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s Eldest Son Is A Regressed Hero RAW novel - Chapter (42)_3
“나는 ‘울부짖는 태산’의 산을 창으로 부쉈다.”
우오오오오오!
거대한 산거북이 울었다.
“‘태양을 삼킨 흑조’의 목을 베고 하늘에서 추락시켰다.”
키아아아아!
천공에서 거대한 까마귀가 시끄러운 괴성을 토했다.
“그리고, ‘천둥을 부르는 흑호’의 몸을 갈라 거꾸러트렸다.”
크르르르.
거대한 흑호가 나지막하게 목울대를 울렸다.
“그렇다. 나는 이 대수림의 신으로 군림하던 존재들을 정복했다.”
신들을 죽이고, 그들을 언데드로 되살려 종으로 만들었다.
서부 수림 연맹군의 저력에 영락한 동부의 삼신수들이 함께하는 것이다.
“동부의 형제들에게 고한다. 항복하여라.”
카안은 무감정한 목소리로 동부군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제안을, 회유를 던졌다.
“너희는 우리들을 이길 수 없다.”
“우, 우, 우, 우!”
서부 수림 연맹군이 호응하며 발을 굴리고 병장기를 탁탁 부딪쳤다.
화아아앗!
흑호족의 마스터들이 핏빛의 오러 블레이드를 피워 냈다.
휘황찬란한 수십 개의 오러 블레이드.
“그럼에도 우리와 싸울 것인가?”
상생과 공존은 허울 좋은 말일 뿐이며, 자연의 진정한 법칙은 약육강식임을 인정하라.
정적.
그런 의미가 담긴 카안의 말에 동부군은 잠시 침묵했다.
압도적인 힘, 압도적인 강함.
카안의 창에 의해 부서져 내린 바위산 쪽으로 시선을 두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것이 자신들의 미래처럼 느껴졌기에.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서부 수림의 검은 호랑이 부족의 족장, 카안이여. 나 붉은 고양이 부족의 족장 팜시벳이 답한다.”
팜시벳이 마나를 실어 모두에게 들리게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 앞에 서 있는 그 이방인이 어떻게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
“내 딸 캐시 덕분이다.”
다소 뜬금없는 소리.
하지만 그녀는 자랑스러움마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태어나면서도 몸이 약했던 그 아이는 부족 내에서도 가장 허약한 아이였지.”
마나 절맥증 탓에 몇 번 걷기만 해도 지처 쓰러지고, 간헐적으로 피를 토하던,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아이.
그게 캐시였고, 카안의 기준으론 가치 없는 ‘약자’의 속한 이였다.
“하지만 그런 아이가 결국 자라나 성인이 되었고, 숲 밖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쌓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만들어 낸 인연이, 부족이 위기에 빠진 순간 도움의 손길이 되어 이리 나타나 주었다.”
캐시가 살아 있는 덕분에 아덴과 일행이 대수림 깊숙한 곳에 있는 적묘족의 마을로 올 수 있었다.
고양이 신수 미아오 님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사위까지 데려왔고.’
피식, 그녀가 웃음을 흘렸다.
그것도 잠시, 살벌한 눈빛으로 하늘에서 카안을 째려봤다.
“그런 캐시가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준 분이 미아오 님이었다. 하! 카안이여, 약육강식의 논리를 믿는 자여, 묻겠다!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구했거늘, 누가 약자고 누가 강자인가!”
그녀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신수님들은 우리가 이 대수림에 터 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신 평생의 은인이며 동반자다! 거기에 강약의 논리는 무가치할 뿐이다!”
그것이 그녀가 믿는 상생이자, 공존.
“카안이여! 우리 붉은 고양이 부족은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키에에에에!
1천의 적묘족 전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그리폰들이 포효했다.
“나, 은빛 늑대 부족의 첫 번째 늑대, 성난 이빨 또한 일족을 대표해 말하겠다.”
성난 이빨 그녀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고요하게 투기를 끌어 올렸다.
“우리 늑대들은 은원을 잊지 않는다.”
성난 이빨이 손에 쥔 곡도에 찬란한 은빛 오러 블레이드가 맺혔다.
“이방인 아덴 레메스는 우리의 늑대 어머니를 구해 주었고, 네놈들은 그분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이보다 더 은원이 더 확실할 수가 있을까? 흑호족장, 네 녀석을 향한 빚을 갚을 것이다.”
-아우우우우!
성난 이빨이 자신이 직접 길들인 다이어울프들의 왕이 울었다.
“와아아아아아!”
그 뒤를 따르던 수백 마리의 늑대들과 은랑족 전사들이 포효했다.
“다들 시끄러워 죽겠군. 싸우는데 뭔 말이 이렇게 많은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푸른 곰 부족의 족장, 샤마마쿠가 인상을 찌푸리며 목덜미를 벅벅 긁었다.
“구구절절 뭔 이유가 필요하지? 껌댕이 호랑이! 너같이 꼴값 떠는 놈 밑에 들어갈 바엔 걍 쳐 뒤지게 싸우겠다! 누가 누구에게 이길 수 있다 없다 지껄이는 거냐!”
“흐하하! 우리 족장 말이 다 맞아!”
“싸우자!”
“와아아아아!”
푸른 곰 부족의 전사들이 호기롭게 웃으며 쩌렁쩌렁한 함성을 터트렸다.
적묘, 청웅, 은랑.
세 부족이, 동부 수림 연맹의 모든 이들이 한마음으로 외쳤다.
“자연의 배신자들을 처단하리!”
“자연이 너희를 거부하리라!”
명백한 거절.
카안은 이를 보며 옅게 웃었다.
“어리석은 것들.”
그것은 조소였다.
“힘이 온전한 신수도 한 마리뿐인 너희가 어떻게 처단하겠다는 건지 모르겠군.”
“글쎄다.”
아덴은 그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였다.
-캬아아아아아아오!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천지를 진동케 하는 것 같은 세 개의 포효들.
대수림에서 이런 포효를 내지를 수 있는 존재는 하나뿐이다.
그 소리에 카안의 입가에 희미하게 어려 있던 미소가 싹 사라졌다.
대신 아덴의 입가에 짙은 고소가 어렸다.
“한 마리가 아닌 것 같다만?”
자, 전쟁 시작이다.
* * *
카오스의 간부 부덕의 비발드는 서부군 진영 제일 뒤에서 모든 것을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다.
“흐흐, 무리해서라도 만들길 잘했군.”
비발드는 만족스러워했다.
언데드가 된 신수들의 사체를 보고 동부군이 동요했다.
저 신수들을 만들기 위해 갈아 넣은 부족민만 셀 수도 없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반응에 그는 비웃었다.
‘멍청한 수인족 놈들. 신수 같은 것들을 신으로 여기고 말이야.’
신수는 초월의 격에 닿아 종족의 한계를 벗어난 영물들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신수가 되기 위해 한 것은 ‘성역’이라 불리는 정순한 기운이 고인 곳에 처박혀 수백 년간 살아온 것뿐이었다.
그저 오래 살아 영성을 깨우쳤다는 것 말고는 그 어떤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혼탁한 기운을 흡수해 성장하는 마수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신수는 엄밀히 말하면 환수와 별다를 게 없는 존재지.’
차이점이 있다면 환수는 태어날 때부터 상위 존재로서 태어났으나 신수는 아니라는 것과, 환수는 지상계에서 활동하려면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힘의 제약이 생기는 반면 신수는 그런 제약이 없다는 것뿐.
환수계에서는 널리고 널렸을 존재를 숭상한다는 것이 참으로 우스웠다.
비발드의 입장에선 좋은 일이었다.
이대로 동수림 연맹군이 굴복한다면 쉽게 흡수시키고 예정대로 계획을 실행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부군을 순순히 항복하게 만드는 것은 실패했다.
원래 고집만 강하고 멍청한 것이 대수림 부족민들이니 아예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발드는 괘념치 않아 했다.
사실, 동부 놈들이 거절하더라도 상관없다.
굳이 언데드 신수만이 아니더라도 서부군에는 상급 소드 마스터에 오른 족장 카안이 있다.
원래는 그저 마스터에 불과했으나 현자의 돌의 효과로 상급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언데드화한 신수 셋과 상급 소드 마스터.
그리고 38인의 인공 소드 마스터 전사들까지.
반면에 상대측에 있는 것은 마스터급의 부족장 셋과 힘을 잃지 않은 신수 하나가 전부다.
이 정도 전력이면 금방 동부군의 수뇌부를 죽이고 무력 흡수하는 것은 금방일 터다.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자연이 너희를 거부하리라……!”
“위대한 카안을 위하여……!”
“와아아아아아!”
서부군의 선두와 동부군의 선두가 서로 충돌해 얽히며 필사적으로 싸웠다.
회전이 시작되고 5분.
“이게…… 대체!”
부르르르!
부덕의 비발드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져 갔다.
예상을 한참 벗어난 사태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오오오오오오……!
‘울부짖는 태산’이 비명을 질렀다.
꽈아아악.
그런 거대한 산거북의 몸을 마찬가지로 거대한 하얀 뱀이 휘어 감고 있었다.
수백 미터가 넘는 몸집의 거대한 백사.
온전한 모습을 갖춘 뱀 신수, 요르문간드였다.
-파충류 동지여, 너의 죽음에 애도를 진심으로 표하니, 그 의미로써 내가 너를 상대해 주마!
거북이와 뱀이, 울부짖는 태산과 달을 삼킨 대호의 뱀이 서로 얽혀 싸웠다.
거북이 신수 아쿠파라는 이에 저항했지만, 점점 조여 오는 압박에 힘을 더하는 요르문간드 탓에 등갑에 조금씩 금이 갔다.
요르문간드는 그 틈새를 향해 자신의 독니의 독을 흩뿌렸다.
치이이익!
독사들의 왕 바실리스크를 뛰어넘는 독을 지닌 요르문간드의 독이 거북이 신수의 껍질과 살점을 녹였다.
다른 쪽에서는 ‘해를 삼킨 흑조’, 까마귀 신수가 치열한 공방을 치르고 있었다.
-미이이아아아오오!
온몸에 시뻘건 불꽃을 두른, 2층 건물 높이만 한 거대한 화염 고양이 한 마리가 사방으로 화끈한 열기를 내뿜었다.
본체의 모습으로 돌아온 고양이 신수 미아오였다.
-카라스! 나는 네가 예전부터 맘에 안 들었다냐. 까마귀 주제에 ‘태양을 삼킨 흑조’니 뭐니 불리고! 냐아악!
화르르륵!
미아오의 주위에 시뻘건 뜨거운 불꽃 덩이를 만들었다.
자그마치 수백 개.
-태양을 삼켰다면 어디 한번 내 불꽃도 삼켜 맛 좀 봐라냥!
그 수백 덩이의 불꽃 세례가 까마귀 신수를 향해 쏟아졌다.
까마귀 신수 카라스는 날쌘 날갯짓으로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했지만, 불덩이가 너무 많고 빨랐다.
결국, 불덩이에 몇 방 맞은 까마귀 신수는 키에엑, 비명을 내질러 댔다.
흑호 신수 쪽도 상황은 비슷했다.
콰드득!
펜리르의 날카로운 이빨이 흑호 신수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크아아앙!
이미 죽은 존재인 흑호 신수는 목덜미가 반 이상 뜯겨 나가는 부상을 입고도 기세를 잃지 않고 싸웠다.
하지만 펜리르는 그냥 신수가 아니었다.
그녀는 고대에 영웅들과 함께하며, 비록 최하급들이었다지만 타락 군주들을 물어뜯어 죽인 업적을 지닌 늑대 신수였다.
펜리르가 권능을 사용했다.
-바람이여.
단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휘이이이익!
바람이 불어와 모여들었다.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기이하게 휘몰아진 바람이 응축되더니 늑대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 수는 무려 수십 마리.
-물어뜯어라.
타그닥!
바람의 늑대들이 흑호 신수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콰드득!
그리고 한 번에 흑호를 물어뜯었다.
-크아아아아!
온몸이 넝마가 된 흑호 신수가 울부짖었다.
세 마리의 신수들이 세 마리의 언데드 신수들을 상대했다.
그리고 남은 신수인 청웅은…….
-이 호랭이 놈들! 다 죽었다뭉!
그는 그간의 울분을 가득 담아 흑호족의 인공 소드 마스터들을 상대했다.
-고오오오옴!
포효를 내지르며 청웅이 자신이 지닌 권능을 사용했다.
쾅! 쾅! 콰아아악!
지면에서부터 바위로 된 거창들이 솟구치며 흑호족 전사들을 휩쓸었다.
“크아아아악!”
솟구치는 바위 거창에 맞은 흑호족 전사들이 즉사하거나 치명상을 입어 비명을 내질렀다.
현자의 돌로 대전사가 되었던 대전사들도 그저 목숨만 겨우 부지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청웅을 죽이기 위해 십여 명이 넘는 소드 마스터들이 달라붙었지만 소용없었다.
여러 명의 흑호족 마스터들이 오러 블레이드를 곰 신수를 향해 날렸다.
하지만.
-바위여, 솟아나라!
콰르르르르르!
지진과 함께, 거대한 바위의 장벽이 땅에서 솟구쳤다.
족히 10미터가 넘는 장벽.
흑호족이 날린 검기들은 애꿎은 장벽에 부딪쳐 펑, 퍼엉, 소리를 내며 벽을 때렸다.
-솟아나라! 솟아나라! 솟아나라!
청웅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바위의 장벽들을 여기저기에 소환시켰다.
“……!”
흑호족 전사들과 서부 수림 연맹군은 코앞에서 솟아나는 압도적인 크기의 장벽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청웅은 자신의 이명이자, 저들의 인생의 마지막을 찍어 줄 기술의 이름을 외쳤다.
-뭉개 버리는 산사태!
10미터가 넘는 바위 장벽들이 일제히 쓰러져 갔다.
서부 수림 연맹군은 자신들을 향해 점점 가까워지는 벽들을 보며 얼굴이 사색이 됐다.
“자, 잠깐……!”
쾅, 쾅, 쾅, 콰아아앙!
바위 장벽들이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지며 놈들을 휩쓸었다.
여기저기서 절규와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오며 한 번에 수백이 넘는 서부 수림 연맹군이 죽어 나갔다.
인공 소드 마스터들은 초인적인 신체 능력으로 즉사는 면했지만, 바위 더미 밑에 생매장되어선 옴짝달싹도 못 하는 상태가 됐다.
“신수님들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대자연의 전사들이여, 나아가라!”
“와아아아아아!”
그런 압도적인 힘으로 언데드들과 서부 수림 연맹군의 선두를 휩쓸어 버리는 네 신수들의 모습에 동부군은 사기가 최고조로 올라 마구 치고 들어갔다.
청웅족이 결코 부서지지 않는 바위처럼 서부군을 붙들고 버텼고.
은랑족은 재빠른 스피드로 치고 들어와선 발이 묶인 서부군 사이를 휩쓸어 혼란을 야기했다.
하늘에선 그리폰을 타 제공권을 확보한 적묘족이 화살과 투창을 날리고 주술로 공격하며 머리 위에서 급습했다.
그들 하나하나가 유기적으로 역할을 맡아 전투했고, 그 삼박자가 서부 수림 연맹군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화마를 착실히 꺼트려 나갔다.
부덕의 비발드는 그 광경을 보며 피가 말라 가는 기분을 느꼈다.
“불꽃 고양이, 뭉개 버리는 산사태, 달을 삼킨 대호의 뱀…….”
분명 비열의 칼리프가 죽은 후 하수인들을 통해 조사해 이미 힘을 잃은 신수들이라는 것이 확인된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달랐다.
‘힘을 잃긴 개뿔! 쌩쌩 날아다니잖아!’
대체 어떻게?
어떻게 이미 힘의 상당수를 잃었던 신수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느냔 말이다!
빠드득, 그가 충혈된 눈으로 한쪽을 노려봤다.
“아덴 레메스…….”
조직의 대업을 지속적으로 방해해 온 인물.
그리고 비열의 칼리프를 죽이고 현자의 돌을 부순 것으로 확인된 원수.
놈은 현재 카안과 일대일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상급의 경지에 오른 카안의 공격을 모두 막고 흘려 내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아덴 레메스 또한 상급 소드 마스터에 오른 무인이라는 소리였다.
그가 분노마저 섞인 음성을 흘렸다.
“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것이냐!”
* * *
-정령룡 ‘레오’의 가디언 ‘미아오’가 교전 중입니다.
-정령룡 ‘레오’의 가디언 ‘요르문간드’가 교전 중입니다.
-정령룡 ‘레오’의 가디언 ‘펜리르’가 교전 중…….
아덴은 싸우는 와중에도 머릿속에서 연신 울리는 메시지들을 들었다.
아덴이 슬쩍 신수들의 무시무시한 활약을 봤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해 준 녀석을 그는 칭찬해 주기로 했다.
‘레오, 잘했다. 굉장한걸!’
-레오는 위대해!
잔뜩 뻐기며 우쭐해하는 레오의 감정이 정신 감응을 통해 느껴졌다.
레오는 현자의 돌에 갇혔던 신수들의 신성을 흡수했다.
그리하여 2차 성장까지 마친 레오는 두 가지 능력을 얻었다.
[가디언 임명]정령룡은 환수계에서도 위계가 높은 최상위 종족입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군주’의 자질을 가집니다.
-특정 존재를 ‘가디언’으로 임명하여 힘을 나눠 줄 수 있습니다.
-가디언으로 삼을 수 있는 존재는 상호 간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레오는 정령룡이고, 정령룡은 ‘환수계의 조율자’라고도 칭해질 만큼 위대한 환수다.
‘그리고 신수는 환수와 상당히 흡사한 존재지.’
날 때부터 상위 존재인가 아닌가의 차이만 있을 뿐, 신수나 환수나 거기서 거기다.
이 사실을 떠올린 아덴은 신수들에게 레오의 가디언이 될 것을 제안했고, 신수들은 이것을 받아들였다.
아직 태어난 지 한 해도 지나지 않은 어린 신수 밑에 들어간다니,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다.
하지만 힘을 회복할 수 있다는데 뭔들 못할까?
얄팍한 자존심보단 잃은 힘을 향한 갈망이 더 컸다.
그리하여 레오는 자신이 흡수한 신수들의 힘을 그들에게 공유해 주었다.
물론 신성을 가진 주체는 레오이기에 레오가 공유를 끊어 버리면 도로 아기자기한 어린 신수들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만 말이다.
콰아아아!
카안이 휘두른 거창이 붉은 핏빛의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냈다.
상급 소드 마스터의 어마어마한 힘이 담긴 검기.
시뻘건 광휘의 해일이 아덴을 집어삼키기 위해 덮쳤다.
‘마스터 경지였다면 어떻게 해 보지도 못하고 당했겠군.’
아니, 애초에 그랬다면 대족장 카안을 상대하러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승산이 없으니까.
초인의 경지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초인의 경지뿐인 것처럼, 상급 소드 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상급 소드 마스터뿐이니까.
아덴이 눈앞에서 다가오는 붉은 해일을 앞에 두고 씨익 미소 지었다.
화르르륵!
바알제불의 검신을 흑염으로 감싸여 타올랐다.
암천의 불꽃.
그가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후와아아아앗!
수많은 걸신 아귀의 형상을 품은 검은 불길이 붉은 해일에게로 쇄도했다.
암천 검무 1식, 아귀검.
끝없는 식탐을 품은 흑염이 카안의 붉은 파괴의 빛을 갉아먹어 양쪽으로 갈라냈다.
핏빛 파도가 잘려 나갔다.
콰아아앙!
대신 오러의 잔재가 주변을 휩쓸어 대지에 지독한 상처를 남겼다.
무심한 눈빛이던 대족장 카안의 눈썹이 이에 순간 꿈틀거렸다.
아덴이 보인 무위가 예상 이상이었던 탓이다.
“……강하군.”
카안이 그리 말하며 창을 고쳐 잡았다.
아덴은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약한 거겠지.”
아덴이 비아냥거리며 응수했다. 그러면서 그 자신도 자세를 바로 했다.
녀석이 아덴을 향해 말했다.
“나는 네놈을 베어 냄으로써 나의 정의가 정답이라는 것을 증명하겠다.”
그 의지를 증명하듯 카안의 거창에 붉은 오러가 모여들었다.
“그러냐? 그럼 난 널 개처럼 패서 네가 호랑이 새끼가 아니라 그냥 개새끼라는 걸 증명해 주지.”
화르르륵!
아덴의 암천의 불꽃이 거세게 타올랐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폭풍이 닥치기 전의 고요한 바다처럼 짧은 정적이 둘 사이에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짧았다.
“흡!”
“흡!”
두 사람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타아아앗!
순식간에 창과 검이 부딪혔고.
콰아아아아아앙!
폭풍 전야가 깨지며 전장 한가운데에 폭풍이 불어닥쳤다.
흑염과 적광으로 이루어진 폭풍이었다.
* * *
서부군과 동부군의 격돌에서 우세를 선점한 것은 동부군이었다.
동부의 사대 신수.
미아오, 요르문간드, 청웅, 펜리르.
신수들이 서부군이 이끌고 온 언데드 신수들을 상대하고, 동부군을 원조해 준 덕이었다.
여기에 전사들이 몬스터들을 타고 함께 싸우고, 후방에선 샤먼이 주술로 아군의 활력을 돋우며 기세를 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부군이 밀리는 것은 아니었다.
강자존,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서부 수림의 부족들의 집합체가 서부 수림 연맹군이다.
그만큼 그들 하나하나가 고강한 전사이며 그들의 무기 앞에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뭣보다, 두 군세가 서로 팽팽한 교착상태에 들어가게 만드는 존재가 서부군에 있었다.
“늑대 년, 죽어라!”
화아아아앗!
검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날아들어 왔다.
현자의 돌 조각을 삼킨 흑호족 전사의 공격이었다.
“히라아아앗!”
카아아아!
이에 은랑족 족장 성난 이빨이 힘껏 기합을 내질렀다.
마치 늑대의 송곳니처럼 휘어진 곡도 위로 은색 오러 블레이드를 흩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서걱!
흡사 성난 늑대가 물어뜯는 것같이 거칠면서 날카로운 검기가 흑호족의 오러 블레이드를 파훼시키곤 역으로 놈의 왼쪽 어깨를 물었다.
“크어억!”
역공을 맞은 흑호족 마스터 한 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욱신.
그녀는 오른쪽 옆구리에 느껴지는 고통에 인상을 구겼다.
전투 도중에 그만 입은 상처였다.
지금 당장 지혈을 해야 할 만큼 깊은 상처.
하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늑대들의 족장이 지쳤다!”
“조금만 더 하면 처치할 수 있어!”
그녀의 눈앞에는 아직 네 명이나 되는 흑호족 마스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붉은 광휘를 내뿜는 오러 블레이드의 빛이 사방에서 아른거린다.
그녀가 이를 악물며 치를 떨었다.
‘비열한 흑호족 놈들, 네놈들 같은 잡것들이 대전사의 증표를 쓰다니!’
대전사의 증표, 대수림의 부족들이 오러 블레이드를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흑호족의 38인의 소드 마스터들.
그들 대부분을 뭉개 버린 산사태 청웅이 상대했지만, 열 명 이상의 흑호족들은 동부군의 족장들과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은랑족의 족장이자 부족의 유일한 대전사로 10년 이상을 살아온 그녀지만, 설마 저 빛 무리를 저렇게 싸구려로 흔하게 보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눈앞에 있는 흑호족들은 분명 대전사의 증표를 사용하고 있었다. 힘도, 스피드도 대전사에 걸맞았다.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대전사가 아니었다.
‘흉내만 내는 가짜 놈들 같으니.’
힘은 분명 대전사에 걸맞지만, 익히 들었던 대로 실력은 경지에 못 미쳤다.
그 덕분에 이렇게 다수를 상대로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은색 오러와 흑호족의 검붉은 오러가 마구 부딪히며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전투가 이어질수록 성난 이빨의 몸엔 상처가 늘어 갔다.
하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흑호족 전사들의 얼굴이 일그러져 갔다.
‘대전사에 오른 우리들이 합공하는데도 아직도 버티다니.’
‘질긴 늑대 년…….’
‘분명 우리도 같은 대전사의 경지거늘……!’
본래 그들은 중하급 소드 오러 경지에서 맴돌던 전사들이었다.
그러나 현자의 돌 조각을 삼키고 초인으로 각성한 각성했다.
일족 스무 명 중 열아홉이 못 버티고 죽어 나가는 끔찍한 고통을 감내했다.
그 결과, 그토록 고대하던 대전사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에 우월감과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강함을 진리로 여기는 그들에게 있어 더없이 중요한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진짜 대전사’ 은빛 늑대 부족의 족장과 싸우며 그들은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애써 수치를 감내하며 일곱 명이 합공을 했다.
그런데 동료가 세 명이나 죽었고, 저 늑대 년은 지쳤을지언정 여전히 은빛 곡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들에게 이리 말하는 것 같았다.
‘너희는 그저 가짜다. 그저 반쪽짜리의 나약한 녀석들이다.’라고 말이다.
꽈아악!
그들이 무기를 쥔 손에 힘줄이 불거졌다.
‘웃기지 마! 그럴 리가 없어!’
이건 잘못되었다!
자신들은 나약하던 모습을 벗어나 진정한 강자가 되었단 말이다!
흑호족 전사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부정했다.
그러곤 저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은랑족 족장을 향해 증오를 맹렬히 태웠다.
창! 창앙! 차아악!
그럴수록 그들의 오러 블레이드는 거세게 일렁였고, 공격은 더 과격해졌다.
“크윽.”
성난 이빨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역시 아무리 질이 낮더라도 숫자로 밀어붙이니 조금씩 수세에 몰렸다.
하나의 검을 막아도 다른 방향에서 다수의 검이 공격해 들어온다.
이미 세 명이나 되는 흑호족 전사를 베었지만 아직도 상당한 수가 남아 있었다.
‘어떻게 방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