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38)
38화에계속 –
38화 바라크
“으앗!”
엘레나와 스테치가 한데 뒤엉켜 숲속에 떨어지자, 옆에 있던 던전은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빠른 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던전 아래쪽에 위치해 있던 거대한 호수 위로 거대한 바윗덩이들이 텀벙거리며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스테치가 검을 지팡이 삼아 비틀비틀 일어났다.
“대체 뭐야, 그 녀석들은?”
밀러 일행이 왜 스테치를 노렸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대충 알아서 납득하고 말았지만, 여유가 생기니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역시 신경쓰이는건가요?”
“당연하지.”
스테치가 엘레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놈들이 공격해왔어. 그냥 오해한 것도 아니고 죽일 기세로 달려들었다고. 설마 날 노리고 온건가?”
스테치는 무의식중에 이를 갈았다.
“그 약삭빠른 놈들은 기어이 죽기 전까지 자기 일에 대해선 입 하나 뻥긋하지 않았지. 역시 다 잡아 족치는게 아니라 누구 한 명이라도 붙잡아서 뒷배경을 털어놓도록 만드는 거였는데…….”
그들이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고 보낸 암살자였다면, 범인으로 가장 유력한 상대는 제라드였다. 하지만 암만 생각해봐도 스테치가 있는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는 점은 어떻게 봐도 설명 불가능이었다.
찰싹!
스테치는 갑자기 등짝에서 느껴지는 따끔거리는 감각에 빽 소리를 질렀다.
뒤를 돌아보니 오른손을 감싸 쥔 채 시큰둥한 표정으로 서 있는 엘레나가 있었다.
“왜…… 왜 때려?”
억울한 기분에 스테치가 더듬거리며 묻자 엘레나가 말했다.
“진정하세요. 어차피 고민해봤자 이제와선 어찌할 방도가 없잖습니까. 혹시 방패 든 남자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어? 아니.”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 고 했습니다. 누군가를 죽이려고 보내진 사람이 입에 담을 말로 보기엔 무리가 있죠.”
그런 말을 했었나? 스테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엘레나가 말했다.
“그 발언으로 추측해보건데, 그들은 아마도 아티팩트를 노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목표가 같은 우리들을 배제해서라도 선점해야할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죠. 어찌되었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걱정은 그만두고 좀 더 현재의 목표에 집중합시다.”
엘레나의 설득력 있는 발언에 그제서야 스테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도 못 한 해프닝에 머리가 복잡해졌던 그였으나, 비로소 정신이 맑아진 기분이었다.
“좋아, 그럼 가지고 온 물건을 한 번 볼까.”
스테치의 말에 그제서야 엘레나는 자기 배낭에 넣어두었던 물건을 떠올리며 배낭 잠금쇠를 풀었다.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 팔찌 형태의 아티팩트. 테두리가 주석과 금으로 구성된 이 물건은 아티팩트
보단 고급 수공예품에 가까워 보였다.
스테치는 엘레나가 내민 팔찌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문득 물었다.
‘어때 보여?’
『나 같은 고급을 두고 그런 질문을 던지다니, 생각이 있는거야? 신생 던전에서 건진 물건이 뭐 얼마나 굉장하겠어. 냉큼 흡수하자고.』
퉁명스런 메멘토 모템의 반응에 스테치는 쓴웃음을 지으며 팔찌를 집어 올렸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팔찌를 만지작 거리던 스테치는 무심코 팔찌를 손에 끼워보았다.
『뭐하는 거야, 지금?』
‘그냥. 지금까지 얻은 아티팩트들은 전부 제대로 살펴볼 기회도 없이 곧바로 흡수하기만 했구나~ 싶어서.’
스테치는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메멘토 모템의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꾸하는 사이, 스테치의 머릿속으로 아티팩트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대부분의 아티팩트들은 고유의 이름과 능력이 있으며, 그 정보들은 누군가가 해당 아티팩트를 착용하는 순간 당사자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어있다. 당연히 스테치가 낀 팔찌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바라크(Barach)…….”
『그만해.』
메멘토 모템이 진심으로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만한 아티팩트를 두고도 다른 것에 눈길을 주다니 배짱 한 번 두둑하군. 그 이상 건드리면 내가 흡수할 수 없게 된다고. 제정신이야?』
아티팩트를 구성하는 근원은 바로 순수한 마력과 사기.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종속 관계가 한 번이라도 확립된 아티팩트는 그 근원이 변질되는 탓에, 마력과 사기를 흡수하는 메멘토 모템은 그것을 흡수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스테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난 그저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 싶을 뿐이야. 모든 싸움을 너 하나에게만 의존하면서 싸우는 건 원래 내 스타일이 아니니까.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도 있잖아?’
메멘토 모템은 확실히 유용하다.
능력이 얼마 개방되지 않은 때조차 스테치가 단독으로 키퍼를 쓰러트리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다.
아마 단순한 방어부터 공격에 이르기까지, 메멘토 모템을 능가하는 아티팩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뒤집어 말해 모종의 이유로 메멘토 모템이 봉인될 경우, 스테치의 전투력이 급감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최소한 이번 만큼은 예외로 해두겠어. 보아하니 이 아티팩트는 신생 던전에서 발굴해낸 것 치고는 생각보다 성능이 괜찮아 보이니까 말이야.’
《아티팩트 ‘바라크’가 스테치 아텔리어의 소유물이 되었습니다.》
『너, 너!』
메멘토 모템은 큰 충격을 받았는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자신을 놔둔 채 또 다른 아티팩트를 취한 것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스테치가 바라크를 착용한 채 가만히 서 있자, 엘레나가 물었다.
“이번엔 흡수하지 않는 건가요?”
“응.”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돌멩이 하나를 그가 주워 올리자, 그 위에 얇은 전기의 막이 덧씌워졌다.
“그건……!”
인챈트먼트.
특정 대상에 일시적으로 마법적인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으로, 수준에 따라서는 간단한 철검조차 마도구에 준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해주는 능력.
본래 인챈팅이라 함은 복잡한 술식의 각인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마법과 연금술, 야금술 등의 온갖 복잡한 지식에 모두 통달한 자만이 쓸 수 있는 능력이었다.
심지어 실제 무구나 장신구에 인챈트하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을 공들여야만 가능했다.
하지만 바라크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대신, 상기한 조건들을 전부 무시하는 것이 가능했다.
스테치 정도 수준의 적은 마력으로도 사용할 수 있으며, 공수 쌍방으로 모두 적용 가능한 유용성까지 갖춘 이 아티팩트는 그냥 흡수해버리기엔 그 활용도가 너무 뛰어났다.
“아깝더라고.”
스테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바라크의 유용성을 체감한 엘레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한편 그는 아까전 부터 무언의 항변을 고수 중이던 메멘토 모템에게 말했다.
‘내가 강해져서 더 많은 아티팩트를 손쉽게 모을 수 있다면, 그건 너한테도 이득이잖아? 게다가 내가 가진 최고의 아티팩트가 바로 너라는 사실이 변하는건 아니니까, 화 풀라고.’
『어쩌라고.』
납득은 가지만 기분은 나쁜듯 보이는 메멘토 모템의 태도에, 스테치는 그저 어깨만 으쓱거렸다.
* * *
던전을 빠져나온 뒤로 이틀 후, 스테치와 엘레나는 빠르게 젤디아와 베네지아의 접경지역을 벗어나 이동 중이었다.
“지금은 어디로 가고 있는거죠?”
뒤따라오던 엘레나가 물어오자, 스테치가 말했다.
“현 위치에서 북상하면 라크샤 산맥이 있어. 그 옆에는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크기의 광산 도시가 있지. 곧 도착할거야.”
라크샤 산맥 지저에 분포된 풍부한 광물을 기반으로 성장한 대형 광산 도시, 센티그마.
먼 옛날에는 드워프가 관리하던 영역이었으나, 지금에 와선 인접 국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공동 채광 지역이 되어버렸다.
센티그마는 남부 연합국의 공동 사업을 기념함과 동시에, 채굴 작업의 전초기지 역할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였다.
물론 그만큼 경비 또한 삼엄할 것이 틀림없었으나, 스테치로선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이동 경로와 겹치기도 하고, 제대로 된 대도시에서만 보급할 수 있는 고급 물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생각대로야. 벌써 도착했잖아.”
해가 저물며 어둑어둑해질 무렵, 바위벽으로 둘러쳐진 거대한 도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라크샤 산맥의 골짜기와 산들에는 마치 개미굴처럼 복잡한 갱도가 수십 개 이상 뚫려있었다. 그리고 그 채굴장들로 향하는 길을 하나로 엮어주는 라크샤 진입로가 바로 센티그마에서부터 이어졌다.
나머지 길은 너무 험준한 탓에, 산을 타기 위해선 센티그마의 통행이 필수불가결이었다.
“시사이드 마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크군요. 그나저나 저 도시엔 어떻게 들어가실 생각이시죠?”
엘레나는 신분 노출을 우려하며 물었다.
“어차피 오늘 바로 마을에 들어갈 수는 없어. 다른 소규모 마을과는 달리 대도시쯤 되면, 몰래 들어갈 수 있는 개구멍 하나 만들기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
스테치는 그렇게 말하며 센티그마와 1km 이상 떨어져 있던 작은 숲으로 향했다. 사실 말이 숲이지, 실제로는 나무 수십 그루가 적당히 자라나 있는 장소에 불과할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스테치는 나무들을 이리저리 살피며 돌아다니다가, 원하는 것을 발견한듯 갑자기 어느 나무 앞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엘레나는 스테치의 행동에 호기심이 생겨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찾았다.”
스테치가 땅을 파서 찾아낸 것은 조그마한 목함.
텅 비어있는 목함 안에다 스테치는 던전에서 챙겨두었던 보석과 금화 몇 닢, 그리고 돌멩이 두 개를 집어넣고 뚜껑을 닫은 뒤 다시 흙을 덮어두었다.
“뭘 한거에요?”
“통행료를 지불한거야.”
스테치가 말했지만, 무슨 뜻인지 알 턱이 없었던 엘레나는 그저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그날 밤, 그들은 숲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야영을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고도 주변을 거닐며 적당히 시간을 떼우던 스테치는 날이 어두워질 때쯤이 되서야 숲 안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엘레나가 아무도 없는 숲이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이번엔 누군가가 숲에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너희로군. 두 사람 맞지?”
나무에 기대선 채 서 있던 남성이 반갑게 인사했다.
광산용 장비가 가득 실린 마차 하나가 옆에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하니, 상대는 상인인 모양이었다.
“너흰 운이 좋았어. 요즘 출입하는 사람이 줄어서 이런 비정상적인 루트로 도시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거든.”
센티그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대부분은 세 부류로 나뉘어 졌는데, 일반인ㆍ채굴 작업 종사자ㆍ물자 보급 담당의 상인들이었다.
항상 이득을 좇는 상인 집단의 통행이 유독 많았던 탓인지, 시간이 지나자 검문과 경계가 철저한 센티그마에도 여지없이 블랙 마켓이 생겨났다.
또한 블랙 마켓의 잠정적인 고객들은 모험가나 던전 탐험가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센티그마를 오가는 상인들은 적당한 금액을 지불하는 모험가들을 몰래 도시 안으로 집어넣어주는 역할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자, 들어가쇼.”
상인이 마차 옆을 걷어차자, 이중 구조로 된 밑바닥이 분리되며 빈공간이 드러났다.
엘레나는 숲을 빠져나와선 처음 보는 시추에이션에 흥미가 생기는지 꽤나 신이 난 듯 했다.
안 그래도 좁은 비밀 공간에 두 사람이 몸을 욱여넣자, 상인은 덮개를 덮은 뒤 마차를 몰아 도시로 향했다.
자그마한 돌부리에 바퀴가 걸릴 때마다 위아래로 머리통이 부딪히는 게 썩 유쾌한 감각은 아니었지만, 다행히도 마차는 제법 빠른 속도로 도시 검문소에 도착했다.
“반입품 목록입니다.”
상인과 경비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시로 유통되는 물건들 중에는 갱도 확장용으로 만들어진 폭약도 있었기 때문에, 항상 엄중한 심사가 필요했다.
“D등급 광산용 폭약, 갱도 조명용 발광 스틱, 곡괭이…… 서류 작성이 끝나시면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경비병의 통과 허가에 스테치는 모기만한 소리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분주하게 펜 휘갈기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마차는 다시 어디론가 출발했다.
“그럭저럭 잘된 것 같네요.”
엘레나의 말에 스테치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마차 주변이 어둑어둑해졌다. 어딘가 동굴이나 지하같은 장소로 온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상인이 말했다.
“도착했으니 이제 나와도 좋아.”
덮개를 치우자 갑자기 쏟아지는 빛에 스테치와 엘레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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