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45)
45화에계속 –
45화 장례식
베네지아의 북부 전선에는 1년 365일 내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거대한 땅, 카델트 대사막이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력 폭풍이 수시로 휩쓸고 다니는 탓에 인간의 몸으로는 진입은 커녕, 바깥에서 안쪽으로의 관측조차 불가능한 미지의 장소. 여기까지라면 그냥 자연 장애물에 불과할 따름이고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방책 재구축을 서둘러라! 다음 몬스터들이 오기 전에 부대 정비를 마쳐야 한다!”
“옛!”
베네지아 왕가의 셋째 왕자, 제라드 메서는 한창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베네지아의 북쪽 전선은 항시 대사막의 마력 폭풍을 뚫고 튀어나오는 미지의 몬스터들과 정체불명의 야만인들을 상대하느라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왕자님, 식사를.”
제라드가 그릇을 내밀자, 병사는 들고 다니던 냄비에서 끓고 있던 죽을 부어넣었다.
북부 전선은 병사들이 여유롭게 식사나 휴식을 할 틈을 주지 않는 장소였기 때문에, 병사건 상관이건 당장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힘을 주는 음식을 선호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불만이 터질 법도 했으나, 북방 장군으로 임명된 제라드가 왕자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솔선수범을 앞세운 덕분에 아슬아슬한 수위의 안정감이 유지되고 있었다.
“캐슬 브랜든으로부터의 연락입니다.”
“헛소리 듣기 싫으니, 난 바쁘다고 전해라!”
그릇 속 내용물을 단번에 위장으로 털어 넣은 제라드가 빽 소리를 질렀다.
수도로 물자나 병사의 증원을 몇 번이나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일피일 미뤄지는 보급과 변명 때문에 그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번엔 다릅니다, 왕자님.”
그 말에 제라드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자신에게 소식을 전해온 병사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시선에도 변하지 않는 병사의 태도와 진지한 표정에, 제라드는 지금의 연락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
제라드는 병사가 가져온 수정구를 말없이 받아들곤 자리에서 일어서, 자신의 막사로 향했다.
항상 모두가 바삐 움직여야만 하는 북부 전선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제라드의 개인 시간을 방해하려 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냐.”
수정구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선 입을 열자, 익숙한 목소리가 제라드의 머릿속으로 직접 흘러들어왔다.
“〔왕자님, 그간 무사하셨습니까?〕“
“발스톡? 딱 좋은 타이밍에 연락을 걸어주는군. 안그래도 무슨 문제는 없는가 걱정되던 참이었는데 말이야.”
제라드가 반가운 목소리로 응답하자, 발스톡은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입수한 소식을 대체 어떻게 전달해야 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저, 그게…… 사실 정말로 문제가 생겨버렸습니다. 몇 주전 신생 던전의 아티팩트를 확보하기 위해 파견대를 꾸리셨던 건, 기억하시는지요?〕”
“하아…….”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발스톡이 꺼내려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맞춰보지. 실패하고 돌아왔나?”
“〔사실 그것보다도 더 나쁩니다. 2차 탐색단을 꾸려 조사를 보내보니, 던전은 이미 무너져내린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래선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 없잖은가. 설마 친위대가 날 배신한 건 아니겠지?”
으르렁거리는 제라드의 목소리에 발스톡은 침을 꿀꺽 삼켰다. 던전이 무너졌다는 것은 어쨌거나 누군가가 아티팩트를 취했다는 것. 그리고 제라드가 아는 한 그 신생 던전으로 향한 것은 친위대 소속원 뿐이었으니, 배신자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모든 친위대원들은 부모없는 고아들 중에서 뽑고, 나이가 차기 전에 피의 서약을 맺습니다. 왕가에 배신 할 생각을 가지기만 해도 목숨이 날아갈 겁니다.〕”
피의 서약은 아스트랄 도메인이나 네거티브 도메인등에 살고 있는, 인간보다 고위 위계의 존재를 매개체로 삼아 맺는 계약 방식이였다.
워낙 강력하면서도 일방적이기 때문에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 될 수단이지만, 어릴 적부터 왕가의 지속적인 세뇌 교육을 받고 만들어진 친위대에게 있어선 당연한 것이었다. 당연히 지금껏 배신자는 나온 적도 없었다.
“이건 고작 아티팩트 하나를 놓친 게 아니라, 내 위신이 걸린 일이야. 알프레드 형님이 알아내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한시라도 빨리 그 단원들을 찾아내라.”
“〔네!〕”
* * *
악슬리로부터 무기를 건내받고 잔금까지 모두 치른 스테치는 막 나온 아침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달걀과 기름이 줄줄 흘러나오는 구운 소세지, 야채와 감자를 넣고 끓인 따끈한 스프는 허기진 속을 든든히 채워주었다.
“아저씨, 이 근처에 무기점을 운영하는 사람은 몇이나 되죠?”
“그 아가씨 새 활을 찾아다 주려고? 뻔하지.”
“…… 너무 뻔한가요?”
“뭐, 그게 옳은 일이긴 하지. 하지만 그만한 물건을 대체하려면 쉽지 않을거다. 나름 유서깊고, 재료도 요즘것 같지가 않던데.”
던전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을 혐오하는 엘프들은 식물과 일반 짐승들의 소재를 적극 활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발타자르가 그녀의 활을 독특하게 여기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위에 나가봐야겠어요. 전당포든, 무기점이든 돌 만한 장소는 닥치는대로 다 돌아서라도 활을 찾아줘야죠.”
“아쉽지만 한 발 늦었다네, 젊은이. 자네 여자친구는 이미 지상으로 나갔거든.”
“여자친구 아니에요, 그리고 뭐라고요? 언제?”
“너보다 일찍 일어나서는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묻더군. 이상한 일을 벌이기 전에 다시 찾아서 데려오는게 좋을걸…… 하!”
“아니, 그걸 알고 계셨으면 못나가게 말리셨어야죠! 젠장!”
그 말에 발타자르는 코웃음을 쳤다. 그가 엘레나를 직접 본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생판 처음 오는 장소에서 엉뚱한 짓을 벌이고 다닐 여자로 보이진 않았다.
만약 그렇게 눈치가 없었더라면 만티코어 사냥에서 진작 죽었으리라.
스테치는 발타자르에게서 대략적인 도시 지리를 파악한뒤, 후드를 뒤집어쓰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뛰어갔다.
자신의 수배지가 센티그마에도 걸려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의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니 엘레나한테는 딱히 화폐 가치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딜 가서 무얼 사든 좋으니 바가지만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그렇게 생각하면서 번화가로 나아간 그는 당장 눈에 띄는 무기 상점들을 모조리 돌기 시작했으나, 이상할만치 그녀의 흔적은 아무곳에도 없었다.
“젠장…… 어디로 사라진거지.”
전당포엔 무기를 맡겨두고 가는 경우도 있으니, 어쩌면 그런 곳에 갔을지도 모른다. 스테치가 번화가 입구쪽으로 돌아나가려던 그때, 왠 사내들의 소리가 그의 귀로 들어왔다.
“이 근처에 안주 잘하는 술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 가서 술이라도 한잔씩 하지 않을래?”
“무기점 같은 우중충한 곳에 가지 말고 돈을 유용하게 써야지. 좋은 장소 알고 있다니까.”
스테치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이동하자, 사내 셋에게 둘러 쌓인 엘레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태연하게 작업을 걸면서도 은근슬쩍 도망치기 힘들게 몸으로 벽을 구성해놓은 꼴이, 한 두번 해본 짓은 아닌듯 했다.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사내들의 얼굴을 훑어보곤, 혀를 차면서도 제 갈길을 가기 급급했다.
‘저놈들이?’
동료가 난처한 일은 겪고 있는걸 본 스테치는, 아무것도 모르는 세 양아치들의 담력에 경의를 표했다. 스테치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대인 격투에 능한 사람이 바로 엘레나였기 때문이었다. 분명 저 정도 인원은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터.
‘어라?!’
이게 왠걸, 엘레나는 순순히 남자들의 유도에 따라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치도 못한 전개에 스테치가 놀란 나머지 어버버 하고 있자, 메멘토 모템이 물었다.
『뭐해, 안 따라갈거야?』
‘…… 가야지 물론!’
아무리 엘레나가 인간식 헌팅 코멘트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모른다곤 해도, 설마 진짜로 저거에 넘어간다고? 헐레벌떡 엘레나가 들어간 골목길로 들어간 뒤 모퉁이 하나를 돌자, 그곳에는 상상과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히익! 뭐야, 이 년!”
“잡아!”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치근덕대던 좀 전과는 달리 엘레나를 향해 단검을 겨누고 대치 중인 사내들이었다.
문제는 따라 들어간 사내는 셋이었는데, 정작 서 있는 이는 둘 뿐이었다는 점.
남은 하나는 어디로 갔나 하고 스테치가 눈알을 굴려보니, 팔 한쪽이 이상한 각도로 꺾여서 기절한 사람 하나가 보였다.
“어라…….”
한낱 인간 양아치의 어설픈 말주변에 넘어갈만큼 엘레나는 어리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스테치의 당황스런 모습도 잠시. 사내는 자신들의 뒤에서 멀뚱멀뚱 쳐다보는 그를 눈치채고선 빽 소리를 질렀고, 엘레나는 그제서야 스테치를 알아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넌 뭐야! 구경났냐? 본인 갈 길이나 가시지!”
사내의 시비를 들은 스테치는, 물러나기는커녕 손가락을 위협적으로 우두둑거리며 그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오냐, 갈 길 가주마.”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에 남자 하나가 우물쭈물하다 반사적으로 단검을 찔러오자, 스테치는 남자가 뻗은 팔을 겨드랑이로 붙잡은 뒤 비틀어 팔꿈치를 탈골 시켰다.
우드득!
“으아악!”
팔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남자의 모습에 엘레나를 위협하던 동료가 스테치 쪽을 되돌아보는 순간, 엘레나가 입을 열었다.
“어딜 보는거냐.”
바람이 일 정도로 커다란 호를 그리며 돌아간 그녀의 발끝이 남자의 목을 후려치자, 일격으로 정신이 날아간 그는 줄 끊어진 인형처럼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어졌다.
제각각 다른 자세로 쓰러진 채 꿈틀거리는 이들 사이에 선 스테치는 엘레나에게 물었다.
“그…… 괜찮아?”
“절 걱정해주시는 건가요? 이걸 보고도?”
어이없다는 투로 키득거리는 엘레나의 모습에 스테치는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
세 양아치를 골목 바닥에 내버려 둔 상태로 빠져나온 그들은, 번화가의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거리에 사람은 많았지만 스테치와 엘레나의 말에 귀를 기울일 정도로 한가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뭘 하고 계셨던 거에요?”
“그건 내가 해야할 질문 같은데…… 나야 당연히 널 찾으러 왔지. 여기까지 혼자서 뭘 하려고 온거야? 그것도 아침 일찍부터.”
스테치의 질문에 엘레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엘프들은 오래되고 귀중한 물건에 조상의 정신이나 새 생명이 깃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첫 동이 트기 전, 나름대로 할아버지의 활에 대한 예의를 차려 장례를 치렀죠.”
지금의 엘레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으나, 스테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누군가가 바늘로 심장을 마구 찔러대는 기분이었다.
『휘유. 이거 진짜로 노리고 하는 말 아니지?』
“그, 그렇구나. 꽤 오래 걸린 모양이네?”
“아뇨, 딱히. 그냥 태우기만 하면 되는거니까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찾는 것이 힘들긴 했지만…… 어쨌튼 그 후엔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활을 찾아서 여기저기 상점을 돌아다녔습니다.”
“어? 하지만 내가 물어봤을 때는 다들 가게에 누가 들른 일은 없었다고…….”
“괜히 가게에 들어서서 주인과 말을 섞었다가 엘프인걸 들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조심하자는 차원으로 상점 바깥에서 구경만 했거든요. 그런데 보는 곳마다 그닥 소득이 없어서 슬슬 돌아갈까, 생각하던 차에 아까 그 남자들이 접근해오더군요.”
그래서 아무도 엘레나를 못 봤다고 한거구나. 스테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샌가 그들은 번화가 끝에 줄지어 선 상점들 근처까지 도달해 있었다.
“네 활이 부서진 건 전부 내 잘못이었어…… 조금만 기다려. 분명히 너도 만족할 만한 훌륭한 활을 찾을 수 있을거야. 반드시 구해다 줄게.”
『그래, 참 잘도 그러겠다. 가족처럼 함께 지냈던 소중한 물건을 대체할만한 것이 어디 땅 파면 나오겠냐?』
‘도움 하나도 안되니까 입 닥쳐라. 너 어째 요즘 나한테 비아냥 거리는데에 맛들린 것 같다?’
스테치가 메멘토 모템과 한창 머릿속으로 투닥 거리며 길을 가던 중, 낡은 전당포 하나가 보였다.
생각없이 엘레나와 함께 숙소로 돌아가려던 스테치의 시선을, 전당포 유리창 너머의 무언가가 사로잡았다.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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