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60)
159화에 계속 –
159화 변수
“새끼, 올 거면 더 빨리 올 것이지. 내 부하들이 다 뒤지고 나서야 슬글슬금 기어들어 와? 그래 놓고 뭐? 빨리 덤벼? 어디서 쓰잘데기없는 패기만 늘어 가지고!”
스테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입 끝을 씰룩거렸지만, 쏟아지는 스카이의 욕설을 참고 그대로 들어 주었다. 그가 부하들을 잃은 것도 따지고 보면 스테치가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허?”
한편, 스테치와 재회의 회포를 풀려던 가렛은 멍하니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브라이언이라고 알고 있던 사람이 사실은 희대의 현상금 수배범인 스테치 아텔리어였던 데다, 스카이 걸킨과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우연도 정도껏이어야지, 겹쳐도 어떻게 이렇게 겹치냐 진짜.’
하나씩 들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온 탓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가렛은 아예 등을 돌려 버렸다.
“아이고, 두야. 너희 둘은 대화 끝나면 찾아와라. 나는 좀 쉬고 있으련다…….”
다른 곳으로 가 버리려던 그는, 그제야 멀뚱멀뚱 자신을 쳐다보는 엘레나랑 프레야를 발견했다. 가렛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엘레나에게 물었다.
“혹시 그쪽도 지금껏 가명을 쓰고 있었던 건가요?”
“아……. 네. 제 이름은 엘레나라고 해요.”
“결국 그럼 나만 끝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건가? 이거 좀 서운한데.”
살짝 풀이 죽은 가렛의 모습에 엘레나는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극적인 목표에서 차이가 있긴 해도 가렛과 스테치의 목표는 어느 정도 맞물리는 부분이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도 북부 전선의 보급선을 끊어 놓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은 바로 가렛이었던 것이다.
만일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감비니 요새를 그렇게 간단히 제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뭐,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네. 그건 그렇고.”
가렛은 시선을 프레야에게로 옮겼다. 엘레나도 충분히 미인이긴 했지만, 프레야는 사람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질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자연계에서 저렇게까지 선명한 적발을 타고날 수 있는 건가?
“……혹시 나중에 차라도 한잔?”
“뭐래, 기생오라비같이 생겨 가지고선. 좋은 말 할 때 꺼져라.”
“힝, 다들 나만 미워해.”
상큼한 미소로 심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프레야. 가렛은 거기에서 또 충격을 먹었는지 그제야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몽땅 쏟아 낸 스카이는 한참이 지나서야 스테치에게 지난 행적을 물었고, 스테치는 적당히 내용을 각색하여 북부에서의 일들을 말해 주었다.
“아참, 그리고 첫째 왕자를 죽였어.”
“뭐?”
스카이는 물론이고, 어느새 옆에서 이야기를 따라 듣던 가렛도 경악했다.
“잘못 들은 거 아냐. 첫째 왕자가 죽었어. 뭐, 엄밀히 말하자면 소 뒷걸음질 치다가 밟아 죽인 격이긴 한데.”
스테치의 말에 가렛이 심각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너…… 그거 진짜야?”
현재 첫째 왕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상황. 가렛이 동원한 소식통으로도 정확한 행적을 짚어 내는 것이 불가능했는데, 방금 스테치의 입에서 그 답이 나온 것이다.
“진짜라니까? 부하 둘을 대동하고 내 앞에 나타났지. 세 명 다 내 손으로 죽이고 화장까지 시켰어.”
“……맙소사, 처음으로 네 입에서 나온 반길 만한 소식이구먼.”
어지간해선 칭찬에 인색한 스카이가 순순히 감탄할 정도로 훌륭한 성과였다.
“동방장군은 행방불명에, 첫째 왕자는 사망. 거기다 셋째 왕자는 최소한 초죽음이 난 상태야. 남은 건 이제 버든베어의 서방장군과 둘째 왕자뿐이고. 이거 정말 끝내주는군.”
입맛을 다시는 스카이의 모습에 스테치는 슬며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동방장군 출신인 마르크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일부러 함구하고 있었는데, 지금 반응을 보아하니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난 아직도 이런 거친 방식에는 별로 동조하고 싶지 않아. 나라를 바꾸겠다고 머리를 자르는 행위는 결국 백성들에게도 피해가 가는 법이니까. 하지만…… 인상적인 건 사실이야.”
비교적 온건파에 속하는 가렛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귀족들이 부당한 방식으로 축적해 온 부가 사람들 손에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 온 그였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지쳐 가던 참이었다.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어. 첫째 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아무래도 베네지아에는 미래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아티팩트가 있는 모양이야.”
가렛과 스카이가 내보인 반응은 스테치가 마르크로부터 처음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두 사람은 스테치의 설명을 전부 듣고도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뭘 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건가?”
스카이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제라드의 구원으로 나타났었던 마르크 맥도웰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러자 가렛이 나서서 그의 질문에 답했다.
“아니, 이건 기회야. 정말 스테치의 말대로 베네지아 왕가가 미래를 보는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운명이 바뀌는 타이밍을 포착하여 보여 주는’ 능력이 있다면……. 그건 뒤집어 말해서 우리가 상대를 유인할 수도 있다는 뜻이야. 왕가에 보다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작전을 짜낼수록, 미래시가 이쪽을 더 확실하게 포착하겠지.”
“바로 그거야. 무슨 작전을 진행하더라도 상관없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지, 기상천외한 계책이 아냐.”
“스테치, 한 가지만 물어보자.”
스카이가 물었다.
“결국 모든 것의 핵심은 너다. 그런데 너는 ‘준비’됐나?”
사실, 아티팩트 메멘토 모템에는 해금되지 않은 어빌리티가 아직도 두 개나 있었다. 심지어 그 둘은 여타 어빌리티들과 달리 그 이름이나 해금 조건조차도 불분명했다. 무엇인지 굉장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이미 해금된 어빌리티인 ‘아바타’나 ‘싱크로’만 해도 충분히 강력했다.
잠시 고민하던 스테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준비됐다고 생각해. 하지만 내 아티팩트는 마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제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건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그렇다면 이번엔 내가 도와주지. 스카이는 이미 많은 부하들을 잃었으니까.”
가렛의 말을 들은 스카이는 씁쓸한 얼굴이 되어 혀를 찼다.
“피해가 그렇게 커?”
스테치가 조심스럽게 질문에 가렛이 대신 대답했다.
“……궤멸만은 면했다, 정도로 말해 두지.”
서방장군 이드릴 헨리에타가 버든베어에서 범죄자들을 잡아들이던 그날. 가렛은 스카이를 도시 바깥으로 이끄는 한편, 뒤에서는 부하들로 하여금 스카이의 남은 패거리들을 구출하도록 양동 작전을 펼쳤다.
덕분에 상당수의 부하들이 스카이와 함께 가렛의 무리로 합류했지만, 전체 비율로 따지자면 그 수는 고작 40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간신히 ‘전멸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
“널 돕는 대가로 부하들의 목숨을 바친 거다. 이제 다음은 없어. 또 실패하면 그때는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거야.”
스카이가 말했다.
“…….”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침묵하던 그때, 가렛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 답답한 이야기는 이쯤 해 두자고. 조금 쉬면서 향후 계획에 대해 논의해 보자. 일단 따라와.”
스테치 일행은 가렛과 스카이의 안내를 받아 레지아 계곡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계곡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던 가렛의 계획은 상당한 진척을 거두었는지, 몬스터로 들끓던 계곡은 놀랄 만치 변해 있었다.
자갈과 나무판자를 깔아 길을 정돈하고, 다리를 만들어 벼랑 사이를 건너기 용이하게 만들어 두었다. 거기다 기존의 버려진 갱도들은 물자 보관 창고로 쓰거나 임시 휴식처로 개조해 두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웃긴 건 왕가는 지금도 우리가 계곡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거야. 매번 소규모 정찰 부대를 보낼 때마다 우리가 몰래 쓸어 버렸더니, 이젠 그걸 몬스터의 습격으로 착각했는지 얼씬도 않더라고.”
두 사람을 따라 들어간 곳은 이전에 한번 방문했던 기억이 있는 가렛의 아지트였다. 어딘지 모르게 후줄근했던 그때와 달리, 내부는 나름 실속 있고 멋들어지게 장식되어 있었다.
“여긴 그야말로 요새나 다름없어.”
가렛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레지아 계곡은 복잡하고 험준한 그 특유의 구조상 들어갈수록 빠져나가기 힘들고, 길을 헤매기 쉬웠다. 게다가 안개가 자주 끼는 탓에 방어자 측은 몸을 숨기고 기습을 걸기에도 용이했다.
“수도가 바로 옆이니까 상대를 끌어들이는 건 물론이고, 반대로 우리가 쳐들어갈 수도 있지. 하지만 되도록이면 후자는…….”
“되도록 피하자 이거지? 나도 무슨 말인지 알아.”
스테치가 말했다. 이런 전략적 고지를 버리고 무작정 적의 품 안으로 뛰어드는 짓은 그로서도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다행히도 지금의 베네지아 왕가는 엄청나게 약해진 상태야. 이제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만한 전력은 이드릴 헨리에타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
서방장군 이드릴 헨리에타. 그녀의 아티팩트인 녹터널은, 사용자에게 그림자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해 준다. 주변에 빛이 적을수록 능력이 더더욱 강화되는 특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드릴은 자신의 능력이 극대화되는 밤에 공격을 개시할 거야. 하지만 빛을 필요로 하는 다른 병사들과의 상성을 고려했을 때, 아마 별동대로서 따로 움직이겠지.”
“위치가 쉽게 발각될 테니까, 이쪽도 함부로 불을 밝혀선 안 돼. 대신 이쪽은 어둠 속에서도 앞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특수 고글을 사용할 거야.”
모두가 한참 이드릴에 대한 대처법을 강구하고 있을 때,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스테치가 손을 들었다.
“둘째 왕자는 어때? 계곡으로 병력을 지휘하며 나타날 사람이 반드시 이드릴이란 보장은 없잖아.”
그러자 가렛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럴 확률은 엄청나게 낮아. 생각해 봐. 베네지아의 왕은 사실상 세 왕자 중 둘을 잃었어. 그런데 온전히 남아 있는 둘째를 함부로 바깥에 내보낼 리가 없잖아. 게다가 내가 아는 한 둘째 왕자는 싸움에 적합한 타입이 아냐. 다른 두 왕자와 달리 국정 운영에 더 힘을 쏟고 있다는 말을 들었거든. 평생을 책상 앞에서 펜대만 굴리던 샌님이 이제 와서 전장에 나설 리가 있나.”
“……그런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 깐깐한 성격 탓인지, 스테치는 불안한 느낌이 들어 얼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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