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199)
198화에 계속 –
198화 자유
산을 부수고 숲을 쓸어버리는 치열한 공방. 그 중심에는 스테치와 프레야, 그리고 아치발이 있었다.
“크윽!”
아치발의 검격에 팔 한 짝을 날려 먹은 스테치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것을 재생시킨 뒤 프레야와 함께 재차 달려들었다.
《코어 블라스트》의 이중 타격이라는 약점은 아치발로서는 최악의 약점이었으나, 그걸 명중시키기 위해선 고도로 정밀한 타이밍 계산과 유도가 필요했다.
“”《코어 블라스트》!“”
투쾅!
쩍 벌어진 아치발의 입에서, 푸른색으로 빛나는 마력과 검붉은 피가 뒤섞여 뿜어져 나왔다. 스테치는 할로우 블레이드를 아치발의 흉곽으로 찔러 넣은 뒤, 발로 걷어차 즉시 뽑아내고선 외쳤다.
“커스 디바우러-!”
메멘토 모템이 발산하는 사기를 흡수하여 마법에 부스트를 건 스테치는, 전신에 충만한 힘을 끌어 올려 한 손에 집중시켰다.
그러나 그 순간.
“커흡!”
피가 고여 시야가 붉게 물든 스테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몰려오는 현기증과, 뇌가 타 버릴 것만 같은 두통. 마법적인 재능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몸을 억지로 굴리기 위해, 무리해서 한계까지 몰아붙인 결과였다.
스테치는 간신히 몸을 다잡은 뒤, 한번 축 늘어뜨렸던 손을 다시금 들어 올렸다. 팔 전체가 모래나 무게추라도 달린 듯이 희미하게 흔들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나타난 프레야가 그의 손을 대신 붙잡아 이끌어 주었다.
“마지막이야.”
최후의 한 방. 이것이 빗나가 버리면 더는 승산이 없다. 그 의미를 이해한 스테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빨을 부서져라 악물었다.
“잘 가라, 씹새야……!”
우우웅-!
완전한 무방비 상태가 된 아치발을 향해, 스테치는 마법을 시전했다.
“《에어 불렛》·《아크》·《파이어볼》·《아이스 웨이브》!”
《콤비네이션 스킬 : 엘레멘탈 버스트. 서로 다른 자연계 속성들의 조합으로 발생 되는 원소 폭발. 새로운 속성이 더해질 때마다 위력이 배가 됩니다.》
“《엘레멘탈 버스트》!”
다중 속성의 콤비네이션 마법. 단거리 포탈을 열어 회피할 틈도 없이, 아치발은 스테치가 발사한 원소 에너지에 두들겨 맞았다. 소용돌이치는 마력 덩어리가 날카로운 파쇄음을 내며 아치발의 방어를 깎아 내기 시작했다.
“-!”
그러나 가드를 올린 아치발의 양 팔뚝과 복부를 기어이 관통한 《엘레멘탈 버스트》는, 그 뒤로도 한참을 날아가더니 저 멀리에 우뚝 서 있는 산머리에 명중하여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과광!
치솟는 불기둥을 배경으로 선 아치발의 몸통에는, 흡사 정통으로 대포알에 맞은 듯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끈적하게 실처럼 늘어진 피가 배꼽을 타고 흘러내려 가, 이내 바닥에 고여 웅덩이를 이루었다.
뒤늦게 날아온 후폭풍의 바람이 스테치와 아치발의 머리카락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갈 때까지, 두 사람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 으아…….”
결국, 먼저 입으로 소리 낸 것은 다름 아닌 아치발이었다. 그는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인지했는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진작에 재생을 시작했어야 할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발걸음을 옮기려던 아치발은, 돌부리에 발끝이 걸리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털썩!
“…….”
무릎 꿇린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보려 했지만, 한번 힘이 풀린 사지는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애처롭기 짝이 없는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다.
“헉…… 헉…….”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이는 스테치. 그런 그를 부축하고 있던 프레야는, 조심스럽게 스테치를 바닥에 앉혀 놓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가 처리할게.”
스테치는 무어라 말을 하려고 입술 끝을 달싹였지만, 어느 정도 납득했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야는 싱긋 웃어 준 뒤, 몸을 틀어 아치발에게로 걸어갔다.
터벅-. 터벅-.
도망칠 기운마저 모두 잃어버린 아치발은, 그녀의 발소리를 듣고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앞에는 이미 지척까지 다가온 프레야가 우뚝 서 있었다.
“너…….”
아치발은 눈알을 굴려 자신을 내려다보는 프레야를 마주 보았다.
“그래, 맞아. 널 진정으로 끝장내는 역할은 내 것이야.”
프레야가 말했다. 이제 와서 새삼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임무 때문에 사명감을 느낄 그녀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끝마무리는 자신이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네 자식들이 무슨 염원을 담아 날 만들었는지 모르겠지. 하지만 난 알아.”
프레야는 손가락에 끼워진 메멘토 모템의 레플리카를 아치발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목숨을 앗아 간 너에게, 합당한 죽음을 안겨 줄 존재. 그게 바로 내가 태어난 목적이었어. 너는 마지막으로 네 ‘죽음을 기억(Memento Mortem)’하면서 눈을 감는 거야.”
아치발은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비록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눈빛에는 많은 뜻이 담겨져 있었다.
‘너 또한,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이 부여한 임무에 따라 움직이는 건가? 저 인간처럼?’
그러자 이를 알아본 프레야는 피식 웃어 보이며 말했다.
“최소한 데스트라는 그렇게 말했었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턱.
부드러운 손바닥이 아치발의 얼굴을 덮었다. 비록 그녀의 손가락은 가느다랬지만, 거기에서 발휘되는 악력은 무시무시했다.
“그냥, 1000년이 넘도록 뺑이 치게 만든 것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해. 나도 이제 좀 너라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좀 자유롭게 살고 싶단 생각이 들던 참이었거든.”
희미해지는 아치발의 의식 속에서, 프레야의 목소리만큼은 선명하게 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잘 가.”
콰직!
굵은 핏방울 하나가 기다란 꼬리를 남기며 프레야의 뺨에 튀었다.
* * *
“젠장.”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가렛. 그런 그의 옆에는 잔뜩 침울해진 표정으로 사라진 캐슬 브랜든의 터를 보고 있는 스카이와,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마르크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의 정신은 온통, 바닥에 놓여 있는 엘레나의 시신으로 몰려 있었다. 부드러운 흰 천을 바닥 삼아 누워 있는 그녀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누가 이긴 걸까?”
“낸들 아냐.”
가렛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스카이가 퉁명스레 답했다. 스테치와 아치발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버리는 바람에, 둘 중 어느 쪽이 이겼는지조차도 불분명한 상황. 그 탓인지 가렛이나 스카이, 그리고 마르크는 동료의 죽음을 마음 편히 슬퍼할 수 없었다.
“이긴 쪽은 필시 스테치 아텔리어겠지.”
마르크의 확신에 찬 마르크의 대답에 스카이는 어처구니없어하며 물었다.
“이거 아주 눈에 콩깍지가 껴도 단단히 꼈네. 직접 보지도 않은 주제에 너무 확신하는 거 아냐?”
“그렇다면 너는 그가 패배했기를 바라는 건가?”
“……시발, 뭔 말을 못 해.”
스카이는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마르크의 시선을 피하며 투덜거렸다. 그때,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엉?”
“저기, 뭔가 날아온다!”
유성처럼 밝게 타오르는 무언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캐슬 브랜든의 터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러자 가렛과 스카이는 잔뜩 긴장하여 무기를 들어 올렸다.
“어느 쪽이야?”
스카이는 스파이 글래스를 통해 비행 중인 물체를 살펴보는 가렛에게 판단을 재촉했다. 상대는 스테치인가, 아니면 아치발인가? 그러자 벽에 기대고 있던 마르크가 물었다.
“어느 쪽인지를 알면 뭐가 달라지나?”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하긴 아치발이 승리했다면 어차피 그들에게 승산은 없다. 하나하나 딴죽 거는 마르크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스카이는 바닥에 침을 탁 뱉었고, 마르크는 그런 그에게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만약 저자가 아치발이라면, 굳이 여기까지 되돌아올 이유가 없겠지.”
“……아.”
그 말을 들은 스카이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스테치다!”
휘오오!
그리고 마르크의 말대로, 스테치는 되돌아왔다. 비틀비틀,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며 날아온 그는, 땅바닥을 거의 굴러갈 듯한 기세로 착지했다.
“어우, 이런.”
스테치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재생시켰던 크고 작은 상처들이, 사라지지 않고 온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스테치는 정작 그런 거나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지, 연신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어디 있어?”
“……그, 그게.”
“어디 있냐고?”
그가 누굴 찾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연인의 죽음을 자기 눈으로 목격한 스테치에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하는가. 스카이와 가렛, 그리고 마르크가 대답을 머뭇거리는 사이,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긴 스테치가 말했다.
“착각하지 마. 나 지금 정신 나가거나, 슬퍼서 헛소리하는 거 아니니까 빨리 묻는 거나 대답하라고. 엘레나 어디 있냐니까?”
“?”
셋은 그제야 스테치의 안색을 살폈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어버린 사람치고는 너무나 태연하다. 얼떨떨해진 가렛이 손가락으로 죽은 엘레나의 시신을 가리키자, 스테치는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엘레나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했는데, 먼저 떠나서야 쓰나.”
스테치는 힘없이 웃으며 왼손으로 엘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반지에서 뿜어져 나온 녹색 빛이, 죽은 그녀의 몸을 감쌌다.
“리저렉션.”
파아앗-!
창백했던 엘레나의 피부에 다시금 생기가 돌기 시작하자, 주위를 에워싸고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가 이 경이로운 광경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렛은 스테치가 아닌 다른 이가 부활하는 광경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정말이지,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군. 너 인간 맞냐, 스테치?”
죽음을 초월한 것처럼 보이는 스테치가, 스카이에겐 도무지 인간 같지 않게 느껴졌다. 스테치는 말했다.
“이것도 만능은 아니야.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데다가, 자연사로 죽은 사람은 부활시킬 수 없으니까.”
아마도 데스트라는 그가 리저렉션으로 엘레나를 되살려 낼 것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것 이외에는 그녀가 다짜고짜 이토록 위험천만한 짓을 벌인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아슬아슬할 때까지 쥐어짜 낸 마력을 들이부은 스테치는, 엘레나의 가슴 위에 귀를 가져다 댔다. 자그마한 심장 박동 소리를 확인한 그는, 엘레나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
서서히 눈을 떠 가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스테치는 말했다.
“잘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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