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61)
60화에계속 –
60화 불과 얼음
거대한 구 형태의 덩어리로 뭉친 락 이터 떼가, 수십개의 다리들을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가그락 가그락-.
키틴질의 다리와 강철같은 외갑의 마디 부분이 서로 부딪히며 일으키는 기괴한 음색, 그리고 충격적인 비주얼에 스테치는 물론이고 나머지 두 사람조차 바짝 굳어 있었다.
하지만,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할 수는 없었다.
짝!
갑작스러운 합장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든 엘레나와 가렛이 뒤를 돌아보자, 마주 붙인 스테치의 손바닥 틈새로 새하얀 빛이 새어 나왔다.
스테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싸우거나, 무시하거나. 물론 그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는 후자였다.
그가 락 이터 대응용으로 준비한 마정화의 추출액은 사용 횟수가 한정 돼 있는 데다, 놈들에게는 어지간한 마법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 내가 놈들을 막을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가렛과 엘레나는 락 이터 무리를 지나쳐 스테치가 턱짓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갔다.
쩌저적!
스테치의 양손 끝으로부터 뻗어져 나간 냉기는 지면을 타고 미끄러져 나가 락 이터의 군집체를 휘감았다.
통째로 얼어붙은 락 이터 무리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느려졌고, 다리 관절과 외갑의 틈새에는 어느새 희끗희끗한 백색 서리가 끼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저만한 수를 전부 묶어놓는건 무리였던 모양이다.
락 이터의 군집 덩어리가 터질 것만 같은 기세로 부들부들 떨려오자, 스테치는 다급히 손을 거둬들이고선 먼저 간 일행을 따라 이동했다.
퍼엉!
비산하는 얼음 파편의 안개 너머에서, 수십 마리의 락 이터가 스테치를 향해 주둥이를 쩍 벌리고 기어왔다.
인간의 뜀박질 정도는 가볍게 추월할 정도의 스피드. 스테치는 뒤통수가 저릿거리는 느낌에 닭살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때, 날아온 화살이 스테치와 락 이터 무리의 사이에 꽂혔다.
화살촉에 담겨져 있던 마정화의 씨앗 추출액이 온 사방으로 퍼지자, 오직 본능에 충실한 락 이터들이 일제히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나이스 샷, 엘레나!’
멀찍이에서 활을 겨누고 있던 엘레나에게 스테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깐, 땅굴을 파고 들어간 녀석들은 액체가 고여 형성된 웅덩이를 피해 다시 나타났다.
“젠장!”
스테치는 바로 뒤까지 접근한 락 이터를 향해 쥐고 있던 검을 크게 휘둘렀다.
추출액과 전기막으로 뒤덮인 검이 강철같은 외갑을 가르며 락 이터를 버터처럼 두 덩이로 양분시켰다.
코를 찌르는 탄내에 스테치가 얼굴을 찌푸리는 그때, 바로 아래의 지면을 파헤치고 뛰쳐나온 락 이터들이 그의 안면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푸확!
난기류 덩어리가 폭발하며 지면의 흙을 모조리 뒤집어엎었다.
흙더미와 함께 천장까지 치솟은 락 이터들은 바닥에 떨어지자 충격으로 몸을 비틀었고, 피어오른 먼지구름 틈새에서 화살처럼 튀어 나가는 인영 하나가 나타났다.
“헉, 헉…….”
스테치를 백업해주기 위해 전방에서 날아온 화살들이 뒤쫓는 락 이터들에게 명중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추출액의 농도도 옅어지는지, 화살에 맞고도 일어나는 적의 수가 점차 늘어났다.
“브라이언!”
가렛이 투척한 나이프가 스테치의 팔을 물려던 락 이터에게 박히자, 스테치는 몸을 빙글 돌려 단검을 잡아 뽑았다.
단검과 검을 쌍수로 든 스테치는 락 이터를 열십자로 베어버린 뒤 다시 달려갔다.
저 멀리에서 그를 엄호해주던 일행들은 터널 끝에 위치한 어느 거대한 철문 너머에 서 있었다.
‘대공동이다!’
“서둘러!”
거의 구르다시피 대공동으로 들어온 스테치와 함께 가렛이랑 엘레나는 온 힘을 다해 철문을 밀었다. 문틈으로 보이는 락 이터의 무리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으나, 다행히도 문은 락 이터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두두두-
락 이터들이 몸을 날려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스테치가 땀을 뚝뚝 흘리며 무릎을 꿇자 가렛은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고, 그런 그에게 스테치는 단검을 되돌려주었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긴장 풀기엔 아직 일러. 저기에…… 그게 있다구.”
가렛이 가리킨 대공동 입구 반대편의 어느 한 지점에서, 스테치는 곧 기묘하기 짝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얼음으로 된 인간의 형상.
만사가 귀찮다는 듯 턱을 괸 채로 대공동 구석의 바윗덩이 위에 걸터앉은 얼음덩이의 인간 하나.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를 본 스테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그동안 온갖 괴상한 생명체들을 다 만나보았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 저건?”
『키퍼다.』
저게 키퍼라고? 메멘토 모템의 확답이 들려오자 검을 쥔 스테치의 손바닥에 무심코 힘이 들어갔다.
키퍼가 앉아 있는 주변을 확인해 본 결과, 어느 곳에도 아티팩트로 향하는 길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역시 길은 녀석을 쓰러뜨려야만 나오는 건가?
“저게 던전 키퍼 맞지? 우리가 왔을 때부터 계속 저러고 있었는데…… 왜 가만히 있는거야?”
가렛의 말에 스테치는 말없이 바닥에 있던 돌멩이를 쥐었다.
가만히 있는 키퍼의 주의를 끄는 좋은 방법은, 역시 먼저 신호를 주는 것이다.
휙, 하고 던진 돌멩이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얼음 인간의 머리통을 때렸다.
그러자 잠깐의 정적 후. 미동조차 하지 않던 녀석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이목구비 하나 없이 매끈한 얼음 표면으로 스테치를 ‘직시’했다.
“?!”
“우왁!”
콰르륵!
토사를 밀어내며 올라온 날카로운 얼음 결정이 스테치의 몸통으로 뻗어져 나왔다.
가렛과 엘레나는 옆으로 굴렀고, 얼음의 바로 위에 서 있던 스테치는 그대로 지면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파이어볼》!’
화염과 차가운 얼음 덩어리가 접촉하자 대량의 수증기가 발생하며 자욱한 안개를 형성했다.
착지한 스테치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수증기가 걷히자, 저 멀리에서 좀 전과 변함없이 방만한 자세로 스테치를 지켜보던 얼음 인간이 보였다.
“……?”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의 행동에 스테치는 의아해했다. 뭐지, 저 태도는?
‘그나저나 아무런 예비 동작조차 하나 없이 저 정도 거리에서 다짜고짜 공격을 가할 줄이야…….’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키퍼는, 이내 방향을 틀어 스테치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완전한 임전 태세에 들어간 그 모습에, 스테치는 다급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가렛, 나랑 함께 앞으로! ……세레나는 뒤에서 엄호!”
“드디어 던전 대빵과 싸우는건가!”
가렛은 이를 갈며 망토를 휘두르더니 모습을 감췄고, 엘레나는 스피라투스의 주둥이로부터 기다란 화살을 뽑아냈다.
발끝에 잔뜩 힘을 준 스테치는 검을 늘어뜨린 채 키퍼를 향하여 돌진했다.
손목에 찬 팔찌에서는 빛이 일더니 페네트레이터의 날을 전기막으로 코팅시켰다.
“처먹어라!”
뛰는 도중에 남는 손을 키퍼에게로 뻗은 스테치는 화염구를 연달아 발사했다.
얼음으로 된 몸이니 열에 어느 정도 취약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마치 그 생각을 비웃듯 키퍼는 정면으로 《파이어볼》을 전부 받아냈다.
푸확!
터져나간 화염구들의 불꽃이 키퍼의 몸을 훑다 사라질 때쯤에는, 스테치가 이미 코앞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흡!”
가로베기를 시전하려는 스테치를 상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는 키퍼.
묵묵히 스테치를 응시하는 녀석의 바로 밑에서, 봉긋하게 솟아오른 흙더미가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또 그 얼음 공격인가?
퍼억!
스테치의 검보다 먼저 키퍼의 몸에 적중한 것은 다름아닌 엘레나의 화살이었다.
단단하면서도 묵직한 화살의 일격에 크게 뒤로 밀려난 키퍼는 땅밑의 공격을 중단했고, 그런 녀석의 텅 빈 상반신을 향해 스테치가 휘두른 검격이 이어서 도달했다.
애석하게도, 얼음 조각이 조금 튈 뿐 검의 날 부분은 조금도 박히지 않았다.
바라크로 강화한 검이라도 키퍼를 상대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가? 스테치는 지체없이 검을 잡아당긴 후, 팔을 쭉 뻗어 찌르기를 먹였다.
탕!
화약 터지는 소리가 대공동에 울려퍼졌다. 찔러넣자마자 즉시 방아쇠를 당겼건만, 날을 맨손으로 잡아 옆으로 비틀은 키퍼에 의해 페네트레이터의 타격부는 허공을 때렸다.
이윽고 키퍼와 스테치의 힘 겨루기가 시작됐다.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팔을 부들부들 떠는 스테치와는 다르게, 키퍼는 거꾸로 검을 잡아당기더니 스테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
내뱉은 입김이 육안으로 보이는 것에 놀란 스테치는, 자신의 몸 이곳저곳이 느리지만 확실하게 얼어가고 있음을 뒤늦게 눈치챘다.
그제야 검을 키퍼의 손으로부터 뽑아내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녀석은 꿈쩍도 안 했다.
“끄으응…….”
인챈트 된 검을 붙들은 녀석의 손아귀에서 맹렬하게 튀는 스파크를 보며, 스테치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버티다간 오히려 검이 먼저 부서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머뭇거리던 스테치는, 때마침 키퍼의 등 뒤에서 나타난 가렛을 보았다.
키퍼는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등짝에서 자라난 얼음송곳들을 이용해 가렛의 몸뚱이를 사정없이 꿰뚫었다. 그러나 가렛은 유령같은 신체를 이용해 송곳들을 모두 회피했고, 그 틈을 타 스테치는 힐트를 붙잡은 채 키퍼의 가슴팍을 걷어차 검을 뽑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좋았어!”
“이 자식 보통내기가 아니야!”
말을 마치자마자 또다시 사라진 가렛은 이번엔 키퍼의 코앞에서 다시 나타나더니 망토를 살짝 흔들었다.
안감에 걸려있던 수많은 단검들이 홀더에 걸린 채로 쭉 내려가, 망토 끝부분을 따라 톱날 같은 형상을 취했다.
촤악!
상대가 만약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이 공격은 굉장히 위협적이었으리라. 하지만 인챈트된 스테치의 검조차 먹히지 않았는데 가렛의 공격이 제대로 먹힐 리가 없었다.
망토의 단검 날들이 키퍼의 몸을 긁어대기만 할 뿐 아무런 데미지도 입히지 못하는 것을 보자, 가렛은 혀를 차며 뒤로 발을 뺐다. 어차피 시간 벌이에 불과하다는 건 본인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거 아닌가?
한편, 뒤쪽에 서서 가렛의 싸움을 지켜보던 스테치는 검에서 탄피를 뽑아내고 새 탄을 장전한 뒤, 손바닥을 벌려 《테슬라》의 구체를 생성했다.
‘이건 어떠냐……!’
좀전의 공합으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스테치의 검격도, 메멘토 모템의 마법도, 엘레나의 화살도 죄다 정면에서 몸으로 받아내던 키퍼가, 유일하게 피한 공격.
그것은 바로 페네트레이터의 타격부였다. 녀석이 직접 손까지 써가며 회피한 그 일격이야말로 치명타를 안겨줄 유일한 수단임이 분명했다.
클린히트를 먹이기 위해선 먼저 녀석의 양손을 봉인하는 것이 급선무.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스테치는 보랏빛으로 번뜩이는 에너지 구체를 바닥에 던져놓은 후 가렛에게 외쳤다.
“비켜!”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공기 중으로 녹아 들어가는 가렛. 사선이 확보되자마자 여지없이 엘레나의 화살이 다시금 날아와 키퍼의 머리통을 두들겼다.
파지직!
그에 뒤이어 작렬하는 《테슬라》의 스파크. 요격범위 안에 들어온 키퍼에게 에너지 구체가 자비 없는 전격을 난사하자 녀석은 비틀거리며 뒤로 조금씩 물러섰고, 스테치는 다시 한번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준 S급 던전 키퍼는 확실히 강했다. 하지만 아티팩트를 둘둘 말은 데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팀 마냥 능숙하게 협공하는 세 사람을 상대로는 약간 힘이 부치는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고슴도치처럼 몸을 움츠린 키퍼의 등짝과 어깨에서 뾰족한 고드름들이 자라나더니, 스테치에게로 겨눠져 일제히 발사됐다.
뒤늦게 메멘토 모템의 서포트로 《크로스 윈드》를 포함한 온갖 스킬들이 발동되었으나, 모든 공격을 막아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악!”
굵직한 고드름 하나가 허벅지 깊숙히 박혀 들어갔다.
넘어질 뻔한 것을 억지로 버티고 발을 내딛은 스테치는 악을 써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 발. 한 발이면 충분하다.
그런 그를 노리고 얼음 결정이 창날처럼 치솟아 올랐지만, 유감스럽게도 스테치의 검이 아주 조금 더 빨랐다.
슈콱!
화약의 힘으로 밀려 나간 타격부가 키퍼의 얼음 머리통을 강타했고,
시종일관 느긋해 보이던 키퍼의 움직임에도 이변이 일어났다. 경악 어린 손놀림으로 머리 정중앙에 난 구멍을 덮어보는 키퍼에게, 스테치는 가렛과 함께 킥을 먹였다.
몰리다 못해 어느새 벽까지 밀려난 키퍼.
스테치와 가렛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녀석을 노려보자, 양손으로 틀어막은 머리의 구멍에서 새하얀 김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끝이다!”
키퍼를 밀어붙인 가렛이 단검으로 녀석의 손들을 비틀어 젖히고, 스테치는 그 자리에 다시 한번 검극을 꽂아 넣었다.
그 순간 미친 듯이 발악하던 키퍼가 크게 한 번 꿈틀거리나 싶더니, 양팔을 천천히 아래로 늘어뜨렸다.
“뭐, 뭐야?”
당황한 스테치의 목소리에, 키퍼의 미간을 중심으로 흉곽, 복부를 가르는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느릿느릿, 가슴팍이 좌우로 갈라지며 뿜어져나온 뜨거운 열기가 그들의 얼굴을 후끈하게 달궜다.
“…”
딱딱한 냉기의 가죽을 벗어재끼고, 상반신을 일으킨 것은 다름아닌 불꽃의 인간.
이글거리는 화염으로 몸을 감싼 인간의 형상 하나가, 스테치와 가렛에게로 초 고열의 화염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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