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32)
131화에 계속 –
131화 각성의 징후
《흡수한 사기의 양이 임계점을 돌파했습니다. 다음 페이즈로 이행합니다.》
《어빌리티 : 커스드 클록(Lv 2) → 커스드 아머(Lv 3). 사기를 실체화시킨 갑옷을 두릅니다. 저주받은 아이템의 보조 없이도 상시 발동 가능합니다. 어빌리티 사용 시 주변의 적을 실시간으로 약화시키며, 적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효과의 범위를 ‘보통’ 이상으로 넓히거나 사용 시간이 길어질수록 시전자에게 걸리는 부담도 증가합니다.》
《어빌리티 : 커스 디바우러(Lv 1) → (Lv 2). 아티팩트가 자체적으로 생성한 사기를 사용하여, 저주받은 아이템의 보조 없이 하루 최대 3회까지 부스트를 발동할 수 있게 됩니다. 부스트 적용 시 신체 능력, 또는 마법 능력을 강화시킵니다.》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들.
반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이 잦아들고 나서야 스테치는 비로소 눈을 뜰 수 있었다. 금속성에서 반투명한 재질로, 그리고 그것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정밀한 마력 회로들. 다시 보게 된 반지의 외형은, 기존의 것과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스테치가 멍하니 반지를 들여다보자,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맞이했다.
『……여긴 어디지?』
그는 현재 자신이 있는 시간과 장소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사람으로 치면 거의 10일 정도나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셈이니까.
“일어났냐? 너도, 나도 꽤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고. 그나마 내가 한 3일 정도 빨리 일어나긴 했지만.”
메멘토 모템의 얼굴이 실제로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테치는 어쩐지 그가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을 거라는 인식이 들었다.
『그래……. 또 잠들었다가 깨어난 모양이지.』
잠시 중얼거린 그는 스테치에게 말했다.
『세계수는 괜찮은 건가?』
“네가 따라잡아야 할 이야기가 한가득이야.”
스테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들을 간략히 정리해 주었다. 엘레나나 마르크의 일부터 시작해서, 이그젤타의 현황, 그리고 망가진 갑옷 같은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그러자 말없이 듣고만 있던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정리하자면 별일 없었단 소리잖아.』
“이 자식이 말하는 꼬라지가…… 야! 난 널 나름대로 걱정했단 말야!”
그러자 야속하게도 메멘토 모템은 코웃음을 쳤다.
『됐고, 슬슬 다음 목적지나 정해. 너, 한동안 아티팩트를 모으는 일에 너무 소홀했어.』
갑작스런 말에 스테치는 눈을 끔뻑였다. 어쩐지 위화감이 드는 말투에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스테치가 물었다.
“너 뭔데 갑자기 적극적이냐? 너도 나랑 똑같은 장면을 봤을 텐데, 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내색만 하지 않았을 뿐, 스테치는 꿈에서 깨어난 이후로 한동안 불쾌함을 떨쳐 낼 수 없었다. 마치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도 본 것 같은 그런 감각. 그런데 메멘토 모템은 거기에 대해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그냥 넘어가려는 것이었다.
『난 원래 적극적이었어. 그냥 요즘은 그럴 틈이 없었으니까 그랬지. 그리고…….』
메멘토 모템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흠, 아니다. 생각이 좀 정리되면 마저 이야기해야겠어.』
“?”
묘하게 텐션이 올라간 그의 모습에 스테치는 어처구니없어하며 자리에 누웠다. 어차피 뭘 물어봐도 쉽사리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메멘토 모템이 깨어났으니, 내일부터는 좀 다른 걸 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어쩐지 들뜬 스테치였다.
* * *
“정말인가?”
다음 날, 평소처럼 스테치의 방을 방문했던 마르크는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음. 반지가 고쳐졌으니까, 원하는 만큼 싸워 줄 수 있을 것 같다.”
“좋군. 지금 바로 하는 건가?”
“원하신다면.”
마르크의 동공으로 불꽃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아직 본격적으로 뭔가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싸울 때처럼 감정이 고양되었다. 스테치가 방 한쪽에 기대어 세워진 검을 소드 벨트에 걸어 둔 뒤 밖으로 나가자, 마르크가 물었다.
“갑옷은?”
“필요 없어.”
스테치와 마르크는 셸로어들이 주로 사용하는 훈련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법과 육체 능력 모두에 능한 셸로어들의 전용 훈련 시설이라 그런지, 나무로 된 다른 공간과는 다르게 내벽을 따라 튼튼한 강철판이 덧대어져 있었다.
“어라? 저 두 사람은…….”
몇몇 셸로어들이 반가워하며 가까이 다가왔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감도는 긴장스런 공기 때문에 제대로 말을 건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훈련장 한가운데에, 당당히 자리를 잡은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마르크는 방패, 스테치는 검.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전신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있는 와중에, 스테치는 자신이 쥐고 있던 할로우 블레이드를 내려다보았다.
“음…….”
역시나 무반응이다. 빛도, 진동도 없다.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했지만, 검에 내재된 그 괴물 같은 능력은 아무래도 아치발의 신자들을 상대로 할 때에만 발휘되는 듯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마르크가 넌지시 물었다.
“선수는?”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먼저 덤벼.”
스타트 신호도 떨어졌겠다. 몸이 근질거려서 더 이상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었던 마르크는, 씨익 웃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탁!
방패를 내세우고 돌진하는 그의 모습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압도될 만큼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자랑했다.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 오는 그를 쳐다보며, 스테치는 어빌리티를 사용했다.
“커스드 아머.”
슈오오-.
갑작스럽게 치밀어 오르는 사기에, 지켜보고 있던 엘프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스테치가 세계수와 케일럼 왕국을 구해 준 은인인지라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벌써 어떻게든 손을 썼을 정도로 불길한 기운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우려와 달리, 스테치가 발하고 있는 사기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오직 마르크 맥도웰 한 사람뿐이었다.
“?!”
일순간 기세가 꺾일 정도로 강력한 무력감. 마르크는 무너지려는 자세를 간신히 다잡고선 돌진을 이어 갔다.
한편 스테치의 등과 어깨에서는 검은 사기가 치솟아 오르더니, 넝마처럼 잔뜩 해진 망토의 형태로 고정되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확연한 차이점이 있었다.
쾅!
코뿔소와 비견될 만한 강한 충돌과 함께, 스테치의 몸이 뒤로 쭈욱 쏠렸다. 한참을 뒤로 질질 밀려나던 그였지만, 놀랍게도 그 속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마르크를 상대로 버텨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패와 맞닿아 있는 것은 그의 검이나 완갑이 아닌, 팔 주위를 감싸듯 떠오른 검은 빛깔의 건틀렛이었다.
“이……!”
마르크가 방패를 쥔 손에 힘을 주자, 방패에 장식된 사자 머리의 입으로 푸른 기운이 모여들었다. 스스로 목표와 충돌함으로써 흡수한 충격 에너지가 그대로 뿜어져 나와 스테치를 휩쓸었다.
슈화아악!
건틀릿에 맞은 푸른빛의 광선이 수 갈래로 꺾여져 나가며 훈련장 내벽 곳곳을 두들겼고, 둘의 싸움을 구경하던 셸로어들이 황급히 방어 마법을 사용했다.
“뭐냐, 그 모습은?”
마르크가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갑옷의 형태로 구현된 사기가, 스테치의 상반신 주위를 반투명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마치 손과 팔이 늘어난 듯한 기묘한 느낌에 엉거주춤하던 그가 마르크에게 말했다.
“글세……. 새로 얻게 된 능력이라 마침 실험해 보려고 했는데, 어째 좀 어색하네.”
“……하!”
검증도 안 된 능력을 감히 자신과의 싸움에서 처음 선보이다니. 마르크는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기의 아우라 때문에 사지가 모래주머니라도 엮어 둔 듯 나른했지만, 그는 놀랍게도 그것을 견뎌 냈다.
“좋다!”
마르크는 재차 스테치에게로 달려들어 방패를 주먹과 함께 휘둘러 댔다. 디스펠륨 도금이 된 방패에 근접한 이상, 마법을 쓰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그랬어야만 했다.
스테치도 마르크가 그 점을 노려 접근전을 걸어오고 있다는 점을 눈치챘는지, 커스드 아머의 팔과 어깨로 적당히 공격을 받아넘기며 뒤로 슬쩍 물러섰다.
“어설프게 하지 말고 금방금방 끝내 주지. 싱크로!”
『저 한 놈을 상대로 거기까지 한단 말야?』
황당해하는 메멘토 모템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스테치는 이어서 두 번째 어빌리티를 사용했다. 머리카락이 모근부터 쭈뼛 일어서는 짜릿한 감각. 그러더니 스테치는 마르크가 보는 눈앞에서 주문의 시동어를 외웠다.
“《라이트닝 스피드》.”
팍!
스테치의 몸이 마법적인 빛으로 번뜩이며 시야 바깥으로 벗어나자, 마르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디스펠륨의 영역 안에서 마력을 운용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 당연한 이치를 너무나 간단히 깨트려 버리다니.
‘으음…….’
동조율을 끌어올린 그의 마법은 디스펠륨의 영향조차 역으로 억누를 정도였다. 마력 소모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적어도 메멘토 모템의 약점인 디스펠륨을 극복할 수단이 생겼다는 건 큰 수확이었다.
‘슬슬 끝을 내 볼까.’
빠르게 마르크의 배후로 돌아간 스테치는 발로 그의 등을 걷어찼다. 방패를 사실상 무력화시킨 스테치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마르크를 농락했다.
퍼억!
너클 낀 주먹을 복부에 꽂아 넣자, 마르크가 헛숨을 토해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마르크는 점점 반응속도를 스테치의 움직임에 맞춰 가더니, 기어이 주먹 한두 방을 맞히는 데에 성공했다. 정말이지 놀라운 반사 신경과 센스였다.
그에 맞춰 스테치도 할로우 블레이드의 폼멜과 너클을 사용하여 마르크와 육박전을 펼쳐 댔다. 아주 잠깐 동안은 싸움이 대등하게 펼쳐지는 듯했지만,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후두둑!
입 안이 터졌는지 마르크의 핏방울이 훈련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테치는 그제야 헉헉거리며 공격을 멈췄고, 마르크도 막 뒤로 당겼던 주먹을 멈춰 세웠다. 누가 봐도 압도적인 승리였지만, 두들긴 횟수에 비해 마르크의 상처가 적다는 것을 깨달은 스테치는 투덜거렸다.
“하여간, 맷집 하나만큼은 끝내준다니까.”
심지어 숨소리마저도 고르다. 입가의 피를 닦아 낸 마르크는 잠시 그를 응시하더니 물었다.
“다른 아티팩트는 전혀 사용하지 않더군. 왜지?”
“내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건 이쪽의 능력이니까. 그리고,”
스테치는 여기저기 찢어져서 피가 나는 마르크의 안면과 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네가 날 ‘방해’했던 것에 대한 앙갚음이야. 이제 너와 난 아무런 관계도 아닌 거다.”
마음만 먹었다면 싸움을 빙자하여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겠지만, 스테치는 결국 그러지 않았다. 결정적인 복수의 순간에 자신을 막아선 마르크를 쉽게 용서할 수 없었지만, 세계수를 오르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것도 사실. 그런 의미에서 이 모든 것은 스테치 나름대로의 끝맺음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마르크도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여기에 있…….”
그리고 때마침 문을 열어젖히고 훈련장으로 들어온 엘레나는, 훈련장 한가운데에서 피투성이가 된 마르크와 땀을 흘려 대는 스테치의 모습에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순식간에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한 그녀는 한숨을 푹 쉬더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스테치에게 걸어가 말했다.
“드디어 찾았네요. 지금 바로…… 아니, 좀 씻고 나서 대회의소로 함께 가시죠.”
“무슨 일인데?”
“의장님이 부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