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73)
172화에 계속 –
172화 감춰 왔던 것
“기분 나쁘기 짝이 없는 동굴이야…….”
엑스턴이 먼저 첫발을 들여놓았다.
빛 한 줌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이었지만, 신의 육체를 가진 그들에게는 별문제도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숨어 있던 괴수들이 엑스턴에게 달려들며 이빨을 들이댔다. 일반인이라면 단숨에 목덜미가 너덜너덜해졌겠지만, 엑스턴은 우습다는 듯 코웃음 치며 괴수의 머리를 이마로 들이받았다.
물론, 깨진 것은 괴물의 골통 쪽이었다.
콰직!
피 섞인 뇌수가 쏟아져 나오는 걸 안면으로 몽땅 받아 낸 엑스턴은, 퉤퉤 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썅! 괜한 짓거리를 했잖아.”
“바보 같기는.”
데스트라가 핀잔을 주며 앞질러 가는 순간, 바닥에 숨겨져 있던 매직 트랩이 발동했다. 지면으로부터 솟아 나온 바위기둥에 몸이 날아간 데스트라는 그대로 천장에 짓눌려 버렸다. 하지만 카인과 엑스턴, 둘 중 어느 누구도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콰광!
“와오.”
아무렇지도 않게 바위기둥을 깨부수고 나온 데스트라가 감탄했다.
“함정인가? 제법 정교한데.”
동굴 안은 그들이 처음 보는 것투성이였다. 각양각색의 괴물들부터 다양한 형식의 함정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위험도는 층 하나를 내려갈 때마다 점점 더 심해져 갔다.
“이제 됐어.”
사방에서 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괴물 떼를 손짓 한번으로 불살라 버린 뒤, 카인이 씹어뱉듯이 중얼거렸다. 미로같이 복잡하게 얽힌 길 구조 때문에 슬슬 짜증이 났는지, 그는 눈을 감고 어두운 기운이 가장 강하게 발산되고 있는 장소를 찾아 눈을 돌렸다.
그곳은 다름 아닌 동굴의 가장 밑바닥이었다.
“처음엔 뭔가 있나 싶어서 그냥 참고 지나가 보려 했는데, 귀찮아서 더는 못 해 주겠군.”
팔에 푸른 마력을 두른 그는 한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투콰과과곽-!
지면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 카인이 이윽고 작은 구덩이 하나만을 남겨 놓자, 그것을 지켜보던 데스트라와 엑스턴은 어깨를 한번 으쓱이더니 구덩이 안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동굴 제일 아래쪽에 이르기까지 카인이 뚫은 층은 35층.
대공동의 천장을 뚫고 바닥에 안착한 그는, 바로 코앞에 서 있는 괴물을 보고선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것은 머리 셋의 삼두견(三頭犬)이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불꽃을 일렁이며 카인을 노려보던 그 괴물은, 큼지막한 주둥이를 살짝 벌리며 뜨거운 숨결과 함께 으르렁거렸다.
“크와악!”
족히 몇백 킬로그램은 나갈 법한 앞발을 휘둘러 카인을 후려치는 삼두견. 그러나 저 멀리 날아갈 줄 알았던 카인의 몸은, 두 다리가 지면에 박힌 듯이 꿋꿋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당황한 삼두견은 가운데 머리의 입을 벌려 불꽃의 숨결을 뿜어냈다. 작렬하는 화염이 카인의 몸을 휩쓸었지만, 그의 표정은 평온하다 못해 귀찮아 보였다.
“……생긴 게 그럴싸해서 기대해 봤건만, 속 빈 강정이로구나!”
카인의 무릎이 번개처럼 튀어 나가 삼두견의 가운데 머리통을 작살 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천장에 그가 뚫어 놓은 구멍으로부터 나온 데스트라와 엑스턴이 남은 두 머리를 땅속 깊숙이 찍어 눌렀다.
콰아악-!
몸뚱이를 꿈틀대던 삼두견은 이내 절명했는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카인은 전신을 뒤덮은 피를 마법으로 말끔히 없애 버린 뒤, 데스트라에게 물었다.
“뭐 하느라 이렇게 늦었어?”
“다른 층에 있는 괴물들도 처리하고 왔거든. 이제 이 동굴 안은 깔끔해.”
그러자 카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직이야…….”
그는 대공동 저편에 있는 커다란 철문을 노려보았다. 군데군데 녹이 슨 채로 굳게 닫힌 문. 동굴 외부에서 느꼈던 그 불쾌한 기운은, 문에 가까워질수록 한층 더 강해졌다.
카인을 포함한 셋이 다가가자 철문이 묵직한 쇳소리를 흘리며 자동으로 열렸다. 어둑한 통로를 지나서 도착한 작은 방 안 한가운데에는, 반짝이는 무언가가 두둥실 떠 있었다.
“목걸이? 예쁘네.”
“저런 물건이 왜 하필 이 안에 있는 거지?”
셋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쓰러뜨려 온 괴물들과 이 동굴은, 전부 저 목걸이가 품고 있는 힘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을. 카인이 목걸이를 움켜쥐자, 갑자기 동굴 전체가 흔들거렸다.
쿠르르-.
“나가자.”
셋은 지면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다시 한번 수많은 층들을 뚫고 지상까지 튀어나온 그들은, 무너지는 지하 동굴을 앞에 둔 채 천천히 내려앉았다.
엑스턴은 카인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목걸이는 뭐야?”
“잘 모르겠어. 안에서 뭔가 기묘한 힘이 느껴지는데…….”
목걸이를 쥔 그의 머릿속으로, 낯선 이미지들이 흘러들어 왔다.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헤아려 보기도 전에, 카인은 어쩐지 꺼림직한 느낌이 들어 목걸이를 바닥에 던져 버렸다.
“뭐야?”
“이 목걸이가 괴물들을 탄생시킨 원흉인 건 틀림없잖아? 더 두고 볼 필요도 없어. 부순다.”
콱!
카인은 손아귀에 힘을 줘서 목걸이를 그대로 으스러뜨렸다. 무시무시한 악력에 의해 반짝이는 가루가 되어 버린 목걸이는, 이윽고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너무 성급한 거 아냐? 한번 자세히 보고 싶었는데.”
“…….”
엑스턴의 아쉬움 섞인 불만에도 불구하고 카인의 뜻은 단호했다. 데스트라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 끝났겠지, 이걸로?”
그러나 불행히도 사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종족 간의 불화와 분쟁이 조금 가라앉나 싶더니, 이제는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새로운 위협 요소로서 등장하여 무고한 이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시시각각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 * *
화르륵-.
곳곳에서 불꽃과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부상을 입은 채 신음하는 인간과 엘프, 그리고 드워프들. 그리고 그 주변에는 괴물들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막 현장에 도착한 카인은, 생각 이상으로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보고선 이를 갈았다.
“카인님이 와 주셨다!”
신의 등장에 환호하는 사람들. 카인은 크게 손짓하여 사방으로 치유의 파동을 흘려보냈다. 죽어 가던 사람들을 말끔히 회복시킬 정도로 강력한 신의 권능. 되살아난 이들이 카인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지만, 카인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괴물과의 최초의 조우 직후, 또다시 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서로 간의 불신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종족은 괴물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 내기 위해 단합했다. 처음에는 신들이 전수해 준 마법과 기술을 사용하여 우위를 점하는 듯했으나, 괴물들도 그에 맞춰 점점 더 수를 늘리고 힘을 키워 가면서 피해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결과가 이 모양 이 꼴이다.
‘젠장…….’
카인은 고개를 떨구었다. 무엇 하나 밝혀진 것이 없으며, 무엇 하나 해결된 것도 없었다. 피조물들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도록 그렇게 애를 썼건만, 지금은 오히려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괴물들의 공세를 막아 내기도 버겁다니.
신으로서 이렇게나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방심하지 말고 태세를 정비하라.”
명령을 내린 카인은 그대로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런 그의 앞에,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엑스턴이 나타나 말을 걸었다.
“괜찮냐?”
“……그래.”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엑스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성기에 비하면 우리도 참 많이 약해졌지. 옛날이라면 이까짓 괴물들 따위 그냥 날려 버릴 텐데.”
그의 말에 카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새로운 생명을, 그것도 종족 단위로 만들어 내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에너지 소모된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카인이나 엑스턴, 데스트라의 힘은 막 태어났을 때에 비하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이제 와서 그런 한탄해 봐야 소용없지. 그건 그렇고, 아버지는 찾았어?”
“아니.”
엑스턴이 대답했다.
상황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기 전에, 데스트라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처음엔 그에 반대하던 엑스턴이었지만, 역시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는지 동산의 오두막에 머무르고 있을 아버지를 방문했다.
그러나 집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는 알겠어. 대놓고 우리랑 마주치는 걸 피하고 계신 거야. 하지만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카인은 그의 말에 천천히 대꾸했다.
“……집에 가 보자.”
* * *
탁.
동산 꼭대기에 홀로 서 있는 낡은 오두막. 카인과 엑스턴은 천천히 집 옆의 마당에 착지했다. 아버지가 손수 가꾸셨던 마당의 작은 정원은, 오랫동안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잡초만 무성했다.
“뭘 하려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깜짝 놀란 엑스턴이 카인을 붙잡았다.
“야. 예전에도 그런 짓 했다가 아버지가 얼마나 불같이 화를 내셨…….”
“낼 테면 내라고 해!”
콰그작!
거칠게 오두막 문을 걷어차고 들어가는 카인. 바닥에 잔뜩 쌓여 있던 먼지가 문밖에서 밀려들어 오는 외풍에 의해 구름처럼 떠올랐다. 엑스턴은 황급히 카인의 뒤를 쫓아갔다.
“이런.”
엑스턴은 집 안 구석구석의 설계도나 물건을 사이를 헤집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아버지의 행적을 짐작하게 해 줄 단서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그와 달리 거실로 막 발을 내디딘 카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닥을 쳐다보았다.
“찾았다.”
“응?”
처음에는 카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선뜻 알아듣기 어려웠으나, 곧 엑스턴도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집 안 바닥은 모두 나무 널빤지로 되어 있었는데, 거실로 들어설 때에만 그 소리가 미묘하게 달랐던 것이다. 집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살아온 그들이 아니었다면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아래에 빈 공간이 있어.”
“……이 집에 지하실은 없었는데?”
카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끝을 쑤셔 넣어 널빤지를 통째로 뜯어냈다. 그러자, 차가운 공기와 함께 비릿한 향기가 뒤섞여 그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윽.”
지독한 냄새다.
훤히 드러난 지하 공간으로 훌쩍 뛰어내린 카인과 엑스턴은, 생각지도 못한 광경과 맞닥뜨리고선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지하의 바닥과 벽을 타고 복잡하게 새겨 넣어져 있는 피의 마법 회로. 거기에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수많은 하얀 유골들. 평화롭던 위쪽의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그동안 온갖 험한 꼴을 다 봐 온 엑스턴이나 카인조차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아버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계신 겁니까?”
엑스턴이 중얼거렸다. 한편, 유해의 산을 지나쳐 탁자 위에 놓인 노트 하나를 찾아낸 카인은 그것을 냉큼 펼쳐 보았다.
아버지의 익숙한 필체를 알아본 그는 페이지를 계속해서 넘겼고, 그때마다 안색이 점점 창백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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