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32)
31화에계속 –
32화 피딩 라인 (3)
“내가 미쳤냐, 도적단에 들어가게?”
단칼에 거절하는 모습에 사내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스테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대체 자신의 뭘 보고 스카우트 제의를 해온단 말인가?
“어…… 본인도 딱히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은데 굳이 영입하려는 이유가 뭐죠, 보스?”
부하 하나가 조심스럽게 묻자, 다른 이들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 그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눈을 감고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내 안목은 정확하다니까. 거지꼴로 밥 빌어먹던 버나드는 우리들의 귀중한 첩보 요원이 되었고, 누구보다 소심했던 셰일은 스스로 독학하여 마법사가 되었잖아. 이게 다 누구 덕분이라고?”
“…… 보스요.”
“바로 그거야! 그러니 더 이상 토달지 마.”
사내는 할 말을 잃은 부하들에게 자신만만한 태도로 명령한 뒤, 스테치에게 물었다.
“내 이름은 가렛이다. 이 왕국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애국자이며, 만인을 섬기고 돕는 의적들의 리더지. 너는?”
이딴 나라에 대해 애국이라니, 벌써부터 눈앞의 이 자식이 싫어지려고 한다. 기나긴 설명에 스테치는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 브라이언.”
“만나서 반갑다, 브라이언. 미안한데 한 번 자세히 살펴봐도 될까?”
“뭐?”
그 순간, 가렛의 모습이 일렁거리며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스테치가 머뭇거리는 사이, 뒤에서 나타난 가렛은 스테치의 어깨와 이두근을 붙잡았다.
“우옷!”
“뛰어난 대인 전투능력에 이 흉터, 탄탄하게 발달된 근육…… 던전 탐험이라도 하는건가?”
기겁한 스테치가 고개를 홱 돌려보았을 때, 가렛은 이미 스테치의 배후에서 사라진 후 다시 제 자리에 되돌아온 상태였다. 혼란스러워 하는 스테치를 앞에 두고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거기다 맞춤 장비들까지. 그것만 봐도 네가 어디 굴러다니는 평범한 모험가는 아니란 걸 알 수 있지. 몇 번이고 말하고 있지만, 동료가 되는 걸 재고해줄 수는 없을까? 우린 항상 인재가 부족해서 말야.”
그러고 보니 내 장비들은 어디에 있는거지?
스테치가 주위를 둘러보자, 테이블로부터 멀찌감치에 놓인 궤짝 하나가 보였다.
뚜껑 틈새로 튀어나온 힐트의 모양은 틀림없는 스테치의 검이었다. 마법을 쓴다고 해도 이 방어벽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기 때문에, 스테치는 섣불리 행동에 나설 수가 없었다.
일단은 가렛의 말에 대답하는 수밖에.
“내가 너희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상인들 물건 털어먹는 산적 집단이라는 것 뿐인데.”
“산적이라니 실례군! 누차 말하지만 우리는 의적이야. 아무 상인이나 터는 것도 아니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이들만 털어서 그 부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단 말이야.”
‘나보고 그걸 어떻게 믿으라고?’
계속되는 가렛의 열정적아 제안에 스테치는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차피 백날 이런 제안을 들어봤자 그가 무슨 아쉬울 일이 있다고 도적단에 몸을 담그겠는가.
하물며 그가 하는 말에는 증거조차 없었으니, 정말로 본인 말처럼 선을 행하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대, 대장! 저걸 보세요!”
갑자기 산적 하나가 당황하여 외치자, 막 입을 열려던 가렛을 포함한 공터의 모두가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수 겹 이상 겹쳐서 생성되어있던 에너지 장벽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왜?
“경비가 허술하기 짝이 없군요. 이 정도 수준으로 노략질이라니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죠?”
털썩!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는 목소리와 함께, 저어기 수풀쪽에서 비틀비틀 걸어오던 셰일이 도적들의 앞에서 보란 듯이 쓰러졌다.
그 모습에 능글맞은 표정을 내내 유지하던 가렛은 물론이고, 다른 도적들까지 당황했다.
그 순간 거센 돌풍이 불어닥쳐 주변을 밝히던 횃불을 모두 꺼버렸고, 사방이 칠흑같은 어둠으로 휩싸였다. 스테치가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마자, 다른 이들의 내는 온갖 소음을 뚫고 엘레나의 부름이 들려왔다.
“아…… 고슬링! 이쪽이에요!”
“나이스 타이밍, 세레나!”
스테치는 환호했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부터 선이 가는 손 하나가 쭉 뻗어져 나오더니, 스테치를 수풀쪽으로 붙잡아 당겼다.
풀더미 안에서 희미한 유령불의 랜턴을 밝힌 그녀는 궤짝을 향해 손짓했고, 스테치는 고개를 끄덕인 뒤 곧장 그쪽으로 달려나갔다. 도적들이 전부 엎치락뒤치락 하는 사이, 대충 짐을 챙긴 그는 서둘러 엘레나를 따라 도망쳤다.
“위치는 그렇다 쳐도 용케 방벽을 없앴네. 어떻게 한거야?”
“시전자가 방벽 밖에서 마법을 유지하고 있더군요. 처리하는건 그닥 어렵지 않았어요.”
뛰어가면서 장비들을 걸친 스테치는, 엘레나를 뒤쫓는 사이 숲길 여기저기에서 기절해있는 산적단 졸개들의 몸뚱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불쌍한 놈들…….
하산하는 길을 전부 꿰고 있는 엘레나 덕분에, 스테치와 그녀가 산을 내려가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틈엔가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나 가로막고 선 가렛의 모습에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수로 우리들을 앞선거지? 혼란스러움으로 갸웃거리는 스테치 일행 앞에서, 가렛은 숨이 끊어질 듯 헉헉대며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저 자는 분명히 우리보다 뒤에 있었던 것이…?”
엘레나가 중얼거렸다.
“너네…… 헉, 드럽게 빠르다? 헉…….”
몇 번이고 구슬땀을 훔쳐낸 가렛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냥 도망치게 놔둘 수는 없지. 설득이 실패한 이상은…… 이 이후부턴 알지?”
“아, 정말 거머리같이 끈질기네.”
탁!
스테치의 욕설을 신호로,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는 가렛이 지면을 박차고 거의 기어오듯이 낮은 자세로 접근해왔다.
거기에 뒤늦게 반응한 스테치는 코앞까지 다가온 가렛의 턱으로 주먹을, 엘레나는 활대를 방망이처럼 잡고 상대의 몸통을 향해 휘둘렀다.
스르륵-.
그러나 펀치와 활은 가렛의 몸을 그대로 통과했고, 엘레나는 그대로 몸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당혹스러워했다.
“뭐……?!”
『조심해라, 스테치! 복부다!』
빠각!
축적된 전투 경험, 그리고 《오토매틱 리플렉스》의 보조로 스테치는 가렛의 니킥을 크로스가드로 막아냈고, 가렛은 발을 거두며 놀라워했다. 그 사이 스테치는 뒤로 몸을 빼며 메멘토 모템에게 물었다.
‘너…… 뭔가 보이는 게 있구나?’
『녀석은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아스트랄 도메인(Astral Domain, 정신세계)과 물질계를 자유자재로 오가고 있는 거야. 바로 그래서 네 눈에는 유령처럼 보이는 거고!』
‘아스…… 뭐?’
『시간 없어, 일단은 내 지시만 따라와!』
메멘토 모템의 대답이 무섭게 곧바로 다시 모습을 감추는 개럿. 옆에서 나타난 그는 스테치가 반응할 틈도 없이 돌려차기를 날렸다.
그 사이, 정신을 차린 셰일과 가렛의 나머지 부하들이 뒤늦게나마 나타났다.
“도망치지 못하게 잡아! 지금-“
스윽-.
보통 사람이라면 얼굴로 날아오는 공격에 조금이라도 반응을 보였을 터. 하지만 메멘토 모템의 지시를 받은 스테치는 정면으로 날아드는 가렛의 허상 공격을 그대로 통과시킨 뒤, 곧이어 실체화 된 그의 옆구리를 향해 보디 블로를 날렸다.
퍽!
“욱!”
“세레나!”
엘레나는 스테치의 신호에 맞춰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투척했다.
신음과 함께 재빨리 그것을 통과시켜 보이는 가렛.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셰일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눈이 어떻게 되먹었길래 보스의 움직임을 순식간에 꿰뚫어보는거지? 아니, 애초에 본다고 해서 봐지는 능력이던가?’
가렛의 아티팩트 ‘타른카페’는, 착용자를 아스트랄 도메인이라는 정신과 영혼들의 차원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쉽게 말해 소유자를 혼령같은 상태로 만드는 셈.
가렛의 격투 스타일은 이 능력을 동반한 은신 회피와 페이크 공격등을 섞어 넣는 방식이었는데, 저 스테치라는 남자는 놀랍게도 모든 것을 단 몇 번의 공방만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어딜!”
가렛의 발길질을 막아낸 스테치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메멘토 모템의 서포트로 그럭저럭 가렛의 움직임을 따라가고는 있었지만, 지시를 듣고 움직이는 것에는 어느 정도의 딜레이가 존재했기 때문에 공격을 완전히 방어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가렛을 상대로 스테치가 적응하는 속도,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찌르고 들어가는 엘레나의 합격을 보던 셰일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보스라도 저래선……!’
어설프게 끼어드는 것은 오히려 가렛에게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다른 부하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셰일은 손끝에 마력을 집중하여 남몰래 스테치를 겨눴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엘레나는 발끝을 땅에 대고 원을 그리며 한바퀴 돌더니, 땅바닥에 굴러다니던 묵직한 돌멩이 하나를 쓸어내듯 걷어차 셰일에게로 날렸다.
퍽!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코피를 흘리며 또다시 기절하는 셰일.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결국 참다못한 가렛의 부하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스테치와 엘레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악!”
“저년 잡아!”
돌격해오는 산적단을 향해, 엘레나는 거칠게 손을 휘둘렀다.
《액티브 스킬 : 거스트 윈드. 돌풍을 일으켜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립니다.》
몸이 붕 뜰 정도의 거센 돌풍이 일자, 전열에서 앞장서던 가렛의 부하들이 전부 뒤쪽의 나머지들과 부딪히며 함께 바닥을 굴렀다. 가렛이 이를 갈던 차에, 어딘가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놈들이다!”
산적들을 포함한 스테치와 엘레나, 그리고 가렛 등 누가 뭐라할 것도 없이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로 집중되었다.
어느 틈엔가 병사들까지 대동하고 나타난 이는 다름아닌 대상인 파콰드였다. 한창 산을 타느라 힘이 빠져 보이던 병사들은, 눈앞의 난장판을 보자 긴장감으로 몸을 굳혔다.
“바빠 죽겠는데, 저것들은 또 어떻게 여길 찾아 온거야?”
가렛이 싸우던 것도 멈추며 얼굴을 찌푸리자, 스테치는 역으로 의기양양해져서 보란 듯이 외쳤다.
“하, 하하! 이제 살았다! 어떠냐!”
타이밍 좋게도, 이번엔 병사들을 이끌던 지휘관이 검을 하늘로 치켜올리며 말했다.
“보이는 놈들은 모조리 쓸어버려라! 피딩 라인을 위협하는 산적 패거리다!”
혼란스러웠던 탓일까. 어두운 새벽이라 피아 식별이 되지 않았던 모양인지, 자신까지 포함하여 한꺼번에 싸잡아 산적 취급을 받은 것에 어처구니가 없었던 스테치는 가렛을 비웃으려던 입을 다물어버렸다.
“…….”
검과 도끼를 휘두르며 덤벼오는 병사들과 황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난 산적단들.
병장기들이 격돌하며 일으키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비명으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산적단의 기지 앞에서, 병사 하나가 스테치와 가렛에게로 달려들었다.
“난 이 산적들하고 한 패거리가 아니야!”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라고 판단한 스테치가 그렇게 외치며 검으로 도끼를 비스듬히 받아냈고, 검날을 따라 미끄러진 도끼날은 그대로 부드러운 흙바닥에 박혀 들어갔다.
퍽!
스테치가 병사의 목을 강하게 손날로 치자, 숨이 막혀 꺽꺽거리던 병사는 스테치의 옆으로 쓰러졌다. 그에게 있어 이 모든 것은 순전한 자기방어 행동이었지만, 나머지 병사들의 눈엔 저항하는 산적으로 비춰진 모양이었다.
엘레나와 스테치가 한바탕 휘저어놓은 탓에, 가렛의 부하중 제대로 움직여서 싸우고 있는 이는 적었다. 스테치가 여기서 도망친다면 병사들은 산적단을 싸그리 몰살한 뒤, 수배령과는 별개로 새로운 추적을 붙일지도 모르는 일. 완전히 외통수에 몰린 꼴이었다.
눈에 불을 켜고 찢어죽일 기세로 몰려오는 병사들의 모습에 스테치는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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