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s Eldest Son Is A Regressed Hero RAW novel - Chapter (49)_4
근데 아무래도 자신이 속한 카르텔은 글러먹은 것 같았다.
소매치기한 금화는 전부 내놓으라니 참나.
이 금화 한 닢을 가져다 바쳐 봤자 은화 두 닢 정도로 바뀌어서 돌아올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꿀꺽하고 싶지만…….’
들키는 즉시 엿 되어 버릴 거다.
카르텔에서도 쫓겨나고 딴 놈들의 먹잇감이 되어 자고 일어나 보니 ‘웰컴 투 노예 경매’ 신세가 되어 버리겠지.
안 그래도 주변에서 생긴 게 참 곱상한 게, 남색가 귀족들이 좋아할 것 같다며 사흘 굶은 다이어 울프처럼, 얼굴을 볼 때마다 입맛을 다시는 놈들이 널렸다.
‘암, 차라리 삥 뜯기는 게 낫지. 나의 순결을 털이 숭숭한 사내놈에게 뺏기는 것만은 사양이라고.’
잠시 몸을 부르르 떤 소년이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었다.
“이걸로 끝내긴 아쉬운데, 한 놈만 더 털어먹을까나?”
소매치기 소년이 주변에 사냥감을 두리번거리며 탐색했다.
“오! 저 양반이 좋겠다.”
가죽 갑옷을 입은 늙은 용병이 허리춤에 돈주머니를 차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캬! 고놈의 주머니, 배가 빵빵한 게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이는구나!
입에 흐르는 침을 닦으며 소년이 늙은 용병에게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자, 이제 실수하지 않고 평소처럼 슬쩍하고, 가짜 주머니를 대신 넣기만 하면 돼.’
저렇게 무게가 상당해 보이는 주머니를 그냥 무식하게 빼냈다가는 바로 들킬 것이다.
돈주머니의 크기와 흔들리는 정도만 보아도 무게가 얼추 예상이 갔다.
적당한 무게만큼 돌을 채워 넣은 이 가짜 주머니랑 바꿔 달아 두면 들키지 않으리라.
늙은 용병의 근처까지 자연스럽게 행인처럼 측면으로 접근한 소년은.
‘지금이다!’
나비처럼 접근해 벌처럼 슬쩍한다!
게 눈 감추듯 빠르고 능숙한 솜씨로 돈주머니를 빼냄과 동시에 돌이 채워진 가짜 주머니를 달았다.
여기서 이제 많은 초보 동종업자 놈들이 소매치기함과 동시에 뛰어 도망치는 우책을 범한다.
어린아이가 뛰어 봤자 어른보다 얼마나 오래 도망칠 수 있겠는가.
물론 익숙한 지형과 인파를 이용해 따돌릴 수 있지만 그런 짓도 한두 번이다.
반복하다 보면 결국엔 붙잡히거나 얼굴이 알려져 오래 버티지 못한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걷는다! 나 범인 아니요, 하며 의심받지 않게!’
소매치기 소년은 낯짝 두껍게 철판을 깔곤 소풍 나온 아이처럼 느긋하게 걸어 용병을 스쳐 지나갔다.
슬쩍 돌아보니 용병은 자기 주머니가 뒤바뀐 것도 모르는지 제 갈 길을 계속 가고 있었다.
‘오예! 안 들켰다!’
소년이 속으로 쾌재를 내지르며 자연스럽게, 하지만 빠른 걸음으로 멀어졌다.
뒷골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녀석은 기쁨의 함성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쉽다 쉬워! 이 묵직한 거 좀 봐라. 이게 다 얼마냐?”
이 정도 양이면 카르텔에 삥 뜯겨도 보름 정도는 소매치기를 안 해도 끼니 걱정 없을 것이다.
“그렇게 빤히 보이게 돈주머니를 달고 다니다니, 용병 할아버지 고맙게 잘 먹었습니다! 흐흐!”
“허허! 그렇다니 다행이로구나!”
“……!”
갑자기 바로 뒤에서 대답이 들리더니 쑤욱, 소매치기 소년이 어미 사자에게 물린 새끼 사자처럼 목덜미를 잡혀 들려 올려졌다.
“으아아악!”
“허허허! 하마터면 눈치채지도 못할 뻔했지 뭐냐! 솜씨가 좋구나, 맹랑한 꼬마야.”
고개를 들어 보니 돈주머니의 주인인 그 늙은 용병이 제 뒷덜미를 잡고 있었다.
오 이런, 젠장.
이거 제대로 망해 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빌어야겠다.
그럼 운이 좋으면 몇 대 맞고 끝날 수도…….
근데 늙은 용병이 소년을 보곤 눈을 빛냈다.
“허허! 꼬마야. 근골이 무척 뛰어나구나!”
용병의 눈에서 짙은 욕망을 느낀 소년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뭐? 뭐가 뛰어나?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설마 이 영감탱이 그쪽(?) 계열인 건가?
소매치기 소년의 얼굴빛이 사색이 되었다.
“히익! 자, 잘못했어요!”
제발 내가 생각하는 그것만은 아니라고 해 줘!
그때 소년의 신체를 집요하게 살피던 늙은 용병이 씨익 위험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이제부터 넌 내 제자다!”
“……네?”
“너를 최고의 용병으로 키워 주마! 허허허!”
“자, 잠깐만요! 우아악!”
그러곤 그대로 짐짝처럼 들쳐 업혀졌다.
아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안 돼! 놓으라고, 이 변태 영감아!
* * *
실로 오랜만에 보게 된 스승님의 얼굴에 아덴은 오래전의 첫 만남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후 스승님의 성적 취향이 실로 정상적인 인간이란 것을 알게 되기까진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지.
자신이 그런 오해를 품었다는 걸 알자 껄껄 웃으면서 죽도록 두들겨 패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한낱 소매치기 소년에 불과하던 자신의 재능을 끌어 올려 주셨던 인생의 은인인 스승.
용병왕 발칸.
그리고 실종되어 종적을 찾을 수 없었던 남자.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학살신이 무사히 잘 지내고 있다는 생존 신고를 해 준 덕에 신경 끄고 지낼 수 있었다.
인연이 되면 다시 보겠지.
그런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설마 거대한 호랑이를 타고, 괴상한 추종자들을 이끈 채 군주급 균열에서 등장하는 형태로 만날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
기억 속 모습 그대로의 노인네가 껄껄 웃었다.
“허허, 본좌는 이미 제 소개를 했다만, 자네도 이름을 좀 알려 주면 좋겠군?”
“……아, 네.”
아덴은 어떻게든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진정하자, 진정해. 어차피 이번 생에선 나랑 아무 인연이 없는 양반이야. 기억도 못한다고.’
아덴이 과거로 회귀하고 레메스 공작가의 장남으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용병왕과의 인연은 이미 사라진 인연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스승은 자신의 스승이 아니다.
그 사실에 매우 착잡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내리눌렀다.
지금은 일단 상황 파악이 더 중요하다.
아덴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제 신분을 밝혔다.
“저는 레메스 공국의 대공자 아덴 레메스입니다. 무명이 자자하셨던 용병왕 발칸을 뵙게 되어 영광…….”
그러나 이어지는 발칸의 말에 아덴은 말을 잇질 못했다.
“호오? 아덴? 내 제자의 이름이랑 똑같군. 허허, 실로 재미있는 인연일세.”
쿵,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방금 뭐라고?
“제자…… 말입……니까?”
“그래! 내 하나뿐인 제자 말일세! 원래는 소매치기 노릇이나 하면서 빈민가에서 굴러먹던 꼬맹이였는데 어찌나 재능이 뛰어나 보이던지, 바로 잡아다…….”
“……스승님?”
“음?”
아덴은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스승님이 진짜로 ‘스승님’이란 것을.
* * *
“그러니까, 평소처럼 의뢰를 마친 후, 술 마시고 퍼질러 자고 있었는데, 깨어나 보니 ‘무림’이란 곳에 소환되어 있었다고요?”
“그렇단다.”
“그리고 스승님을 소환했던 놈들이 ‘천마신교’라는 곳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원래 자신들의 신인 ‘천마’를 소환하고자 했고요?”
“나도 몰랐는데 우리 무문의 마나 연공법의 시초가 천마란 양반이라더라. 똑같은 마나 연공법을 익히고 있어서 나를 그 양반으로 오해하고 소환된 모양이다.”
“이후 그 ‘무림맹’이란 곳에게 핍박받아 무너지기 직전이던 천마신교를 일으켜 세웠단 말이죠? 스승님에게 대드는 이들은 죽을 때까지 패면서.”
“그냥 맘에 안 드는 놈들을 족치다 보니 그렇게 되더구나. 그렇게 마나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마나 무인들이 많은 땅은 처음 봤단다. 아덴 너도 가 보면 재밌을걸.”
“……정말 엄청난 일을 겪으셨네요.”
“허허허! 어디 제자만 할까! 지금 네 모습만 봐도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는지 알 만하다. 몸이 바뀌어서 아예 알아볼 수가 없더구나.”
“이게 어디서 제자를 사칭하느냐며 절 죽일 뻔하셨죠.”
“크흠, 그건 이미 사과했지 않았니? 이만 기분 풀거라.”
그가 무안한 듯 겸연쩍어 하며 시선을 피했다.
설마 초월의 경지에 오르고도 죽음의 위협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이 망할 괴물 영감 같으니.
군주급 균열의 등장이라는 대사건은 ‘무림’이란 다른 세계 인간들의 방문이란 사실이 밝혀지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균열을 통해 나온 천마신교의 무사들과 스승님은 일단 임시로 레메스 공작가에 머물기로 하며 공작가로 왔다.
아덴은 스승님과 단둘이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가졌고 말이다.
그래서 듣게 된 스승님의 모험담은 열 권짜리 소설로 써도 좋을 만큼 파란만장했다.
정의의 탈을 쓰고 뒤에서 온갖 구린 일을 벌이던 ‘무림맹’이란 마나 무인 연합의 득세.
무림맹의 총화 앞에 교주까지 잃은 천마신교는 마지막 도박으로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는 ‘천마 소환 의식’을 펼쳤고, 이에 천마 대신 소환된 스승님.
이후 온갖 기인과 기연, 아리따운 여인들과 강력한 적들과의 만남.
짜릿하면서도 때론 슬픈 이별까지 담겨 있는 스승님의 모험!
결국엔 무림맹의 주인, 무림맹주란 작자가 사실은 천 년 전에 죽은 걸로 세간에 알려졌으나 사실 사특한 수법으로 영혼만 몸에서 빠져나와 복수를 꿈꾸던 천하제일 대악인, ‘혈마’란 것이 밝혀지며 그와 목숨을 건, 무림의 존패를 걸린 싸움을 벌이노니…….
‘와 씨, 나도 모르게 넋 놓고 들었네.’
그만큼 스승님이 겪은 모험담은 실로 엄청났다.
왠지 자신이 겪은 일이 초라하게 보일 정도로 말이다.
-‘성화의 주인’이 “설마 그 망할 새끼가 여태껏 살아 있었다니…….”라며 이를 갑니다.
‘그러곤 우리 스승님에게 걸려 뒈져 버렸고요.’
-‘성화의 주인’이 정말 면목 없다며 우울한 한숨을 내쉽니다.
-‘학살과 죽음의 신’이 “활활아, 힘내!”라며 격려합니다!
아무튼 스승님은 그 ‘혈마’라는 인간과의 전투를 통해 그랜드 마스터, 그쪽 세계의 말로는 ‘생사경’이라 불리는 경지에 올랐다.
생사경에 오르며 얻은 깨달음과 천마 소환진의 원리를 역이용하여 원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는 것이 스승님의 설명이었다.
‘음, 이거 혹시 스승님이 5년만 빨리 왔어도 내가 생고생할 필요가 없던 거 아냐?’
터무니없이 강해져서 돌아온 스승님의 모습을 보니 스승님 혼자 힘만으로도 이 세상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근데 무슨 일로 돌아온 겁니까? 설마 나 보겠다고 차원까지 넘어온 건 아닐 테고.”
자신이 아는 스승님의 성격상 ‘용병이 독립했으면 각자 알아서 갈 길 가야지.’ 하며, 인연이 우연히 닿았으면 몰라도 굳이 얼굴을 보러 찾아올 양반은 아니다.
“허허! 아덴 널 보러 온 게 맞단다!”
그런데 들려온 스승님의 대답은 조금 의외였다.
그러곤 대뜸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제자야, 네가 나 대신 천마신교를 맡아 주면 좋겠구나.”
“……예?”
“네가 천마 하라고.”
상상도 못 한 제안을 스승님이 꺼냈다.
* * *
“하아, 이 썩을 영감탱이가 진짜…….”
아덴이 근심으로 가득한 표정으로 바람 쐬러 거리로 나왔다.
머릿속에서 아직도 빌어먹을 스승님이 하신 이야기들이 떠나질 않았다.
천 년 넘게 이어진 종교 집단의 수장직을 제자에게 떠넘기기 위해 세계를 넘어왔다니.
심지어 그 은퇴 사유마저 가관이다.
“크흠, 제자야. 나 결혼한다.”
“……예?”
“빙궁주라고 그 왜, 꺼무칙칙한 놈들 사이에 혼자만 새하얗던 미인 있지 않았냐? 그 여자랑 백년가약을 맺었단다.”
이런 나잇값 못하는 노인네가 진짜!
신혼생활을 만끽하며 놀고먹고 싶다는 이유로 차원을 넘어 제자를 찾아온 것이다.
“원래는 그쪽 세계에서도 제자 삼아 떠넘길 놈들을 찾아봤는데, 눈에 차는 놈들이 없더구나.”
천마교주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천마의 마나연공법, 그러니까 용병왕 마나 연공법을 익힌 사람뿐이다.
그런데 용병왕 마나 연공법을 익힐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자는 매우 극소수다.
그래서 결국엔 그쪽 세계에서는 포기하고 우리 세계로 왔다는 거다.
“썅, 이제 좀 쉬나 싶었는데, 뭐? 나더러 사교의 교주 노릇 하라고?”
-성화의 주인이 당신의 발언을 몹시 불쾌해합니다.
“됐습니다. 불쾌해하든 말든 남에게 하고 싶은 말 다 할 생각이니!”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스승님의 나잇값 못하게 우람한 팔뚝이 그의 안면과 하이 파이브를 하게 될 것이다.
거절은 불가.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그냥 눈 한 번 딱 감고 교주 노릇 해 본다.
둘째는…….
“후우, 어디서 제자라도 거둬야 하나?”
바로 자기 대신 다른 놈에게 떠넘기는 거다.
적당히 용병왕 무문에 재능을 가진 놈을 잡아다 제자로 삼아 가르치고 자신 대신 천마신교로 보내 버리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자질을 가진 놈이 흔하지 않다는 건데.
아무래도 인맥을 다 동원해서라도 서 대륙 전역의 아이들을 다 살펴봐야 할 거 같았다.
그렇게 아덴이 앞으로의 계획을 짜며 길을 거닐 때였다.
아덴이 제 허리춤을 향해 다가오는 작은 손길의 기척을 느꼈다.
척!
“으아아악!”
“넌 또 뭐냐? 소매치기?”
이에 아덴이 반사적으로 감지해, 제 물건을 훔쳐 가려고 한 꼬맹이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죄,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
새끼 고양이처럼 들린 채로 백발의 붉은 눈을 지닌 소매치기 소년이 바들바들 떨었다.
‘어라, 이 녀석?’
백발과 붉은 눈.
어째 얼굴이 그가 알고 있는 어떤 놈이란 많이 닮아 있었다.
그리고 더 우연스럽게도, 자세히 살펴보니 간신히 기준선에 걸쳐지는 정도지만 자질이 제법 괜찮았다.
“인연이 된다면 다음에 또 보자꾸나.”
왠지 어떤 망할 녀석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피식.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세상을 구한 용병은, 겁먹은 눈망울의 소매치기 소년을 보며 웃었다.
“꼬마야, 근골이 무척 뛰어나구나?”
그 미소가 실로 사악해 보였다.
《영웅, 공작가 장남 되다》 마칩니다
Jay
Please update. Th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