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9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97화(997/1105)
95. 공작님의 분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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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심문관의 검은 탄탄하게 뒤엉킨 가시덩굴의 벽조차 완전히 베어내지 못했다.
중간에 막혀 나아가지 못하는 검을 가시덩굴이 얽어맸고, 악마가 채찍질하고자 팔을 들어 올렸다.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나는 악마의 방어 태세가 가장 취약해진 그때를 노리고, 백광의 신성력을 폭발(暴發)시키며 악마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커헉!!”
악마가 고통에 찬 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아직 승리를 확신해서는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심장을 꿰뚫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신성력을 감지한 악마가 몸을 비튼 탓이다.
재빨리 손목을 꺾어 악마의 심장 쪽으로 검을 움직였으나 악마의 반응이 더 빨랐다.
악마는 칼날이 자신의 뼈와 살을 가르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몸을 옆으로 빼냈다.
심장은 무사할지 몰라도 폐와 같은 중요 장기가 잘렸을 터이니, 평범한 생명체라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당연한 운명이다.
하나 눈앞의 악마는 이곳에 자리 잡기 전에도 두 개의 영지를 공격하여, 수많은 이들의 생명력을 흡수한 존재다.
악마는 끈질기게 목숨을 부지하며, 영지 전역에 퍼진 가시덩굴을 끌어모아 자신을 감쌌다.
잘려나간 팔을 금세 복구했던 걸 생각하면 단순히 치료에 전념하기 위함은 아닐 터.
그러한 내 추측이 정답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악마를 보호하듯 감싼 가시덩굴의 마기가 한 점에 모여들고 있었다.
일찍이 이렇게 되리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어찌 생각하면 늦었다고도 볼 수 있다.
악마가 진작 가시덩굴에 모아둔 힘을 흡수하여 최상급의 경지에 오르지 않은 건.
나와 휴마누스의 능력을 무시하고 방심한 까닭인가, 가시덩굴을 넓게 퍼트려 영역을 구축하는 쪽이 더 유리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인가.
‘어느 쪽이든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악마를 처치해야 했건만···.’
지금은 후회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단 심문관들만 해도 악마에게로 모여드는 힘을 줄이기 위함인지,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둘러 주변의 가시덩굴을 자르고 먼지처럼 흩어지는 마기를 정화했다.
그들은 신성력 소모를 신경 쓰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만에 하나 마기의 씨앗이 몸에 들어왔을 때, 체내에 남은 신성력이 부족하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검을 휘두르며 악마를 감싼 가시덤불 구체 안으로 파고들었다.
마기의 밀도가 올라간 탓에 백색 신성력을 동원해도, 검에 닿는 족족 가시덩굴이 소멸하는 일은 없었다.
끊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나아갈 길을 만들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휴마누스가 따라 들어와 내 등을 노리는 가시덩굴을 성검과 방패로 쳐내며 엄호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등을 맡길 누군가가 있다는 게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오직 앞만 바라보며 나아간 덕에 가시덤불의 중심부에 다다르는 건 금방이었다.
악마가 있을 거라고 예상한 그곳에 자리한 건 거대한 꽃봉오리였다.
본래 자신의 힘이던 그림자 군단을 흡수하여 강해진 악마와 달리, 이번 악마는 다른 이들의 생명력을 취한 터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가 싶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추측을 떠올리며 신성력을 덧씌운 손으로 꽃잎을 잡아 뜯었다.
그 후에 벌어진 틈새로 검을 밀어 넣고 남은 백색 신성력을 모조리 쏟아냈다.
“커흑···! 이, 비겁한···!”
적이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길 바라며, 힘을 모으고 격의 상승을 꾀하는 쪽이 어리석은 것이건만.
대체 무엇이 비겁하다는 건지 악마가 분에 받쳐 소리쳤다.
가시덩굴 형태의 응집된 마기가 나를 향해 줄기줄기 쏘아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으나, 무시하고 은색 신성력도 밀어 넣었다.
휴마누스가 나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리고 그는 내 믿음에 훌륭히 응해 주었다.
“크아악!!”
악마의 괴성과 함께 꽃봉오리가 피어나며 엄청난 양의 마기를 발산했다.
어떻게 대비할 틈도 없이 그 마기의 격류에 휩쓸려 반쯤 날아가다시피 뒤로 밀려났다.
단순히 밀려나기만 한 정도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만한 마기를 정면에서 받았는데 몸이 멀쩡할 리가 없다.
“으음···.”
속이 울렁거리고 목구멍에서 피가 울걱울걱 올라왔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악마를 처치하지 못했고 선우를 노리는 악마도 남았기에, 치료에 너무 많은 신성력을 소모할 수는 없다.
움직임에 영향이 없을 정도로 대충 응급처치 수준으로 치료를 마치고, 입가의 피를 닦아냈다.
‘그러고 보니 휴마누스는 어떻게 됐지?’
그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마기의 격류에 휘말렸을 터다.
휴마누스의 상태가 걱정되어 주변을 둘러보며 그를 찾았다.
안색이 다소 창백하긴 했지만, 용사의 무구에 걸린 가호 덕분인지 상태가 제법 양호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다 나동그라진 이단 심문관들도 시야에 들어왔다.
나처럼 직접 영향을 받은 건 아니기 때문인지, 떠밀려 넘어진 것 외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감히, 감히···!”
건물과 땅을 뒤덮었던 그 많은 가시덩굴이 사라지고, 폐허가 된 전경 한복판에 선 악마가 분노에 떨며 내 쪽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이 가시덩굴의 마기를 흡수하기 전과 사뭇 달랐다.
체격이 커지며 팔다리가 길어졌고 머리색과 눈색도 더욱 진한 색을 띠었으며, 전신에서 새카만 마기를 흘리고 있었다.
‘신체를 재구성했군. 과연,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 건가.’
그림자 군단을 다루던 악마가 그림자 갑주를 두르는 것으로 최상급의 반열에 올라선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근본적으로 자신을 강화하는 것이니, 방해를 받지 않는 환경이었다면 올바른 선택이 되었을 터다.
하나 악마는 힘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간섭을 받았고, 그 결과 최상급의 벽을 간신히 넘긴 정도로 그쳤다.
“절대 곱게 죽이지는···, 쿨럭, 쿨럭!”
악마가 내 쪽을 향해 다가오려다가 휘청거리며 검은 피를 토했다.
대충이나마 치료를 한 나와 달리 저쪽은 회복도 못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쪽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인다.
게다가 아까부터 계속 흘리고 있는 저 마기는 아무래도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 듯하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흘러나오는 것을 막지 못하여 내버려두는 느낌이다.
어쩌면 영혼에 큰 손상을 입은 걸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시간만 끌어도 자멸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상대의 실력과 상태를 파악했으니, 다시 전투에 돌입할 시간이다.
검에 은빛 신성력을 밀어넣으며, 발 앞꿈치로 땅을 강하게 내딛고 악마를 향해 달려나갔다.
악마가 새어나오는 마기를 그러모아 검을 튕겨냈다.
하나 그 마기는 이미 통제에서 벗어나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따라서 온전한 형상을 갖추지 못했고, 검을 한 번 막아낸 것을 끝으로 다시 연기처럼 흩어졌다.
검이 튕겨져나가며 생긴 반동을 이용해 몸을 빠르게 회전시켜, 악마의 몸통에 돌려차기를 날렸다.
연기처럼 흩어진 마기는 신성력이 덧씌워진 다리를 막아내기는커녕, 밀려나며 길을 내줬다.
손에 쥔 검의 움직임에만 신경 쓰고 있던 악마는 이 기습적인 공격에 대응하지 못했다.
불시에 얻어맞은 악마가 휘청이며 주춤거리는 사이.
나는 몸을 완전히 한 바퀴 돌려 검에 회전력을 실어 휘둘렀다.
악마는 새어나오는 마기를 활용하길 포기했는지, 이번에는 손바닥에서 뽑아낸 마기로 가시덩굴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팽팽하게 잡고 검을 막아냈다.
발에 그 어떠한 기운도 두르지 않은 채, 가시덩굴을 자유롭게 밟으며 이동했을 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 악마는 덩굴에 돋아난 가시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는 듯했다.
자신의 마기로 만들어 낸 것이니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윽···.”
잇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검에 실린 힘의 반작용을 회전력으로 흘려보내지 못한 터라, 그 충격이 고스란히 신체 내부로 전해진 탓이다.
몸 상태만 온전했어도 문제될 일은 없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속이 진탕 뒤집어지는 듯한 고통에 나도 모르게 멈칫한 틈을 타, 악마가 양손을 교차하여 가시덩굴로 검날을 묶으려 했다.
지금이라면 앞으로 뻗어진 팔을 뒤로 당겨 쉽게 검을 빼낼 수 있었으나, 일부러 악마의 노림수에 당해 주었다.
가시가 신성력 사이로 파고들며 검을 단단히 붙들었다.
이제 당기는 것만으로는 검을 회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신성력을 거두어들이면 가시덩굴에 의해 검이 깨질 판이다.
악마는 내 무기를 봉쇄했다고 생각하는지 기분 나쁘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 그 웃음이 일그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악마는 혼자인 반면에 나는 그렇지 않았기에.
뒤에서 다가오는 휴마누스의 기척을 감지했는지 악마의 얼굴에 짜증이 깃들었다.
내가 악마의 목을 향해 검이 나아가는 각도로 팔에 힘을 주자, 그 짜증은 다급함으로 바뀌었다.
가만히 있다간 황금빛을 머금은 성검에 심장이 꿰뚫릴 테고, 가시덩굴을 놓고 뒤돌자니 내 검에 목이 베일 판국이니 그럴 만도 했다.
악마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가시덩굴을 쥔 손에 힘을 빼는 동시에, 상체를 대각선 방향으로 낮췄다.
내 검은 허공을 갈랐고 휴마누스의 검은 아무것도 꿰뚫지 못했다.
하나 악마의 대응이 완벽했던 건 아니다.
나는 전투에 앞서 소매 안쪽에 숨겨두었던 비수를 왼손에 쥐고, 신성력을 가득 담아 악마의 어깨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미련 없이 비수를 놓고 뒤로 물러났다.
휴마누스가 편하게 성검을 휘둘러 악마의 질긴 목숨을 거둬갈 수 있도록.
찬란한 황금빛 신성력이 고통으로 굳어있는 악마의 육신을 갈랐다.
재생의 여지조차 남지 않은 완전한 죽음이 악마에게 임했다.
악마의 죽음을 확인하고 선우에게로 돌아가고자 신성력 날개를 펼친 그때, 이단 심문관 하나가 나를 붙잡았다.
“제대로 된 치료라도 받고 가십시오! 또 악마와 싸우실 거잖습니까?!”
마음이 급했으나 지금 몸 상태로 상급 악마와 싸워서는 승산이 적다.
하는 수 없이 이단 심문관에게 내상 치료를 맡기고, 새로 소환된 악마의 기운을 추적했다.
전투를 진행하는 와중에는 모든 감각을 주변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던 터라, 멀리서 이동하는 악마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빠르게 전투를 끝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확인한 악마의 위치는···.
“휴마누스는 빨리 일행들에게 가 보십시오!”
“으, 응?! 너는?”
“악마를 추격할 겁니다.”
악마의 기운은 베카 왕국을 벗어나 테라룸 왕국 쪽에서 확인되었다.
이미 목적하던 바를 이루고 도주하는 중이라는 뜻이다.
내가 너무 안일했다.
악마가 여러 신전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성직자들과 싸우느라 발목이 붙잡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줄 알았건만.
성직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한 건지, 운 나쁘게 악마가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이 선우가 있는 신전이었던 건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고, 지금은 그런 걸 헤아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며 지금이라도 뒤쫓아야 한다는 생각에 잡아먹혔다.
나를 치료하고 있는 이단 심문관을 뿌리치며, 땅을 박차 몸을 띄운 후 신성력의 날개로 힘껏 공기를 밀어냈다.
“너 혼자 악마한테 가서 뭘 어쩌려고?!”
뒤따라온 휴마누스의 목소리가 바람 소리를 뚫고 귓전을 두드렸다.
아무래도 나를 따라올 생각인 듯했다.
일행들이 무사한지 확인하러 가 보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으려다가, 날개를 이루는 신성력을 움직이는 데에만 집중했다.
998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