차 검을 휘둘렀다.
내가 휘두른 검을 피해 물러나는 악마의 뒤로 휴마누스가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좋은 기회를 잡았다고 여겼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악마가 딛고 있던 가시덩굴이 크게 출렁이며 그자의 몸을 높이 띄웠고, 성검은 가시덩굴만 베어냈다.
“두 분, 조심하세요!”
이단 심문관의 외침에 나는 휴마누스를 끌어당기고 그와 나를 감싸는 결계를 펼쳤다.
동시다발적으로 주변에 맺힌 수십의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르더니, ‘팡!’ 하는 소리를 내며 터졌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콩알 크기의 마기 덩어리가 결계를 두드렸다.
“먼저 가라고 말해 놓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해.”
휴마누스가 분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사과를 건넸다.
당장 돌아가지 않은 것은 어디까지나 내 선택이었으니, 그는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휴마누스가 거리를 두려 하는 내 태도에 지쳐 오래전에 나를 포기했다면. 그리하여 지금처럼 내가 그를 친우로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등을 돌려 이곳을 떠났을 테다.
그러지 못한 건 휴마누스도 내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함께 힘을 합쳐 저 악마를 처리하고, 어서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갑시다.”
“···응!”
휴마누스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기뻐 보이는 얼굴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휴마누스를 향해 열심히 하자는 뜻을 담아 가벼운 눈인사를 건네는 즉시, 결계를 거두고 그를 밀쳐내며 뒤로 물러났다.
우리가 있던 자리에 악마의 채찍질이 가해지며 ‘팡!’ 하는 파공음이 귓전을 때렸다.
“사이가 꽤 좋아 보이네? 성검을 뺏어간 그자가 밉지도 않아?”
성검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의 주인으로 적합한 자는 휴마누스다.
그런 대답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긴 했으나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악마와 대화를 나눌 여유 따윈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으나, 만일 상황이 급하지 않았더라도 대답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을 터다.
“참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내게는 다행한 일이지만, 서둘러 나를 해치우고 싶다면 직접 성검을 사용하면 될 텐데 어째서···.”
악마가 나와 휴마누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며 한가로이 떠드는 틈을 타, 외팔의 이단 심문관이 달려들었다.
쌍검을 사용하다 팔 하나를 잃은 탓에 검을 휘두르는 자세가 불안정했다.
이단 심문관 본인도 그 사실을 아는지, 검의 크기가 두 배는 되어 보일 정도로 신성력을 한껏 모아서 그 위력을 키웠다.
어떻게든 악마의 신경을 자신에게로 돌리기 위함일 터.
“하찮은 인간 놈이···.”
악마가 짜증스레 인상을 구기며 달려드는 이단 심문관을 향해 가시덩굴을 휘둘렀다.
쌍검을 들었다면 검 하나로 그것을 막아내며 공격을 시도했을 터이나, 이단 심문관의 수중에 있는 검은 한 자루뿐이었다.
그는 공기를 찢으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가시덩굴을 방어하지 않고,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
목숨을 도외시한 공격이었으나 애석하게도 그의 일격은 악마의 몸에 닿지 못했다.
주변의 가시덩굴이 얼키설키 얽혀 악마의 앞에 장벽을 만들어낸 까닭이다.
그래도 이단 심문관의 공격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악마의 주의를 끈다는 목적은 달성했으니.
나는 신성력 날개까지 거두고 모든 기척을 죽인 채, 가시덩굴이 없는 맨땅을 골라 밟아 악마의 등 뒤로 은밀히 접근했다.
997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