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57)
57화에계속 –
57화 계획
전력의 핵심이나 다름없던 가로드가 최악의 형태로 죽어버리자, 추격대의 모든 병사와 용병들은 싸울 의지를 잃고 항복해버렸다. 그러나 항복 여부에 상관없이, 평소 무의미한 살생을 지양하던 가렛은 이들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레지아 계곡은 본디 몬스터로 들끓는 장소. 병사와 용병들이 몬스터에게 전부 몰살당했다는 식으로 위장하면 추격을 크게 지연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목숨을 걸고 싸운 건 피차일반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일 각오 정도는 하고 왔겠지?”
싸늘한 목소리로 묻는 가렛의 눈앞에는, 병사와 용병으로 이루어진 긴 행렬이 늘어서 있었다.
용병들은 초연한 표정으로 납득하는 듯했으나, 병사들은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가렛은 부하들을 시켜 커다란 단지 하나를 들고 왔는데, 안에서는 검붉은 액체가 가득 들어있었다.
“이 정도가 내가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오래된 던전에서 퍼 올릴 수 있는 특수한 독.
그나마도 최대한 인도적인 방식을 채택한 가렛의 뜻에 따라, 부하들은 적 포로들의 음독을 도왔다.
시체들이 몬스터들의 먹이로 쓰여봤자 하등 도움 될 것이 없었기에, 사후 전부 화장시켰다.
이후 가렛은 스테치 일행과 함께 부하들을 지휘하여 병사와 용병들의 물자들을 전부 수거했다.
마차 두 세대분의 식량, 그리고 압수한 무기와 갑옷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전리품들을 정리하는 작업은 따로 진행하면서, 그들은 곧장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리 복구 작업을 재개시켰다.
다음 날. 스테치와 엘레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가 떨어질 때까지 다리 주변을 지키다 아지트로 돌아왔다.검을 끌어안은 채로 앉아 몬스터가 접근하는지를 시종일관 경계하는 일은 지루해서 죽을 맛이었다.
이렇게 하루가 가는구나 하며 복귀하는 스테치의 눈앞에, 아지트 입구에서 기다리던 가렛이 말을 걸었다.
“잠깐 따라와 봐.”
저녁 식사도 마치기 전에 스테치와 엘레나를 회의실로 불러낸 가렛은,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잠시 후 커다란 상자를 든 부하 둘과 함께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두 사람 앞에, 가렛은 상자 안의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구겨진 자국이 남아있는 종이 뭉치와 가로드의 아티팩트인 스피라투스였다.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발언에 스테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꿈틀거리자, 가렛은 요 며칠 제대로 깎지 못해 지저분하게 수염이 자라난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너희 도움이 없었더라면 우린 이곳을 버리고 다시 추격대로부터 도망쳐야 했을 테니까, 그 보답으로 주는 게 낫겠다 싶더라고. 게다가 우리 중에선 이걸 제대로 써먹을 만한 사람이 없기도 하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걸 봐.”
가렛이 손을 뻗어 스피라투스를 만지자, 대포같이 거대하던 스피라투스는 순식간에 한 손으로 쥐고 들 수 있는 사이즈로 줄어들었다. 놀란 스태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가렛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 아티팩트는, 생성하는 탄자의 크기에 맞춰 자기 자신의 크기를 바꾸는 모양이더군. 가로드는 대포급의 탄을 쓰는걸 선호한 데다, 본인이 그 반동을 받아낼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아티팩트도 그에 맞춰 거대했던 거야.”
그 말을 들은 스테치는, 왜 이것을 써먹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스피라투스의 파괴력은 탄자의 형태와 사이즈에 크게 좌우되는데, 기껏 사용해도 그 이점을 활용할 수 없다면 스피라투스는 계륵이나 다름없는 아티팩트이기 때문이다.
“가로드 자식, 생긴 거 답게 거포주의자인 녀석이었잖아? 하지만 우리도 써먹기 애매한 건 마찬가지인데?”
스테치가 스피라투스를 만지자, 한 손 사이즈로 줄어든 스피라투스는 다시 거대하게 변했다.
크기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만, 그래봤자…….
『저 엘프 여자한테 주는건 어때?』
고민하던 스테치에게, 지금껏 잠자코 있던 메멘토 모템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티팩트를 탐욕스럽게 갈구하는 메멘토 모템의 성향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스테치는 놀라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므리타도 그렇고, 이번 건도 그렇고…… 웬일로 네가 먼저 그런 말을 꺼내는 거야?’
『…… 만티코어를 상대할 때에 난 비로소 깨달았다. 너도 너지만, 유사시에 저 엘프를 써먹으려면 최소한 도움이 될 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려 줘야 한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해두지.』
정말 마지못해 쥐어짜는 듯한 말투에서는 절절한 진심이 느껴졌다.
스테치는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하지만 이걸 엘레나에게 줘봤자 어떻게 하라고?’
가렛과 엘레나는 갑자기 부쩍 말수가 적어진 스테치를 어리둥절하여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눈알만 굴리는 모습은 제삼자의 눈에는 제법 이상하게 비쳤다. 그리고 잠시 후, 스테치는 엘레나에게 손짓했다.
“이걸 쥐어봐.”
“네?”
엘레나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스테치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분명히 그녀에게 스피라투스를 잡으라 말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가 스피라투스의 핸들을 손에 쥐자, 팔뚝만 한 사이즈로 바뀌었다.
그러고선, 스테치가 직접 나섰다.
그는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확신이 없는 듯, 잠시 고민하다가 엘레나의 옆구리 홀더에 꽂혀 있던 레코르다치오의 손잡이를 뽑아갔다.
“뭘 하는 거야?”
“잠깐만 기다려봐.”
엘레나는 스테치의 지시를 받아 가로드가 하던 것 마냥 아티팩트를 장갑 형태로 바꾸었고, 스테치는 포구를 완전히 수납한 스피라투스의 주둥이에 레코르다치오를 물렸다. 그러자, 마치 거대한 슈팅 글러브로 활을 쥔듯한 형상이 완성되었다.
『저렇게 사용하면 유사시엔 스피라투스를 근접전에서 방패로 사용할 수도 있고, 탄자 생성 능력을 이용할 수 있으니 화살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지. 사방에 널린 게 재료니까.』
메멘토 모템의 설명에 감탄한 스테치는 그것을 그대로 가렛과 엘레나의 앞에서 읊었다. 엘레나는
반신반의했지만, 가렛은 스테치의 말에 연신 감탄했다.
“머리 좋은데? 최소한 이 아가씨가 우리들보단 아티팩트를 훨씬 잘 써먹을 수 있겠어. 그럼 너희가 가져가는걸로 정해진 거 맞지?”
“그러지 뭐.”
스테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상자 안에 들어있던 종이 뭉치를 발견하곤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 종이도 나한테 줄 물건인가?”
흘끗 들여다보니 서면에는 당장 알아보기 힘든 내용들이 양식에 맞춰 빽빽하게 적혀있었다.
하단부에 찍힌 인장과 양식의 구성을 본 스테치는, 그제야 이 종이 서류가 길드에서 사용하는 의뢰서임을 눈치챘다.
“그쪽은 너한테 줄 게 아니라, 그냥 가로드의 배낭 안에 있던 물건을 같이 담아온 것 뿐이야. 나중에 천천히 살펴보려고…….”
가렛의 말에 스테치는 의뢰서를 하나하나 넘겨보았다.
가로드 본인이 워낙 유능한 용병단의 대장이었던 탓인지, 그가 평소에 챙기고 다니는 의뢰서는 매우 많았다.
기간 제한이 빠듯한 것들도 있는걸 보아하니, 가로드는 자신이 맡은 도적단 추격 임무가 금방 끝날 일인 줄 알았나보다.
그게 최후의 임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만.
“이건…….”
하나씩 서류를 넘기던 스테치는 눈에 띄는 화려한 인장이 찍힌 의뢰서를 보고서야 눈길을 멈춰 세웠다.
서류에 찍힌 인장은 다름아닌 베네지아 왕가의 문장. 스테치가 가렛을 돌아보자, 뒤에서 스테치와 함께 서류의 내용을 주시하던 그도 문장을 알아보곤 황급히 의뢰서를 낚아챘다.
“이건…… 왕가가 직접 작성한 의뢰서야. 의뢰주는 제 2 왕자인 알프레드 메서로 되어있어.”
가렛은 의뢰 내용을 살폈다.
“북부 전선으로 가는 보급 물자의 호위 임무…… 출발 이후 약속 장소에 도착하지 않으면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써있군.”
북부 전선?
스테치는 그 말에 눈을 부라렸다. 북부 전선이라면 제라드 녀석이 장군으로서 싸우고 있는 바로 그 장소 아닌가. 스테치는 가렛에게 물었다.
“운송 경로는 어느쪽이지? 출발 일자는?”
그러자 한창 의뢰서를 읽던 가렛에게서 실망스러운 기색이 엿보였다.
“운송 경로는 남쪽의 그리드록으로부터 시작해서 중간에 수도를 통과하게 되어있어. 하지만…… 이미 이 의뢰서는 기간이 꽤 지난 것 같아. 수송 마차들은 이미 출발했을 거야.”
스테치는 의뢰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대형 마차 35 대 분량의 보급 물자라니. 이걸 중간에 가로챌 수만 있다면 북부 전선에서 활약 중인 제라드에게는 큰 압박을 가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그는 뭔가를 떠올리고선 가렛에게 말했다.
“의뢰 수행 기간은 며칠 예정으로 잡혀 있지? 그걸로 현재 마차가 지나가고 있을 경로를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20~25일 정도로 잡혀있는데……이것만으로 계산하기 힘들겠지만…….”
가렛은 지도를 펼쳐본 뒤 선을 그어나갔다.
마차로 이동한다고 할지라도, 35 대나 되는 마차가 지나가다 보면 그 행렬은 어마어마하게 길 것이다. 게다가 귀중한 물자를 운송하는 것이니 안전을 고려한다면 속도는 더더욱 느려질 터. 출발한 지 며칠이 지났더라도 일정이 지체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이면 아마 이쯤을 지나고 있지 않을까.”
가렛이 동그랗게 표시한 위치는 다름 아닌 수도의 바로 아래쪽이었다.
가로드가 이곳에 온 타이밍과 현재 예측한 운송 부대의 위치를 고려해봤을 때, 아마도 그는 레지아 계곡에서 도적단 추격 임무를 먼저 처리한 뒤 수도에서 부대와 중도 합류할 계획이었던 듯 했다.
“우리가 빼앗자.”
스테치의 말에 가렛이 입을 꾹 다물며 눈만 휘둥그레 떴다.
저만한 물자를 전부 탈취하려면 수많은 부하들을 거느린 가렛의 도움이 필수 불가결이었다.
문제는 대체 무슨 수로 이미 출발한 마차를 쫓는단 말인가? 그러자 스테치는 가렛의 펜을 빼앗아, 레지아 계곡에서부터 수송 경로상의 한 지점까지를 쭉 이었다.
“레지아 계곡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른 다음, 수도 북쪽의 운송 루트에 먼저 도착해서 매복하는거야. 이건 녀석들의 물자를 통째로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다리도 어느 정도는 완성되어 있겠다, 며칠만 더 빡세게 작업한다면 스테치가 말한 길을 따라가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가렛으로서도 이 보급품이 구미가 당기는 먹잇감인 건 분명했으나, 그는 곤란한 얼굴로 대꾸했다.
“지도상으로는 직선 루트니까 짧아보일지 모르겠지만, 네가 말한 길대로 가려면 레지아 계곡에서 몬스터가 제일 많은 구역을 거쳐가야 해. 거길 돌아가다보면 절대 시간 안에 맞출 수 없을거야.”
“왜 그 부근에 몬스터가 많은데?”
“레지아 계곡에 오래 묵은 던전중 하나가 거기 있거든. 거기서 나오는 놈들은 휴망고 따위랑 비교도 안되지.”
가렛의 말에, 스테치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던전이라면 내가 뚫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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