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s Eldest Son Is A Regressed Hero RAW novel - Chapter (15)_4
그런데 왜 그런 이 녀석의 송곳니에서 암흑 마기가 흘러나오느냔 말이다.
아덴은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아 송곳니를 자세히 살폈다.
그러다가, 송곳니 아래쪽의 작은 틈에 뭔가가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물건에서 암흑 마기가 나오고 있었다.
“이게 뭐지?”
그가 손에 힘을 줘, 박힌 물체를 뽑았다.
“보석……? 아니, 마령석이군.”
정교하게 풀 잎사귀 형상으로 세공된 검은 마령석이었다.
이빨에서 뽑혀 나오자 세공된 마령석이 풍기는 마기가 더욱 짙어졌다.
‘이게 원인이었군.’
이 정도로 순도 높고 짙은 암흑 마기라면, 적어도 군단장급 고위에 속한 탈로스의 마령석이 분명했다.
‘근데 이 모양,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아.’
아덴이 아공간 주머니 한구석에 꿍쳐 두곤 까먹었던 물체를 떠올리곤 바로 꺼냈다.
리치가 있던 던전에서 챙겼던 그 펜던트였다.
“역시 맞군.”
세공된 마령석과 펜던트 안쪽의 음각으로 파인 홈의 형태가 정확히 일치했다.
그 순간이었다.
부르르르.
펜던트와 세공된 마령석이 서로 공명하듯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아덴의 손에서 벗어나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러더니 이내…….
착!
펜던트와 세공된 마령석이 하나로 짝 붙어 버렸다.
“합쳐졌어?”
펜던트는 짧게 빛을 발하더니,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아덴의 목에 저절로 걸쳐졌다.
펜던트와 하나가 되자 세공된 마령석은 줄줄 새어 나오던 암흑 마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아덴은 한동안 당혹 어린 표정으로 목에 걸친 펜던트를 바라봤다.
시스템 창이 아덴의 앞에 떠올랐다.
[?의 펜던트, 바라크]이 펜던트는 최초의 주인 이후, 대대손손 후손들에게 전해져 왔으며, 그러다 피치 못할 사건으로 보석과 펜던트가 분리되었습니다. 바실리스크의 주인은 보석을 지키기 위해 송곳니 아래쪽에 보석을 숨겼고, 드디어 제 짝인 펜던트를 만나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귀속된 주인의 체력 회복 속도를 증가시키고, 마와 암 속성과의 친화도를 상승시키며, 정신의 피로를 빠르게 회복시킵니다.
아직 숨겨진 기능이 많은, 봉인된 장비입니다.
귀속 장비입니다. 주인이 죽기 전까지는 탈착 불가능입니다.
아덴이 설명을 보곤 이맛살을 구겼다.
‘이름이 안 나와?’
이런 경우는 보통, 아덴보다 격이 높은 존재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아덴이 지닌 시스템의 열람 권한으론 확인할 수 없을 만큼의 위계를 지닌 물건, 혹은 그러한 자의 물건이라는 소리였다.
아덴은 펜던트를 벗어 보려 했지만, 강력한 반발력과 함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티팩트인 줄은 알고 있었다만…….’
설마 이런 귀속 장비일 줄은 몰랐다.
이제 아덴은 죽기 전까지는 절대 이 펜던트를 벗을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마와 암속성 친화도를 높인다고?’
그 말은 흑마술사 전용 장비라는 의미였다.
제멋대로, 아덴의 통제를 벗어나 일어난 일에 그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결국, 체념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귀속 장비라면 사실상, 죽지 않는 이상 떼어 낼 수도 없으니까.’
용병 일을 자주 하다 보면, 이런 저주 장비가 귀속되는 일은 의외로 흔했다.
아덴도 전생엔 그런 저주에 걸린 물건들을 서너 개는 차고 다녔기에 익숙했다.
‘정말로 해로운 저주 장비라면, 항마의 반지로 어느 정도 무력화시킬 수도 있을 테고 말이지.’
흑마술사 전용 물건이라는 것이 걸렸지만, 사실 특성이 나쁘진 않았다.
검을 든 자에게, 정신력과 체력이 빠르게 회복된다는 것은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바실리스크의 주인이라…….’
왜 바실리스크가 북부에 있나 싶었더니, 주인이 있었던 모양이다.
물건 특성을 보면, 흑마술사였을 가능성이 높고 말이다.
고위 용족을 길들인 흑마술사의 물건이라니, 분명 범상치 않은 기능들이 아직 많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기연이로군.”
그리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 * *
아덴은 송곳니와 독샘 채취를 마친 뒤, 바실리스크의 사체를 팔기 위해 정령 상인을 소환했다.
죽음의 숲 전체가 던전으로 규정되어 있기에 정령 상인 소환이 가능했다.
퐁!
허공에서 토끼 정령 상인, 래비츠가 튀어나왔다.
일부러 전에 엔트 부락 위치를 팔았던 미숙한 초보 상인, 래비츠를 다시 소환했다.
-안녕하세요! 정다운 정령상회를 이용해 주셔 환영……!
“오랜만이군, 래비츠.”
-……?
아덴이 인사를 걸자 정장 차림의 흰 토끼의 얼굴에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경악이 어렸다.
래비츠는 그를 보곤 삿대질해 댔다.
-히익! 다, 당신은 그 코어 사기꾼! 어떻게 살아 있는 겁니까? 귀신입니까!
“생사람을 귀신 취급하지 마라. 그보다 사기꾼이라니, 그건 너겠지.”
아덴의 지적에, 래비츠가 찔렸는지 몸을 흠칫 떨었다.
-하하. 무, 무슨 말씀인지 대체…….
래비츠가 애써 웃어넘기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네가 일부러 내게 가장 생존율이 낮은 엔트 부락의 위치를 가르쳐 준 걸 알고 있다. 정보를 팔면서 그런 장난질을 치는 게 정령 상인으로서, 그리 명예로운 짓이 아닐 텐데?”
-저, 저기 일단 진정하시고.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전부 설명하겠으니까…….
“모자 상인.”
움찔!
그의 말에 토끼의 귀가 화들짝 떨렸다.
아덴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모자 상인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줘도 네 초급 상인 직위를 계속 유지하게 해 줄지 모르겠군.”
-데, 대체 당신 정체가 뭡니까? 코어에다가, 어떻게 그 양반까지 알고 있는 거죠!
“그 양반이라, 그렇게 말한 것도 전해 주지.”
-히익!
토끼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이내 래비츠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약자 위치에 있다는 걸 깨닫자, 바로 비굴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 미천한 상인이 감히 하늘 같은 고객님을 우롱하였습니다! 어떻게든 보상하겠습니다! 그, 그러니 제발……!
“그래, 용서해 주지.”
-저, 정말입니까?
아덴의 흔쾌한 용서.
이에 석고대죄 하던 래비츠의 얼굴에 화색이 어렸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대신 나와 독점 계약을 맺어라.”
-도, 독점 계약이라고요?
“그래, 제대로 들었다.”
독점 계약은 정령 상인이 특정 고객과 맺는 계약이었다.
고객은 오직 계약한 정령 상인에게만 던전 부산물을 팔 수 있으며, 정령 상인은 계약한 고객의 정보를 결코 타인에게 누설할 수 없다.
그리고 들어줄 수 있는 조건이라면 고객의 요구를 전부 들어줘야 했다.
-하, 하지만…….
래비츠가 식은땀을 흘리며 머뭇거렸다.
정령 상인은 오직 한 명에게만 독점 계약이 가능했기에 실제로 사용하는 정령 상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잘못된 고객과 계약을 맺었다간 손해만 보고 령생(靈生)을 종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앞의 인간 아덴 레메스는 그냥 잘못된 정도가 아님을 래비츠는 알 수 있었다.
아주 그냥 역으로 상인의 등골을 쪽쪽 빨아먹을 인간임을 상인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 인간과 계약하면 분명 끝이 분명했다.
‘하지만 거절했다간…….’
그랬다간 문자 그대로 상인 인생이 끝날 것이다.
‘모자 상인’까지 알고 있는 인간이니 분명히 말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이미 끝장이었다.
아덴이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잘못을 했으면 갚아야지? ‘평생’ 제대로 잘 써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으아으아아악!
토끼가 절망하며 괴성을 질렀다.
그렇게 호구 정령 상인은 아덴과 독점 계약을 맺게 됐다.
* * *
독점 계약을 성공적으로 맺은 아덴은 바실리스크의 사체를 아주 ‘합당한’ 가격에 래비츠에게 팔아넘겼다.
그 후, 숨어 있던 타이온과 사람들을 폐허가 된 엔트 부락에 불러들였다.
타이온이 기가 찬 표정으로 아덴을 바라봤다.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킬 생각을 하다니, 아덴 레메스 네 녀석은 정말 미친놈이다!”
그가 주변에 널려 있는 몬스터 사체들과, 흑마술사들의 시신을 질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겨우 인간 몇 명이 힘을 합쳐, 이런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이 현실감 없었다.
“대놓고 욕인가? 그딴 소린 됐고. 사람들은 좀 어때?”
“……건강에는 다행히 아무도 이상 없다. 덕분에 말이지.”
갓 풀려난 사람들은 안정을 위해, 그나마 멀쩡한 엔트들의 가옥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조명탄을 터트렸으니, 곧 화전촌에서 사람들이 올 거다. 다만, 모두 기억이 혼란이 있더군.”
흑마술이 풀린 그들은 최근 당했던 일을 드문드문 기억하거나, 아무것도 기억 못하고 있었다.
타이온이 쓴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기억해 봤자, 오래도록 괴롭기만 할 테니 말이다.”
그들 중엔 화전촌 주민만이 아니라, 최근에 사라졌던 실종자들도 다수였다.
적절한 보상과 함께, 집에 되돌려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잠시 아덴을 못마땅하다는 듯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타이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네 녀석이 이런 괴책(怪策)을 떠올리지 못했다면, 사람들을 구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네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고마우면 뭐라도 줘.”
“제길, 분위기 한번 제대로 깨 버리는군. 그렇잖아도 줄 생각이었다!”
타이온이 신경질적으로 품을 뒤척이더니 뭔가를 꺼내 아덴에게 건네주었다.
“자, 받아라.”
“이건…….”
“우리 가문의 약조패다.”
약조패는 가문과 본인의 명예를 걸고 약속을 할 때 그 증표로 주는 물건이었다.
“만일, 아덴 레메스 네 녀석이 우리 세두스의 힘이 필요해지면, 딱 한 번, 그대의 편에서 힘을 빌려주겠다. 가문 전체가 나서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미친, 진심이냐?”
아덴이 어처구니없어하며 약조패를 보았다.
가문의 힘을 빌려주겠다니, 이런 약속은 함부로 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이었다.
그 의미는 영주 티리에드 변경백이 몸소 나서는 것도 가능하다는 소리니 말이다.
즉, 아덴은 이제 소드 마스터를 한 번은 마음껏 이용해 먹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네 멋대로 이런 걸 함부로 줘도 되냐? 티리에드 님이 가만두지 않을 텐데?”
아덴의 물음에 타이온이 코웃음 쳤다.
“훗, 아무 걱정 말라! 내가 그 정도도 모를 줄 아나? 이건 아버지가 먼저 준 권한이다. 내기로 가보를 팔아먹은 걸 추궁하니 쩔쩔매며 화 풀라고 내게 주더군. 맘대로 써먹으라고.”
타이온이 자랑이라도 하듯, 팔짱을 끼고 코를 높게 치켜들었다.
“…….”
아덴은 티리에드의 터무니없는 무개념스러움에 할 말을 잃었다.
아들의 화를 풀겠다고 이런 권한을 주는 아비와, 또 그걸 자랑하듯이 거들먹거리는 아들이라니.
‘미쳐 돌아가는 집안이군.’
아덴이 혀를 차며 타이온에게 물었다.
“아무튼, 넌 어떻게 할 생각이지?”
“뭐가 말이냐?”
“이곳의 엔트들을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묻는 거다.”
엔트든 그 자체로 돈이 되는 종족이었다.
하물며, 귀족인 타이온이 그들을 탐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덴의 기우였다.
타이온이 진지하게 말했다.
“엄연히 따졌을 때, 죽음의 숲은 세두스 영지에 편입된 땅이 아니다.”
타이온이 이번에 산적 토벌에 나선 것은 세두스 영지의 핏줄을 이은 화전촌 주민들을 구하기 위한 도의적 행위였다.
“뭐, 이번에 몬스터들이 따로 사라졌으니 개간할 수 있을 수도 있다만, 우리 영지가 아닌 땅에 사는 원주민에게 딱히 무슨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영지에 해만 가지 않는다면 말이다.”
타이온은 엔트들을 원주민이라고 칭했다.
그것은 엔트들을 그저 동물 취급이 아닌, 인간 같은 하나의 인격체 종족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아덴 레메스 네 녀석이 알아서 결정해라, 알겠나!”
아덴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엔트들이 지닌 가치를 놈도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내색하지 않는 모습이 조금 귀여웠다.
“그래, 그러도록 하지.”
아덴은 타이온과 대화를 마친 후, 엔트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 봤다.
엔트들은 모두 부러진 요정목 주위에 모여 있었다.
그가 에츠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요정목의 마지막을 지키는 거예요.”
부러진 요정목은 희미하게 생기를 품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에츠의 말에 의하면, 요정목은 나무 요정족에게 있어선 정령계와의 연결 매개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흐윽, 흑…….”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엔트들은 저마다 울먹이며 요정목 밑동을 쓰다듬었고, 말을 걸었다.
요정목은 이 독기로 넘쳐 나는 숲속에서, 엔트들이 살아갈 환경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나무였다.
자신들의 마을을 수호해 주고, 교감하며 함께 성장해 온, 듬직한 동반자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에츠가 말했다.
“요정목은 우리 일족이 이 땅에 정착하기 전, 조상님들이 우리들의 고향에서 자라는 세계수의 가지를 꺾어 심은 거예요.”
최초로 심었던 나무에서 다시 가지를 꺾어 심었고, 다시 그 가지에서 또 꺾어 심으며 계속해서 전해져 왔다.
인간들에게 사냥을 당하는 와중에도, 그들은 요정목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역사이자, 시작이며, 동시의 끝이기도 한 나무이니 말이다.
에츠가 나무의 곁에 다가갔다.
“그동안 수고했어.”
에츠의 눈가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너는 우리가 태어나고, 살아가고, 마지막을 지켜보며 함께해 왔어.”
다정하게 요정목 나무의 결을 쓰다듬었다.
“우리와 함께해 주어 고마워. 그리고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
또르륵.
에츠가 흘린 눈물이 호박이 되어 떨어졌다.
아덴은 옆에서 조용히 침묵했다.
일족의 정신적인 지주나 다름없는 존재를 잃은 그들의 슬픔은 그와 같은 외부인이 끼어들 수 없는 문제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도와줘…….
아덴은 어느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이건?’
귀로 들리는 음성이 아닌, 머릿속으로 직접 들려오는 의지였다.
아덴은 이내 그 목소리가 죽어 가는 요정목의 목소리임을 알게 되었다.
‘자아가 있었군.’
수백 년을 묵으며 엔트들을 지켜 온 나무는 어느새 영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다른 엔트들의 모습을 보니, 그들은 요정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야…….
아덴은 그런 요정목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지?’
초목에 깃든 영성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정령사뿐이었다.
정령사도 아닌 아덴이 요정목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너의 오른손에 잠든 아이 덕분이야. 슬퍼하고 슬퍼하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가여운 아이…….
요정목의 음성에 동정심이 어려 있었다.
아덴의 오른손에 새겨진 방패 문신, 밴시의 정령 방패.
그 안에 깃든 타락한 정령의 힘을 매개로 요정목과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정목이 말했다.
-나는 이제 곧 잠들 거야. 모든 살아 숨 쉬는 다른 친구들처럼……. 하지만 이 아이들을, 내 친구들을 두고 떠날 순 없어.
요정목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희미했고, 힘겹게 보였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 아이들이 첫 아침 이슬을 맞으며 태어나던 순간을 기억해. 나의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아 장난치던 모습을 기억해. 저무는 어스름과, 별과 달을 보며 함께 노래하던 행복을 기억해…….
엔트들이 요정목을 아꼈듯이, 요정목도 그런 엔트들을 아껴 왔다.
나무에게 있어서 나무 요정들은 가족이며 친구였고, 소중한 아이들이었다.
그렇기에 요정목은 슬펐다.
자신이 없어진 나무 요정들에겐 미래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도와줘…….
그렇기에 요정목은 아덴에게 간절히 빌었다.
살아남은 엔트들을 구해 주고, 엔트들에게 고통을 준 자들을 물리쳐 준 인간에게, 상처받고 너덜너덜하게 찢어졌음에도, 사랑스러운 영혼을 품고 있는 인간에게 말이다.
-내 친구들을 도와줘. 제발, 부탁해…….
요정목은 간절했다.
그 간절함을 고스란히 느낀 아덴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용병이다. 용병은 대가 없이는 남을 돕지도, 움직이지도 않아.”
그렇기에, 일방적으로 부탁을 하는 입장인 요정목의 요구는 들을 가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에츠와 거래했다.”
아덴이 에츠를 바라봤다.
에츠는 아덴에게 자기 자신을 내걸며 요구했다.
일족을 구해 달라고.
그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저 흑마술사들을 무찔러 달라는 의미로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족을 구해 달라는 그 약속은 지금도 유효했다.
의뢰를 어중간하게 끝내는 건 제 성미에 맞지 않았다.
“네가 부탁하지 않아도 에츠와 다른 이들의 문제는 내가 알아서 잘 해결할 거다.”
파즉.
요정목의 나무 밑동에 금이 갔다.
“그러니 걱정 말고.”
파즈즈즉.
그 금이 점점 넓게 퍼져 나갔고.
“편히 잘 가라, 요정목.”
아덴이 말을 끝마치는 순간.
파아아앗!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연녹색 빛의 입자로 변해, 사방으로 퍼졌다.
-고마워.
요정목의 마지막 음성은 기쁨을 품고 있었다.
-요정의 은인에게, 축복이 함께하길.
새벽빛의 반짝이는 이슬비같이 빛나던 연녹색 빛의 입자들.
그 빛들이 아덴의 몸 안으로 흘러들어 갔다.
“이건…….”
아덴은 자신의 몸 안에 기묘한 힘이 깃드는 것을 느꼈다.
마치 불사조에게 축복을 받았을 때처럼 말이다.
-‘요정목의 가호’를 얻었습니다.
‘요정목의 가호?’
아덴이 자세한 설명을 살펴봤다.
[요정목의 가호]나무 요정들이 소중히 모셔 온 요정목이 인정한 자에게만 내리는 가호.
마나의 회복 속도가 5~15% 상승합니다.
정령과의 친화도가 상승합니다.
요정족들이 당신에게 이유 모를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요정목이 아덴에게 마지막으로 남겨 준 선물이었다.
“맙소사…….”
“요정목이 은인님에게 축복을 내렸어.”
엔트들이 그런 아덴을 보며 깜짝 놀랐고, 감탄을 토해 냈다.
하지만 나무 녀석이 남긴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덴에게 흡수되지 않았던 나머지 빛들이 그의 앞에 한데 뭉치더니 작고 둥근 형상을 이루었다.
퐁!
빛이 사라지자 드러난 것은 달걀만 한 크기의 어떤 씨앗이었다.
허공에 떠 있던 씨앗이 아덴의 손으로 떨어져 내렸다.
파르르!
그것을 본 엔트들의 머리 이파리가 위로 솟구치며 격렬하게 떨렸다.
“이건, 이건, 설마……?”
“요정목의 씨앗이야!”
요정목의 씨앗.
엔트들을 마지막까지 생각한 나무가 그들에게 남긴 또 다른 안배였다.
이제 이 씨앗을 심으면 다시 요정목이 자라날 것이고, 엔트들은 다시 힘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하, 별걸 다 남기는군.”
아덴이 실소를 흘렸다.
그러곤 주변에 있던 엔트들을 보다가 흠칫했다.
“……너희, 그 눈빛은 뭐냐?”
엔트 부족들 전원이 아덴만을 부담스럽게 눈에 기묘한 열기를 띠고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 들뜬 목소리로 에츠가 말했다.
“요정목의 가호를 받은 자는 일족을 이끌 족장이 되는 게 관습이에요! 거기에다, 아덴 님은 요정목의 씨앗에게 선택을 받았어요!”
에츠의 눈이 반짝반짝 부담스럽게 빛났다.
그것은 다른 엔트들도 마찬가지였다. 가호를 받은 자가 족장이 된다고?
“그 말은 설마……?”
아덴의 불안한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나무 요정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족장님!”
아덴은 엔트 일족의 족장이 되었다.
* * *
아덴이 피곤하다는 듯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댔다.
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분명히 엔트의 눈물이 필요해서 거래하려고 여기에 온 것이 맞았다.
그런데 설마 눈물 정도가 아니라 일족 전체가 들러붙을 줄은 몰랐다.
아덴이 머리를 짚으니 주변의 엔트들이 설레발 쳤다.
“아덴 족장님!”
“어디 아프십니까?”
“……족장님이라고 부르지 마.”
이 녀석들은 많은 동족들과 요정목이 죽은 탓인지 아덴을 의지하고, 과하게 알뜰살뜰 모셨다.
아마 요정목의 가호 효과가 적용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아덴의 말에 엔트들의 눈과 머리 이파리가 갈피를 못 잡겠다는 듯 혼란스럽게 떨렸다.
“하, 하지만 아덴 님은 우리 족장님이신데…….”
“그런데 족장님이라 부르지 말라 하시면…….”
“족장님을 족장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조금이나마 들떠졌던 분위기가 다시 침울해져 갔다.
갈수록 점입가경인 모습에 결국 아덴이 한숨을 내쉬며 포기했다.
“그래, 마음대로 불러라.”
“네! 족장님!”
이들은 아덴을 따라서 레메스 공작령에 가길 원했다.
특히 에츠가 그랬다.
‘제 주인은 족장님이니 따라가는 게 당연해요!’
엔트들은 요정족답게 남녀노소 불문 미형이었다.
에츠의 말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기에 입조심하게 시켰다.
아무리 스무 명 이하의 소규모 집단이라지만, 하나의 부족이었다.
그것도 인간족이 아닌 요정족.
이들을 레메스 공작가에 데려가 보호해 주려면 그만한 메리트가 있는가?
‘그래, 있지…….’
엔트의 눈물만으로도 이미 이들은 합격이었다.
교단에서도 해마다 극소량만 얻는다는 영약이 엔트의 눈물이었다.
언제나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언제나 적다.
레메스 영지에서 성화 교단에 수출하는 게 가능해지면 그 이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엔트들은 아덴의 무반응에 애간장이 타들어 갔다.
“가면 열심히 일할 테니까 부탁합니다, 족장님!”
“5분만 걸어도 지쳐 쓰러지지만, 사력을 다하겠습니다!”
“5분만 걸어도 지쳐 쓰러지는 녀석들에게 노동 따윈 기대도 하지 않는다만?”
“그, 그래도 꽃이나 나무는 잘 키웁니다!”
꽃이나 나무는 잘 키운다라……. 그 말을 들은 아덴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럼 너희, 혹시 밀이니 보리도 잘 키우나? 아니, 희귀한 약초 같은 건?”
레메스 영지는 산이 많고 땅이 척박하여 아직 개간도 되지 않은 땅이 많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곡식은 상단을 통해 수입하고 있었다.
마물산의 마물들을 토벌하고 얻는 부산물을 제외하곤 특산물이라 할 게 없는 영지기도 했다.
“네? 네, 식물이기만 하면 뭐든지 잘 돌볼 수 있어요.”
“그렇단 말이지?”
그 말에 아덴의 표정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어차피 엔트의 눈물 때문에라도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뜻밖의 쓸모를 발견해 버렸다.
아덴이 순진무구한 엔트들을 보며 선언했다.
“좋아. 정 그렇게 원한다니 같이 가자고, 레메스 영지로.”
아덴의 허락에 엔트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참으로 훈훈해지는 광경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덴의 내면에서 커스가 혀를 끌끌 찼다.
-쯧. 호구들이 알아서 굴러들어 오는구나, 용살왕이여.
그러게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