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s Eldest Son Is A Regressed Hero RAW novel - Chapter (18)_2
샤를은 사랑하던 아내와 사별하고 더더욱 애정을 쏟아부으며 소중히 키운 딸이었다.
그런데 1년 전부터 원인 모를 고열과 함께, 환청이나 환각을 겪어 댔다고 했다.
대형 길드의 길드장인 그가 알아봐도 알 수 없는 미지의 병이었다.
그 어떤 약과 약초를 사다 먹여도 치유되지 않았고, 사제의 축복으로도 겨우 호전되는 정도가 다였다.
“그러다 가까스로 움브라 길드를 통해 이 약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어떻게든 고비는 넘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만들어 낸 약인지는 몰랐지만, 유일하게 샤를의 병세를 중화시킨 약이었다.
하여 매번 터무니없이 높은 값에 약을 조금씩 공급받고 있다고 했다.
슬슬 길드 운영에 재정적으로 타격이 올 수준이었지만 딸을 위해서라면 감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약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기에 어떻게든 딸의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유일하게 그나마 다소 호전이라도 보였던 것이 사제의 치유술이었다고.
“그래서 혹시라도 성인급 사제의 신성력이면, 어쩌면 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군요.”
하지만 신의 기적으로도 치료가 되지 않을 줄은 몰랐다.
그 사실에 마르크스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제 어린 딸이 평생을 이렇게 아파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죄송해요…… 도와주지 못해서.”
엘리스가 울적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엘리스는 성녀가 된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그 시간 동안 그녀에게 치유받았던 이들은 너무나도 쉽게 치료되어 왔다.
교주에게 걸렸던 저주도 쉽게 소멸시켰고, 교단 지부 건설 도중 아무리 크게 다친 이들도 엘리스의 손짓 하나면 도로 나았다.
그 때문에 자신의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엘리스에게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아닙니다. 엘리스 님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맞아, 꼬마 성녀님. 네 탓이 아니야.”
그런 엘리스를 발리 사제와 캐시가 위로해 주었다.
아덴이 담담히 충고했다.
“엘리스, 너는 성녀지, 신이 아니야.”
그리고 성녀는 사람이다.
신도 아닌 한낱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다.
“이 사실은 절대 잊지 마.”
“……응, 알겠어.”
아덴의 말에 조금이나마 위로받은 듯 작게 끄덕였다.
한편 아덴은 현 상황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메이달라 길드장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어째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감이 잡혔다.
‘이 아이는 적어도 얼마 못 가 죽는다.’
어린 나이에 딸이 죽었기에, 아덴은 그 존재를 몰랐을 가능성이 높았다.
‘성녀의 신성력으로도 치유되지 않는 병이라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성자, 성녀의 신성력은 신이 빌려주는 권능이었다.
제아무리 강력한 병이나 저주도 정화가 가능한 것이 신의 힘이었다.
그런데 샤를이 성녀의 치유를 받았음에도 상태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첫 번째는 엘리스의 능력 이상의 저주가 걸려 있을 가능성.’
하지만 이것도 이상했다.
그 정도로 강력한 저주라면 케르텔 교주 때처럼 아덴이 감지했을 것이다.
그러니 기각.
‘두 번째는…… 지금 이 상태가 치유된 모습이라는 것.’
즉, 이 아이가 아픈 것은 병 때문이 아니라는 것.
다만 이것도 금시초문의 이야기였기에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아덴 알비레오.
잠자코 있던 커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방패를 소환하여 보거라.
‘뭐?’
-확인해 볼 게 있다. 어서 꺼내 보거라.
처음엔 놈이 뭔 수작인가 경계심부터 들었지만, 심사숙고 끝에 딱히 위험할 일은 없을 거라 판단해 일단 놈이 원하는 대로 따라 줬다.
-귀속 무구, ‘밴시의 정령 방패’를 소환합니다.
아덴의 오른 손등이 빛나며 반투명한 은색 방패가 소환되었다.
“레메스 공자, 그건……?”
“아덴 님, 어째서 그걸 지금……?”
아덴이 지닌 정령 무구의 존재를 몰랐던 이들의 눈이 휘둥그래졌고, 이미 한번 봤던 이들은 그것을 왜 꺼내는지 의아해하는 기색이었다.
화아아앗!
밴시의 정령 방패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방 안에 퍼졌다.
그러자 이내 이변이 일어났다.
-키킥!
-깔깔깔깔깔!
-키득키득키득!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섬뜩하고 기괴한 웃음소리들.
족히 수십은 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색빛 무형의 존재들이 길드장의 딸 주위를 빙글빙글 배회하며 웃고 있었다.
방 안이 순식간에 한기가 차오르며 서늘해졌다.
이를 본 길드장이 기겁했다.
“아, 아니 저것들은 대체……!”
아덴은 바로 그들을 알아보곤 눈빛이 가늘어졌다.
“사령, 그리고 망령들이군.”
사령과 망령은 정령과 죽은 자들이 남긴 찌꺼기와도 같은 존재.
놈들은 주로 정신적으로 취약하거나, 생명력이 약한 자들을 노렸다.
약한 인간들의 생기를 조금씩 빨아먹어 목숨을 앗아 가는 거머리 같은 놈들.
밴시의 정령 방패는 사령의 속하는 밴시가 남긴 잔재.
그 때문에 방패의 빛을 쬐어 주자, 평소엔 볼 수 없는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엄청나군…….’
그런데 두세 마리가 한 사람에 붙어 있는 것도 드문 일이건만, 샤를의 주위엔 족히 서른 마리가 넘는 망령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물론 아덴의 주위에도 그가 죽인 몬스터와 악인들의 망령이 들러붙어 있었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바알제불에게 생명을 뺏겨 귀속된 망령들이었다.
정신력이 강한 아덴에게 그들이 해를 끼칠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평범한 어린아이에게 저 정도 수준의 사령과 망령들이 들러붙은 것은 비정상적이었다.
-이제야 알겠군.
그 의문은 커스가 해결해 주었다.
-이 아이는 선천적으로 정령 친화력이 높다. 그것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말이다. 인간 주제에 놀라운 잠재력이군.
정령 친화력는 인간이 정령과 계약을 맺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재능의 정도였다.
친화도가 높은 자일수록, 더 고위급의 정령과 계약을 맺어 뛰어난 정령술사가 될 수 있다.
인간 중에선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재능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축복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었다.
-정령 친화도가 높은 인간은 사령과 망령들도 탐내는 먹잇감이지. 이 아이는 어린 나이에 비해, 너무 높은 친화도를 지녔다.
그 때문에 샤를에게 온갖 이매망량들이 몰려들었고, 놈들의 귀기에 짓눌려 고통을 겪는 것이라 말했다.
‘흠, 그럼 엘리스의 신성력이 먹히지 않았던 건?’
-그야 장애나 질병을 지닌 게 아니라, 망령들이 꼬이는 ‘체질’이기에 그런 것이다.
신성력은 사람의 선천적인 체질까지 바꿔 주는 힘이 아니다.
엘리스는 병자를 치유하는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상대에게 병이 있는 게 아니니 아무 변화가 없는 게 당연했다.
사령들은 신성력을 불어 넣는 순간에만 잠깐 떨어졌다가, 기운이 사라지면 금방 몰려든 것이다.
이제 왜 길드장의 딸이 아픈지를 알았다.
“그나저나.”
-키키킷!
-켈켈켈켈켈!
“더럽게 시끄럽네.”
부정적인 사념으로 이루어진 사령과 망령들의 웃음소리가 심히 거슬렸다.
“엘리스.”
“어, 어어, 왜?”
갑자기 드러난 사령과 망령 떼에 다른 이들과 같이 넋을 잃었던 엘리스가 화들짝 놀랐다.
“저 녀석들이 샤를을 괴롭히고 있는 놈들이다.”
아덴이 이매망량들을 손가락으로 무심히 가리켰다.
아덴의 입가에 비뚜름하게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사령과 망령들은 신성력에 약하지.”
“……!”
분명 체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마에 속하는 부정한 존재인 사령들을 신성력으로 정화시키는 것은 가능했다.
그리고 밴시의 정령 방패 덕에 실체 또한 드러났으니, 해결법은 간단했다.
“날려 버리라고, 성녀님.”
그냥 전부 ‘패’ 버리면 된다.
망령들을 전부 날려 버리라.
이에 엘리스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응! 알겠어!”
화르르륵!
엘리스의 작은 주먹의 황금빛 신성력의 불길이 어렸다.
이글거리는 신성력을 손에 두르고 웃는 엘리스.
“모조리 깨끗이 태워 버릴 거야.”
그 미소는 묘하게 아덴이 화났을 때 짓던 화사한 미소와 닮아 있었다.
작은 악마를 연상시키는 불길한 미소.
-키,키이이이익!
-히, 이이에엑!
뭔가 잘못되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망령 무리가 겁을 먹었다.
* *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엘리스 님! 여러분!”
마르크스가 울먹이며 엘리스와 아덴을 포함해 일행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의 옆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한 표정으로 딸 샤를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아덴이 망령들의 존재를 밝혀내고, 엘리스가 ‘손수’ 정화시켜 준 덕분이었다.
“아닙니다. 메이달라 길드장. 아직 감사하긴 이릅니다.”
아덴의 말대로였다.
지금이야 옆에 붙어서 망령들을 잡아 줄 수 있다만, 스물네 시간 매일 붙어서 이러고 있을 수도 없었다.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아덴에겐 잡지식으로 가득한 커스가 있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령과 계약을 맺는 것이다. 저런 거머리들은 임자 있는 놈까지 건들 만큼 담이 세지 못하니. 한데 이상하군.
‘뭐가 말이지?’
-이 정도의 친화력이라면, 이미 고위 정령이 점찍어 놓고 수호하는 게 보통이다.
정령 친화력이 월등히 높은 존재는 요정족 중에서도 많지 않으며, 특히 인간 중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보통 그런 아이가 태어나면 정령이 먼저 찾아와 가계약을 맺곤,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아이를 수호해 준다.
-이 아이가 8년이나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그 증거다. 만일 지켜 주는 정령이 없었다면 돌을 넘기기도 전에 망령들에게 먹혔겠지.
‘그런데 망령들이 꼬이고 있다는 건…….’
-그렇다. 이 인간 아이를 보호하던 정령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어째서 아이를 수호하던 정령이 사라진 것일까?
아덴은 혹시 이미 소멸한 건 아닌가 싶었지만 커스가 부정했다.
-가계약을 맺었던 정령이 소멸했다면 이미 새로운 정령이 빈자리를 꿰차며 나타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해당 정령이 어딘가에서 살아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태라면 다른 정령을 찾아 줄 수도 없다.
‘흠…….’
아덴은 커스가 지닌 해박한 지식에 대해 문득 의문이 들었다.
원래부터 잡다한 지식을 알고 있는 놈이었지만, 특히 요정족이나 정령에 관련된 부분은 학자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의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 점이 조금 걸렸지만, 구태여 캐묻지는 않았다.
다만 커스는 지하 군주의 저주에서 비롯된 놈의 자아.
그런 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조금 미심쩍었기에 아덴은 그 누구보다 정령에 대해 해박할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엇? 아덴 족장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에츠.”
아덴이 차고 있는 볼품없는 나무 팔찌에서 소년 엔트 에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람의 가호가 깃든 나무 팔찌.
정령목의 겉껍질을 엮고 정령의 힘을 담은 이 팔찌는 서로 언제든 연락이 가능했다.
아덴은 팔찌로 엔트 부족에게 연락했다. 자고로 정령 하면 요정족이니 말이다.
-쯧, 굳이 확인할 것까진 없지 않은가. 신뢰는 씨알만큼도 없구나, 용살왕.
‘동료들에게 칼빵을 맞아 보지 않아 그런 소리가 나오지. 그리고 애초에 너랑 나랑 신뢰가 가당키나 하겠냐?’
아덴은 커스의 불평을 일축하고, 에츠에게 현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 주어 커스가 말한 지식의 진위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해서 이런 상황인데, 정말 사실이냐?”
-네! 실피아가 맞대요!
“실피아?”
-아, 이번에 계약을 맺은 제 정령 친구예요! 멋진 바람의 정령이에요. 전부 아덴 족장님과 엘리스 님 덕분이에요, 헤헤.
아덴이 요정목을 심고 엘리스가 쑥쑥 키워 낸 요정목 덕분에 엔트족은 정령과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실피아는 그렇게 최근에 에츠가 친해진 정령의 이름이었다.
-아무튼요, 실피아의 말로는 맞대요.
망령이 그렇게 군침 흘릴 정도로 친화력이 높으면서 8년 가까이나 무사히 살았다면 그건 분명 강한 친구가 곁에서 보호했을 게 분명하다고 에츠가 말했다.
-근데 자기들이 인식을 못 하는 걸 보면 그 정령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래요. 뭐? 실피아 네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가 나무들 따윈 버리고 대신 계약하고 싶다고? 으앙! 너무해!
“……에츠.”
-아, 죄송해요. 아무튼 그 정령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고 싶다는 거죠? 정령들에게 물어볼까요?
아덴이 제 귀를 의심했다.
“물어본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네, 정령들은 서로 소통이 빠르고 인맥이 넓거든요.
갓 태어난 정령이 아닌 이상, 어떤 정령이 있고, 어디서 뭘 하고, 뭘 좋아하는지까지 다 알 수 있다고 했다.
“허, 그럴 줄은 몰랐군.”
-실피아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지상계에 공유하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최근에 어린 가계약자를 지키던 도중 소식이 끊긴 정령이 있는지 정도는 찾아볼 수 있대요.
“그거 다행이군. 부탁하지.”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약 5분 정도 흘러서 다시 나무 팔찌에서 응답이 왔다.
-단서를 찾았어요! 족장님!
“확실하냐?”
-네! 카르탄 시티의 어린 인간 여자애와 가계약을 맺은 정령! 전부 들어맞아요! 프레이그라는 이름을 지닌 역병의 정령이래요.
“역병의 정령?”
뭔가 심상치 않은 단어가 중간에 붙어 있다.
에츠의 말로는 역병의 정령은 특수 속성의 정령으로, 말 그대로 온갖 질병들을 관장하는 정령이라고 했다.
특수 속성 정령은 자연계 정령과 궤를 달리하기에, 경우에 따라선 대정령급의 힘을 발휘한다고 했다.
-그런데 인간들 사이에선 불길한 아이로 취급받아서 많이 소극적이고 상처가 많은 친구래요.
‘확실히 그럴 만하군.’
누가 역병을 다루는 정령에게 호감을 보이겠는가.
설령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건 남에게 해를 입히고자 하는 악질들만이 그럴 것이다.
당장 아덴만 해도 역병의 정령을 악용한 계약자의 사례를 하나 알고 있다.
죄악의 역병술사, 로도세라…….
그는 역병의 정령이 지닌 힘으로 먼 옛날 하나의 고대 왕국을 멸망시키고 수많은 사람들을 역병으로 고통스럽게 만든 대악인이었다.
지금도 그 일부 지방에서는 로도세라를 악마로 여기며, 이름만 읊어도 치를 떤다고 알고 있다.
아덴의 눈매가 깊어졌다.
‘이거, 정령을 찾아 줘도 문제겠는데…….’
역병의 정령의 계약자라는 사실이 퍼지면, 샤를이라는 이 아이의 인생도 결코 순탄치는 못할 것이다.
‘그것도 살아 있어 봐야 고민해 볼 문제지만 말이야.’
고생을 겪든 말든 살아서 겪어 보지 않은 이상 모를 일이다.
그러니 아이의 정령을 찾아야 했다.
-평소 역병의 정령이랑 알고 지냈던 정령이 알려 줬는데, 맛있는 정령석 부스러기를 나눠 주는 친구가 생겼다고 실컷 자랑했대요. 근데 그로부터 얼마 후 실종되었다네요.
정령석은 정령들이 좋아하는 희귀 광물로, 정령의 힘을 키워 주고 건강하게 해 주는 영약과도 같은 물질이었다.
에츠의 말을 들은 아덴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왠지 사탕으로 어린애를 꼬시는 유괴범의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 친구라는 게 누군지는 모르고 더 이상 아는 것도 없대요. 죄송합니다.
“아니, 충분히 도움이 됐다. 이만 끊지.”
아무튼, 커스의 말이 사실임을 판명되었다.
커스를 통해 알아낸 사실들 그대로 마르크스에게 전해 주었다.
정보의 출처는 영지의 엔트 부족에게서 주워들은 게 있다고 둘러댔다.
역병의 정령이나, 누군지 모를 친구의 존재 같은 세부적인 이야기는 일단 빼고 말했다.
마르크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용병 길드의 수장인 그로서도 몰랐던 정보였다.
“그러니까, 우리 샤를이 정령 친화력이 높고, 수호해 주던 정령이 사라져서 악령들이 꼬인다는 겁니까?”
“네, 정확합니다.”
“그래…… 과연, 그랬던 거군요.”
한 번에 믿기 힘들 만한 기상천외한 이야기건만, 의외로 마르크스는 쉽게 받아들였다.
“그게, 제 아내의 조부가 정령술사였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껏 그쪽으론 생각해 보지도 못했습니다만, 공자의 말씀을 들어 보니 납득이 갑니다.”
-호오, 정령 친화력이 격세유전되었다는 건가? 흥미롭군.
마르크스가 간절한 표정으로 아덴을 바라봤다.
“그렇다면, 제가 어찌해야 샤를이 나을 수 있는 겁니까?”
“일단은 사라진 정령의 행방부터 찾는 게 급선무입니다.”
문제는 정령석을 나눠 준 그 ‘친구’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 외엔 단서가 없다는 거였다.
정황상 그 ‘친구’라는 존재가 역병의 정령을 유괴했을 가능성이 높았고 말이다.
그러나 놈을 찾을 단서가 없으니 결국 오리무중이었다.
“아덴 님, 죄송하나 한 말씀 묻겠습니다.”
그때 가만히 있던 로우가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마르크스 님의 따님이 아픈 이유는 망령들이 모여들어 괴롭히기 때문이라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뭐 그렇지. 근데 왜?”
로우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작은 물약 하나로 금방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던 겁니까? 성녀의 치유로도 되지 않던 것을 한낱 해열제 한 모금이 말입니다.”
“……어?”
그제야 아덴을 비롯해 모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 * *
정령 상인 래비츠.
그는 현재 정령계에서도 조금 특별한 공간인, 정령 상회에 있었다.
그런데 래비츠에게 한 정령 상인이 찾아왔다.
징그럽게 긴 수염과 꼬리.
사람만 한 크기의 시궁창 쥐가 턱시도 차림을 한 채로 자기 수염을 쓰담었다.
쥐 형상의 정령 상인이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래비츠를 오만하게 내려다봤다.
-오랜만이군, 초급 상인.
-아이고오! 존경스러운 페스트 님 아니십니까! 어찌 누추한 제 구역까지 찾아오시고…….
래비츠가 토끼 손을 비비며 비굴하게 웃었다.
래비츠는 정령 상인 페스트의 비위 맞추기에 바빴다.
페스트는 래비츠보다 직위가 한 단계 높은 중급 상인.
래비츠에게 있어 하늘과도 같은 상사였다.
심지어 최근에는 실적도 높아 상급 상인으로 승격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흐음, 자네 요즘 들어 실적을 떨어졌더군? 마진이 적어도 너무 적어.
-죄, 죄송합니다! 제가 미숙한 탓에……!
래비츠가 토끼 발이 발이 되도록 비비며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자 페스트가 그를 비웃었다.
-하긴, 당연한 소리지. 너같이 멍청하고 덜떨어진 초급 상인에게 완벽한 일 처리를 기대해도 무리겠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래비츠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슬며시 이를 뿌득 갈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놔. 이 망할 놈의 쥐새끼가…….’
페스트는 욕심으로 가득해서는 어떻게 해야 돈을 더 뜯어먹을지만 고민하는 놈이었다.
아니, 그건 모든 정령 상인들이 그렇지만 페스트는 같은 정령 상인에게도 횡포를 부려 실적을 뺏어 먹곤 했다.
래비츠도 몇 번이나 권력 앞에 굴복당해서 무력하게 실적을 뺏겨 봤다.
‘지금도 보나 마나 뺏어 먹을 건더기가 적어지니까 질책하고 있는 거고.’
탐욕스럽기 그지없고 오만한 인격 파탄, 아니 쥐격 파탄자였다.
한편으로 래비츠는 자신과 독점 계약을 맺은 빌어먹을 인간, 아덴이 떠오르며 속에서 이중으로 열불이 터졌다.
‘이익! 이게 전부 그 인간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