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83)
182화에 계속 –
182화 사면초가 (1)
베네지아가 엘프들에게 쓴 전략은 단순했다. 사정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린 신형 발리스타로 디스펠륨제 화살을 쏴 날린 뒤, 마법을 봉인시킨 상태에서 화약식 대포탄으로 두들기는 것.
그 탓에 화력 면에서 월등히 뛰어난 마법포는 쓸 수 없게 되었지만, 신체적으로 우월한 엘프들과 칼을 맞대고 싸울 바에야 차라리 이렇게라도 선수를 치는 편이 나았다.
“회피 기동!”
시무스의 지시를 받은 드워프 운전수가 고글을 고쳐 쓰며 말했다.
“그건 이쪽이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저 대포알들이나 어떻게 좀 해 보슈! 이러다 까딱 잘못하면 다 죽게 생겼으니까!”
휘이이-
대포에서 발사된 포탄들이 시무스와 셸로어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드워프 운전수들의 신들린 드라이빙 실력 덕분에, 기계식 차량들은 빗발치는 포탄 세례 틈새를 뚫고 지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디스펠륨으로 인해 까딱 잘못하면 묵사발이 될 수도 있는 상황. 천만다행으로 사망자는 거의 없었지만, 몇몇 차량은 포탄이나 화살들에 의해 재기불능이 되고 말았다. 셸로어들은 전면 장갑판에 박힌 디스펠륨 화살들을 걷어차 강제로 떨궈 낸 뒤 외쳤다.
“됐습니다!”
퍼버벙!
말을 꺼내자마자 포성과 함께 다시금 날아오는 포탄들. 디스펠륨이 사라지자 다시 마법을 시전할 수 있게 된 시무스는 급한 대로 체내의 마력을 끌어모았다.
《액티브 스킬 : 에너지 실드. 순수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방벽을 만들어 냅니다. 전개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대량의 마력을 소모합니다.》
콰곽!
“큭!”
가로로 길게 펼쳐진 거대한 광막이 떨어져 내리는 포탄들을 모두 막아 냈다. 하지만 역시 단독으로 저 많은 공격을 방어해 내려니 힘이 부쳤다.
‘견제만 해 달라는 부탁, 생각보다 되게 들어주기 힘들게 생겼는데.’
살짝 겁만 주면서 간을 볼 생각이었는데, 설마 이 거리에서 다짜고짜 화살을 쏴 재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실제로 일반적인 대포나 발리스타의 유효 사정거리는 1km 미만. 그 이상 거리가 멀어지면 명중을 기대하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베네지아 병사들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성능을 자랑하는 발리스타를 사용하여 기습을 거는 데에 성공했다.
덕분에 북부 엘프들은 이미 적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줄도 모르고 신나게 달려든 셈이다.
어찌 되었건 먼저 공격을 당한 이상, 이대로 계속 두들겨 맞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차량 바로 옆에 떨어진 포탄의 영향으로 잠시 비틀거린 시무스는 외쳤다.
“계속 가라!”
“뭐라고요?”
드워프 운전수가 재차 물었다. 대포의 화망을 뚫고 들어가라니, 제정신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러나 시무스는 오래간만의 전투로 피가 끓는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와서 뒤로 내빼기엔 너무 깊숙이 들어왔어! 계속 가라!”
가슴은 흥분으로 두근거렸지만, 시무스의 머리는 차가웠다. 차라리 이대로 적진까지 직진해서 백병전으로 끌고 가는 편이 훨씬 나았다. 잘만 먹히면 적들을 제압하고 수도까지 직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 하지만!”
“먹힌 건 첫 번째 공격뿐이다! 적진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이겨!”
“젠장……. 이러다 죽으면 지옥에 가서도 당신을 원망할 거요!”
엘프들의 수장에게 하는 말치고는 엄청난 결례다. 하지만 시무스는 드워프의 말을 가볍게 웃어넘기며 지시를 내렸다.
“내가 신호를 내리면 즉시 감속! 셸로어들은 지면으로 바람 마법을 쏴라!”
드워프 운전수는 운전대 옆에 늘어뜨려진 호스를 입에 물고 힘껏 불었다. 휘파람처럼 날카롭고, 특정한 패턴을 가진 소리가 차량들 사이로 울려 퍼졌다. 다른 종족은 알아들을 수 없는 드워프들만의 음성 신호였다.
시무스의 지시를 받은 셸로어들은 차량 앞쪽을 향해 마법을 시전했다.
“《거스트 윈드》!”
“《에어 불렛》!”
투쾅!
강력한 바람이 차량 앞 모래 바닥을 강타하면서, 먼지구름이 위로 솟구쳤다. 시무스는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외쳤다.
“지금이다!”
드워프들이 브레이크를 걸자 베네지아의 북방 경계선으로 질주하던 차량들의 속도가 급감했다. 이어지는 시무스의 지시에 셸로어들은 곧바로 다음 마법을 사용했다.
《액티브 코옵 스킬 : 미라지. 상대의 시야에 왜곡된 비전을 보여 줍니다.》
기계식 차량의 앞쪽에 흐릿한 거울상이 맺히더니, 이윽고 원본과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완벽한 허상이 나타났다. 마법에 능한 셸로어였기에 가능한 정밀한 기교였다.
시무스 일행과 나머지 엘프들이 탑승한 장갑차가 속도를 줄이느라 먼지 속에 머무르는 사이, 가짜 차량들이 튀어 나갔다.
“쓸데없는 잔재주 부리기는!”
모래 먼지를 뚫고 나온 적들이 미끼일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토니는 이를 갈며 병사들에게 외쳤다.
“발사각 수정!”
끼리릭-.
황급히 발리스타와 대포의 각도를 조정한 병사들은, 조준이 완료되자마자 화살과 포탄을 동시에 발사했다. 포격에 디스펠륨을 섞어 넣어 방어를 할 수 없도록 만들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런 지휘관의 기대와 달리, 포탄과 화살은 그대로 허상을 뚫고 맨바닥에 꽂혔다. 멀리서 지켜보던 베네지아 병사들은 홀연히 사라진 장갑차들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뭐야?”
“어디로 갔어?”
그 순간, 다시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 장갑차가 사라진 허상 뒤쪽의 모래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시종일관 병사들을 침착하게 지휘하던 토니도 이 상황에 당황했다.
“재장전!”
“안 돼, 시간이 부족해!”
카델트 대사막의 이성 없고 단순무식한 몬스터들만 상대하던 그들이, 북부 엘프들의 트리키 한 전술을 당해 낼 턱이 없었다.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결국 엘프들을 실은 장갑차는 허무할 만치 손쉽게 방어벽 앞에 도달해 버렸다.
철컥!
드워프 운전수가 레버를 당기자, 차량에 설치된 실린더가 스팀을 뿜어내며 접혀 있던 사다리를 길게 펼쳤다. 걸쇠를 성벽 위에 걸쳐 단단히 고정된 것을 확인한 운전수가 OK 사인을 보냈고, 시무스를 필두로 한 셸로어들은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올라갔다.
* * *
한편, 베네지아의 수도 알렌테의 남문.
병사들은 갑작스런 마르크 맥도웰의 등장으로 크게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하죠?”
“쏘지 마!”
적은 한 명뿐인데, 화살을 쏘지 말라고 지시하는 지휘관. 하지만 그의 판단은 적절했다.
아티팩트 레오니다스는 사용자인 마르크 맥도웰의 거구조차 가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견고한 타워 실드. 괜히 화살 따위로 공격했다가 반격당하면 곤란하다.
“걱정 마, 혼자서는…… 응?”
갑작스러운 동방 장군의 등장으로 잔뜩 긴장한 병사들을 진정시킨 지휘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알렌테의 남쪽 입구로부터 4~500m 정도 떨어진 숲에서 수많은 인파가 우르르 몰려나온 것이다.
“뭐야, 저건?!”
석궁과 활, 방패를 든 수수께끼의 무장 집단이 동방 장군의 뒤쪽에 바짝 모여들었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가렛의 부하들이었다. 혼란스럽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방패를 들고 앞서 나가는 마르크의 뒤에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야, 이거 실화냐?”
“마르크 맥도웰이 우리를 지휘한다고? 그게 말이 돼?”
충격 그 자체였다.
아무리 동방 장군의 힘이 강력하다고 해도, 불과 며칠 전까지 적이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같은 편에서 싸우게 된다니.
“썅.”
스카이는 말 그대로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테치가 조력자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이유가 단박에 이해될 정도였다. 그는 일부러 스카이나 가렛, 혹은 부하들이 임무를 때려치울 수 없는 시점까지 작전 당일까지 마르크 맥도웰의 존재를 숨긴 것이다.
“하……. 진짜, 그 약아 빠진 놈이.”
스카이는 투덜거리자, 마르크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심중을 알 수 없는 딱딱한 시선에 스카이는 넌더리가 날 지경이었다.
“어이! 빨리 안 싸우고 뭐 해!”
다른 사람의 재촉을 들은 스카이는, 하는 수 없이 등에 메고 있던 케이스를 풀러 내렸다. 그가 안에서 끄집어낸 물건은 다름 아닌 라이플. 단망경을 위에 부착해서 저격까지 가능하게 만든 장거리용 화약 무기였다.
탄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겨 발사.
타앙-!
옆에 선 사람의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엄청난 소리. 머리통을 명중 당한 베네지아 병사 하나가 그대로 성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자, 바로 옆에서 열심히 화살을 쏴 대던 병사들은 경악하여 입을 쩍 벌렸다.
한창 활시위를 튕겨 대던 가렛의 부하들은 신무기의 성능을 눈으로 보게 되자 일제히 스카이에게 불만을 토해 냈다.
“와, 진짜 너무하네!”
“누구는 손가락 부러지게 활이나 쏴 대고 있는데, 자기 혼자만 좋은 거 쓰는 거 보소?”
스카이는 입술을 삐죽이며 대꾸했다.
“시끄러워, 멍청이들아.”
그가 만든 라이플은 드워프들의 기술까지 끌어다 만든 오버 테크놀러지의 결정체. 같은 총을 두 정 이상 만들 자원이나 시간적 여유도 없을뿐더러, 탄환도 한 발 한 발 아껴서 써야 할 만큼 수가 부족했다.
“야, 덩치.”
스카이는 위협적으로 장전쇠를 당겨 탄피를 배출시킨 뒤, 마르크에게 말을 걸었다.
“너 이 새끼, 싸우다가 허튼 생각 하기만 해 봐. 바로 대가리에 바람구멍 날 줄 알아.”
“알았다.”
생각보다 선선하게 대답하는 마르크의 태도에 스카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자 싸웠던 동방 장군이, 이제는 아군이랍시고 무방비하게 뒤를 내보이고 있다니. 어쩜 저렇게 태평할 수 있는 걸까?
“존나 짜증 나는 새끼.”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스카이는 단망경에 눈을 가져다 댄 뒤 라이플에 인챈트를 걸었다.
타앙!
라이플 탄이 성벽과 닿으면서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성벽의 여장(女墻)을 엄폐물 삼아 숨어 있던 병사 하나가 충격으로 날아가 기절했다.
“저 무기는 또 뭐야?!”
“드워프들이 만든 건가?”
성벽 뒤에 엄폐하고 있던 병사들은 물론, 남문의 지휘관조차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받아들이기도 힘든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동방 장군의 등장, 그리고 갑자기 떼거리로 몰려들어 공격해 오는 정체불명의 무장 집단과 난생처음 보는 무기. 비록 그 규모는 적었지만, 생각 외로 공격이 거세서 방어에만 몰두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일찍 전황을 파악한 남문 지휘관이 외쳤다.
“대포는 어떻게 됐나!”
“아직 발사 준비가 덜 끝났습니다!”
막 화약을 채워 넣던 병사가 답했다. 역사상 그 어느 누구도 베네지아의 수도를 직접 공격해 온 적은 없었기 때문에, 성벽 위에 설치된 대포는 사실상 장식물 이상의 역할을 수행해 본 역사가 없었다.
투쾅!
“으아아악!”
한창 장전 중이던 대포에 폭발성 라이플 탄이 명중했다. 비명을 내지르며 대포와 함께 나동그라지는 병사. 지휘관은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정신 나간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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