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55)
154화에 계속 –
154화 우정
어둠의 숲을 떠난 스테치는 엘레나와 함께 클로드 마을로 향했다. 길목마다 설치된 초소에서 엄격한 검문이 진행됐지만, 이미 추적이나 감시를 피하는 데에 도가 튼 두 사람에게는 문젯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으응. 내가 처음으로 혼자서 클리어한 던전이 그 근처에 있었거든. 새삼 예전 기억이 떠오르네.”
두 사람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수풀을 헤치고 나아갔다. 어둠의 숲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을이었던 만큼, 스테치와 엘레나는 예정했던 것보다도 더욱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다.
“저기가 클로-.”
작은 언덕 하나를 막 올라간 스테치의 입이 쩍 벌어졌다.
과거에 비해 수 배 이상 커진 마을 크기. 위에서 내려다보기에도 확연히 늘어난 사람들의 숫자. 거기에 기존의 목재 방책이 아닌, 훌륭하게 바위를 쌓아 만든 작은 성벽까지. 다시 보게 된 클로드 마을의 모습은 그가 기억하던 것과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다.
“어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당황한 스테치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달튼한테 던전이 매몰되면서 사라져 버린 광맥 위치를 알려 주지 않았던가? 마침 시선을 돌려 보니, 정돈된 길과 함께 광산용 짐수레 카트 여러 대가 마을 입구 쪽에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자식, 성공했구나!”
스테치는 환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저것 하나만으로도 달튼과 클라이드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스테치는 그가 무엇에 당황하고 좋아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엘레나에게 달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것참 다행인 이야기지만……. 마을 안으로는 어떻게 들어가실 생각이죠? 방금 한 말대로라면 마을에 들어가는 비밀 통로는 사라졌다는 소리잖아요?”
“녀석이 직접 찾아오게 해야겠지.”
아티팩트의 어빌리티로 병사들의 정신을 조종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래서야 닭 잡는 데에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다.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스테치는 경비병이 붙어 있지 않은 성벽 쪽에 왼손을 바짝 붙인 뒤, 그 상태로 어빌리티 아바타를 사용했다.
“욥.”
마을 안쪽의 으슥한 골목길 제일 안쪽. 마력으로 몸을 형성해 낸 프레야가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뭘 해야 될지는 잘 알고 있겠지?”
“그 달튼이란 놈을 찾아서 네가 부르고 있다고 말하면 되는 거 아냐?”
두꺼운 벽을 사이에 끼고 있었지만, 스테치와 프레야는 반지 덕분에 아무 문제 없이 커뮤니케이션을 취할 수 있었다. 당장 스테치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던 엘레나는, 곧 그가 프레야와 대화 중이라는 걸 눈치채고선 감탄했다.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었군요.”
“이렇게 안으로 들여보내면, 안에 있는 병사들은 프레야를 봐도 입구 쪽에서 신분증 검사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할 거야.”
골목을 빠져나온 프레야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스테치와 함께 마을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았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마을은 완전히 달라진 상황.
프레야는 급한 대로 지나가던 마을 사람 하나를 붙잡고 말을 건넸다.
“야. 거기 너.”
“엉?”
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던지기엔 꽤나 험악한 말투다. 남자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와 동시에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황금색 눈동자에 화염같이 붉은 장발의 머리카락. 구릿빛으로 탄 건강한 피부. 인간적이지 않은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외모 그 자체였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그제야 프레야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하나둘씩 멈춰 서서 그녀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음을 인지한 프레야는 서둘러 용건을 말했다.
“달튼이라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어디서 찾아야 되는지 아나?”
“그…… 그 사람이라면, 저기…….”
남자가 가리킨 방향에는 마을 내에서도 독보적으로 커다란 건물이 서 있었다. 원하는 답을 알아낸 프레야가 씨익 웃어 보이자, 남자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고맙다.”
인파가 더 몰리기 전에 자리를 후다닥 벗어난 프레야는 남자가 알려 준 건물 쪽에 가까이 다가갔다. 마차를 여러 대 세워 둘 수 있는 훌륭한 하역장과, 그 앞에 수북히 쌓인 물품 상자들. 건물 입구 위에 걸린 현판에는 ‘메디코프 상회’라고 쓰여 있었다.
“야, 스테치. 너 혹시 메디코프 상회라는 이름 들어 봤어?”
“아니, 모르겠는데.”
프레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 안으로 들어섰다. 상회 건물 안에는 정보를 공유하느라 테이블 앞에 둘러앉은 행상인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상품을 매입하려는 이들로 꽉 차 있었다.
“찾았다. 저기 저놈.”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 내며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제일 안쪽에 있는 바 테이블 너머의 덩치에게로 걸어갔다. 프레야가 기억하는 그대로의 달튼이, 술집을 운영하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 술잔을 닦고 있었다.
그는 잔 안쪽에 남은 희미한 얼룩을 닦아 내려고 애를 쓰다가,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곤 잔과 행주를 내려놓았다.
“어이쿠, 오늘은 어쩐 일로 미인이 오셨네. 무슨 볼일이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보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에 프레야는 만족스러워하며 테이블 앞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바 테이블에 앉은 것은 그녀 한 명뿐. 상인들은 멀찍이에서 프레야의 모습을 숨죽여 구경하느라 한창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마 이 정도 거리면 달튼과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잘 들리지 않겠지.
‘찾았다고? 그럼…….’
프레야에게 막 지시를 내리려던 스테치는 문득 말문을 멈춰 버렸다. 그에게 걸린 800만 크라운은 친구조차 배신할 수 있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거금이다. 아무리 달튼과 친분이 있다고 해도, 지금 이 상태에서 곧장 그와 만나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일까?
확인이 필요했다.
‘머릿속을 읽어 봐. 그 정도는 아깝지 않아.’
“흠…….”
잠시 뜸을 들이던 프레야는 달튼이 건네는 탄산음료를 거부하더니, 상반신을 바짝 들이밀었다.
훅-.
“어라?”
한 폭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붉은 머리의 여성을 남몰래 구경하던 상인들은 두 눈을 깜빡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여성의 모습이 일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 같았다.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오히려 네 걱정투성이던데?”
프레야는 어빌리티 시져로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나온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자리에 앉은 채 중얼거렸다.
“우욱…….”
그러나 달튼은 갑작스런 현기증이 몰려온 탓에, 그녀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틈이 없었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관자놀이를 검지로 살살 문지르는 달튼에게, 스테치의 다음 지시를 들은 프레야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브라이언 고슬링이라는 이름, 혹시 들어 봤나?”
스테치가 자주 사용하는 가명. 극소수의 알 만한 사람들은 그 이름이 누굴 말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으니, 물어보면 아는 척을 할 터. 그러나 달튼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는데?”
달튼의 몸이 긴장으로 뻣뻣해졌다. 그로서는 상대가 왜 스테치를 찾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혹시 현상금 사냥꾼인가? 그러더니 여성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생긴 건 곰 같아 가지고 하는 짓거리는 완전 여우군.”
“…….”
달튼은 프레야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녀가 방금 한 말은 스테치가 그에게 자주 하던 소리였다. 오직 스테치 아텔리어만이 사용한, 남들 앞에서는 한 번도 쓴 적 없는 표현. 달튼이 관심을 보이자 프레야가 말했다.
“녀석이 마을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다. 들어올 방법이 없어서 고생하고 있다더군.”
“이런.”
달튼은 바 테이블에서 빠져나와 상회 건물 바깥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고, 프레야는 그가 남겨 놓은 탄산음료를 몇 번 홀짝이고선 그 뒤를 따라나섰다.
마을 입구를 나서면서 몇몇 병사들과 아는 척을 한 그는, 프레야의 안내를 따라 근처의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는 스테치와 누군지 모를 여성이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정신 나간 놈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대체 바깥에서 뭔 짓을 하고 다니길래 현상금이 그 따위로 수직 상승하는 건데?”
달튼이 스테치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 대며 물었다. 그러자 스테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건 차차 설명할게……. 그나저나 너 용케 안 잡혔다? 이제까지 나랑 네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적지 않을 텐데……. 누가 병사들한테 널 찌르진 않았어?”
“네 덕분에 괜찮을 수 있었어.”
달튼이 말했다.
스테치가 알려 준 정보를 기반으로 광산 개발을 시작한 그는, 온갖 귀중한 광물들이 가득한 광맥을 찾을 수 있었다. 돈방석에 앉게 된 그는 상회를 차려서 블랙 마켓의 기반을 다지고, 그와 동시에 자기 자신을 남들이 함부로 터치할 수 없는 위치까지 끌어올렸다.
“너랑 내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놈들은 많지만, 이제 날 병사들한테 넘기는 짓거리는 못해. 마을 경제의 주축이 되는 채광업을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데다, 이제 와서 날 물고 늘어지기엔 블랙 마켓 라인에서의 내 비중이 나름대로 상당한 수준까지 커졌거든. 제거하기엔 쓸모가 많다는 걸 아는 거지.”
그는 스테치에게 말했다.
“전부 네 덕분이야. 그 광맥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시체로 썩어 가고 있었겠지.”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워섬기는 달튼. 그는 프레야를 쳐다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날 불러낸 건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어. 블랙 마켓조차도 이젠 네게 안전하지 않거든.”
“역시 그렇구나.”
스테치가 살짝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 마켓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정도의 깊고 얕음을 떠나 모두가 다 불법적인 사업에 어느 정도 연관이 되어 있다. 때문에 본인도 범법자이기 때문에 다른 동업자를 신고할 수 없는, 그런 기묘하면서도 효과적인 체계가 갖춰질 수 있는 것이다.
블랙 마켓 이용자에게 현상금이 걸리는 건 그닥 희귀한 일이 아니라지만, 그것이 800만 크라운의 고액이라면 경우가 다르다. 결국 스테치의 예상은 멋들어지게 적중한 것이다.
“일단 나도 여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어. 마을 안에서 날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 버리는 바람에, 어디 움직일 때마다 시선을 끌게 돼 버리거든. 게다가 아무리 지금의 나라도 너랑 같이 있는 모습을 들켜 버렸다간 그땐 끝장이야.”
“알았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 숲 근처에 성벽 아래를 따라 상회 건물의 물품 창고까지 이어지는 작은 터널이 있어. 혹시 몰라서 도주 경로로 쓰려고 만들어 놓았거든. 그걸 사용해서 상회까지 와. 일단 안으로 들어오면 속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야.”
스테치는 달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