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s Eldest Son Is A Regressed Hero RAW novel - Chapter (31)_1
┃5장, 영원히 잠자는 왕의 숲
명검 72보검.
그저 튼튼하고 좋은 검 정도로만 여겨졌던 72보검은 훗날, 흑마술사들의 준동으로 검의 숨겨진 힘이 밝혀지자 많은 피를 불러일으켰다.
검의 영성에 홀린 계약자들이 날뛰었고, 검의 능력이 탐난 이들이 서로 죽이며 쟁탈을 벌였으며, 검을 악용한 이들이 세상에 혼란을 주었다.
그렇게 수많은 피가 흐르고 난 뒤, 72보검은 72마검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덴이 72보검을 마검이라 칭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덴도 지금 같은 경우는 처음 보았다.
‘마검이 자신의 계약자를 직접 죽였다.’
아무리 아덴이라도 이런 그림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스피카!”
전대 성녀 메리다의 입에서 처음으로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녀가 스피카에게 재빠른 몸놀림으로 뛰어들어 가까이 다가갔다.
파지지지지직!
그러자 스피카의 심장을 뚫고 나온 라볼라스를 중심으로 하여 반구의 형태로 스파크가 감싸 메리다의 접근을 막았다.
그 결계 탓에 황급히 메리다가 다시 뒤로 물러났다.
“……!”
치이이이익.
스파크에 스쳐 버린 한쪽 팔의 일부가 화상을 입었다.
아무리 방심했다지만, 신성력의 방어력조차 뚫고 성녀의 몸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다가오게 둘 것 같은가, 빌어먹을 미치광이 신의 후예여.]머리의 두개골을 열어 뇌 속을 직접 핥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음성이 전장의 모두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꽃피운 생명이 아스러지는 마지막 숨결과 약자의 피 흘림을 탐한 도살자들의 왕의 잔재.]마검 라볼라스의 영성이 전장의 모든 이를 농락하듯이 말하였다.
[도살당하는 이의 단말마가 나를 위한 황홀한 노랫소리가 되며, 대지를 적시는 죽음은 달콤한 과실이 되어 나의 힘이 된다. 아아, 기껏 미치광이 신 년의 아이를 꼬드겨 좀 더 많은 피와 살육을 즐길 줄 알았거늘……. ]살육의 영성은 깊은 한탄과 분노를 품고 있었다.
스피카의 몸을 꿰뚫고 나온 라볼라스의 검신은 마치 그녀의 시신을 짓밟으며 분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크윽, ‘살육’ 저 녀석은 정말 한결같군……. 영성마저도 본체처럼 지랄맞아.
정의의 군주의 잔재, 안드로말리우스가 질렸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덴은 그 듣기 괴로워지는 라볼라스의 음성을 들으며 눈살을 구겼다.
‘마검의 영성이 매우 짙어.’
계약자가 아닌 존재들에게도 들리게 의지를 전달하고, 제 계약자마저 죽이고, 저런 결계까지 펼치는 것을 보니 강한 자율성까지 얻은 모양이었다.
‘상황이 더 이상 답이 없다 여겨지자 계약자였던 스피카를 버렸다.’
다만 이것은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72마검에게 계약자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아무리 마검의 자율성이 높아졌다곤 하나, 놈은 결국 검일 뿐이다.
검을 들고 휘두를 존재가, 검이 계약을 빌미로 지배하여야 할 존재가 없는 이상 놈은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오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분노를 내던 라볼라스의 영성의 목소리에 유열이 어렸다.
[그래도 이 우둔한 년이 아주 쓸모가 없지만 않았군. 덕분에 더 좋은, 완벽한 계약자를 찾아냈으니!]더 완벽한 계약자.
기존의 계약자인 찬탈 성녀보다 더 탐나는 먹잇감을 발견했기 때문이겠지.
그때, 피로 얼룩진 라볼라스의 검신 위로 그늘이 졌다.
-나를 말하는 것인가, 옛 군주들의 흔적이여.
거대한 검은색 트롤.
트롤들의 왕이자 영도자, 불사 군주.
어느새 놈이 라볼라스에 다가가 있었다.
라볼라스가 내뿜는 스파크는 불사 군주를 공격하지 않고 접근을 허용시키고 있었다.
“하.”
아덴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 거였나? 이런 망할 고철덩이 주제에…….’
그제야 아덴은 마검 라볼라스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라볼라스는 회색빛 불사의 군단의 주인인 불사 군주를 더 재밌는 ‘장난감’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고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군.’
라볼라스가 만들어 낸 결계의 범위 안에 불사 군주가 들어가 있었다.
상급 소드 마스터에 비견되는 강자인 맹안의 성녀마저 그 범위 안에 뚫고 들어갈 수가 없으며, 그렇다고 불사 군주를 해치우기에는 놈이 너무 강했다.
신화적인 최강의 성녀, 초대 성녀가 붙잡고도 죽이지 못해서 유폐시킨 괴물이 아닌가.
거기다 놈을 위협하려는 낌새를 보이면, 불사 군주에게 충성과 경외를 바치고 있는 하이트롤들과 회색빛 불사의 군단이 다시 폭주할 것이다.
철저한 외통수였다.
[트롤들의 왕이자 신으로 군림하는 트롤이여. 필멸자의 운명에서 벗어나 불사와 불멸을 얻은 불사자여! 자, 나를 선택하거라, 그리하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어 주겠다.]살육의 마검이 달콤하게 유혹했다.
[나에게 스치기만 해도 모든 살아 숨 쉬는 것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며, 그들의 숨결을 앗아 간다. 죽음은 모든 산 것들이 반드시 거치는 절대적인 운명. 그 누구도 나의 권능 앞에서는 강철 같은 육신을 지녔을지라도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그것이 살육의 마검 라볼라스가 지닌 ‘추격하는 죽음’의 권능.
[나를 이용하여라. 나를 통하여 너의 앞길을 막는 모든 것을 도살하거라.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증오스러운 모든 것을 참하고 살육하기만 하면 된다.]고대의 타락 군주, 살육의 군주는 죽었으나 그 의지를 이은 잔재는 여전히 살육에 굶주려 있었다.
[너의 종족을 황무지에 못 박은 인간들에게 복수하게 해 주겠다. 너의 군세가 대륙 전체를 유린하게 해 줄 수도 있다. 너의 종족이 영원토록 대륙의 정점에서 군림하도록 만들어 주마!]그 누구도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마검이 속삭였다.
[나와 함께하면 너를 막을 수 있는 산 것은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다! 나를 붙잡아라! 그리고 너의 생명력을 나눠 주어 계약을 맺어라, 그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겠다!]마검 라볼라스의 영성은 매우 자신만만하게 말하였다.
아덴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죽여도 죽지 않는 회색빛 불사의 군단과 그들을 이끄는 불사의 왕이 모든 생명을 거두는 죽음의 검을 휘두른다라…….
세상 그 누구도 결코 대적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으리니, 가히 악몽과도 같은 일이었다.
다만, 다만 한 가지 마검 라볼라스가 놓친 점이 있었다.
그가 혀를 찼다.
“불사 군주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척.
결국, 놈이 라볼라스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불사 군주가 말했다.
-모든 생명을 죽일 수 있다고 했는가?
그러곤, 놈이 이내 기행을 벌였다.
푸우우우욱!
불사 군주가 제 가슴팍에 라볼라스의 검신을 찔러 넣은 것이다.
-와, 왕이시여어!
-불사의 군주님……!
하이트롤들이 그 모습에 경악했다.
놀란 것은 라볼라스의 영성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을……!]-네놈 탓에.
짙푸른 피를 흘리며 불사 군주가 말했다.
-네놈 탓에, 많은 나의 일족이 피를 흘렸다. 목숨을 잃었다.
트롤들의 군주가 싸늘하게 말하였다.
-흘릴 필요가 없었던 피이며, 스러질 필요가 없었던 목숨들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수천의 나의 일족이 죽었거늘, 이제 와 우리 일족이 세상에 군림하게 만들어 준다 했는가? 하, 참으로 우습구나.
아덴이 그 광경을 담담한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불사 군주, 놈은 제 동족들을 끔찍이도 아끼지.’
그렇기에 미래에서 정신이 회까닥하여 제 동족들까지 죽이자 인간들에게 제발 자기를 죽여 달라고 온갖 사정을 다 할 정도였다.
그런데 한낱 마검의 간계에 의해서 수많은 트롤들이 이 자리에서 죽었다.
지금도 이 피로 물든 황무지 여기저기에 트롤들의 시신과 피가 낭자해 있다.
그런 꼴을 보고서도 트롤들의 왕이 참 잘도 마검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지금 불사 군주는 무척 ‘분노’한 상태였다.
-모든 살아 숨 쉬는 것들의 생명을 앗아 갈 수 있다고 했는가?
화아아아아앗.
불사 군주의 짙은 생명력이 마검에게 흘러 들어갔다.
흉신악살처럼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으르렁거리듯 놈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디 불사의 군주라 불리는 나에게도 한번 그 죽음이란 것을 느껴 보게 하라.
[그, 그만! 더 이상은……!]불사 군주는 계속해서 마검에게 제 재생력을, 그 근간이 되는 생명력을 계속 불어 넣었다.
그의 생명력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마치 방대한 대해의 물처럼 끝도 없이 라볼라스에게 주입되어 갔다.
용의 비늘조차 가를 수 있는,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고 하는 최강의 검 72마검.
파즉!
그 불괴의 검의 표면에 작은 실금이 생겨났다.
마검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악! 그만! 멈춰, 멈추라고……!]그럼에도 해일처럼 밀려드는 생명력은 도저히 멈출 생각을 안 했다.
[제발, 그마아아안……!]파직, 파직, 파즈즉!
거미줄이 뻗어 나가듯 한 번 생겨난 금은 계속 퍼져 나가 라볼라스를 잡아먹었다.
[안 돼애애애애애……!]결국엔.
파콰아아아아아앙!
고대의 타락 군주 중 하나, 살육의 군주의 잔재 마검 라볼라스.
결코 깨지지 않는 검이 와장창, 폭발과 함께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부서진 라볼라스의 검 파편이 비산하다 황무지에 후드득 떨어졌다.
아덴도, 루니아 사제도, 전대 성녀 메리다도, 트롤 군단도, 학살신교의 사제들도.
그 광경을 본 모든 이가 침묵에 빠졌다.
치이이이, 검에 꿰뚫렸던 불사 군주의 가슴팍이 순식간에 아물며 피가 멎었다.
트롤들의 왕이자 신이라 불리는 존재, 불사 군주는 산산이 부서진 라볼라스를 보며 무심히 말했다.
-너의 죽음이 나의 불멸보다 하찮구나.
그것은.
학살신교가 몰락의 위기에서 벗어난 순간이기도 했다.
* * *
그렇게, 학살신교를 멸망으로 이끌고자 했던 한 성녀의 계획은 허망하게 꺾여 버렸고, 학살신교의 사제들과 회색빛 땅의 트롤 군단과의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피로 물든 황무지에 석양이 졌다.
“아하핫! 거기 트롤 씨, 괜찮으시면 저도 그 사체 한 덩이만 얻어 갈 수 없겠습니까? 저희도 맛 좀 봅시다! 네?”
-크르르, 랏타! 아샤크!(크르르, 꺼져라! 악마들!)
“꺄핫! 혹시라도 손버릇 나쁜 형제님은 제가 혼쭐 내줄 거니까 모두 트롤 사체는 건들지 마세요!”
학살신교의 사제들은 죽은 교도들의 시신을 수습했고, 트롤들은 생존한 일족들이 죽은 동족들의 사체를 먹음으로써 식인 장례를 치르고 있다.
사제들은 그런 귀한 식재료 취급받은 트롤들의 사체를 보고 침을 주르륵 흘리며 입맛을 다셨고, 메리다의 대리자로 루니아 사제가 그들이 딴마음을 품지 않도록 통솔했다.
‘보통은 이렇게 깨끗하게 끝나 버리지 못했겠지.’
흉포한 트롤도, 광신적인 학살신교의 사제들도 한 번 전투에 돌입해 피를 보면 끝장을 보는 미친놈들이다.
필시 어느 한쪽이 파멸을 맞이할 때까지 싸웠을 것이다.
불사 군주과 맹안의 성녀의 존재가 없었다면 말이다.
사제들의 성녀의 명령 한마디에, 트롤들은 불사 군주에게 무릎 꿇은 하이트롤 수장들의 정신 지배력 아래 철저히 복종했다.
‘불사 군주는 더 이상 제 일족이 죽는 것을 막고 싶을 테지, 맹안의 성녀도 그건 마찬가지고.’
미치광이 두 전투 집단의 각 지도자들이 가장 뛰어난 인격과 상식을 지녔다는 것은 일견 우스운 일이지만, 오히려 그런 최소한의 상식을 지녔기에 집단을 유지시킬 수 있던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금방 이루어졌다.
그가 한쪽을 보았다.
그곳에서는 죽은 스피카의 곁을 메리다 성녀가 지키고 있었다.
그때 아덴의 곁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익숙하고도 그리운 향기가 난다.
트롤들의 신, 회색빛 불사의 군단의 주인이자, 학살탑의 최초의 죄수가 말했다.
-저 인간은 세계수의 축복으로 되살아난 인간이로구나.
불사 군주였다.
불사 군주의 말에 아덴이 물었다.
“세계수의 열매에 관해 아나?”
-그야 모를 수가 없다, 모든 어둠의 주인을 품고 있는 인간이여.
불사 군주의 말에 아덴은 눈가를 슬쩍 구겼다.
‘역시 이미 알고 있었나 보군.’
무려 재앙급 몬스터, 엘더 트롤이다.
인간으로 치면 상급 소드 마스터 이상의 격.
즉, 초월의 경지에 준하는 존재다.
그런 놈이 아덴의 몸 안에 있는 커스의 존재를 모른다면 더 이상하리라.
불사 군주가 말했다.
-그 열매는 우리 일족의 모든 죄악의 시작이나 다름없으니.
그리 말하는 불사 군주의 표정은 깊은 후회로 가득했다.
“죄악의 시작? 무슨 말이지?”
-용살왕이여.
대답이 들려온 것은 불사 군주 쪽이 아니라 커스였다.
-트롤은 본래 세계수를 섬기던 요정족 중 하나였으나 세계수의 저주를 받아 타락했다.
‘뭐?’
커스의 설명을 들은 아덴은 순간 멈칫했다.
그럼 눈앞에 아무리 봐도 흉측한 몬스터일 뿐인 트롤이 요정족이란 말인가?
-굳이 표현하자면 저주를 받아 더 이상 요정족이 아니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군, 용살왕.
‘음…….’
아덴의 표정이 실로 미묘해졌다.
쉬이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불사 군주가 세계수의 열매에 관해 알고 있는 것도 설명이 됐다.
불사 군주의 말이 이어졌다.
-대지의 드워프, 숲의 엔트, 자연의 엘프, 공기의 페어리……. 그들과 더불어 우리는 세계수의 그늘에 살았다. 우린 물과 흙을 사랑한 종족이었다.
젖은 흙과 밤의 고요를 즐긴 다섯 번째 요정족, 트롤.
그 다섯 번째 종족의 왕이었던 자가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일족들에게 무시당해 왔고, 핍박당했다. 우리에겐 엘프와 같은 아름다움도, 드워프와 같은 솜씨도 없었으며, 머리는 아둔하며, 몸도 몹시 약했다. 그렇기에 다른 네 종족들에게 비웃음과 무시를 당해 왔다.
왕은 멸시받던 종족의 처지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다른 요정족들을 증오하고 시기하게 되었다.
이는 트롤 종족 전체가 다른 요정들에게 품고 있던 증오와 열등감의 감정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비웃던 모든 종족들을 짓밟아 그 위에 오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해서는 안 될 죄악을 저질렀다. 바로 세계수의 열매를 탐한 것이다.
요정족들 모두가 신성하게 여기는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 세계수.
그 열매는 세상의 모든 인과를 뒤틀고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을 품고 있었다.
트롤들의 왕, 불사 군주는 그 열매가 지닌 힘을 탐하였고, 일족들과 함께 세계수의 거목을 타고 올라 가지에 달린, 아직 익어 떨어지지 않은 열매들을 먹었다.
그 어떤 종족보다도 뛰어나고 우월한 종족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세계수는, 우리들의 신은 진노하였다.
그들이 원하였던 것처럼 그 어떤 종족보다 강건한 육체와 힘, 그리고 재생력을 가지게 되었다.
트롤들의 왕은 영원한 불사와 불멸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수는 그들에게 동시에 끝없는 허기, 들끓는 분노와 증오심이라는 저주를 내렸다.
트롤들은 허기를 주체 못하고 동족끼리도 서로를 잡아먹었고, 그들을 깔보았던 다른 요정족들을 짓밟고 파괴했다.
이것이 회색빛 불사의 군단 불사 군주가 탄생한 연원.
불사 군주가 이끄는 트롤 군단은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군림할 뻔했다.
-그러나 나는 패배하였다, 인간들과 한 여인에 의해서.
학살신교의 창시자 초대 성녀.
그녀는 트롤 군단과 불사 군주를 꺾었고, 그를 학살 탑의 지하 미궁에 유폐시켰다.
그 당시 인간은 요정족보다도 더 열등한 취급을 받던 약소 종족이었다.
약자였던 종족이 최약의 종족에게 패배한 것이다.
그 후 트롤들은 척박한 이 죽음의 황무지에 갇혀 끝없는 고통에서 수백 년간 시달리게 되었다.
닳도록 닳고 바래질 대로 바래진 옛 기억을 떠올리듯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아덴을 향하여 고개 숙였다.
-나는 나의 선택으로 이내 더욱 추락하여 고통 받는 일족들을 보며 후회하였다. 아마 그대로 계속 갇혀 있었다면 나는 저주의 광기에 먹혀 미쳐 버렸을 것이다.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아마’가 아니라 확실하게 미래에서는 그렇게 미쳐 버렸다.
그러곤 트롤이든 인간이든 가리지 않고 죽이며 날뛰었고 말이다.
“그래. 고마우면 뭐라도 주든가.”
-알았다.
아덴은 그저 입버릇처럼 그다지 바라지 않고 한 말이었는데 불사 군주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푸우욱!
놈이 자신의 날카로운 손톱을 치켜세워 그대로 가슴팍에 푹 쑤셔 박아 넣었다.
그러곤 마치 찰흙이라도 조몰락거리듯이 자기 몸 안을 손가락으로 후벼 팠다. 그러자 짙푸른 피가 분수처럼 콸콸 흘러나왔다.
쫘아악!
불사 군주가 제 가슴 안에서 푸른 핏덩이의 물컹거리는 뭔가를 우악스럽게 뜯어냈다. 그 핏덩이는 불사 군주의 손안에서 쿵쾅거리며 마구 맥동했다.
놈이 계속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염동력으로 조종하며 그것을 아덴에게 내밀었다.
-나의 심장이다. 아마 여러 군데에 요긴하게 쓸 수 있을 터. 자, 받거라.
음.
“어, 그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