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203)
202화 8년 뒤 (2)
알레시아는 어떻게든 숨소리를 줄이기 위해 손으로 입을 덮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애타는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레이트 울프는 알레시아가 숨어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킁킁.
그러나 이게 웬걸.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레이트 울프는 갑자기 코끝을 씰룩이더니, 흥미를 잃었다는 듯 다른 쪽으로 고개를 틀어 버렸다. 멀어지는 그레이트 울프의 발걸음 소리에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알레시아의 시야에, 두 사람의 인영이 나무 위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잘하셨습니다, 아가씨.”
알레시아는 익숙한 얼굴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트라이더 에이다와 제스터였다.
“잠시 다른 곳으로 놈을 유인해 뒀지만 효과는 그리 길지 못해요.”
제스터가 슬쩍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그레이트 울프들의 질주에서 빠져나온 몇몇 개체들이 땅에 떨어진 고깃자루에 주둥이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에이다가 말했다.
“업히십시오.”
알레시아는 두말하지 않고 냉큼 그녀에게 업혔다. 지금도 다리가 후들거려서 힘이 들어가지 않을 지경이다.
탓!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 순간, 알레시아의 몸은 에이다와 함께 지면으로부터 수 미터 이상 되는 높이로 떠올라 있었다.
“끼-”
알레시아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오기도 전에, 에이다는 능숙한 동작으로 삼각 차기를 하더니 깃털처럼 가볍게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았다.
“아가씨가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어요.”
“구,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알레시아는 얼굴을 에이다의 등에 묻은 채로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도움을 받았으면 항상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는 부모님 교육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가지와 가지 사이를 훌쩍훌쩍 뛰어 넘어가던 에이다는 알레시아의 말을 듣고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막 다음 가지로 뛰어넘으려던 그녀는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음!”
고릴라의 형상을 한 몬스터, 프라이멀의 떼가 복잡하게 얽힌 나뭇가지 사이를 뛰어넘으며 기다란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하나로 이어지던 행렬은 Y자로 갈라지면서 정확하게 에이다와 제스터의 앞뒤를 가로막았다.
“이런.”
에이다는 망토를 길게 잡아당겨 몸을 숨겼다. 때마침 지나가던 프라이멀 한 마리가 《카모플라쥬 클록》이 발동되기 무섭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곧 무리로 합류했다. 에이다와 마찬가지로 은신하고 있던 제스터가 말했다.
“큰일났다.”
프라이멀은 감각이 제법 뛰어난 몬스터다. 속이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 이상은 못 버틴다. 당장 한 마리 정도만 그들이 서 있는 가지 위로 올라온다면 바로 들키고 말 것이다.
“야단났네, 이대로 가다간 우리 모두…….”
“아…….”
옆에서 이를 들은 알레시아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애초에 자신이 얌전히 집 안에 있었더라면, 두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구하러 오는 일도 없었을 텐데…….
“어? 아이고 아가씨,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제스터가 알레시아의 반응에 당황해하자, 에이다는 씹어먹을 기세로 그에게 눈을 한번 부라리고선 말했다.
“자책하시지 마세요. 그 누구도 이런 사태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했으니까요.”
던전이 사라지고 아치발마저 사망한 이후로, 어둠의 숲은 몬스터를 찾아보기 힘든 안전한 지역이 되었다. 알레시아가 혼자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아무도 제지하지 않은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저 이 상황이 이례적인 예외에 속할 뿐.
‘어디 보자.’
이 많은 몬스터 떼는 두 사람만으로는 절대 대처할 수 없는 숫자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이 없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다. 무슨 방법을 택하든 마을이나 알레시아, 둘 중 하나는 무조건 피해를 입고 만다. 하다못해 적의 이목을 끌어 줄 무언가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유일한 미끼는 그레이트 울프를 유인하면서 써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지금 그들의 위치는 아무도 모르므로, 도와주러 올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신호용 화살을 쏠 수는 있지만, 그러면 몬스터들이 더 빨리 몰려들 것이다. 정말 운이 좋다면 들키지 않을지도 모른다.
참고 버텨야 하나? 그게 아니라면…….
“크아아악!”
갑작스런 괴성과 함께, 에이다가 몸을 기대고 서 있던 나무가 박살 났다. 그러나 제스터와 에이다는 이미 공중으로 몸을 날린 직후였다.
촤아악-!
지면으로 미끄러지며 착지한 두 사람에게 쏟아지는 몬스터들의 무수한 시선. 에이다는 옆으로 맨 활을 풀어 내리며 알레시아에게 말했다.
“……아가씨, 꽉 붙잡고 계세요.”
“크와악!”
에이다는 자신의 발목을 노리고 달려든 그레이트 울프의 턱을 무릎으로 차올린 뒤, 그대로 몸을 돌려 화살을 쐈다. 알레시아가 매달린 탓에 움직임에 제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놀림은 날렵했다.
푸욱!
프라이멀은 어깨에 박힌 에이다의 굵직한 화살을 한 손으로 뽑아내더니 그대로 부러뜨렸다.
“와, 저걸 부러뜨리네.”
에이다의 화살은 일반 엘프들의 것과 달리 탄성 좋은 합금으로 만들어진 특제품. 그런데 그걸 맨손으로 작살 낸다고? 강한 것도 정도껏 강해야지. 프라이멀은 반 토막 난 화살을 땅바닥에 집어 던지더니 두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그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피튀기는 혈투가 벌어졌다.
프라이멀을 시작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몬스터들. 그래도 괜히 스트라이더라고 불리는 게 아닌지라, 에이다와 제스터의 주변으로 죽은 몬스터의 사체가 수북이 쌓여 갔다. 하지만 역시 다구리에는 장사 없다고, 점점 쓰러지는 몬스터보다 달려드는 몬스터의 숫자가 많아졌다.
“이익!”
화살을 회수해 가면서 싸웠지만 역시나 턱도 없다. 제스터는 급기야 활대를 두 손으로 잡고 몽둥이처럼 휘둘러 가며 몬스터들을 두들겨 팼다.
“윽!”
그레이트 울프의 앞발이 에이다의 팔뚝에 흉측하고 긴 상처를 남겨 놓았다. 에이다는 화살을 하나 뽑아 역수로 쥔 다음, 재차 달려들려는 그레이트 울프의 주둥이 위를 내리찍어 그대로 땅바닥에 붙여 놓았다.
콰직!
“제스터! 신호 화살 쏴!”
어차피 위치는 발각 났으니 이판사판이다. 에이다의 의도를 파악한 제스터가 위쪽으로 화살 하나를 쏴 올리자, 숲의 어둠을 걷어 내는 눈부신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건 그렇고…… 너무 많아!”
제스터는 활을 집어 던진 뒤, 단검과 검을 각각 양손에 들고 프라이멀의 목을 베었다. 뜨끈한 피가 그의 안면에 잔뜩 튀었다.
“아…… 아아…….”
알레시아는 기절해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피를 잔뜩 뒤집어써 가며 처절하게 싸우는 두 사람의 모습에 그녀는 어쩔 줄을 몰랐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에이다의 등에 죽어라 매달려 있는 것뿐.
“카악!”
뜨거운 침과 입김을 뿜어내며 주둥이를 벌리는 그레이트 울프. 에이다가 활대로 녀석을 밀어내는 사이, 빈틈을 노리고 나머지가 좌우에서 협공해 왔다.
“알레시아아아아-!”
그 순간, 죽어라 알레시아의 이름을 외치며 누군가가 풀숲을 헤치고 튀어나왔다. 그 목소리는 막 에이다와 제스터를 물어뜯으려던 그레이트 울프들을 잠깐이나마 멈추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신호 화살의 섬광과 소리를 찾아낸 스테치와 프레야가,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질주해 오고 있었다.
““이 개애애애 새끼들아아아아-!””
뻐어억!
스테치의 드롭킥과 프레야의 주먹이 각각의 그레이트 울프들을 쳐 날려 버렸다. 마을에서부터 출발하고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왔는지, 두 사람은 땀을 비처럼 쏟아 내고 있었다.
“아텔리어 님?! 거기다 프레야님까지……!”
“《에어 버스트》-!”
콰과광!
소용돌이치는 난기류가 폭발하면서 그레이트 울프와 프라이멀들을 하늘 높이 날려 버렸다. 포위망을 일직선으로 찢으며 내달린 둘은, 공중으로 《테슬라》의 오브들을 띄워 놓았다. 범위 안에 들어와 있던 몬스터들은 난데없이 날아온 스파크에 감전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빠가……?”
알레시아는 난생처음 보는 아빠의 모습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평소에는 그저 허허 웃는 아저씨에 불과했던 그가, 지금은 온갖 화려한 마법들을 시전해 가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알레시아!”
《테슬라》 오브들이 접근해 오는 몬스터들을 막아 내 주는 동안, 마침내 도달한 스테치의 시선이 두 사람의 주변을 훑었고, 그는 이내 에이다의 등에 업힌 알레시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테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양팔을 크게 벌렸다.
“아빠!”
에이다에게서 내려온 알레시아는 긴장감이 풀린 탓인지 참고 참았던 눈물이 펑펑 쏟아 내더니, 스테치의 품에 그대로 안겨 엉엉 울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프레야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난데없이 스테치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겼다.
빠각!
“악! 왜 때려?!”
“애 앞에서 욕이 뭐야, 욕이. 나중에 집 돌아가면 혼날 줄 알아.”
“네가 내 마누라냐?”
두근.
“으…….”
퉁명스레 대꾸하던 스테치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그러나 프레야와 다른 두 스트라이더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괜찮아?”
“……어.”
스테치는 짐짓 태연한 척했지만, 실제로는 미친 듯이 뛰어 대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치발과의 최종 결전에서, 스테치는 메멘토 모템의 마지막 봉인을 부수고 그 안에 내재된 신의 정수를 몸에 둘렀다. 그 결과, 메멘토 모템은 아티팩트로써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깨진 그릇에 물을 담을 수는 없는 법.
스테치는 프레야와의 공존을 유지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 이상으로 마력을 흡수하는 것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마법은 봉인. 그나마 다행이라면 프레야가 자기 몸 하나 만들 정도의 여유는 있다는 것일까.
지금 그가 마법을 쓸 수 있는 이유는 그저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아빠?”
말없이 가슴을 부여잡은 스테치를 올려다보며 알레시아가 말을 걸었다. 그러나 스테치는 싱긋 웃어 보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 잘 될 거야.”
스테치는 태연하게 주위에 널린 몬스터들의 사체를 흡수했다. 그렇게 많은 사체들에게서 마력을 뽑아냈는데도 회복되는 양은 턱없이 적다.
‘썅.’
“아텔리어 님.”
“그 이상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스테치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에이다와 제스터는 스테치를 만류했다. 그의 도움이 절묘했던 건 사실이지만,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했다간 스테치의 목숨도 위험해질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싸울 준비나 해. 놈들이 더 몰려온다.”
현재 엘프들은 모두 알레시아를 찾느라 다른 구역까지 넓게 퍼져 있는 상황. 하지만 이제 신호 화살의 섬광을 봤으니, 조금만 더 버티면 모두가 구해 주러 올 것이다.
“아군이 올 때까지 어떻게 해서든 버텨.”
“예!”
스테치는 각오를 다지며 등에 멘 강철검을 뽑아 들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