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41)
140화에 계속 –
140화 있어서는 안 될 사람
“마르크!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
스테치의 다급한 외침에 마르크는 막 떼려던 발을 모래로 된 지면에 도로 붙였다. 조금이라도 어설프게 행동했다간 진동을 감지한 적에 의해 집어삼켜질 우려가 있었다.
“…….”
“……갔나?”
그렇게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땅속 깊숙한 곳에서 괴성이 울려 퍼졌다. 부드러운 모래가 깔린 지면은 금방이라도 폭삭 꺼질 기세로 덜덜 떨려 왔다.
『온다!』
콰아아악-!
10m 높이로 분수대처럼 치솟은 모래가 가라앉을 때쯤. 굵직한 마디로 이루어진, 뱀처럼 기다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 쪽에는 꽃잎처럼 벌어지는 주둥이가 달려 있었는데, 그 안쪽은 뼈도 못 추릴 만한 날카로운 이빨들로 가득했다.
“시발, 뭐 저딴 새끼들이 다 있어!”
샌드웜은 분명 먹이나 환경 조건에 따라 크기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긴 하지만, 그래도 저 정도 사이즈는 보고된 바가 없었다. 스테치는 지면으로 바짝 몸을 낮춘 뒤 어빌리티를 시전했다.
“커스드 아머!”
모래 속으로 파고드는 샌드웜의 움직임은 기이할 정도로 빠른 데다, 외피도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뚫을 수 없다. 스테치는 모래로 된 지면을 힘 있게 밟고 뛰어가며, 엘레나에게 외쳤다.
“입!”
그러자 엘레나는 활을 꺼내 마력으로 된 활대를 만들었다. 마력 효율이 오른 덕분인지, 그녀의 활은 활대만 세 개가 달린 무식한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세 개씩이나 되는 활시위를 당기자, 그녀의 팔이 희미하게 떨려 왔다.
죽창처럼 크고 긴 화살을 만들어 낸 엘레나는 뺨 근처까지 당겨 놓았던 시위를 놓아 버렸다. 파공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총탄처럼 날아간 화살은, 그대로 샌드웜의 외피를 찢고 깊숙이 꽂혀 들어갔다.
“!!”
미친 듯이 버둥거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샌드웜. 그와 동시에 주둥이가 입구처럼 쩍 벌어졌고, 스테치는 도움닫기를 하듯 통통 튀어 오르다가 그 안으로 몸을 날렸다.
“커스 디바우러!”
“《에어 드릴》!”
키이이잉-!
손아귀 안의 공기가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일으켰다. 몸을 감싼 사기의 갑옷이 샌드웜의 이빨을 막아 내는 사이, 스테치는 양손의 《에어 드릴》을 사용해 그대로 샌드웜의 내장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키에엑!”
부들부들 떨며 몸을 비틀던 샌드웜의 주둥이가 엘레나의 앞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살짝 벌려진 주둥이 안쪽에서부터 진한 초록빛의 체액이 한가득 흘러나왔다. 그 안에는 샌드웜이 지금껏 먹어 치웠던 것들의 건더기가 함께 뒤섞여 있었는데, 스테치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
체액 위로 두둥실 떠오른 스테치는 콸콸 쏟아져 나오는 수류에 의해 엘레나가 서 있는 근처까지 밀려왔다. 샌드웜의 입 안으로 뛰쳐 들어갔을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는 각오했는지, 그 표정은 흡사 달관한 자의 얼굴이었다.
응, 이 정도는 예상했어.
스테치는 엘레나가 뻗은 손을 일부러 마다하고선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사막은 수분 보충이 필수니까, 이건 오히려 이득 아닌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인 스테치는 머리카락에 스며든 액체를 한쪽 손으로 쥐어짜 냈다.
“정말 괜찮나, 아텔리어?”
“괜찮아. 아니, 괜찮아야지.”
스테치는 마르크의 물음에 손사래를 쳤다.
추적을 재개한 지 어느덧 닷새째. 사막으로의 진입을 막고 있던 기류를 지나자, 세 사람은 어느 정도 마력과 대기가 안정화된 영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마력을 잔뜩 머금고 거대해진 몬스터들의 위협은 상상을 초월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습격은 기본이고, 방금 전과 같은 샌드웜급 몬스터들이 떼거리로 덤벼 오는 경우는 더더욱 빈번하게 일어났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날씨였다.
“이런.”
스테치는 문득 하늘이 어두워졌음을 깨닫고는 혀를 찼다.
“큰일 났다. 빨리 가지 않으면…….”
엘레나와 마르크도 발걸음을 더더욱 서둘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변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몸을 숨길 만한 장소나 구조물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쿠르릉-.
어느새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 너머에서 뇌광이 번뜩이자, 마르크는 자기 몸집만 한 방패를 우산처럼 번쩍 들어 올렸다. 스테치와 엘레나가 마르크를 중심으로 바짝 붙자마자, 얇은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졌다.
“조심!”
방패 바깥으로 삐져나온 엘레나의 발을 붙잡아 당기자, 땅에 떨어진 빗방울이 맹렬한 거품을 일으키며 탄내를 풍겼다. 강력한 산성 빗줄기는 점점 그 기세를 더해 가더니, 스테치 일행의 머리 위에 씌워진 방패를 마구 두들겨 댔다.
그 와중에 신기하게도 사막의 모든 자연적 지형지물들이나 몬스터들은 빗방울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거기에 피해를 입는 건 오직 외부에서 유입된 스테치 일행에 한했다.
슈화아악-.
방패 표면에 화학 반응을 일으킨 빗물이 하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크로스 윈드》…….”
빗방울을 밀어내기 위해 주문을 시전한 스테치. 이대로 비가 그칠 때까지 서 있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아쉽게도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쾅!
눈앞을 새하얗게 물들이는 섬광과 함께, 지면으로 떨어지는 번개. 1억 볼트가 넘는 전류가 모래를 때리면서, 순식간에 새하얀 바윗덩어리로 굳어 버렸다.
스테치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본인이라면 모를까, 이대로 번개에 직격당했다간 엘레나도 마르크도 모두 끝장이었다. 어딘가 확실히 몸을 숨길 만한 곳을 만들지 않으면……. 스테치는 손가락으로 지면을 가리킨 뒤 주문을 시전했다.
“《아이스 웨이브》”
손가락 끝에서 뿜어져 나온 냉기가 바닥을 얼리면서 단단하게 만들었다. 스테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손을 천천히 둥글게 돌려 가면서 얼음으로 된 천장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훌륭한 간이 은신처를 만들어 낸 스테치가 마르크에게 말했다.
“가자!”
쭈뼛거리면서도 어떻게든 구조물 아래에 도착한 스테치는, 주문으로 얼음벽을 한층 더 단단하게 보강시켰다. 바닥이 차갑긴 했지만, 바깥에 서 있다가 튀겨지거나 녹아 버리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쏴아아-.
다행히도 비는 잠깐 내렸다 그치는 소나기에 불과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쳐다보던 스테치는 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훔쳐 냈다. 몬스터나 기후 정도로 끝났으면 차라리 안심이었겠지만,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안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처음 사막의 중심부로 향했을 때, 스테치는 추적이 장기화될 것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카델트 대사막은 대륙을 북과 남으로 양분할 정도로 엄청난 사이즈를 자랑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이후, 스테치는 생각을 바꿔 먹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이상을 감지했던 것은 엘레나가 커다란 바위 하나를 발견했을 때였다. 수백 미터도 넘는 거리에서 보일 정도로 큰 바위가, 잠시 넋 놓고 걷기 시작한 지 5분 만에 그들의 코앞으로 와 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신기루라도 보고 착각했나 싶었지만, 메멘토 모템은 이를 부정하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답을 들려주었다.
바로 사막 전체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덕분에 스테치 일행은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하루 종일 걸었는데 5km가 고작인 경우도 있었다.
‘이래서야 아치발의 신자하고 우리가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지를 가늠해 보는 건 의미가 없겠지…….’
서로 간의 이동 거리가 일정치 않다면, 남은 것은 그저 체력 승부다. 아치발의 신자는 이덴 마을 사람과 이동 속도를 맞춰야 할 테니, 최소한 하루 동안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스테치 일행보다 턱없이 부족할 터.
“아텔리어 씨. 비가 그쳐 갑니다.”
엘레나의 부름에 스테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빗줄기가 조금씩 얇아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마저 걷히고 다시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비가 완전히 그친 지 5분 정도 지나고, 스테치는 얼음 은신처 바깥으로 머리만 빼꼼 내밀어 살펴보았다. 지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분기 하나 없는 메마른 모래로 되돌아와 있었다.
“……좋아, 계속 이동하자. 아직 밤이 되려면 한참 멀었으니까.”
딱 한 가지 다행이라면, 사막의 지형은 항상 바깥에서 중심부를 향해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스테치 일행은 그 거리가 짧든 길든 언제나 앞으로만 나아갈 뿐, 뒤로 되돌아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산성비도 그렇고, 이 기묘한 지형 변화 현상도 그렇고…… 마치 사막 전체가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것 같군.』
‘불길한 소리 하고 있네.’
스테치는 메멘토 모템에게 핀잔을 주고선 계속 길을 나아갔다.
* * *
며칠 뒤.
세 사람은 예정에도 없던 거센 돌풍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바람에는 모래가 뒤섞여 있어 한 치 앞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 스테치와 엘레나는 방패를 앞세운 마르크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가고 있었다.
『이건 그냥 바람이 아냐. 우리가 사막에 들어오기 전에 봤던 것과 똑같은 두 번째 마력 폭풍이다!』
“그럼 그 길 찾기를 나보고 또 하라고? 한 번이면 족한 줄 알았는데!”
스테치는 짜증을 부리며 《애니멀 인스팅트》를 시전했다. 이전보다도 훨씬 시야가 제한되어 있었지만, 한번 요령을 터득한 그는 곧 어렵지 않게 안전한 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왼쪽으로 꺾어!”
스테치의 지시에 따라 마르크가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거대한 돌덩이가 폭풍에 휩쓸려 날아와 마르크를 강타했다.
“으으윽!”
순발력을 발휘해 방패로 받아 낸 마르크는, 그대로 팔을 휘둘러 돌덩이를 옆으로 흘려보냈다. 하마터면 돌덩이에 치여 마력 폭풍에 휩쓸릴 뻔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 흐르고 난 뒤, 스테치는 기어이 두 번째 마력 기류도 상처 하나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시끄럽게 귓전에 울리던 바람 소리가 거짓말처럼 멎은 것도 바로 그때였다. 이제는 좀 안심해도 되겠거니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스테치에게, 엘레나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아텔리어 씨…… 저거…….”
“어?”
스테치는 그제야 자신의 앞에 나타난 산을 보았다.
모래로 된 둔덕이 아닌, 붉은 사암이 퇴적되고 깎여져 만들어진 산. 지금까지 바윗덩이 하나 보지 못했는데, 갑자기 온전한 형태를 갖춘 산이 나타나다니 기묘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벅. 저벅.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스테치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후드와 로브를 뒤집어쓴 세 명의 사람이 우뚝 서 있었다.
“……아치발의 신자냐?”
의미가 없는 질문이었지만 그래도 던져 본다. 그러나 후드 밑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스테치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쾌하면서도 힘 있는 남성의 목소리였다.
“난 그런 놈 모르는데?”
“……!”
방패를 든 마르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스테치의 질문에 대답한 남성은 답답하다는 듯 후드를 벗어 재끼더니, 씨익 웃으며 마르크에게 말했다.
“오래간만이네, 장군.”
그는 바로 베네지아의 제1 왕자인, 랍토레스 메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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