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39)
138화에 계속 –
138화 확정된 미래
“그걸 어떻게 알아?”
『마을 사람들이 이동한 흔적이랑 녀석의 기운이 같은 방향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그의 말에 스테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이덴은 케일럼의 영토 내에서도 최남단에 위치한 마을. 더 아래로 내려가 봤자, 그다음부터는 얼어붙은 대지와 라켄 공국뿐이었다. 대체 무얼 노리고 있길래 마을 사람들까지 대동한 걸까?
혼란스러워하던 스테치는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렇게 백날 고민만 하고 있어 봤자 무의미하다. 차라리 이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생각해 두는 편이 나았다.
“시무스 의장님과 다른 셸로어들에게는 우리가 알아낸 것들을 편지로 써서 보내 줘. 답장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흔적을 쫓아가 보자.”
“네.”
스테치의 말에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 안장에 걸어 둔 배낭에서 종이와 필기도구를 꺼냈다. 그동안 마르크는 엘레나와 함께 던전 외부에서 발견한 것들에 대해 스테치에게 말해 주었다.
“드레이노어의 말에 의하면 흔적은 일주일 정도 전에 생겨났다고 한다. 아치발의 신자와 우리들 사이에는 최소 일주일 정도의 간극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미테레 넌티어스》!”
엘레나는 편지가 묶인 화살을 하늘 높이 세 발 발사했다. 화살에 실린 마력은 독수리의 형상이 되어, 정해진 수신인을 향해 날아갔다.
“……서두르자. 꾸물댈 시간 없어.”
말에 오른 스테치는 텅 빈 마을을 등지고선 흔적을 쫓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을로부터 불과 몇 킬로미터 정도 떨어지자, 세계수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 북부 특유의 눈발과 냉기로 가득 찬 땅이 눈앞에 펼쳐졌다. 스테치 일행은 하는 수 없이 모든 장비를 챙기고선 말을 풀어 주었다. 따뜻한 케일럼의 기후에서 자라 온 말들로선 북부 대륙의 냉기를 견뎌 내기엔 무리였다.
‘그다지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추위구먼.’
스테치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두꺼운 외투와 설원 장비를 걸치고선 계속 길을 나아갔다. 메멘토 모템이 아치발의 신자가 남겨 놓은 흔적을 추적해 준 덕분에, 길을 잃거나 헤매는 일은 겪지 않았다.
눈발이 끊이지 않는 설원에서 쉴 만한 장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스테치 일행은 동굴을 찾거나 설동을 파 가며 어떻게든 라켄 공국으로 남하를 계속했다. 길이 매우 험하긴 했지만, 흔적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
푹! 푹!
“어?”
2주일의 시간이 흘러 냉기에 슬슬 몸이 익숙해졌을 때, 쉼터로 삼은 동굴 입구 근처에서 불침번을 서던 스테치의 앞에 편지가 묶인 화살 두 개가 꽂혔다.
라켄 공국까지 불과 하루 이틀을 남긴 어느 날이었다.
근처에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거로 보아, 마법으로 날아온 편지임에 틀림없었다. 스테치가 조심스럽게 화살 하나를 집어 편지 끈을 풀어 보니, 유려한 글씨로 빼곡히 찬 서면이 드러났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시무스의 서명이었다.
내용의 앞부분은 크로마토스 제국과 사일라스 왕국의 수장들과 나눴던 대담이 주를 이뤘다. 북부 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세계수가 위험에 빠지는 순간을 하나도 빠짐없이 목격해 버리는 바람에, 시무스는 하는 수 없이 사건의 원흉인 아치발의 신자들에 대한 정보를 두 나라의 수장들에게 털어놓았다.
물론 반응은 좋지 않았다.
대륙의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집단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숨긴 셈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무스는 ‘수장급 인물이 아치발의 신자들과 협조 관계’에 있다는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사정이 여의치 않았음을 이해해 준 각국의 수장들과 향후 대처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라는 이야기.
뒷부분은 엘레나가 보고했던 내용의 답변이었다.
시무스의 말에 따르면, 아치발의 신자를 색출하는 장치는 거의 완벽한 대신 사용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고 한다. 장치가 거대하여 휴대하기가 불가능한 데다, 세계수와의 마법적 링크를 이용하기에 사실상 이그젤타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무용지물이 된다고.
『하긴, 이래서야 놈들을 추려 내겠다고 무작정 이그젤타에 들여놓지도 못하겠군. 당장에 이번 사단이 터졌던 것도 아치발의 신자들이 세계수와의 접촉에 성공했기 때문이니까.』
스테치는 반지의 말에 동의를 표하며 편지를 계속 읽어 나갔다.
슬슬 불침번을 교대할 타이밍이기도 해서, 스테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편지가 하나 더 있지 않았던가? 스테치가 남은 화살에 묶여 있던 편지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뒤에서 엘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뭐예요?”
“답장.”
스테치는 박혀 있던 화살을 뽑아, 손에 든 편지와 함께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첫 번째 편지를 빠르게 읽은 그녀는, 곧이어 화살에 매달려 있던 편지도 펼쳐보았다.
“두 번째 편지는 아마도 셸로어들이 보냈겠지. 뭐래?”
편지에서 눈을 뗀 엘레나가 말했다.
“그쪽은 일단 나머지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어요. 지원하러 오고는 싶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제때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역시 그렇게 되는 건가.”
잠시 후, 스테치는 엘레나와 교대한 뒤 모포를 뒤집어쓰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콘라드는, 자신의 집무실 안을 서성이며 돌아다녔다.
간만에 집무실을 둘러보니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방 안의 벽 한켠을 가득 채운 책장과 책들. 문을 제외하고는 삼면이 막힌 방. 거기에 인간미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인테리어까지.
‘……영락없는 감옥이군.’
자그마치 20년이 넘는 세월을 이 안에서 보내 왔다. 물론 수면을 포함한 필수적인 생리 활동 정도는 다른 곳에서 하지만, 그 외에 밥을 먹는다거나 하는 일은 전부 집무실에서 함께 처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가 가진 아티팩트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콘라드는 문득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수정구슬 형태의 아티팩트를 쳐다보았다.
아티팩트 ‘테이레시아스’의 진정한 능력은 단순한 미래시가 아닌, 역사에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을 훔쳐보는 것. 여기까지만 들어 보면 어딘지 모르게 신비스러운 느낌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골칫덩이였다.
가장 큰 문제는 콘라드 본인의 의지가 아티팩트에 끼치는 영향이 0이라는 점이었다. 아티팩트가 보여 주는 미래는 확정적이지만, 항상 여러 부분으로 파편화되어 있는 데다 미래의 어느 시점인지조차 정해져 있지 않았다.
게다가 미래의 계시가 나타나는 타이밍조차 랜덤이라, 한번 이를 놓치면 아티팩트가 무엇을 말해 주고 싶었는지 알아내는 건 영영 불가능했다.
또한 주인인 콘라드 이외에는 미래를 보는 것도 불가능.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 탓에, 콘라드는 잠도 식사도 본인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언제 아티팩트가 작동할지도 모르니, 사실상 24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아티팩트 앞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게 곧 그의 일인 셈이었다.
아티팩트를 집어 든 콘라드는 말없이 그 내부를 응시했다. 은하수의 무수히 많은 별처럼, 몽환적인 분위기의 빛무리가 수정구슬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가끔은 그냥 확 깨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데.’
자살 충동도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늙고 병든 노모나, 동생들의 명줄을 손에 쥔 알프레드를 상대로 감히 반항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고역스럽긴 해도, 덕분에 가족들은 편히 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버텨 나갈 힘이 생겼다.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던 콘라드가 아티팩트의 빛을 눈치챈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어?!”
대체 이게 몇 달 만의 일일까. 그러나 콘라드는 선뜻 아티팩트를 작동시키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테이레시아스가 보여 주는 미래는 한 가지 의미를 띄게 된다. 바로, 규모가 크든 작든지 간에 어떤 식으로든 역사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 그래서인지 콘라드는 아티팩트를 사용할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일이니까.’
깊게 심호흡을 한 콘라드는, 책상에 앉은 채 두 손으로 수정구슬을 감싸 쥔 뒤 눈을 감았다. 정신을 집중하자마자, 감겨서 어두워진 시야가 하얗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으윽!”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 쏟아지는 정보의 물결 속에서 콘라드는 그림처럼 또렷한 몇몇 장면들을 포착해 냈다. 사소한 것 하나조차 그가 본 장면을 해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었기에, 콘라드는 잔뜩 긴장했다.
이윽고 시작되는 비전.
거친 모래바람이 흩날리는 대지.
쪄 죽일 듯이 내리쬐는 태양.
그리고…….
“으아아악!”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고통. 미래를 보는 일이 이렇게까지 힘들었던 적은 없었는데?
경련을 일으켜 가며 저항하던 콘라드는 그대로 코피를 쏟으며 머리를 책상에 찧었다. 미래를 관측한 지 체감상으론 적어도 10분 이상 지난 것 같았지만, 실제론 1분도 되지 않았다. 콘라드는 자신이 혹시라도 본 것들을 까먹지 않기 위해, 비몽사몽 한 의식을 다잡으며 미리 준비한 필기도구를 끌어당겼다.
사막…… 태양…… 구조물…….
촤악!
핵심 키워드들을 적은 콘라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겨 집무실 바깥으로 나섰다.
“꺄아악!”
한창 왕성의 복도를 걸어가던 콘라드는, 자신을 보고 비명을 지르는 하녀를 발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콘라드가 입은 로브의 앞섶은 그의 코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칼에 찔렸다고 오해해도 이상하지 않다.
“자, 잠깐만……!”
콘라드는 손을 뻗어서 하녀를 진정시켰다.
“빨리…… 알프레드 왕자님을…….”
뒤늦게나마 상황을 파악한 하녀는 어디론가 뛰쳐 갔고, 콘라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몇 분 뒤, 크게 당황한 알프레드가 하녀의 안내를 따라 콘라드에게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와, 왕자님.”
콘라드가 아티팩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알프레드는 어렵지 않게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콘라드에게 물었다.
“……확정된 미래냐?”
그의 말에 콘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티팩트가 보여 주는 미래는 어떠한 사건의 과정이 될 수도, 결과가 될 수도 있었다. 만약 그게 과정이었다면 결과는 확정 사항이 아니니 얼마든지 바뀔 여지가 있었지만, 관측한 것이 결과였다면 무슨 짓을 해도 뒤집을 수 없었다.
“무슨, 무슨 내용이었지?”
텁!
콘라드는 알프레드의 팔을 붙잡고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막입니다, 왕자님……! 카델트 대사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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