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s Eldest Son Is A Regressed Hero RAW novel - Chapter (3)_3
잠시 후, 검에서 소드 오러가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덴이 자리에 주저앉더니 대자로 뻗었다.
“아덴 님!”
카를과 영지병들을 안전한 곳에 피신시킨 후, 기사들을 도와 고블린을 해치웠던 로우가 아덴에게 달려갔다.
로우가 아덴의 어깨를 붙잡으며 다급히 물었다.
“아덴 님! 어디 다치신 겁니까!”
“시끄러워.”
“빨리 의사에게…… 네?”
“피곤하니까 말 좀 시키지 말라고. 못 알아듣겠냐?”
아덴이 미간을 구기며 짜증 난다는 듯 노려보자 로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정말 몸은 괜찮으십니까?”
“그래, 멀쩡하다. 어쩔래?”
겨우 한순간 소드 오러를 사용한 것뿐인데도 마나가 바닥났다.
육체도 트롤의 공격을 피하며 무리하게 움직여서 꼭 허수아비 훈련을 끝마친 직후의 몸 같았다.
“로우, 네가 해야 할 게 있다.”
아덴이 몹시 진지한 표정으로 로우를 응시했다.
이에 로우도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뭘 하면 되죠?”
“업어.”
“……네?”
“날 업고 공작가까지 데려가라고. 나 움직일 힘 없다.”
“…….”
로우는 그저 할 말을 잃었다.
* * *
그렇게, 갑작스레 일어났던 카를 레메스 공자와 영지병 구출 사건은 막을 내렸다.
고블린들과 싸운 2차 수색대는 경상을 입은 이들 두 명 외에는 큰 부상이나 사망자 없이 끝났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전부 스펠레 경을 통해 보고받은 프리드 레메스 공작이 참담한 표정을 금치 못했다.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군.”
카를과 함께 마물산으로 조사하러 같던 영지병 열두 명 중 여덟 명이 사망했다.
그들 모두 가족이 있던 이들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2차 수색대의 기사들은 교전 종결 후, 절벽에 뚫려 있던 몇 개의 동굴 안에 들어갔다.
그 안에 있던 암컷 고블린과 새끼들을 베어 버리고, 뭉개고 짓밟으며 전부 죽여야 했다.
그래야 더 이상의 증식을 막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덴에게 영지병 중 한 명이 말했던 다른 ‘생존자’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홉고블린을 낳기 위한 씨받이로 쓰이기 위해 동굴 속에 감금되어 있던 여인 네 명이 있었다.
그중 두 명은 이번에 카를이 여길 조사하러 오게 된 계기였던 실종자들이었으며 다른 둘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실종 처리됐던 이들이었다.
오랜 능욕으로 몸도 정신도 피폐해져 있었으며, 둘 중 한 명은 배에 이미 임신 중이기도 했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원래는 남자들과 다른 여성들도 많이 있었다고 했다.
남자는 트롤과 고블린들에게 먹혔고, 여인들은 열악한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단명해 트롤의 입속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스펠레 경, 이번 일의 피해자들과 그들의 유족에게 한도 내에서 최대한으로 보상을 주게.”
공작은 겪지 않았어야 할 고생을 한 여인들에겐 추가로 요양할 수 있게 지원도 해 주라 덧붙였다.
“알겠습니다, 공작님.”
물론 그 정도론 그들의 고통이 지워질 순 없을 터였다.
하지만 영주로서 마물로부터 영지를 지켜 준다는 약속을 어겨 버린 것에 대해 그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었다.
프리드 공작이 심란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 영지의 영주로서, 정말이지 부끄럽기 그지없구나.”
“……그건 우리들도 마찬가집니다, 공작님.”
매년 주기적인 토벌을 진행하고 마물이 내려오지 못하게 수시로 감시하는 걸로 충분하다.
지금껏 공작도 기사들도 그렇게 여겨 왔다.
그런데 놈들은 감시망에 빈틈이 생기는 때를 정확히 짚어 내곤, 몰래 이런 만행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연한 프리드 공작이 주먹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
“앞으론 정기 토벌의 횟수를 늘리고, 마물산에 대한 감시망도 재정비하겠다. 그대들도 힘내 주게.”
“존명.”
스펠레 경이 예를 취하며 공작의 말을 받들었다.
그와 동시에 스펠레 경은 속으로 공작을 향한 존경심을 표했다.
제국에는 수많은 영주들이 있지만, 그들 중에 진심으로 영지민을 아끼고 헌신하는 이들은 매우 극소수였다.
오히려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지 못해 안달인 족속이 많았다.
그에 반해 자신의 주군은 영지민을 매우 아끼며, 청명하게 영지를 운영했다.
자식을 향한 사랑과 관대함이 많이 지나치다는 것 외엔 흠 잡을 게 없는 분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믿을 수가 없구나.”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오른 공작이 탄식하듯 넋두리했다.
그의 얼굴엔 당혹, 기쁨, 경탄, 불신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 있었다.
“정녕 내 아들, 아덴이 한 일이란 말이냐?”
“믿기 힘드시겠지만, 정말입니다. 저와, 제 기사단원들이 전부 목격했습니다.”
“허허…….”
부단장의 단언에 프리드 공작이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곤 집무실 창밖에 비친 무시무시한 물체를 봤다.
그곳엔 한 사체가 있었다.
분명히 머리가 떨어져 죽었음에도, 그 자체가 풍기는 위압감이 2층 집무실에 있는 자신에게까지 느껴졌다.
트롤의 사체.
3미터의 거대한, 머리가 잘린 트롤의 사체였다.
기사들이 온 힘을 합쳐, 마물산에서 끌고 내려온 것이다.
트롤의 부산물은 그 자체로 귀중한 자원이었기에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런 괴물이 자신의 영지에 있었으며, 또한 고블린들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공작의 눈앞이 순간 아찔해졌다.
‘정말, 저 괴물을 내 아들이 해치웠다고?’
공작은 그저 할 말을 잃고 트롤 사체를 망연히 바라봤다.
* * *
마물산 소동 이후 시간이 빠르게 흘러 일주일이 지났다.
레메스 공작 영지 사람들 사이에서 그 일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의문의 실종자들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
고블린을 양식하고, 수하로 부린 마물산의 트롤.
하나같이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극적이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망나니 공자, 아덴 레메스가 트롤을 혈혈단신으로 무찔렀다!
강아지한테도 당하던 약골 망나니가 검기를 깨우쳤다!
물고기가 하늘로 튀어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용이 되어 승천했다 할 만큼 엄청난 사건이었다.
처음엔 헛소문으로 치부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이 소문이 공작가에서 일하는 영지병들과 기사들의 입을 통해 퍼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아덴의 업적을 찬양했다.
세인들은 아덴을 더 이상 망나니 공자라 부르지 않았고, 트롤 잡는 망나니, 트롤 공자, 트롤 슬레이어 등등 여러 가지 낯 뜨거운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 * *
한편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아덴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트롤 슬레이어는 그렇다 쳐도, 트롤 잡는 망나니나 트롤 공자는 뭔데?”
트롤 공자라니.
꼭 자신이 트롤처럼 흉측하게 생겼다는 것 같지 않은가?
기가 찬 아덴을 보며 캐시가 나른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평판 따위 신경 쓰시지 않는다면서, 잘생긴 트롤 공자님?”
“……그렇게 부르지 마. 됐고, 로우에게 하던 일이나 마저 하라.”
현재 아덴은 공작가 내의 캐시의 공방에서 캐시와 로우와 같이 있었다.
이 셋이 모여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오늘이 로우의 오른팔을 치료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팔을 고친다는 생각에 로우는 표정이 다소 긴장되어 있었다.
로우는 웃통을 벗은 채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 때문에 로우의 다부지고 절묘하게 발달한 좋은 몸이 여실히 드러났다.
“흐음?”
그런 로우의 몸을 보며 캐시의 눈이 묘한 빛으로 살짝 휘어지더니…….
스으윽-.
기습적으로 로우의 탄탄한 가슴팍을 부드러운 손으로 쓸어내렸다.
“읏!”
캐시의 갑작스러운 손놀림에 로우가 움찔하며 놀라 신음했다.
그 모습에 캐시의 나른한 얼굴에 장난기가 어렸다.
“어머. 방금 그 귀여운 소리, 기사님이 낸 거야?”
“아, 아닙니다.”
“흐음, 그럼 뭐였을까나?”
로우가 귀가 붉어진 채로 고개를 숙여 침묵했다.
그 광경에 아덴이 기가 찬 표정으로 그녀를 힐난했다.
“이봐, 뭐 하냐?”
“너무 긴장한 것 같아서 좀 풀어 주려고 했지.”
그녀의 넉살 좋은 반박에 아덴이 혀를 찼다.
“애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아덴 님, 제가 더 나이가 많습니다만…….”
“넌 입 다물고 있어.”
아덴이 아직도 귀가 빨개진 로우를 보며 미간을 구겼다.
‘저 녀석이 원래는 이렇게 숙맥이었나? 거참, 적응 안 되네.’
자신이 알던 자유 기사는 여인을 돌처럼 보던 목석이었다.
기사는 색을 밝히지 말아야 한다나 뭐라나.
그런 녀석이 저렇게 쉽게 희롱당한다는 것에 괴리감이 들었다.
“그럼 이제 진짜 시작할게.”
그녀의 한 손엔 붉은 빛깔의 포션이 들려 있었다.
“기사님의 팔이 저렇게 된 것은 차가운 속성의 마나가 오른팔의 마나혈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지.”
그래서 마나가 흘러들어 오고 빠져야 할 흐름이 중간이 막혀 버려 팔에 마나가 무한정으로 쌓이기만 한 것이다.
그 때문에 마나가 항시적으로 팔을 극한으로 강화시켜 딱딱하게 굳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 불의 속성을 지닌 포션으로 차가운 마나를 중화시키는 게 최선이고.”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어중간하게 약한 불의 속성을 지닌 포션으론 체내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속성의 힘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속성이 강하면?
몸이 불의 속성과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자칫 타 죽을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약한 불 속성의 마나를 체내에 넣을 방법이 필요했다.
“지금까진 그 해결법을 몰랐지만, 이젠 아니지.”
그녀가 미리 준비해 둔 보관 상자에서 기이한 형태의 물건을 꺼냈다.
원통형의 병에 분무기처럼 피스톤이 달려 있으며, 그 끝에 속이 빈 매우 가는 바늘이 달려 있었다.
“음용이나 바르는 방식이 아니라 체내에 직접 주입하면 되는 거였어.”
이 물건의 이름은 주사기.
아덴이 보여 줬던 설계도대로 소도시 마릴렌의 장인들에게 의뢰해 제작한, 신개념의 의료 기구였다.
주사기에 포션을 채워 넣곤 그녀가 말했다.
“팔 좀 내밀어 줄래?”
“…….”
로우가 말없이 팔을 내밀었다.
“약간 따끔할 겁니다?”
그녀가 그리 말하곤…….
콕.
하얗게 굳은 오른팔과 멀쩡한 어깨의 경계면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로우의 마나혈에 직접적으로 불 속성의 마나가 주입되어 갔다.
포션을 다 넣은 그녀가 주삿바늘을 뺐다.
“으윽.”
로우가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구기며 신음을 냈다.
불 속성의 마나의 영향으로 몸이 더워져, 몸에서 땀이 조금씩 났다.
“조금만 참아, 몸 안에 다른 두 마나의 기운이 반발하며 중화되어 가는 중이니.”
“윽, 알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로우가 이를 악물고 참았다.
5분, 10분, 20분.
시간이 지날수록 로우는 지쳐 갔고,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변화는 확실했다.
대리석처럼 새하얗던 로우의 팔의 흰색이 점점 옅어져 갔다.
생기가 안 느껴지던, 무생물 같던 팔에 핏기가 돌며 살구색을 띠어 갔다.
포션을 주입한 지 30분 이후, 고통이 수그러들었다.
“하아.”
온몸에 식은땀이 맺힌 로우가 넋 놓고 자신의 팔로 바라봤다.
팔의 색은 일반적인 피부색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원래 로우는 오른팔을 움직일 때 마나의 힘까지 빌려 써서 억지로 힘줘야 팔이 굽혀졌다.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팔을 움직여 보려고 하니…….
“……움직인다.”
너무나도 쉽게 팔이 굽혀졌다.
“원래대로, 돌아왔어.”
마나 절맥증이 치료되었다!
그 사실을 깨닫곤 로우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기쁨 탓에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첫 임상 실험이었는데 성공했네. 이론이 완벽했으니 당연하지만.”
캐시가 나른한 표정으로 만족스레 미소 지었다.
“축하한다, 로우.”
아덴이 짤막하게 로우를 축하해 줬다.
자유 기사, 그리고 외팔이 날쌘돌이.
그 두 이명은 이제 세상에 생겨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로우는 외팔이가 되지도, 공작가에서 쫓겨나지도 않고 무사히 한 명의 귀족 가문의 기사로 지내게 될 테니까.
“아덴 도련님.”
로우가 아덴을 불렀다.
그런데 아덴은 로우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무언가를 결심한 자의 눈빛이었다.
“도련님은 제게 너무나도 많은 걸 주셨습니다.”
“음?”
갑자기 왜 저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아덴은 의문을 가지는 동시에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서 제 뜻을 밝히려고 합니다.”
매우 엄숙한 분위기.
로우가 침대 머리맡에 두었던 검을 양손으로 수평으로 잡아 아덴에게 내밀었다.
그러곤 왼 다리만 굽힌 채로 꿇었다.
기사들이 자신의 주군에게만 보여야 하는 공경의 자세였다.
“이 미천한 한 몸, 평생을 도련님을 위해 쓰며, 검을 들 것임을 레메스 기사단의 수습 기사 로우가 맹세를 바칩니다.”
기사가 평생 단 한 번만 할 수 있는 명예로운 맹세.
충성의 맹세.
로우는 지금 그것을 아덴에게 바쳤다.
“어머,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캐시가 흥미롭다는 듯 그 모습을 바라봤다.
아덴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떨떨해했다.
‘로우가 내 기사가 된다고?’
그 사실에 아덴이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다.
‘소, 소름 돋아.’
전생에 로우는 아덴과 서로 으르렁대며 혐오한 사이였다.
그런 놈이 자신의 기사가 된다는 것에 맹렬하게 거부감이 들며 소름이 쭈뼛 솟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를 수도 없었다.
기사의 맹세가 거절된다는 것은 기사에게 있어 가장 큰 수치이자 불명예였다.
그리고 그때 기사가 택할 수 있는 길을 단 두 가지.
검을 포기하고 기사의 길에서 물러나거나, 아니면 자결을 하거나.
둘 다 곤란했다.
그렇기에 아덴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제길…….’
아덴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너의 그 맹세, 레메스 공작가의 장자 아덴 레메스의 이름으로 기, 기꺼이 받겠다.”
아덴은 관례적인 맹세의 표현으로 답했다.
아덴은 그렇게 몹시도 껄끄러운 기분으로 자신만의 기사를 얻었다.
맹세를 마친 로우를 쫓아내듯 내보낸 후, 아덴이 피곤한 얼굴로 캐시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언제 지병을 치료할 생각이지?”
그녀는 아직 마나 절맥증이 그대로였다.
그 때문에 그 증상을 억누르기 위해 여전히 겨울나리 담뱃잎을 진하게 피우고 있었다.
그녀가 담배를 한 모금 마시곤 그 물음에 나른히 답했다.
“내 마나 절맥증은 좀 특이해서 말이야.”
로우의 마나 절맥증은 매우 가벼운 편에 속한 것이었다.
그러니 주사 한 방에 그렇게 쉽게 나을 수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그녀의 마나 절맥증은 마나혈이 복잡하게 꼬여 있었다.
그 때문에 어느 한 곳에다가 주사하는 걸로는 안 됐다.
몸에 맞는 필요 양과 포션의 성분 배합, 주사할 혈 자리들을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아마 조금 시간이 걸릴 듯?”
“그런 것치곤 여유로워 보이는군.”
“연구만 하면 곧 풀릴 문제니까. 담뱃잎이 떨어질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역시 연금술사는 후원자가 빵빵해야 좋다니까?”
그녀의 가벼운 모습을 보니 조만간 해결될 문제 같았다.
그렇기에 아덴도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캐시가 아덴에게 짙은 푸른색의 포션 한 병을 건네줬다.
“여기. 잘생긴 공자님이 부탁한 거.”
“수고했군. 고맙다.”
그녀가 건네준 물건.
그것은 다름 아닌, 트롤의 심장을 정제해 그 마나만을 뽑아낸 포션이었다.
* * *
아덴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트롤의 심장 포션을 바라봤다.
자신이 잡은 트롤의 사체에서 구한 심장으로 만든 것이다.
‘설마 이곳에서 트롤을 잡을 줄은 몰랐는데, 정말 잘됐어.’
트롤의 사체는 모든 게 고가의 마법 재료였다.
그리고 그중 특히 트롤의 심장은 값어치가 가장 높았다.
트롤의 재생력의 원천이 되는 재생의 마나.
그 재생의 마나가 고정되어 있는 트롤의 심장은 그 자체로 좋은 영약이었다.
영약의 장점은 마나 기관에 안착이 가능한 안정된 기운이라는 점이었다.
보통의 마나는 불안정하기에 마나 기관에 안착시키기 어려우며 그 효율이 극히 낮았다.
하지만 용족의 내단처럼 일부 몬스터는 길들여진 마나를 속에 품고 있고, 그 효율이 높았다.
그리고 그런 마나를 품은 것들을 영약이라 칭했다.
단언컨대 트롤의 심장은 고가의 영약이었다.
그럼에도 아덴이 그것을 요구하자 공작은 흔쾌히 아덴에게 내주었다.
아덴이 잡은 것이니 그걸 어떻게 취급할지는 그의 몫이라는 이유였다.
‘내겐 참 좋은 일이지.’
연금술사인 캐시를 식객으로 받아들인 것도 잘한 일이었다.
트롤의 심장은 여느 대부분의 마물들이 그렇듯이 독성을 품고 있다.
그 때문에 연금술사나 연단사를 통해 정제할 필요가 있었다.
캐시 덕에 트롤의 독성을 제거하고 순수한 마나만을 뽑아낼 수 있었다.
‘재생의 마나.’
아덴은 전생에 아덴 알비레오였을 때도 재생의 마나를 가지고 있었다.
과거, 도시를 습격한 어느 트롤 부족을 토벌하는 의뢰에 참전했다.
그리고 그때 아덴은 보았다.
하이트롤.
머리가 잘려도 다시 주워 들어 제자리에 끼워 넣으니 도로 멀쩡해지던 터무니없는 재생력을 지닌 괴물을.
아덴은 아덴과 같이 참전했던 용병들도, 병사들도 전부 그놈에게 죽어 나갔다.
아덴은 마지막까지 혈혈단신으로 살아남아 놈과 싸웠고, 결국 놈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로 아덴도 서서히 죽어 가게 됐지만.
아덴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놈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냈고 독성이든 뭐든 무시하고 일단 그걸 씹어 먹었다.
그러곤 천운이 닿아 아덴은 하이트롤의 재생의 마나를 일부 얻어 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아덴은 망신창이로 독성에 중독된 와중에도 재생의 마나로 목숨을 부지했으며, 후에 우연히 만난 사제에게 독성을 정화받아 살아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그 재생의 마나 덕을 톡톡히 봤지.’
재생의 마나를 얻은 아덴 알비레오는 육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마나의 한계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즉, 그릇이 커진 것이다.
그것은 훗날 광룡의 피를 마셨을 때 그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마나 기관에 안착시키는 데 일조했다.
‘다시 재생의 마나를 얻는다.’
이 녀석은 하이트롤은커녕 무리에서 뒤떨어진 낙오자 트롤이었다.
그러나 이 트롤의 마나를 온전히 흡수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과거 하이트롤의 심장에서 아덴이 얻어 낼 수 있었던 마나량은 전체의 5%에 불과했다.
연단이 안 된 영약을 날것으로 먹은 탓이었다.
그 정도라면 이 트롤의 마나를 온전히 흡수하는 걸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퐁.
아덴이 포션 마개를 땄다.
트롤의 짙은 재생의 마나가 느껴졌다.
‘음용으로 얻어 내 안착시킬 수 있는 마나에는 한계가 있지.’
하지만 마나가 소화기관을 거치는 게 아닌, 체내로 바로 유입된다면 어떨까?
아덴이 미리 챙겨 두었던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포션 병에 바늘을 담아 주사기에 포션을 쭉 빨아들여 채웠다.
그러곤 주사기를 들고.
콱!
아덴 자신의 어깻죽지에 내려찍었다.
정확히 마나혈이 있는 자리에 대고 피스톤을 눌러 포션을 서서히 주입했다.
그러곤 곧, 마침내 포션 한 방울까지 전부 주입을 끝마쳤다.
-트롤의 심장 포션이 주입되었습니다.
-체내로 들어온 외부의 마나를 안착시키십시오.
아덴이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았다.
그러곤 전신의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아덴이 속으로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래, 이 느낌이야.’
마나혈을 따라 안에서 꿈틀거리는 거친 기운.
마나를 흡수한다는 것은 몸 안에서 작은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아덴의 마나와 재생의 마나가 맞붙었다.
재생의 마나를 향해 달려드는 아덴의 마나.
마나혈을 따라 아덴의 마나가 재생의 마나를 밀어붙여 마나 기관 쪽으로 인도했다.
재생의 마나에게 있어선 저곳은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재생의 마나는 굴복할 순 없다는 것처럼 반발하려 했다.
마치 원주인인 트롤처럼 난폭하게 날뛰는 재생의 마나.
마나 기관의 문턱에까지 서 버리게 되자, 재생의 마나는 마지막 발악이라는 듯 날뛰었다.
“크윽.”
그 날뜀에 전신이 고통을 호소했다.
-경고. 마나가 신체와 반발합니다.
-제어 실패 시, 마나 폭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너를 찢어 버리겠다.
갈기갈기 찢어 해방되겠다.
나는 결코 네놈의 힘 따위가 될 순 없다고.
그렇게 외치듯 재생의 마나가 날뛰었다.
하지만 아덴은 그 고통 속에서…….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에겐 가소로운 몸부림이었다.
‘넌 이제 내 힘이다. 닥치고 잠잠해지라고.’
아덴은 전생에 광룡의 역린을 부수고 파고들어, 형용할 수 없는 괴물 같은 마나를 길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