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s Eldest Son Is A Regressed Hero RAW novel - Chapter (28)_3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생각을 마친 아덴이 짧게 읊조렸다.
“움직여야 해.”
이제 학살탑으로 향할 시간이다.
* * *
죽음의 황무지 중부.
그곳에는 ‘황무지의 지옥 구멍’이라고도 불리는 데스웜들이 살아간다.
몸길이 1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 괴물 벌레들.
-키에에에에엑……!
-크르르르으!
그 데스웜들이 체액을 흘리며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황무지의 지옥 구멍이라는 이명이 무색하게 차례로 벌레들의 거체가 쓰러져 갔다.
“아하하하하핫!”
“아아, 이 꿈틀이들을 상대하는 날을 고대하여 왔습니다!”
울려 퍼지는 데스웜들의 단말마의 비명과 더불어 수많은 이들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달뜬 환성이 퍼져 나갔다.
“학살과 죽음의 신이시여……!”
“당신의 이름 앞에, 당신의 종이 힘을 쓰는 것을 허하여 주옵소서!”
“학살이다아아아!”
수백이 넘는 학살신교의 사제들은 피처럼 붉은 신성력이 넘실거리는 몸으로 전투를 이어 갔다.
“신성 강화, 참(斬)!”
칼을 든 학살신교 사제가 신성 주문을 외우며 신성력으로 데스웜 한 마리의 머리를 단칼에 잘랐다.
학살신교는 교단 전체가 전투 사제로 이루어진 종교 집단.
그렇기에 그들의 신성 주문은 전투에 적합하게 짧고 간단명료했다.
고작 2미터도 안 되는 키의 인간의 몸으로, 지상으로 튀어나오는 데스웜의 거체를 무참히 참살하고, 힘줄을 끊고, 살덩이를 터트렸다.
그것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아하하핫! 어라?”
꿀꺽!
한 데스웜 한 마리가 도검을 들고 있는 학살신교 사제인 소녀 한 명을 위에서 덮쳐 그대로 집어삼켰다.
-키에에에에에!
사제를 잡아먹는 데 성공한 데스웜이 승리의 포효를 내지르던 순간이었다.
촤아아아아악!
데스웜의 몸이 배 안쪽부터 쭉 갈라지더니, 그대로 몸이 두 동강 나 버렸다.
반으로 갈라진 데스웜의 몸 안에서 아까 잡아먹힌 사제가 온몸에 진녹색 위액을 뒤집어쓰곤 튀어나왔다.
“하하핫! 이거 끈적하군요!”
“방심하니까 그렇게 잡아먹히는 것 아닙니까, 샤이렌 자매님!”
“드디어 이 꿈틀이들을 정죄한다 생각하니 너무 들떠서 말이지요! 미노아 형제님!”
학살신교의 사제들이 지닌 신성력은 그 성질이 거칠고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
별다른 공격 기관도 없이 몸집만 큰 데스웜들은 학살신교 사제들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다만 그 숫자가 많아서 성가실 뿐이었다.
데스웜들의 자생지는 회색빛 땅의 트롤들과 학살신교 사이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암묵적인 휴전선이었다.
지금까지는 그 휴전선을 깨트릴 필요가 없었기에 방치해 두었을 뿐.
데스웜 따위가 학살신교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으하하하! 꿈틀이들아! 어딜 가니? 이리 오렴! 내가 상냥하게 머리만 깨끗이 베어 줄게!”
“학살신께 피의 제물을!”
“이건 피가 아니라 체액이라고, 멍청아! 하하!”
“피든 체액이든 뭐 어떻습니까? 꺄하하하!”
학살신교의 사제들은 지금껏 가끔가다 황무지를 벗어나려는 중소 규모 부족 정도만 짓밟아 버리고 수장은 옥에 가둬 고문하는 소소한(?) 학살만 하다가 오랜만에 이런 대규모 토벌에 나서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 했다.
그러나 이런 대학살의 현장에서 홀로 학살에 동참하지 않고 고고하게 중심에 서 있는 자가 한 명 있었다.
검은색 법복을 입은 다른 학살신교 사제들과 달리, 홀로 새하얀 법복을 입고 얼굴을 베일로 가린 여인.
그 여인의 머리카락은 흑단처럼 검고 윤이 났다.
그녀에게선 범접할 수 없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학살신교의 절대자이자 학살신의 대리자, 찬탈 성녀 스피카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이젠 익숙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지, 일을 귀찮게 처리하는구나. 계약자여.
스피카는 그 목소리를 못 들은 것처럼 침묵을 지키며 무반응이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으레 있는 일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나는 너에게 힘을 주었다. 그 힘이면 너의 손으로도 얼마든지 직접 저들을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 그럴 수 있을 힘도, 능력도 있지. 그것이 네가 바라는 소원이고 말이지.
“…….”
목소리의 주인은 마치 수백 개의 갈라진 여인들의 혀가 달싹이는 것과 같은 기분 나쁜 음성으로 속삭였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너는 너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저들이 자멸하게 만들고자 한다. 마치 아픈 들개를 편히 잠들게 안락사하는 것처럼, 저들이 원하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게 하고자 하는구나, 하. 도저히 이해되질 않아.
스피카는 제 스승을 죽임으로써 학살신교의 유일 강자가 되었으며, 찬탈 성녀라는 이명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런 그녀를 이길 수 있는 학살신교의 사제들은 없었고, 충분히 그녀 단신의 힘으로도 학살신교를 멸망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마검은 계약자인 성녀의 소원을 알고 있었다.
학살신교의 몰락.
그것이 성녀 스피카가 바라는 염원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제 손으로 사제들을 없애는 대신 몬스터들과의 전쟁을 일으켜 공멸을 시키고자 한다.
직접 피를 묻혀 죽이는 것을 선호하는 ‘살육’의 입장에선 탐탁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말리지 않은 것은 라볼라스가 제 영성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놈이 자신의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업적은 살육과 전쟁.
단순히 사제들을 몰살시키는 것보다는 대규모 전쟁을 일으키는 쪽이 몇 배로 더 많은 죽음과 살육을 불러들이기에 효율적이었다.
그저 궁금하기에 묻는 거였다.
그러나 역시나 스피카는 아무런 말도 답도 하지 않았다.
-혹시 망설이고 있는 것이냐?
“…….”
라볼라스의 영성은 성녀에게 비웃음이 어린 목소리로 재밌다는 듯 물어 왔다.
-꼴에 같은 학살신 그 미치광이 여신의 자녀라고 제 동족들에게 정을 느끼는 것인가? 애초에 탑에 들어온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너의 염원을 잊을 만큼 말이야.
“…….”
-혹시, 이제 와서 겁먹고 포기하는 건 아닌가? 이미 제 스승까지 죽인 주제에…….
“허튼소리.”
그녀가 긴 침묵을 깨고 영성의 음성을 단칼에 잘라 냈다.
바로 그때였다.
쿠르르르르르릉.
이제까지 데스웜들이 튀어나올 때와는 차원이 다른 지진이 일어나며 땅이 마구 뒤흔들렸다.
“응? 이게 뭐죠?”
“아핫! 엄청 큰 진동입니다!”
“뭔가 어어엄청! 커다란 꿈틀이가 오려나 봅니다!”
그 지진 탓에 한창 데스웜들을 학살하는 데 심취해 있던 사제들이 멈칫했다.
성녀가 두 주먹을 천천히 움켜쥐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땅울림이 점점 빠르게 가까워져 갔다.
그녀가 짧게 중얼거렸다.
“신교는 끝을 맞이할 거다.”
그 순간, 지진의 근원이 땅을 뚫고 성녀 앞에 나타났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
다른 데스웜의 세 배가량 굵은 몸통과 유독 더 짙붉은 피부.
지상으로 드러난 몸의 높이만 족히 30미터.
압도적으로 거대한 거체 끝에 있는 아가리 안쪽에서 번뜩이는 수백 개의 이빨들이 보였고, 온몸에 가시가 튀어나와 있으며, 옆엔 촉수까지 달려 있는 등 외관이 범상치 않았다.
여왕 데스웜.
모든 데스웜들의 어미이자, 죽음의 황무지 중부의 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성녀 스피카는 아무런 동요 하나 없이 라볼라스의 영성에게 말했다.
“학살탑의 모든 흔적은 황무지의 모래바람 앞에 묻힐 터, 나는 신교의 마지막 성녀가 될 것이며, 최후의 성녀가 될 것이다. 그것은 변치 않는다.”
화르르르륵.
그녀의 몸 주위로 강렬한 핏빛의 신성력이 피어올랐다.
그녀의 두 주먹에 신성한 피의 기운이 모여들었다.
그 강렬한 살의의 신성력 탓에, 여왕 데스웜은 단번에 자기 자식들을 학살하고 있는 인간들의 대장이 누구인지를 알아봤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악……!
분노한 여왕 데스웜이 그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성녀를 집어삼키고자 위에서 고개를 훅 머리를 내려찍는 순간.
“그러니 더 이상 나의 일에 간섭하지 마라, 고대의 망령이여.”
낙하하는 여왕 데스웜의 머리통에 찬탈 성녀의 핏빛 정권이 격돌했다.
콰아아앙-!
그리고 그 충격으로 폭풍이 생겨났다.
흙먼지가 사방 수백 미터의 모든 전장을 휘감았고.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에……!
벌레들의 여왕이 최후의 비명을 지르는 소리만이 황무지에 아득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것은, 수백 년간 이어지던 냉전이 깨지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 * *
죽음의 황무지 동부, 회색빛 땅.
그곳은 수많은 트롤들이 하이트롤의 지배 아래 모여 사는 그들만의 땅이다.
본래는 그곳엔 하이트롤들을 주축으로 수십 개의 부족을 이뤄져 서로 먹이경쟁을 하며 살아간다.
먹이가 부족하면 제 동족조차 주저 없이 먹어 치우는 것이 트롤.
트롤들에게 있어선 동족도 그저 먹이를 탐하는 경쟁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트롤 무리가 하나로 뭉치는 극히 드문 사태가 일어났다.
회색빛 땅의 마흔여덟 개의 트롤 대부족들.
그들의 수장이자 지배자인 하이트롤 주술사들이 어느 넓은 바위 위에 모여 둘러앉았다.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그들이 모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서쪽의 악마들…… 결국…… 죽였다, 벌레 여왕…….
-경계가, 무너졌다…… 크르르…….
-서쪽의 악마들…… 오고 있다…….
서쪽의 악마.
그것은 트롤들이 학살신교의 사제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트롤들이 과거에 모시던 옛 신을 잡아 못을 박은 신살자의 후예.
제 종족을 몰락시킨 원흉이자 원수.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수백 년간 자신들을 이 척박한 땅에 묶어 두며, 벗어나지 못하게 감시하는 자칭 간수장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학살신교는 증오의 대상이자 불구대천의 원수인 동시에, 더없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들에게 학살탑은 제 종족을 이 황무지에 고삐를 묶은 거대한 말뚝이었다.
그런 학살신교의 사제들이, 서쪽의 악마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황무지를 양분하는 두 세력 간의 방벽이었던 벌레 여왕, 데스웜들의 어미까지 죽임으로써 말이다.
-크르르…… 이건, 기회다…….
-이곳은 우리들의 땅…….
-서쪽의 악마들…… 스스로, 기어 나왔다…….
그러나 학살신교의 사제들이 스스로 안전한 요새인 학살탑을 벗어나 제 발로 이곳을 오고 있는 것은 절호의 기회였다.
서쪽의 악마들을 모조리 말살하고 황무지를 벗어날 기회.
이 척박한 땅을 벗어나, 풍요로운 땅에 사는 온갖 짐승과 인간들의 살을 탐할 기회!
-쿠르틸라, 세이르 아샤크.
죽인다, 서쪽의 악마들을.
한 하이트롤 주술사가 그 말을 꺼내자.
-쿠르틸라, 세이르 아샤크.
-쿠르틸라, 세이르 아샤크…….
-쿠르틸라, 세이르 아샤크!
다른 하이트롤 수장들도 이구동성으로 똑같이 외쳤다.
그 광기 어린 살기는 삽시간에 퍼졌다.
수십 명의 하이트롤들이 일제히 소리 질렀다.
-쿠르틸라!
-세이르……!
-아샤크으으……!
회색빛 땅의 마흔여덟 개의 트롤 대부족들.
그들이 학살신교와의 전쟁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하나로 똘똘 뭉쳐 단결했다.
학살신교와 트롤 군단의 충돌.
그 결전의 날까지 얼마 남은 시점의 일이었다.
* * *
그리고 그 시각, 사제들이 떠난 학살탑 인근에선…….
“학살탑, 여긴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히익! 저, 저것들 설마 다 해골입니까? 해, 해골이 산처럼!”
“꺄핫! 오랜만에 집에 오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아덴이 언노운과 루니아 사제를 데리고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