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68)
167화에 계속 –
167화 우둔하고 불쌍한 자
“헉…… 헉…….”
타른카페를 통한 순간이동까지 써 가면서 힘겹게 아지트까지 되돌아온 가렛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지트 구석탱이에 자리 잡은 스카이의 공방으로 쳐들어갔다.
“맙소사, 이게 정녕 사람 생활하는 공간이 맞는 건가?”
용도 불명의 공구들과 화학 약품, 거기에 가재도구들까지 한데 뒤섞여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길을 가로막고 있던 의자를 걷어차서 치우려던 가렛은, 행여나 실수로 뭔가 터지기라도 할까 무서워 황급히 발을 거둬들였다.
“저기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렛은 끈적하고 투명한 액체로 가득 찬 큼직한 양동이 하나를 찾아냈다. 4리터 분량이라던 스카이의 말대로 그 양이 어마무시했다.
“하이고오!”
가렛은 양동이를 품으로 감싸 안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앓는 소리를 흘렸다. 가뜩이나 포격으로 땅이 흔들려서 불안한 상황인데, 넘실거리는 양동이까지 들고 먼 거리를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니.
그러나 머뭇거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가렛은 타른카페를 발동하여 다시 한번 순간이동을 했다. 두 번, 그리고 세 번. 거기에 약간의 뜀박질.
갖은 고생을 해 가며 싸움판으로 되돌아와 보니, 그 자리에는 흙을 뒤집어써서 얼굴이 거뭇해진 엘레나와 스카이가 있었다.
“우린 하마터면 너 없는 사이에 죽을 뻔했다.”
“앓는 소리 그만해. 나도 이거 들고 온다고 오질 나게 고생했으니까.”
주르륵.
타이밍 좋게 코피를 터뜨리는 가렛. 차마 그걸 보고도 뭐라 할 수는 없었는지, 스카이는 입을 꾹 다문 채 양동이를 넘겨받았다.
“그러니까, 이 아티팩트는 흡수한 물질을 발사할 수 있는 투사체의 형태로 재형성해 준단 말이지?”
“예. 이 안에 집어넣을 수 있는 건 뭐든 가능해요.”
스피라투스의 능력을 엘레나의 입으로 재확인한 스카이는, 양동이를 뒤집어 용 주둥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 꿀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양동이 하나를 전부 비워 낸 그는, 엘레나와 함께 스피라투스를 들어 올렸다.
파아앗!
그러자 기존의 동그란 포탄과는 다른, 길쭉하고 끝이 뾰족한 형태의 새로운 탄이 생성되어 스피라투스 내부에 장전되었다.
“이거면 된 건가?”
“이제 쏘기만 하면 돼요.”
스카이는 엘레나와 함께 스피라투스의 포신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지금 장전된 폭발 물질의 위력은 예전에 감비니 요새에서 써 먹었던 그 폭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이야.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니까, 신중하게 쏘도록 해.”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 형태로 머무르고 있던 아므리타를 조작하여 시야를 최고 한도까지 강화시켰다. 새하얗던 그녀의 흰자위가 검게 물들었다.
계곡 아래쪽은 방패로 아군을 보호하거나 화살을 쏘아 대는 병사들, 그리고 마법포에 계속해서 마력을 불어넣는 마법사들로 시끌벅적했다.
포신을 이리저리 돌리던 엘레나는, 떨리는 손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 * *
스테치는 한쪽 팔을 들어 방어 자세를 유지한 채, 할로우 블레이드를 뽑아 들었다. 바깥에서 마법을 퍼부어 대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알프레드는 물론이고, 스테치와 함께 붙어 있던 프레야조차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야, 너 뭐 하려고 그래?』
‘신경 쓰이니까 좀 조용히 해 봐. 될지 안 될지는 나도 모르니까.’
스테치는 가만히 눈을 감고 검을 쥔 손에 온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와 동시에, 아치발의 신자 ‘리퍼’와 싸웠을 때의 감각을 떠올렸다. 아치발의 신자와의 첫 대면이자, 할로우 블레이드가 최초로 진짜 힘을 발휘했던 바로 그 싸움을.
그때는 정신없이 싸우기만 하느라 스스로도 무슨 행동을 했는지 되돌아볼 겨를이 없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지금은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난…… 그 싸움에서 뭔가를 했어.’
스테치는 자신의 손목에 끼워져 있는 건틀릿을 내려다보았다. 한동안 제대로 쓰질 않아서 그런가,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물건이었다.
아티팩트 폰두스.
능력은 손에 잡힌 물체의 중량을 조작하는 것. 그러나 할로우 블레이드는 리퍼와의 싸움 도중, 폰두스에게 전혀 다른 새로운 능력을 부여했었다.
우우웅-.
할로우 블레이드의 검신을 타고 흘러내리던 빛이 폰두스 안으로 흘러 들어가자, 스테치는 들어 올리고 있던 왼손을 내려 알프레드가 있는 쪽으로 뻗었다.
‘뭐지? 뭘 하려는 거냐, 스테치 아텔리어?’
알프레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비록 무엇을 하려는지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스테치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간 돌이킬 수 없는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마법사들을 재촉했다.
“뭣들 하고 있나? 좀 더 강하게 몰아붙이지 않고!”
이를 앙다문 마법사들은 마력 소모에 개의치 않고 한층 더 강한 마법을 사용해 스테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금강석과도 같은 단단함을 자랑하던 스테치의 커스드 아머에도 슬슬 한계에 다다랐는지, 표면 위로 희미한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그러나 커스드 아머가 완전히 박살 나기 직전. 찰나의 순간에 스테치는 허공의 무언가를 ‘붙잡았다’.
콱!
“……됐다.”
공간과 차원의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는, 불가시의 뒤엉킨 실타래. 스테치는 자신이 그것을 캐치 해 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다른 차원으로 숨어든 리퍼를 강제로 끄집어냈던 그 힘이, 지금 그의 완갑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콰장창!
유리를 깨부수는 듯한 맑은 소리. 그리고, 스테치의 주위를 둘러싼 공기가 변했다.
어딘지 모르게 흐릿했던 주변이 선명해지고, 커스드 아머의 사기를 뒤집어쓴 마법사들과 알프레드는 현기증을 느끼고선 비틀거렸다.
“와, 미친. 너 방금 뭘 한 거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공간 왜곡 현상이 사라지자, 프레야는 너무 놀란 나머지 스테치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그러자 스테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별거 아니…… 진 않고. 생각보다 이 검이 쓸모가 많네.”
손안에서 할로우 블레이드를 가볍게 한 바퀴 돌린 스테치는, 프레야와 함께 알프레드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힘이 빠진 발을 억지로 움직이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 대체 어떻게?!”
다른 건 몰라도 그의 공간 왜곡 능력 하나만큼은 완벽했다. 그런데 그걸 손짓 한번으로 뜯어 고쳤다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도 그런 짓은 못 할 것이다.
“왕자님!”
알프레드가 위험에 처한 것을 본 발스톡은, 병사들의 지휘를 그만두고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왕자와 스테치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낯익은 얼굴을 보게 된 스테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래간만이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제라드의 보좌를 하고 있지 않았나?”
“…….”
발스톡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스테치에게 검을 겨누었다. 죽은 줄 알았던 일개 탐험가가, 왕국을 위협할 만한 힘을 손에 넣어 적으로서 다시 나타나다니.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였다.
“포기해라, 스테치 아텔리어.”
이윽고 발스톡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품이 절로 나올 정도로 뻔한 항복 권고였다.
“설령 둘째 왕자님을 죽인다고 해도…… 지금 내 뒤에는 3만이 넘는 병사들, 그리고 마법 포병들이 줄지어 있다. 모두가 다 너 하나만을 죽이기 위해 편성된 부대지. 아무리 개인의 힘이 강해도, 그 많은 병력을 홀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흠.”
시큰둥한 반응. 발스톡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재차 스테치에게 말했다.
“순순히 투항하고 이쪽 손에 잡히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이 자리에서 물러나 줄 수는 없겠나?”
“최소한 저놈은 그래도 말하는 게 양심은 있어 보이네.”
프레야가 발스톡에게 손가락질을 해 대며 스테치에게 귀띔했다. 목소리가 워낙 커서 귀엣말을 하는 의미가 전혀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 순간. 알프레드와 발스톡의 어깨너머에서 눈부신 섬광이 일었다.
지축이 울리고 하늘이 요동칠 것만 같은 대폭발. 그리고 치솟는 화염. 스테치는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우와아아악!”
주변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목소리들로 가득했다.
잠시 후, 먼지구름이 한바탕 안면을 훑고 지나가고 나서야 스테치는 가늘게 눈을 떴다.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 그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스푼으로 한 숟가락 퍼낸 것처럼, 지형의 일부가 완전히 사라졌다. 당연히 폭발의 여파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베네지아 병사들의 진열까지도 붕괴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폭발로 확실하게 죽은 병사들은 다름 아닌 발스톡이 자랑스럽게 늘어놓던 마법포 부대였다.
총 10문의 마법포와, 포를 견인하던 병사들. 거기에 마력을 불어넣어야 할 마법사들까지, 모두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깡그리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프레야가 고개를 돌려 계곡 능선 쪽을 올려다보자, 그곳에는 스카이의 멱살을 쥔 가렛과 그것을 뜯어말리는 엘레나가 있었다.
“야아아-이, 미친 새끼야아아!”
가렛은 스카이를 짤짤 흔들어 대며 빽 소리 질렀다.
“저딴 물건은 아지트 안에서 만들었다고? 까딱 잘못해서 우리 다 뒤졌으면 어쩌려고 그딴 짓을 해애애?!”
“정말이지 너도 그렇고, 스테치 그놈도 그렇고. 써먹기는 다들 잘만 써먹었으면서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하네. 내가 그렇게 호구로 보이냐?”
“다들…… 싸우지 마시고…….”
“오호라?”
그들의 모습을 보고 대충 상황을 짐작한 프레야는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알프레드 일행과 마찬가지로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당황스러워하는 스테치에게 말해 주었다.
“보아하니 네 친구들이 한 발 쏴 재낀 모양이야. 효과가 아주 끝내주는데?”
그제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비로소 파악한 스테치는, 뒤를 돌아본 채 넋을 잃고 있던 발스톡을 불렀다.
“야.”
발스톡과 알프레드의 시선이 다시 스테치에게로 돌아왔다. 이전까지는 없었던 확연한 절망과 공포의 감정이, 그들의 얼굴에 스며들어 있었다.
스테치는 그런 두 사람을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안한데, 좀 전에 뭐라고 했는지 다시 설명해 줄래? 내가 요즘 귀가 많이 어두워서.”
부대의 핵심 전력은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몸으로 직접 싸울 병사들과, 극소수의 마법사들뿐이었다.
“……느냐.”
“응?”
“뭣들 하느냐! 모두 돌격해라!”
잔뜩 쉬어 터진 알프레드의 목소리가, 마법으로 증폭되어 계곡 곳곳으로 울려 퍼졌다.
“스테치 아텔리어를 죽여어엇!”
그것은 굳어 있던 병사들의 발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기엔 충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꺾인 전의를 되돌려 주진 못했다.
“우, 우와아악!”
스테치에게로 돌격을 감행하는 병사들. 자그마치 2만이 넘는 병사들이 그에게 달려드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 이거 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
“괜찮아요.”
엘레나가 말했다.
“이제 다 끝난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녀가 공언한 대로, 스테치는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병사들이 오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병사들 틈바구니에서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알프레드에게, 스테치는 말했다.
“소용없어.”
콰앙!
가장 선두에서 돌진하던 병사들 사이를, 강렬한 전류의 파도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모락모락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쓰러진 그들은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고꾸라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일격으로 거의 백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싸워라! 싸워!”
디스펠륨이 없는 일반인은 마법을 상대로 한없이 나약한 존재였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포기했는지, 계속해서 스테치의 앞에 병사들을 밀어 넣었다.
콰광! 파지직!
전기와 돌풍, 얼음과 불꽃이 터져 나올 때마다, 병사들은 수백 명씩 죽어 나갔다. 그 와중에 스테치가 서 있는 자리까지 도달한 병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쯤 되면 그냥 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방적인 학살에 불과했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결국, 수동적으로 공격하던 스테치는 급기야 주먹을 움켜쥔 뒤, 프레야와 함께 병사들 무리로 뛰쳐 들며 소리쳤다.
“멍청한 자식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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