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51)
51화에계속 –
51화 대탈주
“무슨 일이냐!?”
당혹감 어린 첼시의 고함이 성벽 안팎으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별안간 날아들어 순찰 중이던 병사의 얼굴을 긁어놓은 무언가에 의해, 영주관 안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두 번째로 발사된 화살이 어느 병사가 들고 있던 횃불을 맞춰 날려버리고 나서야, 그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습이다!”
“도대체 어디서 날아오는거야?!”
화살의 궤도를 단박에 예측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만약 병사들의 추측대로라면 화살은 일반적인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거리로부터 날아왔다는 소리가 되니까.
화살이 벽에 박혀 들어간 각도, 날아갈 적의 스피드까지……모든 정황이 터무니없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다.
“…….”
성벽로까지 올라온 기사 하나가 방패를 앞세운 뒤, 조심스럽게 돌출부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상대는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있는 반면, 이쪽은 경비를 선답시고 환한 불빛 아래에 서 있어야 한다니. 이건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
퓻!
“끄아아악!”
시야가 붉게 물들었나 하고 생각한 순간, 기사는 머리통에서 화끈하고 끈적한 게 쏟아져 내리는 것을 느끼며 바닥을 뒹굴었다.
날아온 화살이 워낙 순식간에 기사의 이마를 스쳤던지라 병사들중 어느 누구도 그에게 도움의 손길 하나 주지 못한 채, 그저 흠칫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팍! 파밧!
연달아 성의 돌출부를 깨부수고 벽에 박히는 화살들.
이 입사각대로라면 화살은 분명 마을 옆 숲에서부터 날아오고 있는 게 틀림없다.
화살이 날아왔다고 생각하기엔 말도 안 되는 거리이긴 했지만, 첼시는 지체없이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최소한의 경비 병력은 성에 남고, 나머지는 나가서 습격자들을 붙잡아라! 저항하면 죽여도 좋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곳을 공격해올 대규모 부대는 없다.
적은 아마도 소수. 그렇다면 차라리 가능한 많은 병력을 풀어 최대한 빨리 적들을 소탕하는 쪽이 옳았다.
“첼시!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뛰쳐나온 이는 다름 아닌 보르덴 백작이었다. 가장 중요한 인물인 백작이 너무나 무방비하게 노출된 광경에, 첼시는 빽 소리를 질렀다.
“나오시면 위험합니다, 백작님! 당장 안으로 들어가 계십시오! 그리고 너희들 빨리 준비를 서두르지 않고 뭣들 하는게냐!”
첼시의 외침에 다른 병사들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잠시동안의 분주한 움직임 끝에, 마침내 기사들이 말에 올라 병사들을 이끌고 성 밖에 나갈 채비를 마쳤다.
“부대가 나가는 즉시 다리를 올려라! 누구도 이 성에 침입해선 안 된다!”
잠시 후.
말라붙어 바닥이 드러난지 오래인 해자를 가로질러 기나긴 세월 동안 일없이 놓여있던 도개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접혀 올라가기 시작했다.
만약 저 다리가 완전히 올라가 버리면, 스테치가 탈출하는 과정이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그렇겐 안 되지.”
한참 멀리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엘레나는, 즉시 활통에서 새 화살을 뽑아 시위를 당겼다.
그녀가 노리는 건 다름 아닌 도개교를 끌어올릴 때 사용되는 일자형 쇠사슬의 연결부였다.
《액티브 스킬 : 페너트러블 샷(lv 5). 스킬 숙련도에 비례하여 두꺼운 장갑이나 외피 등, 두께가 있는 물체에 대한 관통 능력을 상승시킵니다.》
슈팟!
도개교와 연결된 두 개의 얇은 쇠사슬 중 하나가 불똥을 튀기며 끊어져 나갔다.
한창 올라가던 도개교는 크게 흔들거리는가 싶더니, 두 번째 화살이 남은 사슬마저 박살 내면서 허망하게 다시 내려왔다.
“휴…….”
엘레나가 바늘땀을 훔쳐내며 바닥에 주저앉자마자, 레코르다치오의 활대와 활줄이 공기 중으로 먼지처럼 흩어졌다.
엘레나조차 이렇게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스킬을 사용하면서 활까지 유지할 수는 없었다.
‘이제 남은건 아텔리어 씨가 하기 나름인가…….’
* * *
버닙의 날카로운 발톱으로도 억센 만티코어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갑옷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마법을 쓸 수 없는 한 스테치가 버닙을 죽이기 위해선 온전히 무기만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대치 상황은 좀처럼 끝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죽어라, 좀!”
연신 허공을 깨물며 호시탐탐 검을 박살낼 기회만 노리는 버닙의 모습에, 스테치는 하는 수 없이 어깨 쪽으로 둘러맨 탄띠에 손을 뻗었다. 화약 소리가 바깥까지 들킬까 두렵긴 했지만, 스테치는 지금쯤 엘레나가 병사들의 이목을 잘 끌고 있을 것이라 믿어보기로 했다.
투콱!
기존의 실린더 방식을 화약탄으로 바꾼 덕택에, 장전부터 발사까지 이르는 과정은 매우 짧고 손쉬웠다.
달려드는 버닙의 머리통에 검극을 겨눈뒤 방아쇠를 당기자, 격발음을 일으키며 튀어 나간 검날은 녀석이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단숨에 두개골을 깨부수고 들어갔다.
“으읏!”
만티코어에 비하면 느릿하고 멍청한 몬스터였기에 녀석을 조준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달려들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죽어버린 버닙에 부딪히는 바람에, 스테치는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남은 한 마리가 페네트레이터에서 터져 나온 폭음에 멈칫한 것도 아주 잠시, 커다란 엄니를 내세우고 돌진하는 녀석의 모습에 스테치는 기겁하며 죽은 버닙의 시체를 밟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가 이 거대한 몬스터의 등을 뛰어넘어 무사히 뒤로 넘어가는 사이, 그대로 벽에 들이받은 버닙은 반사적으로 이빨을 놀려 벽돌을 깨물어 부쉈다.
메멘토 모템의 마법을 사용 못 하는 지금, 저런 것에 물리면 뼈 채로 으스러질 것이다.
바닥에 착지한 스테치가 얼른 검을 주워 장전쇠를 당기자, 새하얀 연기를 피우며 뜨겁게 달궈진 탄피가 맑은 쇳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때마침 뒤를 돌아본 버닙에게 그는 단숨에 땅을 박차고 대쉬했다. 한 손으로는 새 탄을 장전하면서, 자루를 쥔 손으로는 검을 휘둘러 폼멜 부분으로 버닙의 정수리와 턱을 연달아 후려치는 스테치.
“!”
눈가를 찍히며 피를 튀기는 등, 정신을 못 차리던 버닙이 갑작스레 마구잡이 식으로 휘두른 앞발. 발바닥에 정통으로 심장 부근을 얻어맞은 스테치는 통로 벽을 쭉 미끄러졌다.
《리플렉스 스킨》의 보조로 데미지 경감이 적용되었지만, 앞발을 정통으로 맞은 충격으로 그는 잠시 헐떡였다. 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은 천운이라 할 수 있겠다.
“콜록…… 빌어먹을 놈.”
비틀거리며 일어서자마자, 뒷발로 바닥을 긁어대던 버닙은 스테치를 향해 도움닫기를 하더니 포효를 토해내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크와아악!”
주둥이를 쩍 벌리고서 붕 날아오른 버닙을, 스테치는 슬라이딩하며 아래로 피했다.
훤히 드러난 녀석의 배를 향해 검을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모든 장면이 슬로우모션처럼 흘러갔다.
퍼억!
타격부가 되는 검신이 버닙의 뱃가죽을 찢고 들어가자, 온 사방으로 내장과 피를 쏟아졌다. 시체가 된 버닙은 그대로 공중에서 떨어졌고, 아래를 미끄러져 지나가던 스테치는 쏟아지는 내용물들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만 했다.
따끈한 김이 전신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푸홧! 프훼엣!”
『이런 이런. 그 엘프 여자가 지금 네 꼴을 보면 썩 달가워하진 않겠는데.』
메멘토 모템의 말대로 스테치의 몰골은 도저히 그냥 봐주기 힘든 상태였다. 몸에서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한 냄새를 풍기면서, 피와 내장 파편으로 거하게 샤워까지 했으니…….
‘내 인생 최악의 날이로군…….’
투덜거린 스테치는 널부러져 있던 보물 자루들을 어깨에 걸치고선 입구를 찾아 걸어갔다.
버닙들은 모두 해치웠지만, 지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여전히 함정으로 가득 찬 길목을 통과해야만 했다.
일단 함정이 깔려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였기에, 그것들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인간이 만든 대부분의 함정들은 던전에 비해 단순한 매커니즘을 지닌 데다, 던전 탐험으로 갈고 닦은 스테치 자신의 숙련도가 매우 높았기에 함정의 위치를 예측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일견 단단해 보이는 바닥을 스테치가 검 끝으로 툭 건드리자, 바닥이 빙글 돌아가며 스파이크로 가득 찬 밑바닥이 드러났다.
그것을 빙 돌아가자 이번엔 발판과 연동되어 작동하는 벽 속의 접이식 낫 함정이 나오는 둥…… 하품이 나올 수준이었다.
여러 함정들을 지나쳐 마침내 석재문으로 막힌 입구에 다다른 스테치.
문에 바짝 귀를 기울인 후《애니멀 인스팅트》로 확인해보았지만, 바깥에서 들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벽면에 설치된 두 개의 레버들을 순서대로 당기자, 지금껏 작동되어있던 함정들이 모두 비활성화됨과 동시에 바깥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절그럭거리는 자루를 매고 어두운 계단통을 올라간지 몇분이 지나, 커다란 나무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테치가 문을 살짝 밀자, 회전식으로 된 문이 열리며 백작의 서재가 나타났다.
“드디어, 신선한 바깥공기다!”
스테치가 서재로 나와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나무문인 줄 알았던 위장식 책장이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그동안 거둬들인 모든 세금들이 이런 쓰잘데기없는 비밀주의식 장치와 함정 따위에 소비되었다는 걸 영주민들이 알게 되면 필시 분노하겠지.
스테치는 얼굴을 찡그리며 천천히 영주의 서재를 나섰다.
끼이익.
문을 살짝 열고 통로를 살펴보니, 타이밍 좋게도 통로 끝에서부터 병사들이 정신없이 뛰어오고 있었다. 조용히 다시 문을 닫은 스테치는, 병사들이 어디론가 이동하며 나누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서둘러! 도개교가 망가졌대!”
“어떤 망할 놈들이 영주성을 공격하는 거야?! 여긴 베네지아 땅 정중앙에 있는데!”
시끌벅적한 것이 바깥에선 엄청난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엘레나가 생각보다 일을 아주 잘 처리한 모양인데.’
도개교가 망가졌다니.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엘레나가 손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
통로가 완전히 조용해지자 다시 문을 열고 나온 스테치는, 영주성 밖으로 향했음이 분명한 병사들의 뒤를 쫓아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달이 떠있는 바깥까지 나온 그는 소리없는 환호를 내질렀다.
대부분의 병력이 성 밖으로 나간 탓에, 이따금 들려오는 고함 소리를 제외하면 성 내부는 고요했다.
“있다!”
다행스럽게도 마굿간에는 아직 말이 1~2 필 정도 남아있었다.
옮겨야 할 짐이 많았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제일 덩치가 크고 강인해 보이는 말을 고른 스테치는, 묶여있던 끈을 풀고 문을 열어주었다.
녀석은 눈앞의 인간이 풍기는 냄새에 기겁했는지 좀처럼 따라 나오질 않았는데, 한참 동안 스테치가 어르고 달래고 나서야 간신히 등에 타는 것을 허락했다.
“이랴!”
짐을 싣고 올라탄 스테치가 고삐를 휘두르자, 말이 앞으로 달려갔다.
마지막으로 말을 탄 지가 수년 전이었던 탓에 자세가 어정쩡했던 그는 엉덩이가 아파올 지경이었지만, 나중엔 등자를 꽉꽉 밟으며 능숙하게 말을 몰았다.
어두운 밤인데다 워낙 속도가 빨라서일까? 스테치가 성 입구를 빠져나와 도개교를 넘어갈 때까지, 병사들은 그를 기사들 중 하나라고 착각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이 착각이라는 게 드러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핫!”
한편, 단숨에 말을 몰아 마을로 들어선 스테치는 좁은 골목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돌며 집 안에 있을 영지민들을 불러모았다.
바깥에서의 소란에 어리둥절해 하며 나온 그들의 앞으로 떨어진 물건은 다름아닌 금화와 보석들이었다.
“다들 지금 당장 집 밖으로 나와요! 영주의 폭정에서 벗어날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스테치는 안장위에 놓인 자루 속 보물들을 마구잡이로 뿌려댔다.
농노인 그들이 타지에서 자유민으로서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몇십 분 뒤, 모든 재화를 나눠 받은 영주민들이 마을을 빠져나가기 위해 기다란 행렬을 이루었고, 숲 외곽 쪽에서부터 달려온 엘레나가 그 틈바구니에서 보였다.
“엘레나, 무사했구나!”
“아직입니다, 아텔리어 씨! 바로 뒤에 적들이 오고 있어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도망치는 사람들을 붙잡으려는 병사와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농노들이 죄다 빠져나가면 영지 전체가 망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엘레나를 찾아내기 위해 동원된 모든 이들이 지금은 폭력도 마다하지 않고 손에 닿는 모든 영지민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화르륵!
농노의 뒷목을 잡느라 병사가 떨어뜨린 횃불이 집들로 옮겨붙으며, 상황은 점점더 아비규환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리려는 영지민들과, 그것을 쫓으려는 병사들.
스테치는 말에서 내려 두 집단의 사이를 가로막았고, 엘레나는 그런 그의 옆에 서서 병사들을 노려보았다…… 가 스테치에게로 시선을 홱 돌렸다.
“그 냄새는 뭐에요?!”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어…….”
엘레나의 물음에 스테치는 억울한 투로 항변했다. 그러는 와중에 병사들은 저마다 무기를 뽑아 들고 다가오고 있었고, 기사들은 목이 찢어져라 고함을 질러댔다.
“잡아라! 아니, 죽여라!”
짝!
모두의 귀에 들릴 정도의 큰 소리로 합장한 스테치의 손바닥 사이에서, 새하얀 빛의 구체가 번쩍였다.
디스펠륨의 방해도 없는 지금이라면 아무 제한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액티브 스킬 : 아이스 웨이브. 넘실거리는 얼음의 물결을 전방으로 퍼뜨립니다.》
마력으로 뒤덮인 양 손바닥을 앞으로 뻗자, 냉기가 바닥을 타고 흐르며 부채꼴 형태의 빙판이 병사들의 발바닥 아래로 펼쳐졌다.
고드름을 피워올리며 발끝부터 상체까지 얼음으로 뒤덮이는 병사들. 다행히도 얼음이 완전히 그들을 집어삼키기 전에 스테치는 스스로 손을 거두었다.
“추격해올 생각은 하지도 마! 내 말 무시하고 계속 쫓아왔다간, 이 정도는 애교로 보일만큼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
농노들이 도망갈 시간을 최대한도로 벌기 위해, 스테치는 병사들의 목숨을 취하지 않고 보란듯이 도발했다. 병사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엄포를 늘어놓은 그는 말머리를 돌려 엘레나와 함께 마을 밖으로 도망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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