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3)
13화에계속 –
13화 어둠의 숲과 엘프들 (2)
베네지아 왕국을 북동쪽에서부터 남서쪽까지 대각선으로 관통하는 케투스 산맥.
남서쪽의 산맥 끝자락을 뒤덮고 있는 거대한 어둠의 숲은, 일반인이 들어가면 길을 헤맬 정도로 구조가 복잡한 장소였다.
당연히 스테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고, 허리야…….”
장시간 걸은 탓에, 두르고 있던 유틸리티 벨트의 가죽끈이 어깨를 파고들면서 피부가 쓰라리기 시작했다.
끙끙대던 스테치는 가죽 베스트의 단추를 풀어헤쳐 숲의 서늘한 공기를 즐겼다.
“아, 좀 살 거 같다. 대체 이 숲은 뭐지? 던전이고 나발이고 찾을 수가 없네.”
스테치는 숲을 구성하는 나무들을 올려다보았다.
성인 장정 열 명이 둘러싸도 부족할 정도의 둘레를 자랑하며, 하늘을 뚫을 기세로 높이 솟아오른 거대 침엽수들. 그런 데다 잎과 가지까지 빽빽하게 자라 하늘을 모두 가린 탓에, 숲속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한 상태였다.
게다가 《패스파인딩》 스킬은 사용하는 장소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잘 먹히지 않아 더더욱 던전까지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해가 뜬 방향을 알 수가 없으니 방위도 모르고, 지도도 확인할 수 없어.”
과연 어둠의 숲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장소라고 스테치는 생각했다.
“엉?”
한참 동안 숲속을 거닐던 그는, 꽤나 넓은 크기의 연못을 발견했다.
거기까지였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연못의 정중앙에 있는 무언가가 스테치의 이목을 끌었다.
연못의 한가운데에는 간신히 발을 디딜 수 있을 만한 사이즈의 암초 하나가 있었는데, 그 위로는 커다란 나무 기둥과 함께 정신을 잃은 듯한 사람이 하나 묶여 있었다.
“저거 혹시……? 젠장!”
스테치가 당황하여 곧장 연못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자, 연못 바닥에 깔려 있던 흙과 모래가 일어나면서 맑았던 물이 탁해지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요!”
며칠이나 묶여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비쩍 마른 남성 하나가 기둥에 매달린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스테치는 페네트레이터를 뽑아 들고 단박에 묶인 끈을 잘라 버렸다.
구속이 풀렸는데도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는 사내를 한 손으로 받치며 스테치는 수통을 꺼내어 그의 입에 천천히 부어 넣었다.
“으으…….”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죠?”
검을 뽑아 든 채 사방을 경계하며 스테치가 물었다. 하지만 탈진해 있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인지, 사내는 곧장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좋겠군. 분위기가 안 좋아지고 있어.』
그 발언에 맞장구치듯, 연못의 밑바닥 여기저기에서 거품이 올라오더니 무언가가 차례로 일어서기 시작했다.
수초와 나무뿌리, 썩어가는 나무껍질 등으로 이루어진 사람 형체가 손을 뻗으며 스테치에게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와일드 바인이다!』
암초를 중심으로 포위망을 조여 오는 와일드 바인 무리. 빈틈이 없나 다급히 고개를 돌리던 스테치는, 몇몇 와일드 바인들의 뿌리와 덩굴로 된 신체에 찢겨나간 사람의 팔이나 다리가 하나씩 엮여 있는 것을 보았다.
연못에 들어올 때는 조용하던 와일드 바인들이, 나갈 때 덮쳐오는 것을 보아 스테치는 이 연못에서 죽은 이들이 어떻게 당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남자를 구하러 온 사람들은 전부 저런 꼴이 되었단 말인가……!’
이를 악물은 스테치는 남자를 잠시 내려놓은 뒤, 페네트레이터를 땅에 박아 몸을 단단히 고정하고선 수면 쪽을 향해 반지를 조준했다.
《액티브 스킬 : 에어 버스트. 극한까지 압축시킨 난기류 덩어리를 발사합니다.》
퓻-.
날카롭게 쏘아 보내는 소리와 함께, 반지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구체가 부드럽게 날아가 연못의 수면 위를 두들겼다.
퍼엉!!
연못의 물 대부분이 공중에 떠오를 정도로 엄청난 폭발과 함께, 수류에 휩싸인 와일드 바인들은 힘없이 폭심지로부터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물세례를 그대로 받아 낸 스테치는 침을 한 번 뱉은 뒤, 남자를 등에 들쳐 매고 연못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끈질기게 쫓아오려는 와일드 바인들을 향하여, 막 마른 땅을 딛고 올라선 스테치는 다시 한번 반지 낀 왼손을 연못 쪽으로 뻗었다.
《액티브 스킬 : 아크. 낮은 확률의 상태이상 효과 ‘기절’을 동반하는 전격을 대상에게 날리며, 대상 주변에 적이 있을 경우 최대 다섯의 적까지 체인 효과가 발동됩니다.》
파지짓!
반지의 앞에서부터 생성된 보랏빛의 전기 줄기가 연못에 닿자, 그곳에 발을 담그고 있던 와일드 바인들 모두 타는 냄새와 함께 희미한 연기를 뿜어내며 경련을 일으켰다.
일부는 부들부들 떨다 못해 그대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커스 이팅!”
급한 대로 쓰러진 와일드 바인들에게서 마력을 회수한 스테치는, 남자를 등에 업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 * *
“역시 이쯤까지 왔으면…… 헉…… 쉽게 쫓아오진 못하겠지…….”
스테치는 바닥에 엎드린 자세 그대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리 스테치가 근력이 어느 정도 있는 젊은 모험가라곤 해도, 배낭과 검을 지닌 상태에서 성인 남성까지 업고 몇 백 미터나 달렸으니 지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으윽…… 여긴 대체……?”
스테치가 대충 바닥에 놓아 둔 남자는 혼란스러운 듯,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다 옆에서 자신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스테치와 눈이 마주치자, 별안간 귀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악!”
“아, 깜짝이야! 기껏 구해 줬더니 왜 소리를 질러요!”
스테치가 맞소리를 지르자, 당황한 남자는 그제야 자신이 연못 한가운데가 아닌 마른 땅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 네가 날 구해 준 거야? 저, 정말 고마워!”
그는 부들부들 떨며 말까지 더듬더니, 마치 어린아이라도 된 것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누군가에 의해 구출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쁜 듯했다.
“이제 진정 좀 하고, 제 질문에나 답해 보세요. 대체 누가 당신을 그런 곳에 묶어 둔 건가요?”
그러자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스테치에게 되물었다.
“누구긴 누구겠어. 제대로 된 마을 하나 보기 힘든 베네지아 남서쪽에서, 그것도 어둠의 숲에다 인간을 그렇게 죽으라고 내버려 둘 족속이 누군지 정말 몰라서 그래?”
“엘프인가요, 역시?”
스테치는 머리가 아파 오는 것을 느끼며 양미간 사이를 꼬집었다.
그렇게 위험한 걸 잘 아는 사람이 대체 왜 굳이 이런 곳을 방문했단 말인가.
한편 남자는 상황이 안정되고 나니 다시금 엘프에 대한 분노가 끓는 듯 묻지도 않은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와 내 일행은 어둠의 숲 외곽을 지나서 수도로 향하던 상단 소속이었어. 물건의 납품 일자를 맞추지 못하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그곳을 지나게 된 건데, 갑자기…….”
남자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상단의 물품을 실은 마차가 남쪽에 위치한 마을에서부터 북서쪽에 있는 수도를 향해 직선으로 이동했는데, 납품 기일을 못 맞춘 탓에 그 루트가 어둠의 숲 외곽에 걸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회하지 않고 그대로 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과 같았다. 마차는 화살 세례를 받고 행로를 이탈하여, 그대로 어둠의 숲을 향해 도망치다가 전복.
스테치가 물었다.
“그럼 연못에 가라앉아 있었던 시체 조각들은, 당신 동료들이었나요?”
남자는 흠칫하고 놀라더니, 힘없이 말했다.
“난 전부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 엘프 놈은 그대로 날 묶어서 그 빌어먹을 연못에 처박아두고, 구하러 오던 동료들은 다 그 괴물들한테 붙잡혀서…… 붙잡혀서…….”
스테치는 말을 잇지 못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구해준 건 좋았지만, 그를 호위한답시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스테치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이름이 뭐에요?”
“이름? 아…… 그러고 보니 통성명조차 안 했구나. 내 이름은 패터슨이라고 해. 너는?”
“제 이름은 스테치입니다. 패터슨 씨, 미안하지만 저와 당신은 여기까지예요. 일반적이라면 제가 직접 당신을 호위해서 엘프들의 세력권 밖으로 내보내 주겠지만, 지금 제 행선지는 이 숲의 안쪽이거든요.”
그러자, 패터슨은 사색이 되더니 스테치에게 말했다.
“너 미쳤어? 이 숲에 계속 있으면 너도 엘프들한테 바람구멍이 날지도 모른다고! 대체 왜…….”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을 그 몬스터들로부터 구해 낸 건 저예요. 어쨌거나 제 용건은 그 숲에 있는 데다, 스스로 앞가림 정도는 할 자신 있거든요.”
스테치의 말에 패터슨은 얼굴을 붉혔다.
“문제는 제가 아니라 그쪽이에요. 이 장소는 당신에게 있어서 최악이고,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게 나을 테죠.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이 있어요.”
스테치는 설명했다.
“스스로 말하기는 뭐합니다만, 저는 나름 유능한 탐험가입니다. 패터슨 씨가 숲에서 나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드릴 수는 있어요. 먹을 걸 조금 나눠 드릴 테니 그 뒤부턴 스스로 마을까지 복귀하세요.”
그 말에 고민하던 패터슨은 잠시 후 별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스테치는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애니멀 인스팅트》.’
어둠의 숲에 들어온 이후부터 스테치가 가장 이상하게 여겼던 점이 있었다.
숲에서 한참 헤매긴 했지만, 확실한 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동물들의 소리가 작아졌다는 점이었다.
사슴이나 토끼, 새 등은 분명히 있었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이 숲의 동물들은 유달리 조용했다.
그런 상황에서 애니멀 인스팅트 스킬로 청각을 강화한다면 어떨까? 요컨대 간단히 말해서 소리가 적게 나는 방향을 등지고 걷는다면, 최소한 숲을 나가는 쪽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스테치의 생각이었다.
“……찾았다. 갑시다.”
스테치는 패터슨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운 뒤,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숲 외곽 쪽에서 흐르던 강물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패터슨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표정이 조금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메멘토 모템이 조용히 말했다.
『스테치, 눈치챘냐?』
‘음.’
질문에 긍정한 스테치는 짐짓 모르는 척 패터슨을 인도하여, 결국 어둠의 숲을 빠져나왔다.
패터슨은 살아나왔다는 것에 감격한 나머지 스테치의 손을 붙잡고 흔들어댔다.
“정말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스테치는 배낭에서 말린 육포나 열매들을 조금 꺼내어 자루에 담아 패터슨에게 넘겨주었다. 그 뒤, 소드벨트에 묶여 있던 페네트레이터를 뽑아 들었다.
팅!
“어?”
패터슨이 멍청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느 틈엔가 패터슨을 등지고 돌아선 스테치는, 숲속으로부터 날아온 화살을 검등으로 받아 튕겨 내고 있었다.
툭.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패터슨은,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그와는 달리 스테치는 역으로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며 검을 강하게 고쳐 쥐었다.
“…….”
그 시선 끝에는, 스테치와 패터슨을 향하여 화살을 겨누고 있는 세 명의 엘프들이 보였다.
남자 둘, 여자 하나의 혼성 그룹. 그중에서 가장 앞장서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던 여자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당장. 그놈을. 넘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