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65)
164화에 계속 –
164화 숲의 수호자
“……으읏!”
이드릴은 녹터널의 검극을 마르크에게로 겨눈 채 뒤로 물러섰다. 마르크는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남자. 그 점은 동방장군이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아마 지금 병사들과 이드릴을 전부 죽이겠다는 선언도 그저 헛소리가 아닐 터.
“그렇다면…….”
이드릴이 녹터널을 휘두르자, 주변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족쇄와 수갑이 마르크의 사지를 다시금 봉인했다.
“똑같은 수가 통할-”
마르크는 그런 이드릴의 시도에 의아해했지만, 그녀는 곧장 마르크를 방패 삼아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부터 몸을 숨겼다. 그러자 번번이 칼 같은 타이밍마다 이드릴을 방해하던 화살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게 되었다.
“년인지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번은 안 당한다.”
스르륵.
도약할 충분한 시간을 번 이드릴은 안전하게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어 갔다. 마르크의 조력자만 처리한다면, 마르크 본인도 처리하고 전세를 역전시키는 게 가능해진다.
‘어디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은 서쪽. 첫 도약으로도 저격수의 모습을 관측할 수 없었던 점을 고려해 보면, 아마도 상대는 이드릴이 도약을 위해 모습을 감추자마자 다른 저격 포인트로 이동했을 것이다.
흰자위 위에 두드러진 실핏줄이 터지면서 이드릴의 눈 한쪽이 빨갛게 물들었다. 능력을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이 사용한 탓에 몸에 무리가 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개의치 않고 두 번 연속 도약을 감행한 이드릴은, 드디어 염원했던 저격수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찾았-”
퍼억!
그 순간, 그림자 방어막이 거의 뚫릴 정도로 통렬한 일격이 이드릴의 면상에 박혔다. 대미지는 거의 없었지만, 주먹을 맞은 당사자인 이드릴은 뒤로 날아가 나무 기둥에 부딪히고 말았다.
“거 되게 아프네.”
정작 그런 말을 꺼낸 사람은 이드릴이 아닌, 주먹을 내지른 사람 쪽이었다. 잠깐 혼란스러움에 고개를 마구 휘젓던 이드릴이 눈살을 찌푸리자, 비로소 앞에 있는 저격수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뚜두둑-.
주먹을 우드득거리고 있는 작은 체구의 엘프 여성이 한 명. 등에 멘 거대한 활과 화살통에 한가득 채워진 창대 같은 화살은 그녀가 평범한 엘프들과 궤를 달리한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름 전력으로 후려갈겼는데, 이건 뭐 상처 하나 없잖아?”
이드릴은 혀를 찼다. 만약 저런 주먹질을 같은 자리에 두 번 이상 맞았다면, 그림자 방어막이 아예 완전히 박살 났으리라.
“이제 도망치는 건 완전히 포기했나, 엘프?”
“보다가 답답해서 직접 조져 줄려고 유인한 거다, 인간.”
에이바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이드릴을 마주 노려보며 말했다.
탓!
몸을 날린 이드릴은 등에 멘 활을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그녀의 활은 여타 엘프들의 것과 달리 단단하면서도 무거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덕분에, 근접전에서도 충분히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빠아악!
부웅 날아간 이드릴은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 내며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다행히 큰 대미지는 없었지만, 활을 막아 내는 데에 썼던 손목이 저릿거릴 지경이었다.
지상에 서 있던 이드릴이 녹터널을 크게 휘두르자, 에이바의 주변에서 일렁이던 그림자에서 날카로운 스파이크들이 튀어나왔다.
나뭇가지들을 오가며 잽싸게 이동하는 에이바와, 그런 그녀를 추격하는 그림자. 지면에 착지한 에이바가 이드릴에게로 방향을 틀어 달려왔고, 그 뒤를 쫓던 스파이크 하나가 기어이 그녀가 내디딘 오른발바닥을 아래에서부터 관통했다.
‘됐다!’
이로써 상대는 발을 못 쓰게 되었다, 라고 이드릴은 생각했다. 그러나 에이바는 도리어 피식 웃더니, 구멍이 뻥 뚫린 오른발로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라 이드릴의 턱에 무릎 차기를 먹였다.
빠각!
“윽?!”
당황한 이드릴은 뒤로 물러섰다. 저런 끔찍한 상처를 입었는데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이드릴이 그런 의문을 품는 것도 잠시, 에이바가 휘두른 활이 그녀의 골통을 깨부수기 위해 날아왔다. 레이피어에 그림자를 두른 이드릴은 그것을 받아넘긴 뒤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시작된 치열한 공방. 하지만 싸움은 이드릴이 생각한 이상으로 훨씬 길어지고 있었다.
‘젠장.’
욕설을 절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만약 이드릴이 기력을 온존한 상태에서 싸움에 임했다면, 에이바는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능력이나 테크닉 같은 면에서는 이드릴이 압도적이었지만, 에이바의 비인간적인 수준의 맷집이 그 간극을 메꾸고 있었다.
‘마르크, 이 개자식이!’
게다가 아티팩트를 연속으로 사용하면서 누적된 피로감이, 이드릴의 움직임을 더디게 만들었다. 이는 마르크가 끈질기게 그녀를 물고 늘어진 결과였다.
결국 잠시 후, 이드릴은 그림자에 긁히고 꿰뚫려 너덜너덜해지면서도 좀비처럼 다시 덤벼드는 에이바의 모습에 기겁하여 외쳤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까지 움직일 수 있는 거야?!”
고통이 뭔지 모르는 건가? 이드릴의 질문에 에이바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 마시면 나아.”
“……썅, 이 숲에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괴물이냐!”
마르크 맥도웰의 존재가 모든 계획을 망친 셈이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아니나 다를까, 이드릴을 쫓아 달려온 마르크가 방패를 앞에 내세운 채 돌진해 왔다.
“이익!”
저놈까지 이 판에 합류하면 그땐 정말로 끝장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드릴은 피곤죽이 되어서도 달려드는 에이바의 복부를 걷어차 거리를 벌렸다.
결국 마르크가 도착했을 때쯤엔, 이드릴은 이미 그림자로 도약하여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 * *
“공격이 너무 거세다! 물러서!”
“어디로 말입니까?!”
병사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날아오는 화살들을 방패로 튕겨 내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뒤쪽은 불붙은 숲에, 앞은 살기등등한 엘프들로 한가득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이런 때에 헨리에타 장군님은 어디 계신 거야?”
지휘관은 땀방울을 닦아 내며 투덜거렸다. 본인 입으로 엘프들 따위는 몇백 명이 몰려와도 전부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 주제에, 정작 필요한 순간에 사라지다니. 이드릴이 자기보다 상관만 아니었어도 당장에 쌍욕을 날렸을 것이다.
“마법사 부대! 왜 반격하지 않는 건가?”
“상대편 마법사가 이쪽의 마법을 전부 캔슬 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마법사들은 연신 새로운 주문을 시전해 보려 애를 썼지만, 번번이 케인의 《디스펠》에 막혀 실패하고 있었다.
“흠……. 이거 일이 곤란하게 되어 버렸군.”
병사들의 공격 수단을 무력화하는 한편, 반대쪽에선 화재를 진압하던 케인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보다 고순도로 걸러 낸 마력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만큼, 《아쿠아 스플래터》의 위력도 배 이상 늘어나 작업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하지만 마법을 쓸 수 있는 엘프들 중에서도 그 정도 수준의 기교가 가능한 이는 몇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하다못해 병사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처리한다면 엘프들 모두가 온전히 화재 진압에만 집중할 수 있겠지만, 이래서야…….
“장로님, 받으세요!”
스트라이더가 던져 준 마력 회복약을 들이켠 케인은, 텅 빈 약병을 거칠게 병사들이 있는 쪽으로 집어 던졌다.
마력을 더더욱 끌어다 쓴 보람은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하다간 불을 다 끄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쓰러지게 생겼다.
“어이, 저게 뭐야?”
“서, 설마?”
쏟아지는 마법과 화살에도 꿋꿋이 버티던 병사들 사이에서 갑작스런 파문이 일어났다. 그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눈치챈 몇몇 스트라이더들과 케인이 주변을 둘러보자, 터덜터덜 병사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마르크의 모습이 보였다.
“동방장군?!”
“행방불명이었다고 들었는데, 왜 이런 곳에서?”
병사들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르크가 뿜어내는 분위기는 아군으로서의 친근함과 전혀 달랐으니까. 오히려 다가오는 놈은 죄다 찢어 죽일 듯한 무시무시한 살기를 전신에서 발하고 있었다.
“햐……. 장난 아니구먼.”
케인의 옆에서 화살을 쏘아 대던 제스터도 그 순간만큼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들어라.”
마르크의 말은 난전 중인 병사들의 귀에 들어갈 정도로 선명하고 묵직했다.
“지금 당장 이 숲에서 물러나라. 그렇지 않으면…….”
쿵!
발로 지면을 찍어 밟은 마르크가 으르렁거렸다.
“너흰 여기서 전부-”
“쪼, 쫄지 마라!”
지휘관이 마르크의 말을 끊고 나섰다. 병사들의 사기를 고려한다면 실로 적절한 타이밍과 판단이었다. 그러나 한번 퍼진 공포와 혼란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방금 동방장군이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한 건가?”
“그럼 베네지아의 적이란 말야?”
“조용히 해라!”
누차 다그친 지휘관이 외쳤다.
“상대는 한 명이다! 고작 한 명이 더해져 봤자 숫자는 이쪽이 더 많다!”
그가 자신하는 것처럼, 일렬로 길게 늘어선 수많은 병사들이 둥글게 엘프들과 마르크의 주위를 덮으며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엘프 세력의 자그마치 20배가 넘는 압도적인 숫자 차이였다.
“공격해!”
지휘관의 지시에 잠시 당황했지만, 병사들은 곧 마법사와 방패병들의 엄호를 받으며 마르크를 향해 뛰쳐나갔다. 인간을 저버리고 엘프들의 편에 서서 싸우는 그의 모습이, 두려움조차 억누를 정도로 강렬한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놈들!”
마르크는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선 병사들의 돌진을 정면으로 받아 냈다. 창과 칼, 그리고 망치와 할버드 등을 전부 막아 낸 그의 방패에서 찬란한 빛이 흘러나왔다.
“울부짖어라!”
콰과과광!
방패에서 터져 나온 충격파가 숲 일대를 휩쓸었다. 레오니다스의 충격파에 의해 갈가리 찢겨 나간 수백 명의 병사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넝마 조각만도 못한 꼴이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위력이 어찌나 절륜했는지, 불길이 일순 사라지는 것도 모자라 나무들을 아예 박살 내 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도 방패에 축적된 힘은 차고 넘치도록 남아 있었다.
“전부 죽여 버리겠다고, 경고했다!”
“으, 으아아악!”
동방장군 마르크 맥도웰의 진면목을 목도하게 된 병사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너무나 많은 이들이 죽어 버렸다.
조금만 냉정히 생각한다면 마르크의 아티팩트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을 떠올렸겠지만, 한번 겁을 먹은 병사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휘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지휘관의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잔뜩 흐트러진 이드릴이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헐떡이고 있었다.
“후퇴 명령을…… 어서!”
“……후퇴하라! 전원 후퇴!”
지휘관의 지시를 들은 병사들은, 숲에 들어오던 때와 비교하면 말도 안 될 만치 빠른 속도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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