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82)
181화에 계속 –
181화 원 맨 아미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교전은 최대한 피해 주세요. 하지만 만약 불가피한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전력을 다해 싸워 주시면 됩니다.]수정구 너머에서 들려오는 스테치의 목소리.
[상대는 싸우다 죽기를 각오한 병사들입니다. 절대 봐주실 필요없습니다.]“알겠다.”
시무스가 그에 대답했다.
“그대들의 계책이 성공하기를 빌고 있겠네.”
[……고맙습니다.]파지직-.
수정구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깜빡이더니 이내 희미해졌다. 시무스는 수정구를 몇 번 더 만지작거리더니 품 안의 포켓에 밀어 넣고선 뒤를 돌아보았다.
드워프제 특수 기계식 차량이 뒤쪽으로 기다란 모래 먼지 꼬리를 단 채, 선두에서 앞장서고 있는 시무스 측의 차량을 따라오고 있었다.
셸로어와 일반 병사들로 구성된 엘프 정예 7만. 보급부터 이동 속도까지,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시무스가 현실적으로 끌고 올 수 있는 최대한의 숫자였다.
“의장님,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습니다.”
스파이 글래스로 전방을 살피던 셸로어가 시무스에게 고했다. 불과 3km 정도의 거리를 남겨 놓고 보이기 시작하는 베네지아의 북부 경계선. 케일럼 측의 접근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는지, 경계선 근처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의 수는 상당했다.
“와, 왔다!”
한결 느긋하게 경계선으로 접근 중인 시무스 측과 달리, 베네지아 병사들은 기괴한 탈것과 함께 몰려오는 북부 세력의 모습에 기겁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수의 병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미친! 대체 우리 땅에 무슨 볼일이 있다고 갑자기 쳐들어오는 건데!”
“차분히 움직여라! 적과의 거리는 아직 충분하다!”
혼란에 빠진 베네지아 병사들을 통제한 것은, 제라드를 대신하여 북부 경계선의 지휘관을 맡은 ‘토니 로드먼’이었다. 그는 미리 방책 뒤편에 설치된 발리스타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베네지아의 기술자들이 꼬박 몇 년 이상을 달려들어서 만들어 낸 신형 병기.
실전 배치가 끝났을 무렵엔 불행히도 카델트 대사막의 소멸로 인해 쓸 일이 없어지는가 했지만, 다행히도 이번 전투에서 빛을 발할 예정이었다.
‘폐하의 선견지명은 정말이지 대단하군.’
토니는 혀를 내두르며 전방을 쳐다보았다. 희뿌연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천천히 다가오는 북부의 군세.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리라.
‘멍청한 북부 놈들. 남부의 저력을 보여 주마.’
“아주 난리가 났는데요.”
한편, 렌즈를 통해 병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던 셸로어의 말에, 시무스는 피식 웃어 버렸다.
“그렇겠지.”
그나저나 뭔가 좀 이상한데. 시무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선을 끌어 달라고 해서 일부러 숨지도 않고 거창하게 모습을 드러냈다만, 적이 어쩐지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상대에게 미래시 능력이 있다는 소리는 스테치에게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적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았다.
투쾅!
그 순간, 생각지도 않은 거대한 포성이 수차례 울려 퍼졌다. 시무스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하늘에서 구식 대포탄 세례가 쏟아져 내리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현재 적진과의 거리는 2~3km. 유효 사거리를 훨씬 뛰어넘는 거리인데 어째서 성급하게 지금 공격한 거지?
시무스가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동안, 차량에 동승 중이던 다른 셸로어들이 함께 마법을 시전했다.
《액티브 코옵 스킬: 프로젝타일 이뮤니티(lv 7). 공격 타입 ‘투사체’에 해당하는 모든 공격에 대한 방어벽을 형성합니다. 투사체에 한하여 절대적인 방어 능력을 발휘하나, 이외의 공격엔 소용이 없습니다.》
다수에 의해 발동되는 고등 마법.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이 포탄을 모조리 옆으로 튕겨 내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베네지아 병사들이 경악했다.
“시발! 저것도 마법인가?!”
“마법이라고 참 좆 같은 것만 골라서 쓰네!”
“당황하지 마!”
지휘관 토니의 일갈에 소란스럽던 병사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는 빠른 속도로 접근 중인 북부 엘프들의 무리를 노려보며 지시했다.
“방금 것은 간 보기다. 화살 준비!”
절그럭-.
성벽과 방책 뒤에 설치된 발리스타에, 창대처럼 굵직한 전용 화살이 장전되었다.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토니는 검을 뽑아 들고선 크게 치켜들었다.
“조준-, 발사!”
퓨퓻!
횡으로 길게 늘어선 발리스타 대열에서, 특제 화살들이 발사되었다.
“저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드는 화살들. 그것을 본 시무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투사체의 종류는 화살. 그러나 거기에 걸맞지 않은 비정상적인 사거리.
이것은 위험하다. 무언가 심상찮음을 감지한 시무스는 《프로젝타일 이뮤니티》를 시전 중이던 셸로어와 드워프 운전수에게 다급히 외쳤다.
“피해라! 저건 막을 수 없다!”
“치잇!”
고함을 들은 드워프는 급히 조종간을 비틀었다. 선두를 따라가던 뒤의 행렬도 그에 맞춰 방향을 꺾었지만, 아쉽게도 대응이 살짝 늦었다.
파바박!
화살은 마법 방벽을 보란 듯이 종잇장처럼 뚫고 들어가더니, 기계식 차량의 장갑판에 꽂혔다. 차량 한 대는 화살이 영 좋지 않은 곳에 맞았는지 그대로 제자리에 멈춰 버렸고, 몇몇 엘프들은 화살의 영향으로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어?!”
셸로어 하나가 몸 바깥으로 내보낸 마력이 자꾸만 흩어지는 것을 본 뒤에서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깨달았다. 장갑차에 박힌 발리스타용 화살. 그것은…….
“……디스펠륨!”
그 순간, 구식 대포에 의한 두 번째 포격이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 * *
“드디어 오늘이 왔다.”
수도에서 남쪽으로 고작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숲. 눈에 띄지 않도록 수풀 틈새에 앉은 가렛이 입을 열자, 열띤 눈으로 그를 쳐다보던 부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정작 그의 보좌인 셰일은 너무나도 긴장한 나머지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셰일, 그만해.”
“하, 하지만 보스!”
셰일이 더듬거리며 가렛에게 물었다.
“우리 같은 일개 도적 집단이 수도를 공격한다뇨! 왕궁을 공격한다뇨?!”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그저 부자나 귀족들의 창고를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평범한(?) 도적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수도에 전면전을 건다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아니었다.
“우리 도적 아니다. 그나저나 너는 이제 와서 또 그 소리 하기냐?”
가렛이 핀잔을 주었다.
“이제 확신했어. 베네지아의 국왕인 신체루스는 자기 백성들이 뒤지든 말든 쥐 좆만큼도 신경 안 쓸 천하의 개자식이라는 거. 이런 짓이라도 벌이지 않으면 이 왕국에 희망 따윈 없다고.”
귀족들은 자기 배를 불리기에 바쁘고, 세금은 나날이 늘어만 간다. 수년 동안 베네지아의 평민들을 돕던 가렛이 희망을 잃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 실패하면 대륙 전체가 작살 난다니까? 우리 좋은 일 하는 거야, 좋은 일!”
셰일을 비롯한 몇몇 부하들도 똑같은 의문을 품고 있는 듯했으나, 가렛의 말을 듣고는 납득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스테치.”
“…….”
“스테치!”
“엉?”
멍 때리느라 입을 헤 벌리고 있던 스테치는, 가렛에 의해 재차 이름이 불리고 난 뒤에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집중해, 집중! 거사가 이제 코앞인데 뭘 넋 빼놓고 앉아 있어?”
“거사…… 거사…….”
가렛의 말에 스테치는 마치 정신병자처럼 중얼거리더니,
“으…… 으오오옷!”
의미불명의 괴성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와씨, 야이 미친놈아!”
가렛은 혹시 누가 지나가다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스테치의 입을 틀어막았다. 두 사람이 투덕거리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던 스카이는 엘레나에게 물었다.
“어이, 당신은 쟤 왜 저러는지 몰라?”
“글쎄요……?”
엘레나는 스카이의 시선을 피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면서 얼굴을 붉혔다.
그러는 사이 간신히 스테치를 제정신으로 되돌려 놓은 가렛. 스테치는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다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그 말에 누군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어차피 난 말주변 없는 놈이니까, 이거 하나만 말해 둘게. 긴장되고 겁도 나겠지만……. 구국이니 대륙이니 하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각자 맡은 바 일만 잘해. 그럼 다들 살아서 내일 아침 해를 볼 수 있을 거야.”
“……잘 나가다가 갑자기 왜 마지막에 우울한 소리야?”
황당해하는 스카이. 엘레나는 손을 들어서 스테치에게 물었다.
“공격 타이밍은 언제죠?”
“‘그 친구’가 나타났을 때.”
가렛은 아리송한 얼굴로 스테치를 응시했다. 결국, 작전 당일인 오늘까지도 스테치는 수수께끼의 조력자가 누군지 말해 주지 않았다.
“대체 그게 누군데?”
가렛의 질문에 스테치가 말끝을 흐렸다.
그 순간.
“보, 보스! 저기!”
숲 외곽 쪽에서 적의 동향을 살피던 가렛의 부하 하나가 보스를 부르짖었다. 쪼그리고 앉은 채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스테치와 일행은 가렛의 부하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 * *
“으와…….”
캐슬 브랜든의 수도, 알렌테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 위.
주위를 감시하던 병사 하나가 문득 주변을 둘러보고선 낮게 신음했다.
“왜 그래?”
“아니……. 어쩐지 도시가 을씨년스러워 보여서.”
북부 엘프들이 베네지아를 침공하러 온다는 소문은 부대 전체에 돌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수도에 주둔 중이던 그 많은 병사들은 북부 전선으로 복귀했고, 시끌벅적하던 수도 알렌테는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원래는 이게 정상인데.
조금 전부터 느껴지는 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은 뭘까.
탁!
병사의 뒤통수를 후린 동료가 그에게 말했다.
“야, 헛소리하지 말고 자리나 지켜.”
“넌 걱정도 안 되냐? 북쪽 경계선이 뚫리면 어떡해?”
“쓰잘데기없는 소리 하기는. 마법포가 있잖아. 거기에 집중된 화력은 수도인 여기보다도 어마무시하다고. 그냥 시키는 일이나 잘하고 있어!”
거듭되는 잔소리. 병사는 괜히 머쓱해져서 뒤통수를 긁어 댔다. 그때, 누군가의 외침이 두 사람의 귓전을 때렸다.
“누군가가 온다! 상대는…….”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병사들. 일반인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커다란 사람의 실루엣이, 알렌테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스파이 글래스를 통해 상대를 확인한 병사가 말했다.
“……마르크 맥도웰!”
웅성웅성.
동방 장군이라고? 병사들 사이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베네지아 왕가의 공식적인 선언을 통해 마르크 맥도웰이 더 이상 아군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 소리였다.
정말로 베네지아를 수호하던 장군이 우리들의 적이란 말인가?
“장군! 아니, 맥도웰!”
알렌테의 방어를 담당하던 지휘관이 외쳤다.
“당신이 더 이상 베네지아에서 환영받는 몸이 아니라는 걸 망각했나?”
수많은 화살들이 다가오는 마르크를 겨눴다. 그러나 정작 마르크는 그것들을 가볍게 비웃어 준 뒤 등에 있던 방패를 풀러 내렸다.
방패에 장식된 사자 머리는 금방이라도 베네지아 병사들의 목을 찢어발길 것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덤벼라, 베네지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