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s Eldest Son Is A Regressed Hero RAW novel - Chapter (21)_3
“그렇다면 정말로……?”
다들 전설이니 사도니 쑥덕거리는데 아덴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때 아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 성녀 엘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발리 사제에게 물었다.
“발리 아저씨, 성화의 사도가 뭐예요?”
“……성화 교단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 속의 예언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 말하는 발리 사제의 표정에도 다른 이들처럼 경악과 경외가 뒤섞여 있었다.
성화 교단의 예언.
먼 옛날 성화의 주인이 승천하기 전, 다섯 신전과 성화를 자신의 신도들에게 남겼다.
두 줄의 예언과 함께.
운명이 도래하는 날, 손을 뻗어도 성화가 멸하지 않고, 기뻐 춤추며 맞이하는 자가 나타나리라.
그는 성화의 사도요 선택받은 자이자 나의 후인이니, 그의 뜻이 곧 나의 뜻이요 나의 의지이리라!
저 예언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불을 만져도 타지 않는 괴상한 놈이 나타날 거니까 그놈을 신의 사도로 삼고 그놈이 말하는 것을 신의 말로 여기며 따르라는 소리였다.
‘잠깐만, 그 이야기는 설마……?’
아덴은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쭉 대신전의 사제들을 보았다.
반짝반짝.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서 아덴은 엔트들의 족장이 되어 버리던 순간의 데자뷔를 느꼈다.
대신관이 환희에 가득 차 외쳤다.
“성화의 사도가 나타나셨다! 모두 기뻐하라!”
“와아아아아앗!”
사제들이 다시금 성화가 피어올랐을 때만큼 흥분한 환호성을 질렀다.
아덴은 졸지에 신의 사도가 되어 버렸다.
-칭호, ‘성화의 사도’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그딴 칭호 필요 없어.
* * *
한편 그 시각, 사이어스 북쪽의 혹한의 동토.
사이어스의 레인저들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설원에서 정탐을 다니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을 보며 투덜거렸다.
“정말이지, 눈, 얼음, 눈, 눈, 얼음……. 지긋지긋해 죽겠군.”
“뭘 새삼스레. 그건 당연한 거잖아.”
“당연해도 질리는 건 질리는 거라고, 인마.”
“흠, 이상하군. 오늘따라 몬스터가 별로 안 보이지 않아?”
“확실히 그렇긴 하군…….”
평소엔 정찰 도중 몬스터 몇 마리 정도는 최소한으로 발견했다.
그런 소수의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수가 많거나 강하다 싶으면 요새로 돌아가 보고하는 것이 그들의 일과였고 말이다.
뭐, 대부분 후자일 경우 3~4할의 확률로 죽음이지만.
그만큼 북부의 몬스터는 끈질기고 무시무시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된 일인지 지나가는 몬스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뭐, 어때? 몬스터가 없으면 오히려 다행이지.”
“뭐, 그건 그렇지만…….”
“하여간, 젝슨 넌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니까.”
“자 자, 이제 돌아가서 몸 좀 녹이자고. 딱히 보이는 몬스터도 없고. 이러다 얼음 동상 되겠다.”
“네게 동상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동상이겠군, 버먼.”
“하하, 이런 아이스 고블린에게 회 쳐질 새끼 같으니.”
“넌 오크도 못생겨서 기겁하며 도망칠 면상이면서.”
레인저들은 시답잖은 너스레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리 요새로 돌아가고자 했다.
눈보라도 조금씩 거세져 갔기에 더 이상의 정찰은 무리였다.
“음?”
그런데 막 동료들을 따라 뒤돌아서던 레인저 젝슨이 의아해하며 멈칫했다.
“다들 잠깐만 멈춰 봐.”
“하아, 젝슨. 왜 또 그러는 건데?”
“뭔데 그래? 빨리 돌아가서 쉬자고, 얀마.”
이에 빨리 서리 요새로 돌아가 밥 먹고, 술 한 통을 퍼마시고 싶던 동료들이 투덜거렸으나 젝슨은 요지부동이었다.
“무슨 소리 같은 거 안 들려?”
“소리는 무슨 소리. 바람 소리만 왕창…….”
그러나 인상을 찡그리던 동료들도 이내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아…….
들렸다.
세차게 몰아치는 서리 품은 칼바람 속에, 한 뼘 끊어질 것 같은 희미한, 그러나 점점 선명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명?’
그 소리는 여인의 비명 소리처럼 들렸다.
누군가가 눈보라 속에 조난이라도 된 건가?
하지만 그 들려오는 소리가 묘한 위화감을 품고 있어 쉽사리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진짜 사람이 내는 소리라 보기엔 어폐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한낱 바람 소리로 치부하기엔 유독 선명했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 소리에 다리가 보이지 않는 사슬에 칭칭 감긴 듯, 레인저들은 가만히 서서 시야가 흐릿한 눈보라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아아…….
눈보라 속에 섞인 바람 소리, 비명이 점점 선명해지고 커져 갔다.
“이, 이봐…….”
젝슨이 목소리를 떨며 입을 열었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처럼 어느샌가 손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기에 언제부터…… 저런 산이 있었지?”
“…….”
그 물음에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도 같은 의문을 생각 중이었으니 말이다.
눈보라 너머에는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아니 아까까지만 해도 있는지도 몰랐던 설산이 있었다.
모두 시야를 가리는 눈보라 속에서 시선을 그 설산에 집중하였고, 이내 그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왜 저 설산을 오늘 처음 본 것인지 말이다.
“저게, 뭐야…….”
그것은 설산 같은 게 아니었다.
-아아아아아아.
가슴을 옥죄이는 것 같은 섬뜩한 비명 소리를 따라.
콰드드드드득.
꽁꽁 얼어붙은 빙산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 뾰족한 빙산들이 한데 어우러져 첨탑을 이루고, 성벽이 되어 갔다.
얼음의 요새가 실시간으로 빠르게 자라나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
다시 한번 소름 끼치는, 귀를 찢어 버리고 싶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카카카카카칵!
-켈켈켈켈켈켈켈켈!
사방에서 수많은 몬스터들의 포효와 괴성이 들려왔다.
지금 이 순간 솟아나는 얼음들처럼 설원에서 아이스 골렘들이, 수많은 사령들이, 수많은 얼어붙은 언데드들이 솟아나고, 태어나고 있었다.
수십에서 수백으로, 수백에서 수천으로.
그 점점 늘어나는 소리들을 들으며 레인저들은 지금 한 가지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압도적인 공포.
솟아나는 얼음의 성채.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비명.
계속해서 태어나는 얼음의 몬스터 군세.
그 들으며 어릴적부터 자주 들었던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금의 혹한의 동토를 만들어 냈고, 겨울 그 자체와도 같았다던, 그리고 사이어스의 초대 대공이 정벌하였다던 괴물을.
그 끔찍한 괴물의 이름도.
“겨울 여왕…….”
그 신화 속의 괴물이 화답이라도 하듯 찢어지는 크나큰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
주르르륵.
그들의 귀에서, 코에서, 눈에서 새빨간 피가 흐르기 시작했으나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달달 몸이 떨리면서도 공포가 몸을 마비시켜 움직이질 않았다.
“도, 도망쳐야 해…….”
젝슨이 간신히 남아 있는 이성으로 사력을 다해 떨리는 다리를 옮기고자 했다.
그런데 그는 뭔가가 자신의 다리를 구속하는 것을 느꼈다.
‘뭐지?’
떨리는 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고…….
달그락.
얼어붙은 해골이 말라붙은 가죽이 붙어 있는 뼈 팔로, 제 다리를 붙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해골은 텅 빈 눈으로 젝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으, 으아아아악!”
“어, 언데드다!”
놀라선 비명을 지르는 그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로…….
까드득. 까득.
달그락, 달칵, 각.
수십의 얼어붙은 시체 병사들이 눈을 뚫고, 솟아 나와 하나둘 레인저들에게로 다가갔다.
* * *
고대의 재앙급 사령, 밴시 퀸 겨울 여왕.
-꺄아아아아아아!
그 겨울 여왕의 한 맺힌 통곡 소리는 혹한의 동토를, 서리 요새를 벗어나 수십 킬로미터 너머까지 계속 이어졌고 바로 남쪽의 인간들의 도시, 페어라스로까지 퍼져 나갔다.
“으, 으아악!”
“귀가, 귀가 찢어질 것 같아!”
“커억, 커허억…….”
겨울 여왕의 영혼까지 뒤흔드는 비명 소리를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공포와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비명이 품고 있는 ‘피어’에 압도당한 것이다.
일반인들 중에선 혼절하는 이들도 상당했고, 노약자들 중에는 심장마비로 죽음에까지 이른 이들이 곳곳에서 속출했다.
-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이내 한창 아덴이 성화주의 성유물을 얻은 것으로 흥분으로 들끓고 있던 성화 교단 북쪽 대신전에까지도 들려왔다.
“으윽!”
“이, 이 비명 소리는 대체……?”
그나마 대신전 안에 있던 이들은 가벼운 현기증과 두통을 느끼는 정도로 끝났다.
대신전에 있던 이들 대부분이 신성력을 품고 있는 사제들이었고, 신전 전체에 퍼져 있는 성화의 기운이 통곡 속의 사기를 완화시켜 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한창 전설 속에 사도가 나타난 것 탓에 뜨겁게 가열되어 있던 열기를 차갑게 식히기는 충분했다.
-정신계 저주의 간섭을 감지합니다.
-시스템 권한에 따라 무력화합니다.
아덴의 경우엔 아예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아덴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갔다.
“이 소린…… 설마……?”
아덴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이 비명 소리는 지금 들릴 리가 없고, 들려서도 안 될 소리였다.
‘그런데 대체 왜?’
사이어스 대공국 전체가 모두 비명 소리를 들었다.
현재 사이어스 전체에 혼란이 퍼지고 있었다. 이대로 둔다면 혼란은 계속 번지기만 할 것.
그때였다.
사이어스 내의 각각의 도시마다 상공에 빛무리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빛이 꺼지자, 창공에 한 반투명한 인영이 나타났다.
반쪽은 울고, 반쪽은 웃고 있는 특이한 가면을 쓴 정장 차림의 사람.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언제나 본 상회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정령 상회의 주인, 모자 상인이라고 합니다.
정령 상회의 회주.
모자 상인이었다.
-본 상회에서 특별 통보를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각 도시마다 상공에서 퍼져 나가 메아리쳤다.
던전을 관리하는 것은 정령 상인의 영역.
그리고 정령 상회의 회주가 직접 나설 정도면 예삿일이 아님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모자 상인이 사이어스 전역의 인간들에게, 세상에게 담담히 전했다.
-금일, 전설급 던전, ‘겨울 여왕의 영지’가 생성되었음을 공표합니다.
겨울 여왕의 부활.
그리고 전설급 던전의 등장.
모두가 그 소식을 듣고 넋이 나가 있을 때, 아덴마저도 굳은 얼굴로 침묵했다.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가, 바뀌었어.’
첫 번째 전설급 던전, 겨울 여왕의 영지.
그 존재가 원래보다 열흘이나 일찍 세상에 나타났다.
* * *
겨울 여왕의 끔찍한 울음소리는 대략 1분간 이어지다가 멈췄다.
하지만 1분이 준 파급력은 컸다.
‘겨울 여왕이 나타났다’!
대공국을 세운 시조, 초대 대공이 수많은 희생 끝에 물리쳤다는 존재.
이야기 속에나 나오던 존재가 자신이 한낱 이야기가 아님을 대공국 전체에 각인시켰으니 말이다.
“당장 이곳을 떠야 해!”
사이어스 무투 대회를 보기 위해 사이어스로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도로 떠나갔다.
외지인은 물론, 사이어스 대공국의 백성들도 사이어스 남부로 이동해 갔다.
그들 모두 어릴 적부터 무시무시한 겨울 여왕에 관한 이야기를 동화처럼 듣고 자라 왔다.
그런데 그 동화가 현실로 다가오자 동화는 악몽이 되어 버렸다.
대공국 전체가 불안에 떨었다.
매우 당연하게도, 이런 판국에 무투 대회는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용살왕?
“……시끄러.”
아덴은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생각에 잠겼다.
본래 겨울 여왕이 깨어나는 시기는 사이어스 무투 대회가 열린 지 이레째 되는 날, 즉 열흘 뒤여야 했다.
‘지금껏 자잘한 미래가 많이 바뀌긴 했지.’
케르텔 교주가 몇 년 일찍 저주에 걸렸던 것이라든지.
엘리스가 키우는 똥개가 영물이 되었다든지…….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아덴의 행동을 근거로 나비효과가 일어나 생긴 일들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결국 내가 한 어떤 행동이 결과적으로 겨울 여왕의 부활을 촉진시켰다는 건데.’
그게 뭔지 전혀 감이 안 잡혔다.
아니, 사실 그런 건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단 하나.
‘내 영약이 날아가 버렸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