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00)
99화에계속 –
99화 발견
“이거…… 장부를 봐도 딱히 수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데.”
야심한 밤.
한참 동안 엘레나가 건네준 스크롤을 들여다보던 스테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여러 숫자들과 기호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지만, 그중에서 뭔가 이상하다고 여길 만한 기록은 없었다.
안 그래도 서랍장을 일일이 확인해 보느라 온몸이 뻐근해진 엘레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다른 선반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들이 들쑤시고 있는 장소는 다름 아닌 제미니 상회의 사무실. 누군가 들이닥치기라도 한다면 단숨에 범죄자로 몰릴 상황이니 조금은 조심스러워질 만도 했지만, 두 사람은 장부와 스크롤들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스테치와 엘레나의 시선이 방 입구 쪽으로 향했고, 때마침 막 안으로 들어선 지부장 대표 류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잠시간의 불편한 적막이 흐른 직후, 스테치가 물었다.
“뭐? 왜? 무슨 일인데?”
“『타임 리미트다. 이제 10분 뒤면 빙의도 곧 끝날 거야.』”
이미 류트의 몸은 메멘토 모템에 의해 강탈된 지 오래. 그는 뒤로 빙글 돌아서더니 그대로 문을 걸어 잠갔다.
카시아의 말에 의하면 노벨리아는 자신이 신뢰하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곤 병적인 경계심을 보인다고 한다.
최근에는 그 정도가 심해진 탓에 행적마저 묘연해졌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 때문에 스테치는 먼저 그와의 연락망을 가지고 있을 상회에 접촉할 필요가 있었다.
상회의 주요 관계자가 누군지 알아내 접촉할 수 있다면, 그 이후부턴 메멘토 모템의 능력을 써서 정보를 캐내면 될 뿐이었다.
‘으음…….’
태연하게 대화하는 스테치나 메멘토 모템과는 달리, 엘레나는 영 찜찜한 표정으로 류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메멘토 모템의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 스테치는 아티팩트 안에 내재된 자의식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는 지금껏 메멘토 모템에 대해 비밀로 부쳐 둔 이유에 대해 ‘엉뚱한 오해를 살까 두려워서’라고 밝혔다.
하긴, 어둠의 숲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스테치가 미쳤거나 악마에 씌었다고 착각했으리라.
‘하지만 영혼을 가진 아티팩트라니…… 그런 게 가능하긴 한 걸까?’
스테치의 아티팩트가 다른 것들에 비해 강력하고 이질적이라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덕분에 그쯤 되면 자의식이 있어도 이상할 것 없다고, 되레 스스로 자연스럽게 납득해 버릴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색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엘레나는 메멘토 모템에게 간간히 경계의 눈초리를 쏘아 보내고 있었다.
“이걸 봐.”
스테치는 엘레나에게 둘둘 말려 있던 종이 뭉치를 한꺼번에 내밀었다.
엘레나가 하나하나 조심스레 살펴보니, 글귀에는 간간이 노벨리아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었다.
“카시아의 말이 맞았어. 난 처음엔 단순히 노벨리아가 그냥 겁 많고 편집증 심해서 숨어 지내는 줄 알았는데, 최근엔 정말로 외부와의 접촉 자체를 줄이고 있는 모양이야.”
편지의 내용은 대부분이 류트에게 보내는 지시문이었다. 상회의 향후 운영 방침부터, 온갖 크고 작은 거래까지 전부 이를 통해 결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서면에 기록된 날짜로 보았을 때, 연락은 이미 1개월 전부터 끊겨 있었다.
“이 사람이 카시아를 공격한 배후자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지금으로선 판단할 재료가 너무 부족해. 장부에도 아무런 기록이 없고…… 하다못해 당사자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면 모를까.”
스테치가 류트(메멘토 모템)를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빌리티 ‘시져’는 빙의한 대상의 움직임을 조종함과 동시에 기억까지 읽어 낼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이었지만, 그렇다고 만능은 아니었다. 억지로 숙주의 마음속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려 들었다간 정신이 붕괴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되도록 흔적이 남지 않길 바라는 스테치에게 있어, 류트의 정신이 망가지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억지로 류트의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다면, 그땐 이미 돌이킬 수가 없을 것이다.
“뭐, 류트의 기억을 굳이 헤집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보아하니 노벨리아의 현황에 대해선 본인도 아는 바가 없는 듯하고.”
스테치는 노벨리아에게 보냈다가 반송된 수많은 편지들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엘레나는 편지 중 하나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여기 이런 말이 쓰여 있네요.”
그녀의 손가락 끝이 가리킨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갤러우드 상회는 이미 사일라스제 병기구의 초동 물량을 저희보다 더 많이 확보했습니다. 예산과 계획을 잘못 짠 저의 잘못이 큽니다.
다행스럽게도 최악의 상황은 면했습니다만, 리버펠 씨가 나서 주시지 않으신다면 제미니 상회가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답장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스테치는 문득 낮에 보았던 류트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작 행상인 하나를 지켜 준 것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감사를 표하던 그의 모습. 편지의 내용대로라면, 상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도움을 준 스테치가 류트의 눈에는 은인처럼 보일 법도 했으리라.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은 결국 이거야. 지금 이 편지가 어디로 보내지는지, 그리고 그것을 누가 수신하는지. 이 모든 걸 역추적하면 노벨리아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겠지.”
스테치는 메멘토 모템을 흘끗 바라보았고,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말했다.
“『편지를 주고받는 방식은 노벨리아가 준비한 연락책이야. 그러므로 류트가 알고 있는 건 편지를 놓아 두는 장소일 뿐, 정작 그것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지. 역시 우리가 직접 확인하러 가는 수밖에 없어.』”
“어디로 가야 하는데?”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도시의 외곽.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아.』”
“좋아, 그럼 그 장소에 미끼용 편지를 작성해서 심어 놓자고. 편지 배달인을 미행해 보면 노벨리아에 대해 뭔가 알아 낼 수 있을 거야.”
스테치는 주변을 정리한 뒤 조용히 문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엘레나도 그 뒤를 따르려는 찰나,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메멘토 모템을 가만히 응시했다.
“『왜 그래?』”
“역시…… 아까부터 든 생각입니다만, 메멘토 모템이라는 이름은 너무 길고 불편해요.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애칭이라도 새로 하나 짓는 게 좋겠어요.”
“『뭐?』”
엘레나는 메멘토 모템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훌쩍 방을 나가 버렸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에서, 메멘토 모템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애꿎은 뒤통수만 긁어 댔다.
“『……그런가?』”
그리고 그 다음 날,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스테치와 엘레나는 상회에서 가져온 편지를 그대로 봉투에 넣어, 도시 광장 한가운데에 위치한 분수대로 가져갔다.
분수대의 테두리를 구성하는 벽돌 틈의 빈 공간에 봉투를 집어넣은 스테치는 적당히 시간을 때우며 분수대 근처를 감시했다.
메멘토 모템이 읽어 낸 류트의 기억이 맞다면, 편지가 이동하는 것은 모두가 잠든 심야가 될 터.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류트나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가 확인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흐르고, 어둠이 내려앉은 광장에 후드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슬며시 나타났다.
지면을 미끄러지듯 조용히 걸어가는 그의 모습에 스테치는 몸을 바짝 엄폐물 뒤로 붙였다.
“아텔리어 씨, 조심하세요. 보기엔 어설퍼 보여도 경계심이 상당합니다.”
“……거리를 유지하고 쫒아가자. 《애니멀 인스팅트》.”
류트의 기억을 읽느라 어빌리티 시져를 한 번 써 버린 탓에, 지금부턴 직접 발을 움직여서 뒤쫓아야만 했다.
사방이 빛 한 줌 없이 어두컴컴했지만, 스테치와 엘레나는 편지에게 접근하는 운송꾼의 모습이 밝은 대낮처럼 똑똑히 보였다.
탁.
얼음을 딛고 분수대 위로 올라간 운송꾼은 용 주둥이 안에 들어 있는 편지를 낚아챘다. 스테치가 찍은 봉투의 소인까지 꼼꼼히 확인한 그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것을 포켓에 쑤셔 넣었다.
은밀하고 신속하게 도시 근처 한적한 숲까지 도달한 운송꾼은,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이 되어 어딘가로 향했다. 제 아무리 주변을 잘 살펴 봤자 일반인의 눈으로 어둠속에서 200m 가량 떨어진 두 사람을 발견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어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말도 타지 않고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운송꾼의 뒤를 쫓아, 추적을 계속 이어나가던 스테치는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 빽빽하게 솟아오른 나무들의 가지 틈새로 거대한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방향으로 가다 보면 분명…….’
윌란.
북부의 가장 큰 산 중 하나인 윌란은, 1년 내내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탓에 뿌리부터 꼭대기까지 새하얀 덩어리로 보일 지경이었다. 스테치는 운송꾼이 윌란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선 혼란에 빠졌다.
‘어딜 가려고 하는 거지? 목적지는 다른 도시나 왕국이 아니었던 건가?’
윌란은 크로마토스 제국과 라켄 공국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만약 운송꾼이 공국으로 갈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이동 경로를 바꿔 산을 우회해야만 했다.
서벅-.
어느덧 주변은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들로 가득했다. 공기 중으로 퍼지는 입김을 본 스테치는, 무심코 추위에 몸을 떨었다. 엘레나는 바닥에 남은 운송꾼의 행적을 따라 산행길에 올랐고, 스테치는 그녀가 뻗는 손을 붙잡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괴물의 주둥이처럼 커다랗게 뚫린 ‘입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운송꾼은 이미 안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동굴이 있었을 줄은…….”
“숨겨진 아지트인지, 아니면 어딘가로 향하는 통로인지. 자세한건 들어가 봐야 알겠군.”
상대가 잠깐 시야에서 벗어나 봤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스테치와 엘레나는 망설임 없이 동굴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 * *
동굴의 길이는 상당해서, 두 사람은 거의 이틀씩이나 꼬박 어둠속을 헤매야만 했다.
혹시라도 들킬 것을 우려해 불도 못 켜고 걷기만을 계속하다, 바깥으로 빠져나왔을 땐 막 떠오르는 햇빛에 눈이 부셔 한참을 찡그려야 할 지경이 되었다.
“후아.”
“이렇게까지 추적이 길어질지 누가 알았겠어요.”
엘레나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운송꾼은 몇 번인가 휴식을 취하긴 했지만,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 체력으로 스테치네가 숨 돌릴 틈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거 놀랐는데. 설마 산에 이런 비밀 루트가 숨겨져 있었다니.”
동굴의 복잡한 길을 돌아다니느라 방향이 조금 헷갈리긴 했지만, 나와 보니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라켄 공국.』
산 아래로는 라켄 공국의 국경지대가 내려다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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