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62)
61화에계속 –
61화 네 상대는 나다
‘맙소사.’
엘레나의 눈에 그것은 이미 불꽃이 아닌 섬광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수십 미터 높이의 천장까지 피어오른 거대한 화염으로 대공동 내부가 붉게 물들었고, 다른 일행으로부터 먼 곳에 서 있던 그녀에게까지 이글거리는 열기가 뻗쳐왔다.
“그…….”
화염이 천천히 사그라들 때쯤이 돼서야, 엘레나는 시선을 키퍼가 있던 쪽으로 돌렸다.
바닥에 주저앉은 얼음의 허물을 가르고 나온 화염 덩어리. 저게 키퍼인가? 방금 전까지의 냉기가 무색해질 정도로 거센 불꽃이 키퍼의 전신에서 끊임없이 발산되고 있었다.
“크아악!”
그때, 수 미터를 날아간 가렛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흘리며 엘레나가 있는 방향으로 밀려났다.
옷가지 일부분이 불에 그을려 희미한 탄내가 나고 있었지만, 몸은 대체로 아무런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그런데 스테치는?
주변을 살피며 스테치를 찾는 엘레나. 그러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눈앞에는 허물을 남겨둔 채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화염 인간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뒤에…….
“!”
상반신의 우측 절반이 잿가루가 되어 널브러진 스테치가 있었다.
만티코어의 갑옷은 뛰어난 내열성 때문에 비교적 멀쩡했으나 정작 그것을 입고 있던 스테치의 일부는 흔적도 없이 소멸했고, 그나마 남은 부분도 원형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이건 이미 상처 회복을 논할 단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시체의 끔찍한 몰골에 엘레나는 쇼크를 받아 털썩 주저앉았고, 때마침 일어난 가렛도 무슨 일인지 사태 파악을 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 말도 안돼…….”
가렛이 폭염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스테치가 무방비 상태였던 그를 《에어 버스트》의 풍압으로 날려 목숨을 구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스테치의 희생으로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가렛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가렛의 감정조차 지금의 엘레나가 느끼고 있는 절망감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
수십미터 밖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조차 감지할 수 있는 엘레나의 청각으로도 스테치의 심장소리만큼은 들리지 않았다. 거짓이 아닌 현실. 대체 누가 이런 상황이 벌어지리라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엘레나의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
난 왜 이렇게 무능력한거야?
죄송합니다, 아텔리어 씨.
죄책감과 슬픔, 분노로 머릿속이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눈은 초점을 잃었다.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엘레나에게 다가간 화염 인간은 불꽃이 일렁이는 손을 뻗었다.
“크윽!”
가렛은 화염 인간을 정면으로 가로막았다.
던전 클리어는 실패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녀를 데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 가렛이 타른카페를 사용하려고 마음먹은 순간, 화염 인간의 뒤편에서 희미한 녹색 빛이 일었다.
두근-.
귓가로 들려온, 맥동하는 심장 소리.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땅바닥만 쳐다보던 그녀가 무언가에 홀린 듯이 고개를 들자, 화염 인간도 뒤를 돌아보았다.
콱!
온전한 왼손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찍은 시체가 천천히 땅을 짚고 일어섰다.
탄화되어 없어진 뼈, 근육, 피부가 점토처럼 뭉치고 층층이 쌓여 시체의 텅 빈 자리를 메워나가는 과정이 슬로우 모션처럼 진행되었다.
그리고 만들어진 새로운 눈은 화염 인간을 노려보고 있었다.
《패시브 스킬 : 리스트레인드 소울. 죽음은 당신을 막지 못합니다.》
“『다 했냐?』”
그것이 스테치와 메멘토 모템에게서 처음 나온 한 마디였다.
제라드에 의해 죽은 이후로는 처음 겪는 두번째 죽음.
메멘토 모템이 있는 한 그에게 죽음은 무의미 했으나, 그렇다고 죽는 것이 마냥 즐거울 리는 없었다.
위협적으로 목을 꺾어 보이더니 냅다 화염 인간을 향해 돌진하는 스테치.
메멘토 모템을 막 얻고 빌빌대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의 그는 차고 넘치는 마력 덕분에 스텟 다운 현상을 겪지 않고 곧장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슈화아악!
화염 인간이 손을 변형시켜 만든 검을 가로로 휘두르자, 부채꼴 형태의 불길이 일며 대공동 전체로 확산 되어갔다. 그러나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크로스 윈드》의 풍압을 이용해 불꽃을 가볍게 밀어낸 스테치는 화염 인간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해 뒤로 빠진 뒤, 엘레나와 가렛을 등지고 서서 《에어 버스트》를 날렸다.
공중으로 붕 날아가더니 저 멀리 바닥을 구르는 화염 인간. 잠시 녀석을 노려보던 스테치는 상의가 타버려 훤히 드러난 자신의 상반신을 흘끗 쳐다보더니 툴툴거렸다.
“빌어먹을 자식. 귀한 옷을 태워버리고 말야.”
“야! 너, 너 어떻게……?!”
태연한 그의 태도와는 달리 엘레나와 가렛은 너무 놀라 잠깐동안 할 말을 잊어버렸다.
이 세상에 사자가 부활할 수 있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만고불변의 진리를 정면으로 깨부수고 죽음으로부터 돌아오다니. 실제로 가렛은 눈 앞의 스테치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엘레나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지만, 흘겨보는 그 눈빛이 어찌나 흉흉했는지 스테치는 거의 피부가 베일 지경이었다. 메멘토 모템의 능력을 전부 말해주지 않고 입 다물고 있던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순순히 사과했다.
“…… 미안.”
엘레나는 안도감과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고선 말했다.
“이야기는 나중에 듣겠습니다. 일단은 키퍼부터 처리하죠.”
그제야 키퍼가 날아간 방향을 쳐다보는 세 사람. 그러나 정작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덩그러니 널브러져 있던 화염 인간이 아니었다.
덜컥-.
내용물이 빠져나가 텅 비어있다고 생각했던 얼음 껍질이 크게 요동쳤다.
마치 죽은 신체에 새 생명이 깃드는 것처럼, 덜그럭거리던 ‘얼음 인간’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늦게 땅을 짚고 일어선 화염 인간이 얼음 인간과 합류할 때까지 스테치 일행은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느라 움직일 수가 없었다.
키퍼가 둘?
하나를 상대로도 셋이 덤벼야 상대할 수 있었는데 이젠 둘씩이나……그 정도로 스테치가 겁을 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불리해진 것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푹!
여전히 허벅지에 박혀 있던 고드름을 억지로 뽑아내고 회복 스킬을 사용하자, 스테치의 상처에 금방 새 살이 차올랐다. 누가 봐도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위협적인 건 화염 덩어리 쪽. 그렇다면 놈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스테치 자신밖에 없었다.
철컥.
스테치는 두르고 있던 탄띠를 풀어 엘레나에게 건네주었다.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화염 인간의 공격을 받은 순간에 탄이 전부 터져나갔을 터. 때문에 열을 내뿜는 놈을 상대하기 위해선 화약탄을 전부 몸에서 떼어놓는 것이 최선이었다.
“얼음덩이는 너희 둘에게 맡길게. 불덩이는…… 내가 상대한다.”
“뭐? 그건 너무 무모…….”
이어지는 말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돌진하는 스테치. 녀석들이 함께 움직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야만 했다.
스테치는 합장한 양손을 화염 인간쪽으로 뻗어 곧장 주문을 날렸다.
“《아이스 웨이브》!”
안개처럼 흩뿌려진 냉기가 바닥을 타고 미끄러져 화염 인간에게 도달하는 순간, 발목을 얽매이며 자라난 얼음 결정이 순식간에 녹고 증발하여 수증기로 화하였다.
뭐든 금새 녹여버리는 열기 때문에 꿈쩍도 하지 않는 키퍼. 스테치는 거기서 실망하지 않고 즉각 다음 수를 생각해냈다.
‘가자, 파트너!’
『커스 디바우러!』
착용하고 있던 팔찌와 반지로부터 뿜어져 나온 검붉은 빛이 백색으로 화하더니 메멘토 모템을 감쌌고, 힘이 다한 장신구들은 이내 먼지처럼 부스러졌다.
현재 스테치가 착용 중인 저주받은 아이템은 총 7개. 그중 2개를 소모하여 신체 스텟과 마법 능력의 부스트를 받은 그는 다시금 주문을 시전했다.
《레인포스드 액티브 스킬 : 아이스 웨이브 -> 아발란체. 만물을 평등하게 밀어버리는 거대한 빙설의 파도로 적을 공격합니다.》
달리는 스테치의 앞에서 자그맣게 시작된 눈과 얼음의 파도가 점점 크게 치솟더니, 10m는 넘는 엄청난 사이즈의 빅 웨이브가 되어 화염 인간과 얼음 인간을 함께 집어삼켰다.
콰아앙!
대공동을 뒤흔드는 진동. 그러나 두 키퍼는 빙설에 밀려 잠깐 주춤거리는가 싶더니, 얼음 인간보다 선두에 선 화염 인간이 얼음을 모두 녹이고 스테치의 마법을 사실상 무력화 시켰다.
키퍼들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먼저 서로 떼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후우…….”
심호흡을 한 엘레나는 촉이 두껍고 묵직한 화살을 여러개 생성해 활대에 전부 올려두고 시위를 당겼다.
복잡한 패턴의 검은 문신이 얼굴을 덮는 순간, 대포처럼 발사된 세 개의 화살들이 얼음 인간에게 정통으로 명중했다.
엄청난 충격량.
10m 이상을 날아간 얼음 인간이 화염 인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바닥을 구르자, 허공에서 나타난 가렛이 곧바로 몸통 박치기를 먹였다. 연달아 퍼부은 공격으로 얼음 인간은 계속해서 화염 인간으로부터 멀어져갔다.
“더럽게 단단하네!”
가렛이 아픈 어깨를 쓰다듬으며 망토의 단검날로 얼음 인간을 마구 후려갈겼다. 얼음 인간이 지저에서 얼음 송곳들을 뽑아내 반격할 때 즈음엔, 이미 가렛은 다른 차원으로 몸을 숨긴 후였다.
‘위험하다, 위험해.’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단 트리키한 전법을 즐겨 사용했던 가렛이 키퍼와 대등하게 맞붙을 수 있을리 만무. 그렇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미끼가 되어 최대한 엘레나에게 공격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뿐이었다.
퍼억!
얼음 인간의 미간 사이에 스테치가 남겨두었던 상흔으로 재차 화살을 때려 박는 엘레나. 그러자 페네트레이터로 뚫었던 구멍 주변으로 균열이 퍼져 나갔다.
“지금!”
엘레나의 지시에 공중에서 나타난 가렛이 화살을 플라잉 킥으로 한층 더 깊숙히 박아넣었다. 그러자 신경질적으로 화살을 뽑아 땅바닥에 내던진 얼음 인간은 타겟을 엘레나로 바꾸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아차 싶었던 가렛은 뒤늦게 얼음 인간의 주의를 끌어보려 했으나, 녀석은 씨알만큼의 데미지도 입힐 수 없는 가렛의 공격에 더이상 신경조차 안 쓰고 있었다.
“조심해, 아가씨!”
가렛의 외침과 동시에 얼음 인간은 지면을 박차며 빠른 속도로 엘레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 와중에 그녀의 바로 땅밑에서 날카로운 얼음 결정이 자라나자, 엘레나는 옆으로 굴러 그것을 피했다.
급하게 그녀를 돕기 위해 달려가는 가렛이었으나, 얼음 인간이 딛는 자리마다 거대한 얼음벽이 솟아올라 가렛의 추적을 방해했다.
‘젠장!’
두꺼운 물질을 통과하려 들수록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신체에 부담이 많이 가게 된다.
가렛이 머뭇거리는 틈을 타 엘레나의 바로 앞까지 접근한 얼음 인간은 주먹 쥔 손을 커다랗고 육중한 얼음의 철퇴로 바꾸어 휘둘렀다.
콰각!
팔뚝만한 사이즈였던 스피라투스는 눈 깜짝할 사이에 팔 한쪽을 덮을 정도로 길어져 얼음 철퇴를 튕겨 냈다. 엘레나가 스피라투스를 활용하던 가로드를 눈여겨보았던 덕분에, 생각보다 아티팩트를 쉽게 다뤄낼 수 있었다.
가볍게 얼음 인간을 걷어차 밀어낸 그녀는 스피라투스를 팔에 끼우고 건틀렛처럼 휘둘러 머리통을 강타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엘레나의 주먹질. 그러나 얼음 인간을 상대로 어느 정도 선전하던 엘레나의 움직임은 점차 느려지고 있었다.
“으…….”
싸움에 집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했던 얼음 인간의 냉기가 한층 더 강해졌다.
지속적으로 누적된 냉기로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어진 엘레나를 얼음 인간이 마무리 지으려는 순간, 대공동 한켠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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