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21)
120화에 계속 –
120화 위를 향하여
썩어들어 가는 내피. 갈라진 나무 틈새로 울컥울컥 새어 나오는 정체 모를 액체. 그리고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악취까지. 어째서 지금껏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원로원 의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껏 자신들이 앉고 이야기를 나누던 테이블과 의자들도 모두 썩어서 무너져 내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우웨에엑!”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몇몇 의원들이 토악질을 해 댔다. 이런 불결하기 짝이 없는 장소에 부대끼며 생활하고 업무를 보았다고 생각하면, 그런 반응들이 터져 나오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뭐, 뭐냐 이건!”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원로원의 어느 젊은 의원이었다.
“네놈들, 무슨 사술을 부린 거지?!”
오히려 그를 포함한 대부분 의원들은 스테치 일행이 뭔가 술수를 부려 지금과 같은 광경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러자 메멘토 모템은 한숨을 쉬며 손을 그에게로 뻗었다.
“억!”
눈 깜짝할 사이에 메멘토 모템에 의해 몸을 강탈당한 의원은 확연하게 달라진 목소리로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밖으로 빠져나간 이후에 나누도록 하죠.』”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자 의원들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렇다 보니 의원들은 메멘토 모템의 밀어붙이기식 말투에 간단히 휘말린 나머지, 자기들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스테치 일행의 인도를 따라 바깥으로 나와 보니, 끔찍한 몰골이 된 세계수가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나무가…….”
푸릇하던 나무껍질은 잿빛으로 변색됐다. 하늘 높이 뻗어 오른 세계수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검은 기운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전례가 없는 미지의 사태에 의원들은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고, 스테치조차 당황하여 메멘토 모템에게 물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지금?”
“『뭐긴 뭐야. 보다시피 이그젤타 엘프 놈들이 두 눈 멀쩡히 뜨고 광신도들한테 당한 거지.』”
세계수를 노리고 온 광신도들이 이그젤타에 침투한 방법은 간단했다.
환상으로 경비들의 시야를 가리는 것.
그러나 수도인 이그젤타 한가운데에서 최정예의 셸로어들을 뚫고 세계수에 위해를 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데다, 셸로어들의 눈을 일일이 환상으로 가려 버리기엔 그들의 마법 능력이 너무나도 출중했다.
그래서 광신도들은 나무를 보는 눈들이 아니라, 나무 하나만을 가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똑똑하지? 나조차도 한 방 먹었다니까. 세계수에 직접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는 눈치조차 못 챌 정도였으니 원.』”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하는 메멘토 모템이었지만, 얼굴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만큼 상황은 매우 심각했으니까.
“『혹시 눈치챘어? 이 환상은 우리가 북부행 배를 타면서 본 것과 완전히 똑같은 방식이야.』”
“그럼 스컬쉽 녀석들도 여기에 와 있단 말이야?”
메멘토 모템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커니즘은 같아. 왜인지는 몰라도 규모는 그때에 비하면 차원이 다르지만…….』”
“그게 무슨 말인가?”
옆에서 메멘토 모템의 말을 듣고 있던 남성 의원 하나가 물었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당혹감과 공포에 젖어 더욱 창백해져 있었다.
“알아듣기 어렵지만……. 그럼 세계수가 다른 누군가의 손에 저 꼴이 되었다고?”
“『이해가 참 빠르시네.』”
비아냥인지 아닌지도 모를 소리로 대꾸하는 메멘토 모템. 그러자 의원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빨리 남은 셸로어들을 전부 소집해야…….”
“으아아악!”
순간, 귀를 때리는 비명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거리에 서서 흉물스럽게 변한 세계수를 지켜보던 이그젤타의 시민 중, 몇몇 이들이 고통스럽게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사지를 이상한 각도로 비틀어 대던 사람들의 주변으로, 새하얀 서리 냉기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
순식간에 검은 기운에 휩싸여 시체같이 뼈만 앙상한 몸으로 말라비틀어진 사람들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형태로 변해 가는 그들의 모습에, 스테치와 엘레나는 경악하여 뒷걸음질 쳤다.
파앗!
넝마 같은 로브 아래로 삐죽 튀어나온 검은 손. 그것은 스테치가 이전부터 계속 봐 왔던 레이스의 것과 똑같았다.
“젠장!”
스테치가 할로우 블레이드의 검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자, 뿜어져 나온 빛이 막 레이스로 변한 사람들을 소멸시켰다. 원로원의 의원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줌 먼지로 변해 버린 사람들을 보고선, 황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주, 죽이다니…….”
“『저렇게 되어 버렸다면 이미 늦었어! 저건 사람이 아니야!』”
눈앞에서 벌어진 일로 모든 것이 이해된 그는, 이를 악물며 의원들을 다그쳤다. 스테치도 의원들에게 외쳤다.
“한 번에 받아들이기엔 너무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건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이그젤타의 지도자들이잖아요! 지도자로서 사람들을 인도하세요!”
그의 말에 의원들은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원로원들까지 무너져 내렸다간 도시 전체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자 의원 하나가 자신의 손가락을 목에 대더니 입을 열었다.
“이그젤타에 주둔 중인 모든 셸로어들은 들어라.”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질 정도로 커진 목소리. 스테치와 엘레나는 귀를 틀어막았고, 메멘토 모템은 의원에게 다가가더니 말했다.
“『일단 보호 마법으로 시민들을 격리시켜. 마력이 적은 놈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방금처럼 죄다 몬스터가 되어 버릴 거다.』”
“……시민들을 모아 보호 마법으로 격리시켜라. 조금이라도 이상한 징후를 보이는 이를 발견했다면 이유 불문하고 즉시 제거하도록.”
잔혹한 명령이지만,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명령을 내린 의원은 손가락을 떼고 한숨을 내쉬더니, 스테치와 메멘토 모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보아하니 현 사태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자네들 같군. 급박한 것은 알겠지만, 설명을 부탁할 수 있을까?”
“저희가 주동자일 거란 의심은 안 하시나요?”
스테치는 자신들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젊은 의원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러자 남성 의원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최소한 우릴 죽이려 들진 않았으니 일단 믿는 수밖에, 그러니 말해 보게. 대체 사람들의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그러자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누군가가 세계수를 오염시킨 거야.』”
“오염?”
“『세계수는 이 땅의 생태계가 항시 원활히 돌아가게 만들도록 돕고 있어. 마력들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대기 중에 채워 넣는 것도 그런 작업의 일환이지. 하지만 그 와중에 세계수 자체가 오염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스테치는 조금 어리둥절해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의원은 초조하게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아무리 물이 깨끗해도, 그것을 정화하는 필터가 더럽혀지면 물은 더러워지게 돼. 광신도 놈들이 한 짓은 바로 그런 거야.』”
메멘토 모템의 말에 스테치가 말했다.
“오염시켰다니……. 어디서 어떻게?”
“『저기에서.』”
메멘토 모템이 하늘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구름까지 닿을 기세로 솟아올라, 그 끝이 보이지도 않는 세계수의 꼭대기를. 그의 말에 스테치는 입을 쩍 벌렸다.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됐어. 우리가 코그니테에서 발견했던 그 주입기는, 세계수에 무언가를 쑤셔 넣기 위해 만들었던 시작품이었던 거라고.』”
스테치는 검을 쥔 손에 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엘레나를 뒤돌아보았다.
“가자. 그게 정말이라면 여기서 꾸물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세계수를 뒤덮고 있는 검은 기운은 벌써 지상까지 고작 1km 정도의 간격을 남겨 두고 있었다. 그것이 뿌리마저 완전히 잠식해 버릴 때 어떻게 될지는, 굳이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알아챌 일이었다.
“자네들이 직접 올라가겠다고? 세계수를?”
의원이 놀라서 물었다.
“왜요? 뭐, 일반인은 들어가선 안 된단 어느 까탈스런 조항이라도 들이대실 생각이라면…….”
스테치의 말에 의원은 손을 저어 대며 말했다.
“그런 문제가 아니야. 나는 그저 경고를 해 주고 싶을 뿐이야.”
“경고요?”
그의 물음에 의원이 대답했다.
“세계수의 내부는 사람처럼 복잡하면서도 탁월한 능력을 자랑하는 자체적인 면역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어. 만약 누군가가 세계수 위로 올라갔다면 필연적으로 그 루트를 지나가게 되어 있지.”
엘레나가 혹시나 하는 표정이 되어 물었다.
“면역 시스템이라면……. 혹시 던전의 키퍼와 같은?”
“맞아. 세계수를 오르는 가장 편한 루트는 내부의 영양공급관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지만, 그쪽은 그만큼 면역 체계가 가장 활발하게 활성화된 곳이기도 하다. 만약 아무런 각오나 준비 없이 그 길을 오르려 들었다간 대응도 못 하고 시체가 돼서 떨어질 거다.”
의원의 걱정은 지극히 당연했다.
세계수를 지키는 면역 체계는, 설령 세계수로부터 직접 힘을 부여받은 셸로어들조차도 피해 갈 수 없는 최종 방어 라인 같은 것이다. 셸로어 부대가 가도 돌파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하물며 고작 세 사람이서 간다면…….
그러자 스테치가 말했다.
“그쪽 걱정이나 하세요. 저희는 몇 번이고 이런 일을 해 봤으니까요.”
“뭐? 자네 지금 내 말 못 들었나?”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셸로어들은 여기서 할 일이 있잖아요. 병력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는 상황이니까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저희뿐이에요.”
엘레나와 마르크를 되돌아본 그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 다, 할 수 있겠지?”
“그런 건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전 가요.”
“세계수예 오른다니………. 여기 오기 전까지는 상상조차도 못 했던 일인데. 물론 나도 간다.”
대답을 들은 스테치는 옆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메멘토 모템에게 물었다.
“만약 지금 당장 우리가 출발한다면 세계수가 오염으로부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도 몰라……. 이 오염은 최소한 몇 주 전부터 꾸준히 진행되어 왔던 작업임에 틀림없어. 지금으로부터 길어 봤자 이틀 정도겠지.』”
“고작 이틀 안에 이렇게나 높은 나무를 올라가서 모든 해프닝을 정리하란 소리냐……. 미치겠네.”
스테치는 세계수를 올려다보았다. 세계수 주변을 감싼 먹구름이 뇌광을 품은 채 불길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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