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4)
4화에계속 –
4화 시범 운용
“무슨 소리야, 그게!”
스테치가 빽 소리쳤다.
“네가 날 부활시켰다며? 그런데 어째서 내가 다시 죽는다는 건데?”
『바보 아냐? 이제 너랑 나는 한 몸이라고.』
목소리가 코웃음을 치더니 신랄한 어투로 말했다.
『내가 죽지 않는 한 너는 살고, 네가 사는 한 나는 사라지지 않지. 하지만 마력이 없으면 우리 둘 다 끝장이야.』
파사삭!
“큭!”
스테치는 빠르게 땅을 박차고 달려 나뭇가지들을 헤치고 숲의 안쪽으로 향했다. 그럼 그렇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이 부활되었을 리가 없다.
저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마력이 남아 있는 한, ‘죽음’은 일종의 ‘상처’를 입은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사람으로 치자면 무릎이 까진 정도에 불과한 것.
하지만 뒤집어 말해 아티팩트와 스테치 모두를 지탱하던 마력이 고갈되어 버린다면…….
머뭇거릴 시간조차도 아까운 상황. 목소리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남은 시간은 약 12시간밖에 남지 않았으니, 한시라도 빨리 이 마력이란 것을 보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발! 마력이 없으면 둘 다 뒤진다고 하면서 더 빨리 경고해 줄 생각은 안 하냐?!”
이상할 정도로 여유로운 메멘토 모템의 태도에 짜증이 난 스테치가 외치자, 열 받은 듯한 목소리가 대꾸해 왔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니 다시 한번 더 설명해 주지.』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네가 날 깨우기 전까지 난 아무 생각도 없이 잠만 자던 상태였어. 난 너한테 날 가져가 달라 부탁한 적도 없고, 네가 날 일방적으로 갈구했을 뿐이야.』
스테치가 황당하단 표정을 짓자 메멘토 모템은 깔깔거렸다.
『난 인간이 아니야. 삶의 미련이란 개념 자체가 없지. 그렇게 살고 싶으면 네가 네 발로 직접 뛰어서 네가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라고. 그럼 얼마든지 힘을 빌려주겠어. 그리고 명심해.』
윽박지르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를 ‘끼웠’다고 해서 네가 내 주인이라는 생각 따윈 하지 마라. 지금 여기서 빌붙고 있는 쪽은 내가 아니라 너야.』
스테치가 이를 악물었다. 하필이면 성격도 최악인 골칫덩이가 들러 붙어 버린 꼴이다. 제대로 써먹긴 커녕 당장 죽을 위기에 처하니 스테치는 답답함에 가슴만 두들겼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마력 보급인지 뭐시긴지는 어떻게 하는 건지 말해!”
『무력화 된 몬스터나 저주받은 장비에게 《커스 이팅》을 사용해.』
《어빌리티 : 커스 이팅(lv 1). 저주와 마의 근원, 혹은 그 편린을 먹어치울 수 있다.》
“저주받은 장비는 모르겠는데, 몬스터? 몬스터를 잡으면 된다 이거지?
『그래. 11시간 56분 남았다.』
“재촉은 좀 그만해 둬!”
『11시간 55분 58초 남았다.』
“…….”
가뜩이나 스텟 다운으로 인해 평소엔 별것도 아니었던 달리기조차 힘들어 죽을 지경이건만, 이놈의 반지는 초 단위까지 표시해 주면서 들들 볶아 댄다.
타겟으로 장비나 몬스터를 지정하라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주변에 널리고 널린 몬스터를 찾는 일이었기에 스테치는 눈에 불을 켜고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거지…….’
스테치가 앙다문 입에서 빠드득하고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탐험만 성공적으로 마쳤어도 지금보다 더 큰 목표를 노려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최소한 일을 그만두고 거의 반평생은 놀고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개새끼가!”
스테치는 순간 달리는 것도 잊고 멈춰선 채 바닥에 굴러다니던 돌멩이를 있는 힘껏 걷어차 버렸다.
그 제라드라는 놈이 쓸데없이 자신을 이용해 먹을 생각만 안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아니, 자신은 애초에 이런 아티팩트 따위, 달라고 한 적도 없다.
탐험가에게 있어 과욕은 죽음을 앞당기는 달콤한 과실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이름이 제라드라고 했던가…….’
스테치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이 돼서야 알 수 있는 사실도 있었지만, 어쨌든 스테치는 제라드의 신분을 어느 정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놈은 왕족임에 틀림없다.’
던전은 그 존재만으로도 골칫덩어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왕국이 가진 힘의 척도이기도 했다.
비록 몬스터를 생성하여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기도 하지만, 생성되는 것은 던전 안에 있는 보물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던전 안에 잠들어 있는 온갖 보물들은 한번 가져가더라도 충분한 시간만 들인다면 던전이 모험가들을 꾀어낼 미끼로서 다시 생성해 준다. 그리고 이는 곧 던전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된다는 가정 하에 인근 마을이나 도시의 안정적인 자금줄이 되어 준다.
던전의 유지 자체가 일종의 사업이 되는 것이다.
한데 나라에서 관리하는 던전과 아티팩트에 함부로 손을 댄다? 그것만 봐도 제라드가 일반적인 귀족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테치는 제라드가 정말 왕족이라는 확신까지는 들지 않았다.
적어도 병사들과 그가 직접 싸우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실드 배쉬나 실드 월 같은 스킬은 실제 전투를 치르는 제대로 된 병사들이나 배우는 스킬이다.
스킬을 사용하는 타이밍, 협동 능력 등을 포함하여 ‘고작’ 귀족 사병 따위가 배울 수 있는 난이도의 스킬이 아닌 것이다.
스테치는 분이 안 풀리는지 한참 동안 씩씩거리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시발…… 어쩌다가 왕족하고까지 엮인 거지.”
일단 무엇보다도 명백한 사실이 있다.
바로 스테치 자신이 제라드의 계획을 크게 비틀어 놓았다는 것이다.
스테치가 ‘죽어 있는 동안’ 제라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턱이 없지만, 만약 던전을 무사히 빠져나왔다면 지금쯤 근처에 있는 마을엔 죄다 수색을 시키고 있을 것이다.
즉, 마을로 돌아가서 도움을 구해 본다든지 하는 것은 최소한 현재로선 힘들다.
‘제라드 일은 나중이다. 일단은 몬스터를 찾는 것이 먼저야.’
에너지 회복 방식이 저주받은 물품들과 관련이 있다는 건 틀림없다.
자신이 아는 그런 물건이 생성되는 방식은 한 던전 안에서 오랫동안 방치된 장비 따위가 변모하거나, 마법사가 임의로 저주를 부여한 경우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물품을 구해낼 만한 근방의 유일한 던전은 불과 몇 시간 전에 깡그리 무너져 내린 후였다.
반면, 몬스터 또한 에너지 회복 수단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부분의 몬스터는 던전의 힘을 빌어 탄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해서 나온 몬스터는 던전 안팎을 가리지 않고 배회하게 된다.
던전이 방출한 사기가 응축되어 만들어진 독립된 개체이기 때문에, 던전이 힘을 잃고 무너져 내린 후라 하더라도 문제없이 활동할 수 있다. 스테치가 노리는 것은 바로 그런 몬스터들이었다.
“찾았다!”
스테치는 거대한 발자국 하나를 발견하곤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한 번 발자국을 찾았다면 그 뒤로는 방향에 맞춰 흔적을 쫓아갈 뿐이다.
‘……개과형 몬스터 특유의 발자국…… 자기 영역 표시방식…… 체취…… 그레이트 울프군.’
스테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우거라면 모를까, 그레이트 울프 정도는 스테치로선 해 볼 만한 상대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장비도 없으며, 부활 패널티에 의해 스텟도 낮아진 상태인 지금으로선 무리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패널티가 언제 끝나는지 알아두는 것이다. 마력이 고갈된 상태인 건 사실이지만, 패널티에서 회복되면 공격할 수단이 생기기 때문이다.
“패널티 회복까지 남은 시간은?”
『1분 30초.』
‘의외로 짧네?’ 생각하자 목소리가 덧붙이듯 말했다.
『스텟 다운은 애초에 마력을 더 이상 지불할 수 없으니 일어나는 과부하 현상이야. 강한 스킬을 사용할수록 그 시간도 길어지지.』
요컨데 최초의 반지는 완충 상태였다는 뜻이다. 다른 두 종류의 스킬을 추가로 발동하고도 패널티 지속 시간이 스테치의 예상보다 짧은 것을 보아하니, 생각보다 부활 자체에는 그다지 많은 마력이 필요하진 않은 모양이다.
어찌 되었건 아주 좋은 타이밍이다. 흔적을 쫓아 빠르게 이동하며 속으로 쾌재를 외치던 스테치는 때마침 숲속을 거닐던 목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일반적인 늑대보다도 살짝 더 커다란 외형. 뻣뻣하게 자라나 있는 풍성한 털.
그레이트 울프임이 틀림없다. 스테치가 발견하기 전까진 식사 중이었던 모양인지 그레이트 울프의 발밑에는 머리통이 터져나간 멧돼지 한 마리가 뒹굴고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일반적인 늑대라면 떼거지로 덤볐을 멧돼지를 아주 박살을 내놓은 걸 보니 역시 몬스터는 몬스터다.
‘한 놈뿐인가? 둘 이상이면 까다로워질 뻔했는데 운이 좋았어.’
고기를 뜯어먹는 그레이트 울프의 뒤쪽, 풀숲 틈바구니에 앉은 채 스테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현재 자신에게 유일한 공격 수단은 메멘토 모템 하나뿐이다. 물론 아티팩트의 힘이 강력한 것은 사실일 터, 하지만 한 번 잘못 사용해서 공격에 실패한다면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마력 고갈 상태에서의 아티팩트 스킬 사용으로 인한 스텟 다운, 직후 저항도 못 하고 그레이트 울프에게 완전히 사망해서 부활조차 못 하고 끝장나겠지.’
『바로 그거야.』
말하자면, 가장 확실한 스킬 한 방으로 놈을 끝장내는 편이 좋을 거라는 뜻이다.
『회복됐다.』
목소리에 맞춰 스텟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기분 좋은 경량감을 느끼며 스테치가 물었다.
‘좋아. 공격 스킬은 당연히 있겠지?’
『한 개뿐이지만.』
‘한 개?!’
반지가 머릿속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들의 목록과 내용을 직접 주입해 준다.
마력 충전에 쓰인다는 고유 어빌리티 《커스 이팅》.
죽음으로부터 부활시켜주는 패시브 스킬 《멘딩 소울》.
신체의 데미지를 치유하는 회복용 액티브 스킬 《리쥬버네이션》.
그리고 남아 있는 유일한 공격용 액티브 스킬 하나.
공격 스킬의 설명을 본 스테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레이트 울프를 상대로는 좀 아쉽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스테치가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공격 스킬, ‘에어 불렛’. 전투 마법사가 사용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 준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마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스킬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스테치로선 이것이 그레이트 울프를 상대로도 먹혀들지 장담할 수 없었다.
스테치는 풀숲에 쪼그리고 앉은 상태에서 조심스레 반지를 앞으로 내밀고 그레이트 울프의 가슴을 조준했다.
제대로만 명중한다면 심장이나 폐에 충격을 가하고 기절시킬 수 있을 터. 스테치는 속으로 말했다.
‘아. 한 발밖에 여유가 없으니까, 내가 쏘라고 할 때까지 쏘지 ㅁ…….’
『이런 답답한 새끼……!』
《액티브 스킬 : 에어 불렛. 공기를 압축한 탄을 빠른 속도로 발사합니다. 숙련도가 높을 시 연사율 및 발당 데미지 증가.》
투쾅-!!
번개가 내려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스테치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반지로부터 발사된 공기의 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그레이트 울프의 갈비뼈 틈새로 파고들더니, 심장과 폐를 뚫어 반대편까지 직통하는 파열구를 뚫어 버렸다.
퍼석!
마치 예술가가 물감 섞은 물을 캔버스 위로 뿌려 버리듯, 엄청난 양의 피가 그레이트 울프의 몸뚱이에서부터 터져 나오며 주변 나무들과 바닥에 드러누운 스테치의 위로 쏟아졌다.
내장 파편 섞인 피가 차가운 밤공기 위로 드러나면서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쾅! 쿠광!
“……아?”
지축을 울리는 소리에 순간 정신을 잃었던 스테치는 눈을 뜬 뒤 얼굴을 뒤덮은 선지를 닦아 내고 일어났다.
에어 불렛의 사선상에 서 있던 몇몇 나무들은 그대로 구멍이 뚫리는 바람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례로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기초 마법일 텐데…… 기초 마법 한 방으로 초토화된 주변을 멍하니 둘러보던 스테치는 무심코 떡 벌어진 입을 다물며 반지를 다그쳤다.
“이 위력은 대체 무슨…… 아니 그것보다, 야, 내가 준비되면 쏘라고 했잖…….”
『난 허접한 스킬이나 쓰는 마법 장신구가 아니야. 스킬 사용도 겁나서 머뭇거리는 것보단 닥치고 쏘는 게 낫지.』
“…….”
말을 말자.
스테치는 반지를 쥐어박는 시늉을 하며 그레이트 울프였던 ‘것’에게 천천히 다가가서 왼손을 내밀었다. 지체할 이유는 없었으므로, 스테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시체를 노려보며 외쳤다.
“커스 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