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44)
143화에 계속 –
143화 위기의 순간
폭발의 여파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뒤로 물러서라는 스테치의 경고가 무색해지게, 사막의 모래가 파도처럼 일어나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을 덮쳤다. 스테치는 물론이고 랍토레스나 그의 부하들 모두, 뜨겁게 달궈진 모래 밑으로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푸화아아악!
커스드 아머의 보호 덕분에 다치거나 하진 않았지만, 모래 속에 갇혀 있던 스테치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방향 감각을 상실한 탓에 위아래가 구분 가지 않는 데다,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할 정도로 자신을 짓누르는 모래 때문에 곧장 탈출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스테치의 의식은 멀쩡했고, 커스 디바우러에 의한 신체 강화 효과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 정도 밀폐감이면 호흡 곤란과 정신 착란에 빠질 법도 하건만, 스테치는 침착하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잠시 후.
모래를 뚫고 머리를 빼꼼 내민 스테치는, 콜록대느라 한동안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모래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저 아래 어딘가에 파묻혀 있을 엘레나와 마르크를 구하는 일이었다.
“《애니멀 인스팅트》!”
스테치는 감각 기관을 최대한 발휘하여 두 사람의 위치를 파악해 냈다. 다행히 스테치보단 얕게 묻힌 덕에, 몇 분 지나지 않아 전부 구해 낼 수 있었다.
“콜록, 콜록!”
스테치는 엘레나와 마르크를 천천히 일으켜 세우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랍토레스는 물론이고 그의 두 부하들도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도 모래에 깔렸나? 스테치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바로 그때, 붉은 산 정상의 파괴된 부분으로부터,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저게 뭐지?”
인간인 마르크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가시화된 강력한 사기. 세 사람이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쳐다보는 동안, 멎은 줄 알았던 땅울림이 다시 발생했다.
쿵-. 쿵-.
길게 이어지는 지진과 다르게, 이번 진동은 규칙적인 간격으로 뚝뚝 끊겨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붉은 산의 파괴된 곳을 통해 거미처럼 기다란 두 팔이 빠져나왔다.
“어.”
눈앞의 광경을 본 스테치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균열 틈새를 통해 기형적으로 길쭉한 두 팔을 꺼낸 무언가는, 붉은 산의 능선을 짚고선 천천히 나머지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완전히 일어섰을 때의 크기는 지금까지 스테치가 봐 온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거대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수분기 하나 없이 앙상하게 말라 비틀어진 신체. 그리고 두 눈알이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는 대신, 불꽃처럼 일렁거리는 사기가 넘쳐흘렀다.
“…….”
서로 간에 상당한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인은 자신을 쳐다보던 스테치와 정확히 눈을 마주쳤다. 별의별 일을 다 겪어 본 스테치조차 일순 겁을 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압감. 스테치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어?”
허리춤 근처에서 강한 열기를 느낀 스테치가 문득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할로우 블레이드가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던 스테치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저게…… 아치발의 신자라고?”
콰앙-.
그 말에 응하듯, 모래먼지와 바위 파편을 흩뿌려 대며 스테치 일행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거인. 스테치는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는 그 모습에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만 같았다.
탐험가와 모험가들 사이에 전해지는 말이 있었다. ‘몬스터의 힘과 사이즈는 정비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눈앞에 우뚝 선 몬스터는 너무 컸다.
“엘레나. 내가 먼저 공격할 테니까, 뒤에서 엄호해 줘.”
“……예.”
싸워 보지도 않고 승산을 따질 수는 없는 법. 스테치가 앞으로 걸어 나가자 엘레나는 활시위를 당겼고, 마르크는 그런 그녀의 옆에 선 채 방어 자세를 취했다.
스테치는 도움닫기를 하듯 넓은 보폭으로 훌쩍훌쩍 뛰어가기 시작했다. 타이밍에 맞춰 커스 디바우러를 시전함과 동시에, 스테치는 대포알처럼 튀어나가 거인의 안면으로 달려들었다.
“우오아아앗!”
퍼어억!
강화된 근력과 커스드 아머의 약체화 능력이 합쳐진 덕분일까? 스테치의 펀치에 머리가 뒤로 크게 젖혀지면서, 거인은 이동을 멈추고 휘청거렸다.
그러나 스테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소드벨트에 걸려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할로우 블레이드가 눈앞의 거인에게 반응하고 있는 거라면 틀림없이 그에게 힘을 빌려줄 터였다.
황금빛을 발하는 스테치의 검 위로 바라크의 번개가 휘감겼다. 스테치는 그대로 거인이 들어 올린 손바닥 깊숙이 검을 찍어 넣은 뒤, 체내로 직접 전격을 때려 박고선 허공으로 다시 뛰어올랐다.
빠지직!
하얀 김을 몸 여기저기에서 피워올리며 부들거리는 거인. 스테치는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거인의 반응을 살폈다.
‘먹혔나?!’
그래도 조금은 대미지를 주었겠지, 하고 기대하던 스테치의 옆으로 난데없이 거인의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공중에서 적의 공격을 피할 방법이 없었던 스테치는, 속수무책으로 얻어맞고 날아갔다.
“아악!”
콰광!
부드러운 모래밭 위를 물수제비처럼 튕겨 나가는 스테치. 엄청난 충격에 비해 상처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거인의 일격에 의해 커스드 아머는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괜찮냐?!』
메멘토 모템은 서둘러 스테치의 몸 주변으로 커스드 아머를 재전개시켰다. 그사이 엘레나는 조금이라도 거인의 이동을 늦춰 보기 위해 연신 화살을 발사해 댔다.
그러나 거인은 화살 따위에 아랑곳 않고 오직 자신이 날려 보낸 스테치에게로 곧장 향할 뿐이었다. 엘레나가 쏘아 보낸 회심의 일격조차 거인의 발걸음을 아주 잠깐 멈춰 세우는 정도에 그쳤다.
“대체…… 뭘 하고 저렇게 세진 거야?”
정신을 차린 스테치는 이를 악물었다. 할로우 블레이드의 힘은 확실히 발동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그 이상으로 훨씬 더 강해진 게 문제였다.
여기서 쓰러지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저 거인이 만약 이 사막에서 벗어나 남부나 북부로 갔다간,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게 뻔했다. 스테치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싱크로를 발동했다.
“커스 디바우러, 《라이트닝 스피드》, 《써멀 비트》.”
공중에 떠오른 결정 덩어리 세 개가 스테치의 주위를 뱅뱅 돌더니, 이내 새빨간 열기를 내뿜으며 굵직한 열선을 거인에게로 발사했다.
강한 물리력이 아니면 상대를 저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스테치는, 그다음으로 수많은 《에어 불렛》의 탄환들을 만들어 냈다.
“가라앗!”
투두두!
35발의 《에어 불렛》이 일제히 거인의 몸뚱이를 두들겼다. 스테치는 엘레나의 엄호 사격을 등에 업은 채 돌진한 다음, 거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에어 드릴》!”
《에어 드릴》을 손에 두른 스테치가 다시금 주먹을 뻗자, 주문과 맞닿은 거인의 흉판 깊숙이 스테치의 팔이 박혀 들어갔다. 충분히 손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그는 곧장 다음 주문을 시전했다.
“《코어 블라스트》!”
투콱!
울룩불룩 부풀어 오른 거인의 흉판이 피 분수를 일으키며 터져 나갔다. 그러자 터져 나간 가슴의 중심부에, 심장처럼 두근거리며 검은 사기를 퍼뜨리고 있는 ‘핵’이 외부로 노출되었다.
『검은 아티팩트다!』
메멘토 모템이 외쳤다. 이 자식, 아티팩트를 통째로 집어삼킨 건가? 하기야 그 정도가 아니면 세계수에서 싸웠던 아치발의 신자보다 강력해진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거인이 괴성을 지르며 스테치를 떼어 내려 드는 순간, 스테치는 그대로 거인의 가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대로 베어 갈라 주마!”
할로우 블레이드 위로 겹쳐진 《인페르노》의 불꽃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피어올랐다. 거기다 검 주변으로 모여든 《써멀 비트》의 열선이 더해지면서, 스테치의 검은 거대한 화염의 검이 되어 이글거렸다.
푸화아악!
불길과 거인의 정수리가 맞닿은 접촉면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스테치는 거인의 머리통에 박아 넣은 검에 체중을 싣고선, 그대로 복부까지 내려그어 버렸다.
그러나 스테치의 검은 거인의 손바닥에 잡혀 도중 멈춰 버리고 말았다. 불꽃을 거머쥔 손아귀가 타들어 가는 데도, 거인은 뼈다귀처럼 이빨만 남은 입을 쩍 벌리더니 웃음소리 비슷한 무언가를 흘렸다.
“끄으윽!”
잠시간 힘겨루기를 하던 스테치는, 하는 수 없이 모든 마법을 중단하고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스테치가 무사히 착지하는 것을 본 엘레나는, 거인에게 화살을 쏘아 대며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꿈쩍도 안 하는데요?!”
마법이란 마법은 죄다 때려 박았는 데도 소용이 없다. 사실, 공격이 제대로 먹히고 있긴 한 건지조차 모르겠다. 급격한 마력 소모에 한창 헐떡이던 스테치가 위를 올려다보자, 한쪽 발을 뒤로 당긴 거인이 그림자가 막 세 사람의 머리 위에 드리워졌다.
약한 위력으로 발사한 《에어 불렛》의 공기가 마르크와 엘레나를 멀찍이 밀어내자마자, 스테치는 그대로 거인의 발에 차였다.
뿌드득-
“으아아아아악!”
거인의 발끝에 벌레처럼 찍혀, 무력하게 날아가는 스테치. 내장이 터지고 뼈가 작살 나는 감각이 커스드 아머를 뚫고 고스란히 그의 뇌까지 전해졌다.
털썩!
모래 바닥 위로 굴러가던 몸이 멈출 때까지, 스테치의 숨은 대략 10초가량 완전히 멎어 있었다. 박살 난 뼈의 일부는 살가죽을 찢고 튀어나왔고, 그 외 나머지는 가루가 되어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크웨엑.”
하지만 반지는 그가 순순히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어빌리티에 의해 되살아난 스테치는 입 안 한가득 고인 피를 옆으로 뱉어 낸 뒤, 차례로 복구되어 가는 몸을 다시 일으켰다. 튀어나온 뼈와 내장이 다시 몸 안으로 되돌아가는 광경은, 정말이지 맨정신으론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그나마 유의미한 대미지를 입혔던 기술은 《인페르노》와 《써멀 비트》, 그리고 할로우 블레이드의 힘을 조합한 열광선검이었다.
하지만 그만한 기술을 다시 사용하려면 또다시 막대한 마력을 소모해야 되는 데다, 그것으로 거인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 없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아텔리어 씨!”
거인이 손바닥을 들어 올린 것과, 엘레나의 외침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콰직!
피할 틈도 없이 모기처럼 손바닥에 찍어 눌린 스테치는, 양팔과 다리를 사용하여 그에 저항했다.
“끄으으으아아……!”
몸 여기저기의 혈관이 터지면서, 코피가 흐르고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부러지고 회복되기를 반복하는 다리와 팔. 조금이라도 상대가 더 힘을 가했다간 눌려 죽게 생겼다. 전신을 부들거리며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선 스테치에게, 메멘토 모템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야! 저거!』
메멘토 모템의 말을 들은 스테치가 바닥을 내려다보니,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손이 모래 밑에서부터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손목에는 팔찌 같은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
아티팩트?
왕자의 부하가 쓰던 건가?
『그래, 그거야!』
메멘토 모템의 말을 들은 스테치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 깨달았다. 아니, 그것보다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에 더 가까웠다. 스테치는 잘 벌어지지도 않는 입으로 중얼거렸다.
“커스 이팅……!”
슈화아악!
아티팩트를 빨아들이자, 메멘토 모템으로부터 발산된 녹색 빛이 점점 그 밝기를 더해 갔다. 혼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메멘토 모템의 업그레이드 프로세스를 완료한 스테치는 힘겹게 떨리는 입술을 달싹였다.
“어빌리티…… ‘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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