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57)
156화에 계속 –
156화 빅 브라더
“옛다, 먹어 봐라. 우리 상회에서 자랑하는 특제 조식이다.”
“상회의 주인씩이나 돼 놓고선 아직도 요리를 하고 술잔을 닦는 거야?”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해지거든.”
오전 6시 30분.
계란 프라이와 구운 베이컨, 그리고 감자와 우유를 넣어 만든 걸쭉한 스프가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숨을 깊게 들이쉬며 향을 만끽한 스테치는 스푼과 포크를 바삐 놀려 대며 이른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숲에 있을 때는 먹어 볼 수 없었던 기름진 음식이었기에 그 반가움은 더더욱 컸다.
“근데…… 너 괜찮아?”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달튼이 묻자, 스테치는 그릇과 접시를 내려다보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피곤함으로 그득한 두 눈을 마주 보게 된 달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건 전혀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 아닌데. 너 그 아가씨랑 사귀는 거 아니었어?”
“맞지. 아주 그냥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인데.”
“그렇다면 당장 깨가 쏟아지고 좋아해도 모자랄 판에 얼굴이 왜 그렇게 죽상이야? 기껏 배려해서 한 방을 쓰게 해 줬더니만……. 너네 혹시 싸웠냐?”
“아냐……. 그리고 그딴 배려 필요 없어…….”
스테치가 중얼거렸다.
물론 그로서도 엘레나와 함께 지내는 생활이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좋아서 문제였지. 쓸데없는 달튼의 ‘배려’ 때문에, 스테치는 아닌 밤중에 이성의 끈을 놓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야만 했다.
“네 덕분에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요 모양 요 꼴이 된 거 안 보여?”
스테치는 뻐근하게 굳은 몸을 풀기 위해 양팔을 휘휘 돌렸다.
“이거 보기보다 아주 쑥맥이었구만? 잘되라고 푸쉬를 해 줬는데도 이런 대접이라니. 슬프도다, 친구여.”
비꼬는 말투로 노래 부르는 것처럼 읊조리는 달튼. 스테치는 더 듣기 싫었는지 최대한 빠르게 아침을 해치우고 난 다음, 바로 그릇을 옆으로 치워 버렸다.
“계속 그렇게 실없는 소리만 지껄일 거면 난 이만 돌아간다. 아침 잘 먹었어.”
“어어, 잠깐 기다려. 아직 내 용건은 안 끝났다고.”
달튼의 부름에 스테치는 입술을 삐죽이며 천천히 자리에 도로 앉았다.
“어제 네 이야기를 듣자마자 우리 쪽 애들을 시켜서 조금 뒤져 봤는데, 흥미로운 기록을 하나 발견했거든.”
“벌써? 거 되게 빠르네.”
“내 말 끝까지 들어 봐. 아직 스카이 걸킨의 소재를 파악한 건 아냐. 대신 다른 걸 하나 찾아냈지.”
달튼은 카운터 아래에 놓아두었던 종이를 하나 꺼내 주었다. 스테치가 눈짓으로 설명을 재촉하자 달튼이 말했다.
“그건 블랙 마켓 이용자들의 의뢰나 요청들을 기록해둔 문서의 일부야. 우린 사소한 것부터 중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고객들의 모든 행적들을 하나하나 전부 기록하게 돼 있어. 원래대로라면 이걸 너한테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큰일 날 내용이니까 어디 가서 입도 뻥긋하지 마.”
“내가 이런 걸 털어놓을 상대가 어디 있다고 그런 말을 하냐? 걱정도 참.”
달튼의 신신당부를 대충 흘려넘긴 스테치는 종이에 적힌 문구를 훑어보았다. 그곳에는 누군가가 스카이 걸킨에 대한 접선책을 찾고 있다는 의뢰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요약해 보자면…… 나 말고 스카이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던 사람이 또 있었다고?”
“그래. 심지어 버든 베어에서 범죄자에 대한 대규모 소탕 작전이 벌어지기 불과 이 주일쯤 전에 들어온 의뢰야. 뭔가 수상쩍지 않냐?”
“혹시 어디 귀족이나 왕가 쪽 사람인 거 아냐?”
“그럴 가능성은 절대 없어. 너도 이 시장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잘 알 거 아냐.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그냥 단순한 일반인이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블랙 마켓도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은 해체의 위기를 겪어 왔다. 대부분의 경우는 불법적인 사업을 조사하기 위해 잠입한 왕가의 끄나풀들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의 블랙 마켓은 모든 이용자들의 신원 파악을 철저히 하는 편이었다.
어쨌거나 블랙 마켓 지부장인 달튼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확실히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의뢰인의 목적은 뭐지?
“……이 자식이 뭐 하는 놈인지 캐 봐야겠어. 혹시 가능해?”
“당연하지.”
달튼은 스테치가 되돌려주는 종이를 받아 품 안에 집어넣었다. 시간이 좀 흘러서 그런지, 주변에서 뭐라 떠드는 소리가 하나둘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테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달튼은 얼른 새 쟁반 위에 또 다른 아침 식사를 올려 주었다.
“설마 너만 배불리 먹고 끝낼 생각은 아니겠지? 이거 가져가서 그 아가씨 먹여.”
“고마워.”
쟁반에서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계단을 올라간 스테치는, 마침 잠에서 깼는지 문을 열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엘레나와 마주쳤다. 스테치는 누가 볼세라 얼른 그녀를 방으로 다시 밀어넣은 뒤 식사를 건냈다.
“타이밍이야 우연히 맞아떨어질 수 있다고 하지만…… 누굴까요, 그게?”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던 스테치는, 갑작스럽게 날아든 질문에 깜짝 놀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모, 모르겠어. 달튼이 알아본다고 했으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얼굴을 붉히는 스테치와, 그런 그의 모습에 의아해하는 엘레나. 잠시 시선을 피한 스테치는 달걀을 먹는 엘레나를 내려다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정말…… 너무 예뻐 죽겠다.’
그녀는 숲에서 노숙하던 순간조차 청결함을 유지할 정도로 꼼꼼했는데, 지금은 막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어딘지 모르게 살짝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와서, 스테치는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눈에 아주 콩깍지가 끼셨구만. 뭘 해도 좋아 보이지?』
‘응.’
생각 이상으로 곧잘 나오는 대답에 프레야는 더 이상 놀릴 기분이 들지 않았는지, 끙- 하는 신음과 함께 입을 다물어 버렸다.
* * *
“이만 물러가 봐도 좋다.”
“예. 그럼 편하신 만큼 살펴보시길…….”
몇 주 뒤, 행방불명된 첫째 왕자를 찾기 위한 수색 작전은 전면 중단되었다.
광활한 모래밭에서 무작정 랍토레스를 찾아 헤매기엔 낭비할 인력이 없다는 점이 바로 그 이유였다. 이처럼 왕위 계승 서열 1위를 너무나도 간단히 쳐 버리는 가혹한 처사에, 첫째 왕자의 왼팔이라 불렸던 이드릴 헨리에타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의문이나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왕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어느 누구도 감히 그에 대한 항의의 뜻을 공식적으로 내비치지 못했다.
철컥-.
문을 닫은 알프레드는 천천히 랍토레스의 개인실 안을 둘러보았다.
왕의 암묵적인 허가가 떨어진 이상, 그는 이제 왕성의 어느 곳이든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첫째 왕자의 사망이 확정된 건 아니었지만, 왕성 내의 사람들은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
알프레드는 예전에 이 방에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마셨던 와인의 맛을 문득 떠올리며, 그는 벽 한켠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캐비닛으로 시선을 옮겼다. 첫째 왕자가 방문객들을 상대로 잘난 척할 때에 자주 써먹었던 아티팩트 캐비닛이었다.
달칵.
자물쇠가 문짝에 달려 있긴 했지만, 효과적인 보안을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내장식 자물쇠를 만지작거린 알프레드는, 손에 쥐고 있던 로드를 거칠게 휘둘러 완전히 박살 낸 뒤 강제로 캐비닛 문을 열었다.
“흠…….”
빈자리가 몇 개 보인다. 대사막으로 가면서 챙겨 간 건가? 잠시 고민하던 알프레드는 아티팩트들을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쥐어 보기 시작했다. 아티팩트와 접촉할 때마다 그것의 사용법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아쉽게도 진열된 아티팩트들 대부분이 겉보기에만 그럴싸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알프레드는 혀를 차며 손에 들고 있던 활 형태의 아티팩트를 받침대 위에 다시 올려두었다.
그렇게 한참을 수색한 끝에, 알프레드는 기어이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다.
‘이것 봐라……. 설마설마했는데.’
알프레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손에 들린 물건은 귀에 부착할 수 있는,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반구형 아티팩트. 그 위에는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조그마한 붉은색 단추가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알프레드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감청용 아티팩트. 이전부터 그런 게 존재하지 않을까- 하고 존재 여부를 의심해 오고 있었지만, 결국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미래시의 내용이 유독 랍토레스에게만 줄줄이 새어 나갔던 이유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아티팩트를 손에 넣은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집무실로 가는 것이었다. 문을 거의 부숴 버릴 기세로 열어젖힌 알프레드는, 감청용 아티팩트 ‘퓨젯’을 움켜쥐고선 정신을 집중했다.
‘찾았다.’
잡무에 시달리는 그의 바쁜 삶을 대변하듯, 서류 뭉치와 잉크 자국이 묻은 그의 책상. 아래로 손을 뻗어 바닥을 더듬던 손가락 끝에 딱딱한 무언가가 닿는 순간, 그는 있는 힘껏 그것을 잡아 뜯었다.
투두둑!
알프레드는 책상 위로 새빨간 단추 하나를 던져놓았다. 근처의 소리를 집음시켜 원거리로 송신하는 소형 단말기. 아티팩트가 없었더라면 평생 그런 게 자기 책상 아래에 붙어 있는 줄도 몰랐으리라.
‘약아빠진 놈. 어느 틈에 이런 물건을 설치해 둔 거지?’
나라를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정보들은 알프레드의 집무실을 거쳐 간다. 미래시의 내용은 물론, 국가 정책에 대한 논의도 대부분 집무실 내부에서 하는 편이다.
‘멍청한 새끼.’
알프레드는 손에 들린 퓨젯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렇게 유용한 아티팩트가 잘못된 이의 손에 들어갔으면 큰일이 났을 거라는 아찔함.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썩힌 랍토레스에 대한 한심함이 동시에 떠오른 탓이었다.
쾅!
방문을 걷어차고 튀어나온 알프레드의 모습에 병사들이 깜짝 놀라 물었다.
“왕자님,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십니까?”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왕성 이곳저곳을 바삐 돌아다니는 왕자가 워낙 이상해 보였는지, 사방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내의 온갖 장소를 들락거리며, 가장 으슥한 곳에 단추들을 붙여 놓았다.
‘이제 보니까 콘라드의 집무실에까지 감청 단말기를 설치해 놨군. 그쪽은 굳이 떼어내지 않아도 되겠지만…….’
알프레드가 이윽고 멈춰 선 곳은 바로 왕의 침소였다. 과연 그 방만큼은 감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알프레드는 감히 방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뭔가 필요하신 거라도?”
“아니, 아니다.”
‘……뭐,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결국 경비병들의 눈치만 보던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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