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s Eldest Son Is A Regressed Hero RAW novel - Chapter (19)_4
그 말은 아덴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르크스 그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로 들렸다.
다른 일행의 얼굴을 보니 다들 달갑게 여기진 않았지만, 마르크스의 행동을 꾸짖지도 않았다.
별다른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의 행동을 뭐라 할 자격이 없으니 말이다.
마르크스가 그가 정말로 이기적인 남자라서 이런 선택을 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는 용병 중에선 드문 대인배의 속하는 인물이었다.
다만 한 아이의 아비로서 딸의 안위를 더 걱정하는 것일 뿐.
모두 그런 마음을 알고 있기에 왈가불가하지 못했다.
그가 허리에 찬 검집에서 자신의 애병을 꺼내 들었다.
어젯밤, 수많은 움브라 길드원 간부들을 베어 냈으며, 상급 소드 오러 경지 길드원 넷을 한 번에 도륙한 검.
우우우웅!
마르크스가 그 검에 마나를 불어 넣었고, 검이 짧은 검명을 내다가 소드 오러가 피어올랐다.
최상급 소드 오러 경지의 힘이 담긴 그 검이면 능히 역병의 정령을 봉인째로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그대로 검을 높이 들어 쾌검의 일격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아빠! 안 돼! 잠깐!”
집무실 문이 덜컥 열리며 아덴의 허리춤에나 겨우 오는 꼬마가 난입했다.
붉은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것이 인상적인 소녀, 마르크스의 딸이었다.
제 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마르크스가 오러를 도로 거두며 당황했다.
“샤, 샤를? 네가 어떻게 여기에……?”
샤를은 엘리스가 옆에서 수시로 신성력으로 망령을 내쫓아 준 덕에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상태였다.
원래대로라면 방 안에서 가만히 요양하고 있었을 것이다.
샤를이 자기 아빠에게 간절히 외쳤다.
“아빠, 그 애를 없애지 말아 줘!”
“샤를…….”
이 아이에겐 이번 역병의 정령 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숨겼다.
아이가 알기엔 다소 버거운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일까? 그 의문은 샤를을 따라 들어온 엘리스를 보고 눈치챘다.
“전부 다 내가 알려 줬어.”
엘리스는 자신의 선택에 조금은 불안해하면서도 심지가 굳은 눈으로 아덴을 올려다봤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야. 그 정령은 샤를 거야. 아무리 아직 어리다지만…… 그런 이유로 샤를을 빼 두고 결정을 내리는 건, 그건 너무한걸.”
“엘리스.”
“그건 길드장 아저씨의 정령이 아니라 이 애의 정령이야. 그렇지 않아, 아덴 오빠?”
그 말에 아덴도, 마르크스도, 다른 이들도 그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아직 어리니까 알기에 이르다’.
그런 말로 포장하면서 당사자의 의견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 당사자인 샤를이 자신의 마음을 표출했다.
샤를이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아빠, 나 그 정령이랑 계약할 거야.”
“뭐 뭣? 안 된다! 다시 생각해 보렴, 샤를! 이 정령은 아주 위험한……!”
“날 지켜 줬는걸!”
“……!”
“어렴풋하게 느꼈어, 아빠. 언제나 날 지켜 주고, 내 곁에 있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어떤 향기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언제나 자신이 건강하길, 행복하길 바라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겨울날 눈밭에서 뛰다가 넘어져서 다칠까 봐 조마조마하고, 결국 넘어져 무릎이 까져 엉엉 울었을 때 옆에서 토닥이며 위로해 주는 걸 느꼈다.
엄마가 어느 날 자신도 모를 이유로 곁에서 사라졌을 때도 언제나 곁에 있어 주던 그 아이는 외롭지 않기를 바라며 잠자는 침대맡을 옆을 지켜 주었다.
-나는 널 좋아해.
-넌 축복받기 위해 태어났어.
-네가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고, 즐거우면 좋겠어.
-나 같은 애가 네게 있어서 미안해.
-하지만 언젠가 너랑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이런 나라도, 네가 좋아해 줄까?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샤를은 알 수 있었다.
그게 정령의 목소리라는 것을 몰랐음에도 다 교감으로 듣고 있었다.
다정하고, 수줍으며, 조심스러운, 보이지 않는 친구.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였다.
“그 애는 날 지켜 줬어! 곁에 함께했어! 친구야! 가족이라고……!”
“…….”
“그런데도 그 애가 없어져야 해? 나 때문에? 그 애도 엄마처럼 날 떠나는 거야……?”
“샤, 샤를…….”
제 딸의 말에 마르크스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이를 보며 아덴이 전에 커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 아이가 8년이나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그 증거다. 만일 지켜 주는 정령이 없었다면 돌을 넘기기도 전에 망령들에게 먹혔겠지.
8년.
그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아이의 곁을 망령으로부터 지켜 준 수호령.
그 시간 동안 아이에겐 눈에도 보이지 않는 정령이 언제나 곁에 있어 주는 소중한 가족이 되었다.
지금 이렇게 샤를이 눈앞에 있을 수 있는 것도 전부 그 정령의 존재 덕이었다.
아비인 마르크스조차 몰랐던 또 한 명의 가족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마르크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딸에게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이성이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마르크스를 보며 어린 딸이 묻는 말에 그 머릿속의 외침마저 멎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애랑 계약이라는 걸 하면, 나도 불길한 애가 되는 거야? 그럼 아빠도 날 싫어할 거야?”
불길하지 않은 아이여야만 날 사랑할 거야?
그런 의미가 담긴 질문에 마르크스는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그, 그럴 리가…….”
결국, 그가 의자에 침몰하듯 자리에 앉으며 눈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않니. 오, 샤를. 내 소중한 아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얼핏 눈물이 맺힌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아덴은 실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옛말에 이르기를,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그날 샤를은 역병의 정령과 계약을 맺어 정령을 해방시켜 주었고, 질병이라는 의미의 프레이그 대신 ‘에밀리’라는 새 이름을 지어 줬다.
* * *
마르크스 메이달라 길드장이 아덴과 독대했다.
그의 두 눈이 촉촉하게 젖어갔다.
“아덴 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공자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딸아이를 영문도 모른 채 잃었을 겁니다. 이 은혜는 평생 갚겠습니다.”
정말 눈물이 많은 양반이었다.
아덴이 없었다면 딸이 아픈 원인을 알아낼 수도 없었을 테고, 움브라 길드에게서 정령을 되찾지도 못했을 일이었다.
“그건 거래였을 뿐이니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괜찮습니까? 샤를이 역병의 정령의 계약자인 것이 말입니다.”
이에 그의 얼굴빛이 씁쓸해졌다.
제 딸은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역병의 정령과 계약을 치렀다.
제 딸이 그토록 보기 드문 정령 계약자이자 특히 불길하다 일컬어지는 역병의 정령의 계약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많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미 그 고난은 시작된 건지도 몰랐다.
실베타가 육성하고자 하는 인간 키메라 군단, 블러드 나이츠.
그 블러드 나이츠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재료가 샤를의 정령이 지닌 힘이었다.
이대로라면 언제 또 샤를의 목숨이 위험해질지 몰랐다.
“확실히 앞으로 고단해지겠지요.”
이내 씁쓸해 보이던 그의 얼굴에 굳은 결단이 어렸다.
“하지만 이미 떠난 배입니다. 앞으로 잘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노력할 겁니다. 딸아이가 결코 상처받지 않도록, 설령 상처를 받더라도 꿋꿋할 수 있을 힘을 키울 생각입니다.”
그는 가족이 생기고 길드를 성장시킨 후로 더 이상 마스터의 경지에 얽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힘에 대한 갈망이 다시 생겨났다.
그의 길드를, 그리고 가족을 지킬 힘을 향한 열의 말이다.
‘나이에 맞지 않는 주책이긴 하다만…….’
그래도 다시 벽을 넘기 위한 수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길드 자체도, 전력도 이번 사건을 발단으로 더욱 성장시킬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정령을 불길한 존재가 아니라 저희에게 찾아온 축복으로 여길 생각입니다. 그 정령도 이젠 저의 가족이니 말입니다.”
더는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편견 어린 시선으로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마르크스에게 아덴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추천장을 써 줄 테니 레메스 가문에 따님을 유학 보내 보는 게 어떻습니까?”
“네?”
레메스 영지에 정착한 엔트 부족들.
그들에게 정령술을 배우면 분명 멋진 정령술사로서 힘을 꽃피울 것이다.
역병의 정령이 가진 힘은 위험한 종류였다.
그렇기에 아덴은 차라리 제어할 수 있는 힘을 빨리 기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레메스 기사단원이 항상 호위하고, 정령술을 다루는 엔트들 곁에 붙어 있다면 누군가에게 위험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아덴이 그런 이유들을 설명하자 마르크스의 표정이 얼떨떨해졌다.
지나치게 그들에게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가 그런 도움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대신, 나중에 길드와 샤를의 힘이 필요할 때마다 저를 도와주는 게 조건입니다. 그 힘을 악용하진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길드는 그렇다 쳐도, 우리 샤를 말입니까?”
“마르크스 메이달라, 당신의 딸은 특별합니다.”
지하 군주의 자아를 지닌 커스조차 놀라워할 정도의 잠재력을 지닌 소녀.
심지어 역병의 정령의 계약자라는 것도 큰 가산점이었다.
“앞으로 그리 머지않아, 세상이 샤를이 지닌 힘을 필요로 할 때가 올 겁니다. 그리고 그날, 사람들은 역병의 정령을 두려움과 경계의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겁니다.”
그냥 빈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머지않아 큰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재앙을 해결할 열쇠가 샤를과 역병의 정령이지.’
정령술을 갈고닦는다면.
그리고 몇 가지 조건이 더 충족된다면.
마르크스의 어린 딸아이가 지닌 힘으로 능히 그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마르크스는 아덴의 확신 어린 표정과 말투에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대답에 앞서 한 가지 물을 것이 있습니다.”
잠시 후, 그가 아덴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아덴 공자님은 이번 일의 배후가 사이어스의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겁니까?”
“…….”
“답하시지 않겠다면 제멋대로 생각하겠습니다.”
아덴은 침묵했고, 마르크스는 아덴이 배후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다만 이것만은 답해 주십시오. 아덴 공자님은, 그 배후의 인간에게 원한이 있습니까?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나는.”
아덴이 차가운 음성으로 답했다.
“나는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겁니다. 차가운 땅속에 묻혀서도 영혼이 영면에 들지도 못할 만큼 나락까지 추락시켜서 말입니다.”
정말로 아덴이 답할 줄 몰랐던 마르크스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번 일의 배후 세력이 어디던가? 바로 북방의 사이어스 대공가다.
그런데 대가를 치르게 만들겠다고 말하며 저리 위험한 발언을 입에 담다니.
“이를 정명과 법의 신, 테르니아의 이름 앞에 약속하죠, 메이달라 길드장. 이 정도면 충분히 답이 됐습니까?”
그 말에 마르크스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것은 일종의 안전 검사였다.
마르크스는 딸아이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고 아덴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점을 이용해 레메스 공작가가 그들을 이용해 먹고 버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려한 것이다.
그 때문에 알고 싶었다, 아덴 공자가 지닌 진심을.
그런데 이를 단박에 들키고, 법신의 신명을 건 맹세까지 하니 그가 다 무안해질 지경이었다.
“예, 충분합니다.”
그가 아덴에게 손 뻗어 악수를 청했다.
“저 또한 이 자리에 단언합니다. 아덴 공자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힘이 되어 주겠음을 정명과 법의 신의 이름 앞에 약속합니다.”
“좋군요.”
아덴이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렇게 아덴과 메이달라 길드장은 공동의 적을 두고 손잡았다.
* * *
사이어스 대공국, 최북방 전선의 혹한의 동토.
“……계속 일이 꼬이는군.”
어느 거대한 용 형상의 몬스터 사체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 갑옷 입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실베타 사이어스.
뇌우 기사라 불리는, 사이어스 대공국 최강의 소드 마스터.
광활한 설원 위엔 처참한 광경이 그려져 있었다.
눈 위의 식인 거인, 프로스트 오우거.
설원의 소리 없는 암습자, 아이스 스네이크.
동토의 폭군, 스노 드레이크 등등…….
하나같이 흉악하기 그지없는 수많은 몬스터들의 사체가 난도질되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새하얀 설원을 도화지 삼아 사방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사체의 산을 장본인인 실베타 사이어스가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의 충직한 수하, 실베타의 3대 번견 중 한 명인 백기사, 엔다윈은 긴장 탓에 침을 꿀꺽 삼켰다.
“송구스러운 소식만 전해 드려 죄송합니다, 주군.”
그의 동생, 창술 기사를 불구로 만들고자 했던 황궁 연회장 테러는 무소용이 되었다.
흑마술사인 부교주를 내세워 성화교를 제 입맛대로 조종하고자 했던 계획도 실패했고.
가장 중요했던 ‘보석’을 만들기 위해 세두스 영지에 만들었던 실험장은 난데없는 몬스터 웨이브로 흔적도 없이 파멸, 흑기사는 실종.
심지어 이번엔 블러드 나이츠 프로젝트의 실험장인 움브라 길드가 몰락해 버렸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실베타는 분을 못 이기고 요새에서 뛰쳐나와 한바탕 몬스터들을 학살한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사체의 산이 순전히 한낱 ‘화풀이’의 흔적일 뿐이었다.
최근 들어 대계를 위해 벌어지고 있던 작업들이 하나같이 꼬여 갔다.
“누군가가 개입한 건가?”
“적기사의 증언을 생각하면, 데이어 일파 쪽에서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적기사는 과거, 성화 교단에서 부교주의 보좌관과 접선하다가 염탐하던 아덴을 눈치채, 한바탕 싸웠던 자다.
그때 아덴이 썼던 대공가 검술을 보고 데이어 쪽의 수하인 것으로 넘겨짚었다.
“물증이 없어서 공표하지 못할 뿐이지, 창술 기사가 성화 교단과 손잡고 방해 공작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카르탄 시티에 성녀가 출입한 것이 그 유력한 증거입니다.”
소식지로는 움브라의 몰락이 메이달라 길드가 주도한 일이라 나왔지만, 메이달라 길드에 순례 중인 성녀 일행이 방문한 것을 알아낸 그들에겐 성화 교단이 진짜 배후였다.
“일리가 있군.”
“그리고 카오스 쪽에서 연락하길 최근 입은 피해가 극심하여 더 이상의 연구를 연기해야 한다고…….”
우득.
실베타 그가 짜증 난다는 듯 이를 나지막하게 갈았다.
“제길. 이제 와 꼬리를 내빼겠다는 건가? 처음부터 그 더러운 흑마술사 놈들을 믿는 게 아니었어. 멸망한 망국의 떨거지 중에서도 떨거지거늘.”
그의 얼굴이 분노로 악귀같이 일그러지며 흉포한 짐승과도 같은 오러가 들끓었다.
쿠우우우웅!
실베타의 강렬한 위압감, 마스터 피어가 피어올라 주변의 공기를 내리눌렀다.
“크윽!”
옆에 있던 엔다윈은 세미 마스터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주군의 마스터 피어 앞에 비틀거렸다.
살기만으로도 전장을 지배할 수 있는 존재가 소드 마스터.
그에게서 버틸 수 있는 자는 몇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커억!”
실베타가 갑자기 입에서 피를 토하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자연스럽게 마스터 피어도 깨졌다.
“실베타 님!”
화들짝 놀란 백기사가 실베타에게 달려가 부축했다.
실베타의 몸 주위로 마나가 불안정하게 들끓었다.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진정하십시오!”
“젠장, 또 발작이…….”
그가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검은 액체가 담긴 병을 꺼냈다.
그러자 백기사가 그 병마개를 따서 신속히 실베타의 입에 흘려 넣었다.
그러자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던 고통이 가라앉으며 마나가 안정되어 갔다.
거친 숨이 안정되어 가는 그의 몸은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그가 환멸감 어린 표정으로 제손에 쥐인 빈 병을 노려봤다.
“그딴 더러운 놈들이 만들어 내는 약 따위에 의존해야 하다니. 내 꼴이 참 우습군…….”
약 7년 전, 10년에 한 번꼴로 준동하는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낼 때.
그 당시 몬스터 웨이브를 이끌었던 우두머리이자, 유독 크고 강했던 돌연변이 프로스트 오우거를 상대했다.
프로스트 오우거 로드.
얼음의 마법을 본능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괴물.
놈의 공격 단 한 방에 수십의 상급 소드 오러 기사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목숨을 건 혈투 끝에 결국 오우거 로드를 해치우며 전투를 종식시켰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나 무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마나 기관에 큰 손상을 입었다.
사실상 반 이상 박살 난 상태라고 보면 됐다.
교황급 사제가 나선다고 해도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사이어스 대공가의 축복받은 육체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마나 폭주로 죽었을 것이다.
그가 생명을 연명하고 오러를 쓰기 위해서는 흑마술사들이 인간의 생명력으로 만들어 낸 비약을 일정 주기로 마셔야만 했다.
‘하지만 이건 임시방편일 뿐, 새로운 마나 기관이 필요해.’
마나 기관의 역할을 대신할 대체제. 그것이 바로 ‘보석’이었다.
‘보석만, 보석만 완성되면 회복은 물론이고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
그 때문에 카오스의 흑마술사들과 계속 협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나 기관의 손상을 최측근을 제외한 그 누구에도 말하지 않고 숨겼다.
밝혀졌다가는 후계 경쟁에서 바로 낙오되어 버릴 테니 말이다.
‘데이어는 차기 대공이 되기엔 너무 무르다. 그런 유약한 놈이 대공이 될 수 있게 할 순 없지.’
군주는 필요에 따라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킬 필요가 있으며, 전투에서 있어선 냉혹한 선택을 내려야 할 순간이 필수적이었다.
그런 것을 애송이나 다름없는 둘째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오로지 그가 대공이 되는 것만이 사이어스를 위한 일이었다.
‘차기 대공은…… 반드시 내가 되야만 한다!’
핏발선 그의 눈엔 오로지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한 강한 집착과 광기만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