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04)
103화에계속 –
103화 천재일우
결국, 오두막 안으로 몸을 숨긴 드워프는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았다.
아는 것 하나 없이 너무 성급하게 접근했나 싶었던 스테치는 하는 수 없이 일단 되돌아오기로 마음먹고는 넓은 대로까지 빠져나왔다.
『기껏 안내해 줬더니 왜 포기하는 거야? 망토 붙잡으면서 검 하나 만들어 달라고 애원이라도 해 보지 그랬어.』
‘난 그 사람이 대장장이인 줄도 방금 알았…… 잠깐, 너 알고 있었어?’
어딘지 미심쩍은 말투에 스테치가 묻자, 메멘토 모템은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드워프처럼 평생을 쇠나 흙과 마주하고 사는 생물들은 말이야, 그 냄새가 체내에 스며들어서 잘 지워지질 않아.』
그런 게 있다고? 스테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메멘토 모템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 의미에서 저놈은 앞에서 봐왔던 그런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비교가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야. 아마도 수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철을 두들겨 왔겠지. 대장장이로서의 능력은 이 도시의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날 거다.』
‘그래? 정작 그 드워프는 대장장이라는 말에 질색하던데.’
그런 생각을 하며 스테치가 길을 걸어가는 동안, 뒤따르던 엘레나는 문득 대장장이의 거리에 있던 드워프들이 모두 그들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 시선은 별로 곱지 않았다.
“너희 둘, 그 안으로는 뭐 하러 들어간 거야?”
“?”
스테치를 추궁하는 드워프들. 이건 또 무슨 일이지 싶어 어리둥절해하는 동안, 두 사람에게 호객행위를 벌였던 드워프가 무리에서 비집고 나서더니 말을 걸었다.
“너네 외지인 맞지? 몰랐다면 어쩔 수 없지만, 다음부턴 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편이 좋아.”
외지인이라는 말에 심상찮은 분위기를 풍기던 드워프 군중들의 기세가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했다.
드워프는 다른 이들을 돌아보더니 침착하게 말했다.
“내가 잘 설명할 테니 자네들은 일단 물러가 있게. 살다 보면 가끔 이런 경우도 있지 않겠는가.”
그제야 하나 둘씩 각자 자신의 작업터로 되돌아가는 사람들. 안도의 한숨을 쉰 드워프는 입고 있던 작업복에 검게 재가 낀 손을 탁탁 털어 낸 뒤, 스테치에게 악수를 청했다.
“내 이름은 도리안이다. 너는?”
“브라이언이요.”
“한잔하지 않겠나? 내가 사지.”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스테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장이의 거리를 빠져나온 세 사람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펍으로 들어가 음료를 주문했다. 말없이 맥주만 홀짝이던 도리안이 수염에 뭍은 거품들을 닦아 내며 중얼거렸다.
“그래, 어디서부터 말해 볼까. 골목에 있던 접근금지 사인이랑 푯말을 보지 못한 거야?”
“그런 게 있었어요?”
“있었죠. 그런데 다른 거에 집중하고 계셨는지 신경조차 안 쓰시던데요.”
멍청하게 되묻는 스테치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다름 아닌 엘레나였다. 그러고 보니 지나가면서 뭔가 낙서 같은 것을 본 것 같기도…… 스테치는 멋쩍은 듯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때 그는 메멘토 모템의 방향 지시를 듣느라 주변에 널린 경고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안으로 들어간 건 그…… 궁금해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 스테치의 궁색한 변명을 들은 도리안이 물었다.
“봤냐?”
그가 봤냐고 묻는 대상은 아마도, 낡은 오두막에 있던 그 드워프를 말하는 것이리라. 고개를 끄덕이는 스테치에게, 도리안은 잔뜩 목소리를 낮추고선 말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멜키오르야. 이 도시에서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었지.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고.”
“왜 일을 그만뒀는데요?”
“사고를 당했거든. 아니, 사고를 쳤다는 편이 맞으려나.”
그렇게 대답하는 도리안의 표정은 어쩐지 씁쓸해 보였다.
아이젠은 물론이고 다른 도시에까지 명성을 떨치던 대장장이, 멜키오르. 자신이 제작한 무구를 한 층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고 싶었던 그는 다른 모든 대장장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는 실험을 감행했다.
아티팩트와 무구의 결합.
“아티팩트는 자연이 만든 예술품 그 자체야. 항상 흩어지려는 불안정한 성질의 두 에너지가 우연히 만나, 서로 엮여 안정화된 걸작품이지.”
당초 멜키오르가 설계한 실험의 골자는 간단했다.
형체가 잡혀 있는 아티팩트를 파괴하지 않고, 본래의 에너지 상태로 변환시킨 뒤 제작에 쓰일 재료에 정착시키는 것.
“아마도 넌 이런 생각이 들겠지. 굳이 그런 번거로운 행동을 해서 얻는 이득이 뭐가 있을까? 하고.”
도리안이 말했다.
“아티팩트는 얼음이야. 각져 있던, 원형이던, 그 형태와 용도는 누군가의 조율 없이 마구잡이로 정해진 우연의 산물. 하지만 그걸 한 번 녹이면 어떻게 될까? 어떤 형태의 용기에도 담길 수 있는 액체, 즉 에너지가 되는 거지.”
에너지 자체는 장비가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베이스에 불과하다.
중요한 점은 그것을 사용자가 어떻게 사용하냐는 것.
무기로서 휘두른다면 적을 베어 가르는 예리함을 갖추게 될 것이고, 방어구로서 착용한다면 어떠한 충격도 받아 내는 견고함을 가지게 될 것이다.
‘사용자의 염원을 가장 최적의 형태로 이뤄 주는’능력을 갖춘 아티팩트이자 무구. 바로 멜키오르가 만들고 싶어 했던 궁극의 결과물이었다.
그것은 지금껏 도리안의 말을 심드렁하게 듣고 있던 스테치의 가슴마저 두근거리게 만들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메멘토 모템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흥미롭군. 하지만 저 이론엔 큰 허점이 있어.』
“……그러고 보니, 사고가 있었다고 말씀하셨죠.”
멜키오르의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선, 먼저 아티팩트를 에너지로 환원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것을 위해 멜키오르는 한 가지 이론을 내세웠다.
아티팩트에 있어 사기란, 흩어지려는 마력을 한 데 엮어 두는 아교와도 같았다. 그렇다면 같은 사기를 사용해 그 아교를 다시 풀어헤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도리안은 빈 맥주잔을 옆으로 치워 버리곤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아티팩트를 녹이기 위해, 멜키오르는 던전의 사기를 흡수시켜 만들어 낸 저주받은 연장들을 사용했어. 그리고 그 방법은 실제로 먹혔지만…… 정작 먼저 무너져 내린 것은 멜키오르 자신이었지.”
드워프는 천성적으로 마력과 사기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 하지만 제아무리 그런 멜키오르라 할지라도, 저주받은 아이템과 녹아내리는 아티팩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사기를 동시에 감당할 수는 없었다.
결국, 실험은 대실패.
에너지 컨트롤에 실패한 아티팩트는 그 자리에서 대량의 사기를 뿜어내며 폭발했고, 폭발을 가장 가까이에서 직격당한 멜키오르는 사기를 잔뜩 뒤집어쓰는 바람에 양팔이 산채로 썩어 들어가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도리안이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사형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짓이었지만, 그 대신 아이젠의 영주는 멜키오르를 도시에서 가장 으슥한 장소에 처박아 놓았어. 그냥 죽이기엔 그가 세운 위상과 공로가 어마어마했거든.”
멜키오르의 몸은 약을 먹지 않으면 단 일주일도 연명하기 힘든 상황. 어떻게 보면 죽이지 않고 살려 두는 편이 가장 잔인할지도 모른다.
“남들 말이야 어쨌든 간에, 난 그 사람이 정말 불쌍해. 실험이 성공했다면 사일라스뿐 아니라 북부 전역에서 이름을 떨칠 수도 있었을 텐데.”
스테치는 넋두리 같은 그의 말에 동감을 표했다.
그 정도로 유능한 대장장이의 실력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고 하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라? 가만…….’
멜키오르의 이론과 그가 시도했던 방법. 뭔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허공을 노려보며 눈살을 찌푸리던 스테치의 뇌리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 * *
“휴우…….”
멜키오르는 낡아서 삐걱거리는 침대 위로 쓰러지듯 몸을 뉘었다.
약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먹고 있었지만, 양팔을 좀먹는 사기의 독을 뿌리치기엔 한참 역부족이었다.
고통을 줄이고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늦추는 효과만 있을 뿐.
‘대체 뭐였지, 그 꼬맹이는.’
평소 그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매일 먹을 것과 약을 가져다주는 심부름꾼밖에 없었다. 그 외의 누군가가 나타나리라곤 상상조차 못 하고 있었는데…….
‘대장장이라.’
그런 호칭을 들어 본 것도 꽤나 오래간만이다.
덕분에 괜히 싱숭생숭해져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몸만 뒤척이던 멜키오르는, 잠시 뒤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루 안에 세 번째 방문객이라니, 오늘은 여러모로 범상치 않은 날이다.
“나가요, 나가!”
흉측하게 변한 팔을 보이지 않도록 망토를 두른 그는 빠른 발걸음으로 달려갔다.
벌컥-.
“안녕하세요.”
쾅!
멜키오르는 스테치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나 그 정도는 예상했는지, 재빠르게 문틈 사이로 발을 끼워 넣은 스테치는 억지로 비집고 집 안에 들어갔다.
“다짜고짜 닫지 마시고요!”
“이이, 경비대에게 신고하기 전에 당장 내 집에서 나가! 이건 무단 침입이라고?!”
잔뜩 열이 오른 멜키오르에게 찬물을 끼얹듯, 스테치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일단 제 말을 다 들어주시면 군말하지 않고 나가겠습니다, 멜키오르 씨.”
“…….”
굳이 이름으로 부른 것이 효과가 컸는지, 잠시 스테치를 노려보던 멜키오르는 투덜거리며 탁자 앞에 앉았다. 조금이라도 상대가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간 바로 쫓아낼 생각이었다.
“꿈을 이뤄 보고 싶으신 생각 없으신가요?”
“나가.”
“아뇨, 제발 좀! 당신이 했다는 그 실험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온 거라고요.”
짜증을 내는 스테치의 면전에 멜키오르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꾸했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대체 날 어디까지 비참하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해지는 거냐?”
그에게 있어서 지난날의 사고는 떠올리기조차 싫은 악몽에 불과하다.
그것을 듣도 보도 못한 외지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들먹인다니…… 멜키오르의 기분이 최악으로 치달은 순간, 스테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냐하면 전 사기에 대해 완전한 면역을 가지고 있거든요.”
멜키오르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작업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발산되는 사기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테치는 메멘토 모템의 어빌리티인 커스 아우라 덕분에, 이미 오래전부터 사기에 대한 면역을 가진 상태.
스테치는 수렁에 빠진 그의 인생을 역전시킬 유일한 돌파구였다.
화내는 것도 까먹은 채,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며 입을 쩍 벌린 멜키오르. 스테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일어나세요, 멜키오르. 당신과 나, 둘이서 끝내주는 작품 하나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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